근원과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리깔리고 파멸의 망치가 내리쳐졌다.


그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망가진 몸의 익숙한 고통이었다. 삶은 전쟁이고 전쟁은 고통이다. 이것이 천 번은 견뎌낸 진실이었다. 고통에 큰 비밀은 없었다. 자신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생체 신호에 특이한 것은 없었다. 고통은 그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리말두스가 몸을 일으키며 전투화가 액체 불의 나락 위에 놓인 그슬린 돌다리에서 발소리를 만들었다. 갑주는 반쯤 박살나 그을리고 긁혔으며 깨진 채 잘려나간 케이블에서 불똥이 튀었다. 사원은 박살난 폐허가 되었고 공격하던 이들은 동굴 도처에 쓰러졌다. 거대한 석조 구조물의 조각들이 여전히 동굴로 쏟아지며 불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졌다. 죽은 기사들. 죽은 자매들, 수백에 달하는 이단지들. 시체들 가운데 생존자들이 일어서기 시작했으나 충분치 않았다. 일부는 이미 일어서서 무기를 쥐었으나 충분치 않았다.


3분이었다. 자신의 망막 디스플레이 정보에 따르면 꼬박 3분을 무의식을 상태로 허비했다. 이날 밤에 살아남는다면 속죄할 것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였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었다. 그는 처벌받아야 할 나약함으로 보았다. 돈의 순교한 피가 그의 혈관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악마는 죽은 이들 사이를 거닐며 산 자를 사냥했고, 자신을 가로막는 검 몇 자루를 옆으로 쳐냈다. 그것은 수중에서 인간의 흐릿한 시야 너머에 자리한 광활한 대양의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는 느낌인, 심해의 악몽 같은 공포가 형태를 얻어 소용돌이치는 모습이었다. 이제 숙주로 삼았던 인간의 크기에서 벗어난 독성 괴수는 진정한 덩치로 부풀어 올랐으며 내딛는 연골 발톱에 시체들이 으깨졌다. 그리말두스의 초점 모서리에서 춤추는 그것은 두 차원의 것이기도 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기사의 눈에는 표적 조준기의 울리는 진동 속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것의 존재를 본 죄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블랙 템플러의 하이 마샬 루돌루스는 검은 돌다리에서 괴물과 마주했다. 그의 발치에는 블러디 로즈 오더의 카노네스 자스민과 빈쿨루스 성전의 엠퍼러스 챔피언 울리쿠스가 쓰러져 있었다. 인류의 챔피언이어야 마땅한 두 위대한 영웅은 그리말두스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살해당했다. 그는 이 나른함에 대한 속죄를 반드시 오래, 아주 오래 수행하리라 다짐했다.


감이 좋지 않아 위를 바라보고 동굴의 광활한 천장에 어떠한 손상이라도 있는지 살폈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여기에 매장당하고 싶은 소망은 전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통신을 다시 가동시켰다.


소드 브라더 그리말두스가 이터널 크루세이더에 알린다. 이터널 크루세이더, 응답하라.”


- 수신했다, 소드 브라더.


발전기를 무력화했고 수직 통로가 개방되었다.”


- 이해했다, 소드 브라더. 건쉽이 출격했다.


흑기사는 검을 쥐려 했으나 자신의 무기는 없었다. 검이 없었기에 전사자의 무기 하나를 집었다. 원래의 주인이 착용한 갑주와 이어진 사슬은 끊어져 늘어진 상태였다.


루돌루스는 수세에 몰렸으며, 베기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쳐내야 했다. 매번 자신의 유물 검을 들어 올릴 때마다 날카로운 촉수와 발톱을 피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소리 없이 저주 하는 가운데 뒤로 밀리며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이토록 힘겨운 적은 없었다. 단 하나의 괴물이 이렇게 강했던 적도 없었다. 그 어떤 워프의 짐승도 그의 전사들을 이런 식으로 시험하지는 못했다. 비할 바 없는 전사였던 울리쿠스는 짐승이 발톱으로 그를 찢어발기기 전까지 겨우 일곱 합을 버텼다. 자스민 역시 그 이상 버티지 못했다. 쓰러진 붉은 깃발이 두 동강난 그녀의 수의가 되었다.


그들은 놈을 죽일 수 없었다. 그들은 놈들을 숫자로 압도할 수도 없었다. 기술은 놈의 속도에 무력했다. 짐승의 일격이 내리꽂히며 근육이 무뎌졌다. 짐승이 숨을 내쉴 때마다 산패한 공기의 점막이 흘러나와 기사 군주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와 함께 싸우던 기사와 자매들은 나가떨어져 불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다른 기사가 그의 곁에 도달했으나 단번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발톱의 난타에 맞아 옆으로 나가떨어지며 돌다리 밑의 마그마 강으로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전투 자매 한 명이 짐승의 포효에 화염방사기의 불길이 역류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메스꺼운 흐릿함 속에서 놈이 다시 루돌루스에게 다가왔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허리춤의 수류탄을 꺼내려 했으나, 짐승의 맹공격이 그의 검을 난타했다. 놈의 공격을 쳐 내려면 양손의 모든 힘을 집중해야 했다. 이제 짐승이 죽인 이들의 시체 사이로 한쪽 무릎이 꿇린 채, 내리치는 공격을 쳐 내고 있었다. 1, 1초만.


악마가 그의 검을 내리쳤다. 루돌루스는 공격을 쳐내려 힘을 쥐어짰으나, 당겨지는 힘줄이 찢어지려 함을 느꼈다. 가까스로 발톱을 쳐냈으나, 하이 마살은 바로 짓쳐들어오는 다음 손톱의 하강을 막아내려 검을 올렸다.


그러나 공격은 없었다. 내리치던 놈의 발톱은 철퇴에 가로막혔다. 철퇴가 짐승의 힘에 밀리자 역장이 부하를 받으며 치직 거렸다.


루돌루스가 웃었다.


모드레드.”


철퇴로 막은 이는 모드레드가 아니었다. 그의 크로지우스 아르카눔을 쥔 다른 전사였다.


소드 브라더 그리말두스의 붉은 망토는 화염이었다. 그의 갑주는 구부러진 장갑판과 그을린 사슬의 장식이었다.


주군.”


그리말두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통신으로 말했다.


하이 마샬은 한 손을 검에서 놓고 허리춤에 달린 신성한 소이탄을 움킬 여유를 얻었다. 수류탄이 해방되었다. 엄지로 작동의 룬을 가동시켜 구체의 장갑 외피가 깨졌다. 그리고 신성한 상징을 들어 올려 악마의 포효가 잦아드는 가운데 불굴의 함성을 외쳤다.


루돌루스는 짐승이 아닌, 놈의 발치에 수류탄을 던졌다.


안티오크의 구체는 챕터의 신성시 되는 무기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부류에 속했다. 수천 년 전, 블랙 템플러의 테크마린 안티오크가 처음으로 제조한 이들은 다른 아뎁투스 아스타르테스 챕터의 표준적인 수류탄보다 어떠한 기준으로 보아도 월등히 강력했다. 축성 받은 기름과 성스러운 산을 꽉 들어찬 폭발물과 조합하여 만든 이 소이 수류탄 하나가 개인적인 걸작이었으며, 적에 대한 저주와 사용자에 대한 축복, 하이 고딕 양식의 성화가 새겨졌다. 수류탄 하나는 무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리지 않고 죽이겠으나, 안티오크의 구체 한 발은 신성 모독적인 존재에게 당연히 마주해야 할, 고통스럽게 불타는 최후를 확실히 안길 수 있다.


성스러운 구체는 돌다리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루돌루스와 그리말두스는 이미 물러나고 있었으나, 적에게 등을 보이기 거부하며 적의 최후를 목도할 대가로서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을 그대로 마주했다. 항성의 빛 같은 하얀 섬광이 폭발을 뒤따랐고, 악마를 신성한 화염으로 불태우며 박살난 바위조각을 사방으로 날렸다. 흔들리던 돌다리가 무너지면서 동굴을 지지하던 기둥 여럿을 끌고 갔다.


짐승은 불길에 휩싸인 채 추락하고 있었다. 마그마에 빠졌는데도 놈의 울부짖음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말두스는 무너진 다리에서 물러나, 몸뚱이가 더욱 타오르는 짐승이 녹아내린 바위에서 발버둥 치며 용암을 흩뿌리는 모습을 혐오스러운 불신을 가진 채 지켜보았다. 팔 하나가 녹아버리자 다른 팔이 돋아났다. 회색 두족류같은 몸뚱이에 새로이 입 여럿이 생겨났다가 비명을 지르고 닫히기를 거듭했다. 일부는 용암에 잠겼고, 나머지 입들은 용암을 토해냈다.


루돌루스는 중력이 발 밑의 땅을 집어삼키며 비틀거렸다. 그리말두스의 장갑이 주군의 황금 갑주를 잡고 그를 바로 세워주었다.


소드 브라더가 주군을 안전히 끌어내면서 말했다.


건쉽들이 오고 있습니다.”


루돌루스가 경고했다.


놈은 죽지 않았다.”


그리말두스는 그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직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격했다. 수백에 달하는 죽은 이들 가운데 피를 흘릴지언정 서 있는 수십의 살아남은 자매들과 흑기사들이 녹아내린 추악한 것에게 사격하며 총성이 동굴을 진동했다.


죽어가는 짐승은 모든 인간적 가식을 벗어던졌다. 몸부림치며 꼬인 다리가 헤아리기에 너무 많은 두족류가 수면 아래로 잠겼다가 마그마를 흩뿌리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드러나자 고통의 상징이자 화신이 되었다.


놈의 크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 필멸의 시야로는 믿을 수 없었다. 한 인간의 갇힌 영혼의 크기였다. 수천 발의 폭발성 탄환이 빗발치며 학대받는 가운데 부풀어 오르고 맥동하는 전설 속 괴물의 덩치였다.


볼트 탄환이 그것의 몸속에서 작렬하자 피와 살점 대신 용암이 튀었다. 놈은 계속 기어오르고 있었다. 1미터씩 고통스럽게 나아가는 가운데 바위와 녹아내린 찌꺼기들이 동굴의 벽에 튀면서 작은 구멍을 뚫고 벌레의 삶을 갈구했다.


그들은 얼굴에 부는 바람처럼 놈의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있기에 경멸했다. 그 증오는 놈이 소멸할 시점이 넘었는데도 움직일 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놈은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동굴의 기둥을 노렸다. 기둥들을 에워싸고 움킨 다음, 파괴했다.

하나씩 하나씩 기둥이 부서졌다. 괴물 같은 영혼의 발톱은 기둥에서 다음 기둥으로 넘어가며 동굴이 자신의 분노 속에 무너지도록 했다.


그러나 물질 영역의 그 어떤 존재라도 상처를 영원히 무시할 수는 없다. 바위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괴물의 포효가 신음으로 변했다. 성스러운 구체에 맞고 수많은 볼트 탄환으로 터져나간 상처가 가득하자 마지막 기운이 빠져나갔다. 놈은 다른 기둥을 후려쳤으나, 흐느적대는 사지가 휘감기에 실패하고 쏟아지는 바위 가운데 흔들리고 진동하게 놔두었다. 바닥에 떨어진 바위가 깨지고 다리를 무너뜨리며 공기가 먼지로 가득 찼다.


기사와 자매들은 쓰러진 공포를 에워싸고 검과 화염으로 처단했다. 미약해진 저항은 더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했다. 놈은 그대로 널브러져 녹아내리며 난자당한 상처에서 피어오르는 악취 나는 증기 구름으로 공기를 더럽혔다.


어떠한 승리 이후에도 침묵은 없다. 전장은 죽어가는 자들의 절규와 불타는 전차의 일렁이는 불길로 시끄러울 것이다. 이곳 지하의 전장에서는 어떠한 침묵도 무너지는 바위의 천둥 같은 소리와 흔들리는 대지의 으르렁대는 진동에 살해당했다.


수직 통로를 통해 첫 건쉽들이 나타났다. 지상에서는 기사와 전투 자매들이 동굴 천장의 수직 통로를 바라보며 쏟아지는 잔해 속에서 썬더호크들이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했다. 떨어지는 종유석들은 날이 지상으로 향한 창의 소나기나 마찬가지였다. 추락한 건쉽의 불타는 잔해가 치명적인 돌의 호우가 쏟아지는 옆우로 굴렀다.


그리말두스에게 일격이 가해졌다. 갑작스런 충격에 휘청거렸으나 돌에 맞아서가 아니었다. 레클루시아크 모드레드가 그의 시야에 흐릿하게 비쳤다. 은빛 해골 면갑의 붉은 렌즈를 통해 차가운 시선이 그를 응시했다.


전사 사제가 노기를 드러냈다. “채플린의 무기를 훔치다니, 실로 추악한 죄로다.”


그리말두스는 쓰러진 채 레클루시아크를 올려다보았다. 본능적으로 다시 일어나 공격자에게 덤벼들 뻔 했지만 바위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한복판에서 자제력이 승리했다.


돌아가신줄 알았습니다.”


모드레드는 답하지 않았다. 둘의 주변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가운데 비이상적이고 조용한 인내를 가지고 그리말두스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