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솔라 억실리아 베테랑의 이름은 바스케일이었다. 바스케일은 주의 깊게 그들이 들고 온 보증서를 확인했다. 바스케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보증서들을 두 번이나 광학 판독기로 훑었다. 이런 종류의 문서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근위장의 인장은 확실한 진품이었다.
“키릴 신더만, 하리 하르.”
바스케일은 중얼거리며 보증서를 돌려주었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서류요?”
“상부 허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신더만이 하리를 멈췄다. 청년의 소매를 움켜쥔 신더만이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경비대장님, 우리의 이 보증서는 설명으로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임무는 급한 용무고, 시간이 부족합니다.”
멀리서 천둥이 우르릉대며 공기가 흔들렸다. 2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이지스 망을 따라 마크로 캐논 포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신더만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똑같은 말의 반복. 바스케일은 씩씩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케일은 목발을 짚고서 두 사람을 안쪽 출입구로 안내했다. 걸음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 목발이 엇갈리며 신발을 거세게 때렸다. 목발을 짚고 걷는 내내 바스케일은 툴툴거리며 당황해야 했다.
블랙스톤 감옥은 헤게몬 복합 단지의 측면에 자리한 거대한 별관이라 할 수 있다. 돈이 지어낸 요새들처럼 튼튼했지만, 진짜는 내부였다. 블랙스톤은 무언가가 풀려나지 못하도록 지어진 건물이었다. 30미터 두깨의 석회화된 벽은 카디아의 광산에서 캐낸 녹틸리스(Noctilith)제 버팀목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 출입구에는 폭발물과 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블랙스톤 감옥은 황궁 전용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감옥들도 물론 존재한다. 일반 시민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매그니피칸에 설치된 감옥에서 처리하는 게 원칙이니까. 하지만 그 감옥과 수감자들이 지금 처한 상황은 오직 운명만이 알고 있으리라. 지하로는 황궁 중심부의 바로 아래 “던전”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철통같은 지하감옥이 있었다. 바스케일에 따르면, 던전의 수용실 상당수가 비워졌다고 한다. 그조차도 이유를 몰랐지만 말이다. 던전에 투옥되어 있던 반역자, 정치범들, 그리고 다른 상습범들은 블랙스톤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오직 옥좌에 계신 그분만이 사정을 다 아실 거요.”
바스케일은 절뚝이며 중얼거렸다. 목발을 짚고 걷느라 가빠진 숨을 골랐다.
“모조리 쏴 죽여야 했고, 다 해결했소.”
“쏴 죽였다고요?”
하리가 물었다. 부하 한 명이 연이어 붙어 있는 출입구를 개방하길 기다리면서 바스케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일행을 향해 몸을 돌렸다.
“죄수들을 청산한다. 뭐 어쨌다는 거요? 시간만 지금 모자란 게 아니오, 신사 여러분. 공간도 마찬가지고, 자원도 그렇지. 이 악마같은 놈들을 먹이고 재우고 지키는 데 얼마나 들 것 같소? 지금 바깥 사정들 뻔히 알겠지. 좋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피난처를 찾아 헤매고 있는 마당이란 말이오.”
신더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헤게몬 일대 거리를 따라 급한 걸음을 옮기면서 일행은 피난민들과 부상자들, 청원을 제출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프를 제공하는 주방들과 복지관들을 지나쳤다. 생텀 임페리알리스는 안전을 찾는 난민들로 넘쳐났고, 신더만은 그들은 황궁 구역으로 진입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죄수들이 처형되었다고 하신 겁니까?”
“이 안에 있는 놈들이 밖에 있는 모든 새끼들보다도 더 아는 환경을 누렸단 말이오.”
바스케일은 경비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서둘러, 겔링! 암호 다 알잖아!”
바스케일은 다시 신더만과 그의 젊은 동행인을 돌아보면서, 둘의 얼굴에서 이해했다는 기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블랙스톤 감옥은 아주 큰 곳이오. 정원 이상으로 수용할 수 있지. 수천 명은 될 거요, 비록 일시적이겠지만. 하지만 저 바깥 상황을 생각하면-”
“훨씬 낫다?”
신더만이 물었다. 바스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죄수 놈들에게 매일 식사를 배급했지. 완전 낭비 아니오? 이놈들이 좋은 놈들이었다면 어디 여기 들어오기나 했으려고. 왜 우리 식구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데, 무슨 이런 것들을 챙긴단 말이오?”
“아마 윤리학 어딘가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수 있겠지요.”
신더만이 살짝 모험적인 답변을 했다.
“그걸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합니다.”
“하, 그렇소?”
바스케일은 되물으면서 신더만의 답을 곱씹었다.
“당신, 보고서를 만든다 그랬지. 안 그렇소? 뭐 더 물으실 것 있소? 내 이름도 올라가는 거요?”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경비대장님.”
신더만이 답했다.
“나는 내 견해에 한 점 부끄럼도 없소.”
“그러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아니, 당신 표정 알아. 그 건방진 표정.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느끼지? 그 잘난 자유주의적이고 지성적인 표정 말이야… 여기서 확실히 해 두는데, 나는 지금 우생학에 따른 도태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더만이 바스케일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필사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성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줄어들고 고갈을 향해 가고 있지요. 당신은 그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위협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채 먹여 살릴 책임이 있었고, 다른 착한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실용적으로 임했을 뿐이지요.”
“실용적이라.”
바스케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혹하지만, 실용적이지요.”
신더만이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그런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날이 정말 온다면, 지금 우리의 성벽을 뚫고 우리를 도륙하려 드는 저놈들과 우리가 다를 게 뭐가 될 것인지, 그게 두렵습니다.”
바스케일은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경비원이 출입구를 열었고, 바스케일은 그 출입구를 따라 일행을 인도했다. 장식도 없고, 희망도 없는 길고 눅눅한 통로를 따라 걸었다.
“어디서 다치신 건가요?”
걸음을 옮기며 하리가 물었다.
“나 말이오?”
바스케일이 뒤를 힐끗 바라보며 답했다.
“새벽의 문에서였소. 3주 정도 전에. 운이 나빴지. 다리 하나는 날아갔고, 엉덩이도 박살났소. 전선에서 싸우는 건 불가능해졌지만, 최소한 여기 바로 투입될 정도는 됐소.”
“전임 경비대장은 어떻게 되었나요?”
“지금 전선에서 총 들고 싸우는 중이지.”
바스케일은 음울하게 낄낄거렸다.
“우리 모두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지.”
“그렇지요.”
신더만의 말이었다. 다른 경비원이 또 다른 문을 열었고, 경비대장은 널찍한 석조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식당이었다. 경비 초소들이 식당의 자리들을 감시했다.
바스케일은 복스 채널을 열어 죄수를 감옥에서 꺼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바스케일이 일행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소.”
신더만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렇지요. 우리는 폐하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섬깁니다. 싸울 수 있는 자는 싸우고, 싸우지 못하거나 싸울 수 없이 다친 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는 거지요. 우리의 상처가 하나씩 늘 때마다 고통이고, 황궁의 아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섬기지요. 소장께서 말씀하신 바는 알겠으나… 그런 조치가 필수화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당신만이 최악의 상황을 보며,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바스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은.
“떠날 때가 되시거든 경비원들을 불러 주시오.”
금속 목발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바스케일은 절뚝이며 사라졌다.
“경비대장을 만나셨군요.”
유프라티 킬러였다. 일행은 흠집투성이인 낡은 식탁 앞에 마주하고 앉았다. 하리는 온통 흠이 나 있는 데이터슬레이트를 꺼내 앞에 놓았다.
“소장은 우리보다 조금 더 절망적이더군.”
신더만이 말했다. 킬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얘기를 해 보세요.”
그녀의 숱이 많은 머리는 풀어지고 기름이 맺히다시피 한 상태였다. 피부는 건강치 못한 창백한 빛이었다. 군용 여분 바지와 헐렁한 린넨 작업복, 그리고 모직 벙어리장갑을 한 채였다.
“다시 볼 수 있어 정말 반갑네, 유프라티.”
“그래서, 이쪽은 누구죠?”
“하리라고 하네. 나와 함께 왔지.”
킬러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리라고 했죠? 도망쳐요. 키릴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 치고 잘 풀리는 걸 못 봤거든. 물론 키릴의 잘못은 아니지만, 늘 그랬어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일이죠?”
킬러가 다시 신더만에게 물었다.
“내 사면장이라도 가져온 거예요? 아니, 그럴 리가 없죠. 지금 내 믿음은 위험물 그 자체로 여겨질 테니까요. 내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 그러고 보니 당신은 자유롭게 다니네요? 믿음을 포기한 건가요?”
“아니, 그렇지 않네. 하지만 인장관 전하의 조건은 분명했네. 어떤 유신론자라 해도 기소당하지 않을 것이며, 이동의 자유 역시 보장한다. 다만 사교를 실천하거나 공표해서는 안 된다.”
“사교라고요?”
킬러의 슬픈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의 조건이었다네.”
신더만이 답했다.
“사실, 나는 최소한 지금은 내 믿음을 버렸지. 점점 흔들리고 있긴 했네만. 자네는 항상 나보다 믿음이 굳건했지.”
“키릴, 당신은 목소리였잖아요, 우리-”
“지금 내 마음에 채워 놓은 믿음은 다른 걸세. 진정한 진리, 제국의 진리 말일세. 지금 세상은 점점 어둠에 잠기고 있네, 유프라티. 우리가 만나지 못한 그 짧은 시간 동안데도, 지옥이 들끓어 우리 세상 위로-”
“그리고 황제께서는 보호하실 거예요.”
“그러시리라 믿네. 하지만 그분은 그 언제라도 이 유신론자들의 운동을 숙청하실 수도 있네. 자유는 소중한 것이니… 아이러니하군, 지금 여기 모인 우리 모두 여기 갇힌 거나 다름없는데 말이지. 어쨌든, 그래서 나는 신성한 사역을 잠시 내려두었다네. 세속의 일에 충실하기 위해서.”
신더만은 킬러의 이름이 적혀 있는 보증서를 건넸다. 그녀는 주의 깊게 살폈다.
“그리고 자네에게 줄 다른 것도 있지.”
“이거 진짜인가요? 키릴? 진짜예요, 이거? 리멤브란서라고요?”
“거의 포기했었네.”
신더만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버렸지. 우리 제국의 이성에 대해 품었던 믿음도. 그때 누군가를 통해 깨우쳤네. 지금 이 싸움은 다만 우리 목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위한 투쟁일세.”
“망할 석학같은 소리는 집어치워요, 신더만. 지금-”
신더만은 손을 부드럽게 들었다.
“그래, 유프라티. 신성한 것인지, 세속적인 것인지는 중요치 않네. 다만 우리가 함께 지어나가던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세.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게 우리의 의무지. 모든 이가 나서야 할 때야. 우리는 아스타르테스도, 병사도 아닐세.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과 싸워 나갈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싸워나가야 하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하나뿐이에요.”
“그게 뭐지?”
“황제 폐하 본인이요, 키릴.”
“그리고 황제 폐하는 무엇이시지?”
킬러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더군요, 키릴.”
“왜죠? 뭐라고 답하시기에?”
하리의 질문을 받은 킬러는 청년에게 미소를 지었다.
“옥좌시여, 키릴! 이 불쌍한 친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거예요? 내가 어떤 독을 풀었는지?”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네만. 그냥 놀리는 것 아닐까?”
신더만은 하리 쪽을 힐끗 보았다.
“자네 지금 킬러 양을 놀리는 건가?”
“약간은, 그렇습니다.”
킬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맘에 드네! 미안해요, 키릴. 당신의 안목을 의심하면 안 되는데. 늘 그렇듯이 전망 밝고 똑똑한 친구네요. 아주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몇 살이나 됐나요?”
“먹을 만큼은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리가 답했다.
“아, 그러지 말았어야지.”
킬러가 못마땅한 듯이 쯧 소리를 냈다.
“다 큰 터프가이처럼 보이고 싶은 거야?”
신더만의 동행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킬러는 계속 하리를 응시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뭘 쓰고 있는 거지? 키릴, 이 친구 뭘 쓰는 거예요?”
“듣는 걸 좀 적어둬도 될 거라고 제안했다네…”
신더만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킬러는 청년이 들고 있던 데이터슬레이트를 낚아챘다. 하리는 신더만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손에는 철필이 들려 있었다.
“메모라.”
킬러는 뒤로 돌아앉아 데이터슬레이트를 쭉 넘겨보았다.
“이걸 들이게 해 주다니, 놀라운데요?”
“경비대장이 우리 소지품은 다 조사했다네.”
“그러니까요, 키릴.”
여전히 검지로 슬레이트의 내용물을 훑어내리며 킬러가 답했다.
“저 철필은요? 글쎄, 내가 말로 독을 풀어대고 싶으면 어쩌려고 그랬대요? 요즘은 슬레이트도 무기로 쳐야 할 텐데.”
킬러는 문장을 읽어내며 잠시 멈췄다.
“유프라티 킬러. 이미지즘 시인, 전 리멤브란서.”
킬러는 자신에 관한 서술을 큰 소리로 읽었다.
“일명 렉티티오 디비니타투스, 괄호 열고, 유신론자, 괄호 닫고. 의 전도자. 퀸투스 13일, 블랙스톤 시설로 이송. 창백함. 풀린 머리, 씻지 않은 차림…”
킬러는 하리를 바라보았다.
“묶을 걸 안 주더라고, 하리. 물도 넉넉지 않았고.”
“건강해 보임. U/R.”
약간 놀란 기색으로 킬러가 청년을 돌아봤다.
“어, 줄임말입니다. 선생님. 평범하다(Unremakable)는 뜻이죠”
킬러는 그 말을 잠시 생각해 보고선 콧방귀를 뀌었다.
“왜, 평범한 게 뭐 어때서? 뭘 기대했는데?”
“그냥 줄임말입니다. 저는 많이 적어둡니다. 뭔가 독특한 게 있으면 적고-”
“그렇겠지.”
킬러가 말했다.
“난 아주 평범해. 그냥 평범한 육신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을 뿐.”
킬러는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슬레이트를 쥔 채 계속 바라보았다. 미끄러뜨리기라도 할 까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거듭 만지작대면서.
“내가 평범하지 않은 부분은 투옥된 이유 말곤 아무것도 없어, 하리. 내 머리 안에 들어 있는 생각 때문이지. 잠깐 언급할 수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뭐. 어쨌든, 내 외모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생각이 중요한 거지. 다른 페이지에 안 적어뒀나? 키릴이 아무 이야기도 안 해 줬어?”
“네, 선생님.”
하리가 답했다.
“유신론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도 하신 바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킬러가 신더만을 바라보았다.
“실망이네요, 키릴.”
“진심인가?”
신더만이 되물었다.
“자네 없이 내 믿음이 계속될 줄 알았나? 공개적으로 믿음을 꺾고 은밀히 계속했어야 했나?”
“그랬어야죠.”
“자네도 그럴 수 있었네.”
신더만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인장관 전하의 칙령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동일세, 유프라티. 그리고 도시 내에서 폭동이 벌어지면 심각한 문제가 될 걸세. 이미 문제로 넘쳐나는 도시에 또 하나의 문제를 더할 순 없네. 그래서 내가 겁쟁이냐고? 그래, 어쩌면 밖에서 몰래 전도하고 다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게 있나 보군. 잘 모르겠네만… 자존심 때문인가? 무언가가 자네에게 믿음을 지키게 했어. 그래서 여기, 누구도 자네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에 갇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주제는 그만두세. 우리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니.”
“그들이 날 보고 있어요.”
킬러가 조용히 말했다. 슬레이트를 내려놓은 킬러는 하리에게 탁자 위로 밀어 보냈다.
“나는 밀접한 감시를 받았죠. 내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믿음을 지키는 것 외엔 없었죠.”
“그리고 난 그럴 수 없었네. 자네의 기대에 어긋났지.”
“그건 믿음이 아니었어요, 키릴. 당신에겐 증거가 있었죠. 당신이 직접 느낀 증거들. 당신은 믿음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요. 당신은 눈으로 직접 봤잖아요, 그것도 몇 번이나, 키릴! 특히 우주항에서, 당신은 나와 함께-”
“그게 바로 날 꺾어놓은 걸세, 유프라티.”
신더만의 말에 킬러는 놀란 것 같았다.
“믿음은 아주 특별한 걸세.”
신더만이 말을 이었다.
“증거뿐일 때, 정신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네. 나는 그때 하루, 어쩌면 이틀 정도는 믿음에 충만해 있었다네. 하지만 그 증거 때문에 믿음의 인내는 더욱 흔들리지. 나는 생각하게 되었네. ‘나는 그분의 신성을 입증하는 증거를 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 신성을 타고 나셨다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가? 왜 이 참상을 끝내지 않으시는가? 하실 수 있는 일인데도! 왜 우리가 고통받게 버려두시는가?’”
신더만은 앞으로 몸을 옹송그렸다. 내리깔린 시선을 하고, 손가락으로는 탁자의 거친 무늬를 거듭 어루만졌다.
“내 믿음은 증거를 견뎌낼 수 없었다네.”
신더만이 말을 이었다.
“나는 그분께서 이런 비극을 허용하셨다는 걸 견딜 수 없었네.”
신더만의 시선이 다시 킬러를 향해 올라갔다.
“미안하네.”
신더만은 말을 계속했다.
“실존적 위협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네. 나는 다른 할 일, 실용적인 일을 찾았지. 모두가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하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때니까. 우리는 뜻을 하나로 통합해-”
“황제 폐하가 곧 통합이세요.”
“설교는 집어치우게.”
“설교가 아니에요. 진실일 뿐.”
“자네의 진실이지.”
신더만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름답고, 나도 아직 그 진실을 믿네만, 자네의 진실은 이 전쟁에서 이길 수단이 못 되네.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걸세. 자네가-”
“전쟁에서 이길 수단이 될 거예요. 승리를 위한 유일한 길이죠.”
“들을 생각은 있는 건가?”
신더만이 물었다.
“원한다면 하리가 설명하도록-”
“둘 다 설명할 필요 없어요.”
킬러가 답했다.
“우리가 처음 원정함대에서 만났을 때와 똑같은 주장일 뿐이잖아요. 전쟁은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그 이상이다. 그래야만 한다.”
“법치, 자유, 윤리적 가치들….”
신더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감을 지고 역사를 기록하라. 정체되지 말고 진보하라. 정복의 의무 너머로 나아가라. 외부 위협을 말살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인류의 힘. 그렇기에, 나는 당신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겠어요. 황제 폐하는 위대한 계획의 상징이시다. 그분의 계획은 태초부터 구상되었다. 위대하고 지각 있는 힘, 인류. 문명. 목적. 왜 우리의 삶 외에 어느 것도 위협하지 않는 위협을 파괴했는가? 왜 우리의 삶은 가치 있을까? 우리는 문명의 파괴자 이상이다. 우리가 곧 문화다.”
“하필 군대에 합류했을 때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하리가 말했다.
“흠, 다시 맘에 들기 시작하네요.”
“어쨌든, 나는 조그만 리멤브란서 조직을 재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네.”
신더만이 말했다.
“지금 시국을 고려하면 사치스러운 일로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기록하게 될 걸세. 우리의 정수가 담기겠지.”
“우리를 정당화하는 윤리 체계라거나요.”
킬러가 말했다.
“최근 죄수들에 대한 처우처럼 말이에요. 네, 경비대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좋은 지적을 하더군요.”
“슬프게도, 그랬지.”
신더만이 답을 이었다.
“우리를 동물과 구분 짓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들. 지식, 사상, 도덕적 규범들-”
“그런데, 역사의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던가요?”
“우리가 살아남으면, 지금 꼴을 반복하고 싶은가?”
킬러가 물었고, 신더만이 되물었다. 킬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누가 이렇게 고귀한 소명을 당신에게 안겨준 거죠, 키릴?”
“돈이었네.”
킬러는 마지못한 감명을 표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전쟁군주께서는 정말이지 놀라움으로 가득한 분이네요. 정말 그가 이걸 원한다고요?”
“그렇네. 그에게는 그게 중요하네. 하지만 그에게 안겨진 책임은 너무 무겁고, 너무 많지. 그래서 내게 리멤브란서들을 모아 달라 명한 거고. 자네가 무엇이건, 무엇이 되었건 관계없네. 자네는 이 분야의 베테랑이니까. 그래서 자네를 바로 떠올렸네.”
킬러는 다시 보증서를 집어 들었다.
“여기 어디에도 ‘리멤브란서’라고 쓰여 있진 않네요.”
“하지만 자넨 내 목적을 바로 알아차렸지.”
“당신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요.”
킬러는 자신이 집어 든 보증서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 쓰여 있는 I 표시는…”
“심문(Interrogation)의 I라네. 우리의 보증서는 심문하고 기록하기 위한 영장이 될 걸세. ‘리멤브란서’는 너무 많은 이들에게 좋지 못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테니. 우리는 말할 시간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심문할 수 있네.”
“그래서 그건 어디서 출간되죠? 언제?”
킬러가 물었다. 신더만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아마 출간될 일은 없겠지. 어디에서도, 언제라도.”
“우리 모두 죽을 테니까?”
“그럴 수도 있네만, 아니면 그렇게 공개하기엔 너무 민감한 기록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네.”
신더만이 질문에 답했다.
“민간인들이 소화하기엔 너무 위험한 기록이 될 걸세. 돈이 최종 결정권을 가질 테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기록을 모으고 종합하는 거지. 우리가 모은 것들은 어쩌면 출간될 수도 있네. 혹은 공식 기록을 위해 봉해질 수도 있고.”
“혹은 우리와 함께 불태워지거나요.”
“그것도 가능성이지.”
신더만이 답했다. 킬러는 뒤로 물러앉은 채 보증서를 만지작거렸다. 킬러는 오랜 친구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죄다 제국이 제한하고 있는 것들 뿐이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도 자네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유프라티. 하지만 기록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여기 앉아있는 거보단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긴 하네요.”
킬러가 인정했다.
“불행한 일이오.”
세 사람이 돌아본 순간, 커스토디안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금빛 갑옷은 감옥의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불씨처럼 빛났다.
“불행한 일이라 하셨습니까?”
“근위장의 봉인은 거대한 권위를 지니지.”
아몬 타우로마키안, 커스토디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사상의 심판에 있어 인장관 전하는 그 이상의 권위를 지니고 계시오. 명령은 간단하오. 킬러는 이 감옥을 벗어날 수 없소. 신앙을 포기할 것을 거부했기에. 그녀는 떠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당신들과 동행할 수 없을 것이오.”
신더만이 슬프게 뒤로 물러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될 것을 걱정했건만.”
“죄송하게 되었소, 선생.”
아몬이 말을 이었다.
“당신과 달리, 여기 계신 킬러 양은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고, 늘 공개적으로 밝혀 왔소.”
“황제 폐하는 신이야!”
킬러는 음모론자 시늉이라도 하듯 쇳소리를 내며 하리가 앉은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알아들었습니다.”
“진짜 신이라고!”
“알아들었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폐하가 함께하실 때 신민들은 감히 그걸 인정할 수 없지!”
“부탁이니, 그만둬 주시게.”
아몬이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신민들이 깨닫기를 원치 않으시나 보죠!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쉿쉿거리던 킬러가 커스토디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난 떠날 수 없다는 거죠, 아몬?”
“그렇네.”
“그래서 여기 수감자가 몇이나 되죠, 커스토디안 나으리? 블랙스톤 감옥 말예요.”
“9천, 그리고 869명이 있지.”
“그들에게도 이야기는 있어요.”
킬러는 보증서를 집어 들고선 신더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모을게요, 키릴.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해야겠죠?”
“그래, 킬러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범상치 않았습니다.”
신더만의 물음에 하리가 답했다. 블랙스톤의 방문자 출입구는 닫혔다. 두 사람은 방수포로 감싸진 채 사격을 멈춘 방공포대를 지나 진입교를 건넜다. 바쁘게 길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들 역시 합류했다.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헤게몬의 돌산의 온 사방에는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장갑판과 포좌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 위로 타오르는 하늘은 마치 검은 수가 놓인 맥동하는 보랏빛이었다. 신더만의 눈에 이지스 망이 포격을 받아내며 일그러지는 파동이 들어왔다. 동쪽과 북동쪽을 따라 하늘은 샤프란 빛으로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흰 섬광이 터지고, 밝은 불똥이 잠깐 온 사방을 밝혔다. 거대한 전쟁이지만, 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동안은 그 심각성을 알아채기 어려운 법이다.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더군요.”
“무섭다?”
“아니,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은 단어를 골랐다.
“맹렬함. 독선.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한 사람처럼, 혹은 자신이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아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킬러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나?”
“아니오. 분명 그 설명 안에서 확신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리가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신성하다는 개념은… 그냥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닌가요? 종말론자들이 품는 생각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세상에 종말이 닥쳐오고 있기에 희망이 될 만한 생각에 매달리는 거다?”
“흔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뭐랄까, 임종 직전에 개종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무력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의미 있는 무언가, 그리고 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요. 황제 폐하는 딱 그런 분이시고요. 우리 위에, 우리 너머에 계신 초인이시니 말입니다. 그분을 진정한 신이라며 섬기는 게 얼마나 쉽겠습니까. 특히나 다른 시대에서라면 악마 취급을 받을 물건들과 싸우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워프의 존재들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치부되지요. 우리 언어에 놈들을 묘사할 만한 단어가 모자라니 말입니다. 초자연적인 어둠이 존재한다면, 초자연적인 빛 역시 존재해야 한다는 거겠지요. 인류는 대칭을 선호하니까요. 황제 폐하는 지금 신적인 행보를 보이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이시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절박한 사람들이 마음을 달랠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위대하고 선하신 힘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니까요. 황제 폐하께서는 그 관념에 들어맞는 분이십니다. 어떤 증거도 없지만 말이죠. 단지 인류가 구원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네 말 대로라면 그냥 정신병이라고 해도 되겠군?”
신더만의 물음에 하리가 답했다.
“임상적으로는 그렇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해할 만한 일이지요. 지금처럼 미신이 만연한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행운의 신발, 행운의 총, 행운의 모자. 조금이라도 안심하기 위해 징조를 찾고 있는 거지요.”
“자네는 황제 폐하께서 우릴 구하시지 않을 거라고 보는가?”
“아뇨, 그분이 우릴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시리라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분이 신이시기에 그러신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헤게몬 구역의 남쪽 광장을 지나쳐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인파의 웅성임 위로 회랑의 종이 맑고 느리게, 그리고 한 편으로는 둔중하게 울렸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대기 성분을 빨아먹고 산성이 된 비가 다시 그 원천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 말씀이 불쾌하셨습니까?”
“뭐? 아닐세, 다만 꼭 나처럼 말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쯤의 선생님을 말씀하십니까?”
“7년 전.”
신더만이 답했다.
“그 시절에 대해선 말씀을 아끼시더군요. 선생님은 킬러와 같은 신앙을 공유하셨지요. 그 신앙의 터를 닦으시고.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가지신 겁니까?”
“내가 본 것들 때문일세.”
“그럼 신앙을 버리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 적 없네.”
신더만이 멈춰 섰다. 그리고 청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불꽃처럼 뜨거운 신앙은 아닐세. 킬러와는 다르지. 내가 신앙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일세. 자네, 진실을 알고 싶나?”
“예, 말씀해 주십시오.”
“종교는 우리에게 수천여 년간 족쇄를 채운 그림자였네. 신앙은 그 시간 동안 우리를 몇 번이고 몰락시킬 뻔했지. 스스로 선택한 무지였고.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렬한 포용이었네. 그 때문에 우리는 뒤쳐졌고. 다른 진실도 알고 싶은가?”
“예, 그렇습니다.”
“나는 이 진실이 너무도 두렵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 하지. 킬러의 말이 옳아.”
“네?”
신더만은 계속 말했다.
“신들과 악마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다면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하리? 자네, 진짜 진실을 깨우치고 싶은가?”
“예.”
“그럼 가서 찾아보게. 세상을 심문하고, 자네 앞에 대령해 보게.”
신더만에게 합류한 사람들 대부분은 헤게몬 구역 민간인 출입로의 넓은 지붕 아래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성비는 2세기 넘는 동안 공공 투표라는 신앙을 위해 나선 시민들의 머리 위를 감싼 석제 열주를 두들겨 왔다. 판석 사이로 빗물이 고이고, 산성비와 마주해 화학 작용으로 깎여나가는 그곳에서 희미한 안개가 드리워졌다. 종은 계속 울렸다. 모피를 두른 후드가 달린 군용 퀼트 재킷을 두른 세리스, 방수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디네쉬, 그리고 맨딥, 거기에 신더만이 처음 접촉했던 여덟 명이 더해졌다.
세리스는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배치 허가서, 그리고 이동 제한 서류를 받아냈어요.”
“디아만티스 공에게서 받은 겐가?”
신더만이 물었다.
“그랬죠. 좀 투덜거렸지만, 우리가 좀 골칫덩이처럼 굴었나 보죠. 하지만 지시를 충실히 따르더라고요.”
세리스는 공문서와 꼬리표로 채워진 플라스텍(Plastek) 폴더를 꺼내 보였다.
“허가를 받은 만큼, 우리는 각 전선으로 흩어질 수 있어요.”
신더만과 세리스의 시선이 맞닿았다.
“몇몇은 생텀 구역으로, 몇몇은 내성 구역으로.”
“일부 지역은 정말 위험할 걸세.”
신더만의 말을 들은 세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허, 지금 위험하지 않은 곳도 다 있어요? 지금 여기 조금만 더 있으면 저 빗물도 우릴 죽이고도 남아요.”
누군가 피식 웃었다.
신더만은 일행들을 올려다보았다.
“다들 준비는 마쳤나?”
신더만이 일행에게 물었다.
“서류에 이름 칸은 공란으로 남겨져 있으니, 각자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네. 다들 위험한 지역을 고르는 건 지양해 주기 바라네. 위험 부담이 크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니 말이지. 그리고 생텀 안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들을 모을 수 있을 걸세. 최전선의 화려함에만 매달리지 말고, 잘 생각해 보게.”
“전 이미 난민촌에 대한 심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맨딥이 말했다.
“저는 그쪽을 계속 파 보고 싶군요. 목격자들의 증언은 맥동하는 자료 그 자체입니다.”
“좋네. 바로 저런 걸 말한 거였다네.”
신더만이 답했다.
“전 생산 공장을 취재할까 해요.”
리타 탕이었
“특히 군수품 생산을 맡은 곳들로.”
“그래, 이 거대한 전쟁이 단지 전장에서만 펼쳐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기록이 될 걸세. 아주 훌륭한 접근이라고 보네, 리타.”
“저도 봐도 될까요?”
하리가 물었고, 신더만은 하리에게 폴더를 건네주었다. 하리는 서류를 휙휙 넘겼다.
“여기로 가 보고 싶습니다.”
신더만은 하리가 집은 서류를 살폈다.
“제 가족은 모두 북쪽 경계에 있었습니다.”
신더만은 꼬리표가 붙은 서류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가서 찾아보라고 하셨지요.”
“거기에 없을지도 모르지.”
“그럼 거길 출발점이라 생각하죠.”
“아, 신더만, 당신은 장소를 고를 자유가 없어요.”
“뭐라고?”
세리스의 말에 신더만이 놀랐다.
“우리 강하신 허스칼 디아만티스 공께서 분명히 밝히더군요. 근위장 본인의 지시 같다는 느낌이긴 했는데, 당신과 당신이 고른 동행 한 명은 남아야 한다더라고요.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같더군요. 어쨌든 당신은 내일 밥 사령부에 보고를 해야 해요.”
신더만은 하리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청년은 이미 자기가 고른 서류를 꼼꼼히 읽는 중이었다. 신더만은 다시 시선을 돌려 일행 쪽을 보았다.
“그럼 테라조마스, 자네가 나와 함께 가세.”
그리고 신더만의 시선은 남은 사람들을 향했다.
“자, 그럼 이제 역사를 시작해 보세.”
* 번역하면서 나이롱이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과 비슷한 게 있는 파트라 생각을 많이 했음.
* 커스토디안 말투는 일부러 반말로 도배하지 않고 신더만에겐 존중 비슷한 걸 보여주는 식으로 했음. 신더만에게 Sir를 붙이더라고.
선개추 후감상
황제교 신앙은 정말 스물스물 퍼져나가는 안개 같다고 느낌
하리 저 친구 난놈이네. 저 혼란통에서도 저런 시각을 유지하고 침착하게 둘러볼 수 있다니
임페리얼 트루스로 인류를 정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이 장을 번역하면서 느꼈음 ㅇㅇ
제국의 진리가 저런 뜻인가 싶음
보면 볼수록 유프라티 킬러는 생긴 것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여자 같아
제국도 교정시설이 있긴있구나 - dc Ap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