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택


우리는 헬스리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불의 계절이 나의 도시, 헬스리치 인근에 폭풍의 놀이를 즐기면서 항공 수송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통신 신호까지 막지는 못했다. 폭풍이 지속될 시기는 세 시간에서 아홉 시간 사이로 예상되었다. 전자라면 나의 계획에 있어 참을 만한 변수겠으나, 아홉 시간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귀중한 시간만을 낭비할 행위였다. 그나마도 그 때 폭풍이 완전히 잦아든다는 가정을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터널 크루세이더로 복귀한 나는 돈의 사원 내부에 자리한 차가운 복도를 걸었다. 전쟁과 영광의 유물들이 윙윙대는 스테이시스 장막 생성기가 만들어내는 흐릿한 장막 뒤편의 대리석 단 위에 놓여 있었다. 군기들이 고딕풍 아치 천장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아치형 건축물이 아닌, 사원 자체의 뼈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전사들이 전투를 치르며 죽고 나서 걸어가는 사후 세계의 무덤을 연상 시킨다 믿었다. 죽기 위해 전장에 간 이들의 유물이다.


함께 걷는 사이네릭은 내가 침묵할 때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챌 만큼 현명했다. 나에게 말해 달라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존재를 견디기가 쉬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챕터의 소중한 보물들과 혼자 있으려 그리로 간 게 아니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갔다. 거대한 관측창에서 전화에 휩싸인 아마겟돈 행성의 흉진 구체를 내려다보았다. 도시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피딱지였다. 그곳의 협곡은 더러운 흉터였다. 원유로 풍부한 바다는 죽은 그린스킨 선박의 묘지였다.


열등한 이가 전쟁에 처한 행성을 본다면, 사라진 생명에 대해 슬픔을 느낄 것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은 증오였다. 나는 우리의 영역을 모독한 그린스킨을 증오했다. 나는 이곳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 그 자체에 도전하는 행성 자체를 증오했다.


열등한 이. 이 표현은 너무 모드레드의 색채가 짙었고, 인간성이 결여되었다. 그렇다면 강화 받지 않은 이가 적당하다. 황제 폐하의 유전적 설계로 강화 받지 않은 진정한 인간이라면, 슬픔을 느끼리라.


궤도상에 정박한 함대는 거의 쉼 없이 이어지던 공허의 전투로부터 유예를 즐기고 있었다. 대기권 내에서의 전투는 있었으나 거의 일주일 동안 행성계로 새로이 나타난 외계인 증원 함대는 없었다. 여태까지 가장 긴 소강기였다. 셔틀과 건쉽, 보급선들이 우리의 함선 사이를 오갔다. 우리가 외계인의 우두머리를 추격하기 위해 출항하기 전에 마지막 재급유와 재무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의 휴대용 홀로그램 송신기가 신호를 전달하기까지 한 세기는 기다린 것 같았다. 사이네릭은 나와 약간 거리를 두고 우리 세대에서, 혹은 그 이후에라도 나타날 가치 있는 전사를 기다리며 보관된 갑주와 무기에 경의를 표했다.


통신 링크 연결됨.”


함교 서비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송신기 출력을 증폭하려면 이터널 크루세이더의 통신 장비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손바닥 위에서 흐릿한 푸른 형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나는 깜박이는 이미지에 인사를 건넸다.


라이켄 대령.”


홀로그램의 영상이 잡음 속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답했다.


- 사람을 잘못 찾으셨습니다.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라이켄 대령이 아님은 분명했다.


- 이 링크가 썩 좋진 않습죠? 영상은 보이지도 않는군. , 그리고 라이켄 대령은 지금 다른 업무를 수행중입니다. 여기에 없습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면서 인내하기 위해 내면을 다스려야 했다.


지금 즉시 그와 이야기 할 사안이 있다.”


- 장담합니다만, 저도 마찬가집니다요. 그 양반이 제게 돈을 꿨습니다. 참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열 받아서 참기 힘들 겁니다. 저는 스틸 리전의 안드레이 발라톡 대위입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이 신호를 중계할 통신


-이 통신 채널이 뭔가 잘못 됐나? 산 속의 곰이 포효해도 이것보다는 작게 들리겠습니다. 제 생각엔 스페이스 마린 같으십니다만.


나는 스페이스 마린이다.”


- ! 전 좋은 친구는 아닐지라도 블랙 템플러 챕터의 레클루시아크 그리말두스 님과 좀 알고 있습니다. 헬스리치의 영웅 말입니다. 아십니까? 제가 그 분을 한 번 구해드렸고, 심지어 제게 고맙다고 하셨죠.”


안드레이.”


나는 한 글자 한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여기는 레클루시아크 그리말두스다.”


- 맙소사! 레클루시아크, 목소리가 화난 것 같으십니다.”


내 말을 잘 듣게. 라이켄 대령과 부관 티로, 혹은 쿠로프 장군과 이야기 할 사안이 있다.”


- 그 양반들 모두 전방 지휘소에서 나갔습니다. 제가 남아서 헬스리치 북부와 서부 교전지대의 아군 스톰트루퍼들의 활동을 통제중입니다.


사이네릭이 다가와 트렌치 코트와 철모를 쓴 홀로그램 이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스톰트루퍼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흘려 넘겼지만 안드레이는 그러지 않았다.


- 엄밀히 따지면 아닙니다. 저흰 척탄병이죠. 하지만 군대식 속어로는 맞습니다. 그리고 문서상으로는 그렇습죠. , 그거 아십니까? 쉬운 날은 어제 뿐이더군요.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여기를 호출하신 것 아닙니까?


똑바로 듣게, 안드레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는 필요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안드레이와 나는 점차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지루함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특히 뭔가 하거나 쏠 목표도 없이 지휘벙커에 남아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안드레이가 통신을 종료했을 때 그는 수행해야 하는 지시사항이 넘쳐났다. 그리고 나는 궤도상에서 하이브 헬스리치 방위군 지휘부와 단체 통신을 조율하는데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너무나 많은 임페리얼 가드 장교들이 궤도상으로 통신을 시도하면서 확인하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고 81명의 임페리알 가드 장교들과 더불어 해군 함장 11명과의 통신이 연결되었다. 나의 데이터 슬레이트에서는 암호화된 정보가 계속 송수신되었다. 내 등급은 루비콘이어서 모든 이들의 답신을 볼 수 있었다. 헬스리치의 누구도 내가 찾아낸 사실을 무시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이네릭이 물었다.


지금 하시는 행동은 스승님의 권위를 넘어서는 일이 아닙니까?”


나는 여전히 질문에 익숙하지 못했고, 치솟는 분노를 다스리는데도 그러했다.


자세히 말해보아라.”


나는 고함을 치는 대신 이리 말했다. 이것 역시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사이네릭이 헬멧을 벗자 벽에 비치는 푸른 빛 속에서 안색이 나빠 보일 정도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표현은 도발적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묘하게 예리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이네릭은 그리 묻고 내가 든 휴대용 어스펙스에 끄덕였다. 나는 사이네릭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그는 또 다른 폭풍에 시달리는 헬스리치의 궤도 사진을 돌려보았다. 파손된 중앙 첨탑은 계속 사진에 잡혔으나, 도시의 나머지는 모래먼지에 연거푸 묻혔다.


말해 보거라.”


사이네릭은 사진들을 계속 살폈다.


저는 스승님께서 황제 승천의 사원 전투를 마치신 후, 헬스리치 하이브의 지휘권을 내려놓으신 것으로 압니다. 쿠로프 장군이 헬스리치 인근의 지휘관입니다.”


그리고 그는 두 시간 전에 내 부탁을 받아들인 이들 가운데 쿠로프 장군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가 내 행동에 반대하려 한다면, 꾸중 받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


스승님, 전 반대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수동적인 태도에 내 피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네가 레클루시아쿰의 비밀에 입회하려면, 네가 품고 있는 생각을 똑바로 말하라.”


사자 형제들은 내일 이터널 크루세이더의 엔진이 점화될 무렵이면 죽음으로 출정합니다. 우리는 외계인 우두머리를 추격하기 위해 떠날 것이고, 만헤임 협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간에 우리가 없는 동안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사자 형제들이 챕터를 보전하게 만들도록 그들을 지키고자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표시된 채 이어지는 생체 신호도 보았다.


그렇다. 너 역시 스스로 그들의 의무는 살아남아 챕터를 보전해야 함이라 분명히 밝혔다.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어떻게 내 계획에 문제가 있다 말하느냐?”


그들의 생존이 최선이 되어야 함은 맞으며, 보다 나은 대의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그들을 기만함으로서 달성하고자 하십니다. 이건 명예의 문제입니다.”


- 명예가 곧 삶이다.


또 다른 고대의 격언이다.


그렇게 거칠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프라이드 리더 에케네에게 했던 말은, 죽음의 의식을 치러주지 않을 것이고, 형제들 옆에서 훌륭하게 최후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기만은 없다, 사이네릭.”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헬스리치 방위군을 차출해 사자들과 함께 싸우게 한다면 방위 태세가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헬스리치의 방어 태세는 지나칠 정도다. 완편 수개 대대가 하릴없이 재배치만을 기다리고 있지. 꽤나 불쾌한 진실이다. 싸워야 할 진정한 전쟁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더냐?”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그들의 존경심을 이용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헬스리치의 영웅이 부르니, 물론 그들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전쟁입니까?”


그들은 전쟁에 처한 행성의 군인들이다.”


나는 강하게 내뱉으면서도 내면을 다스려야 했다. 사이네릭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아야지, 내게 질문했다고 분노를 뒤집어써서는 안 되었다. 제자를 가르치기란 실로 하기 싫은 일이었고, 모드레드는 대체 어떻게 지난 세월동안 나를 인내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이네릭, 이곳은 그들의 행성이다. 그리고 사자 형제들이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뿐이다.”


나는 모드레드가 조용한 가르침의 순간에 내게 했듯, 사이네릭의 견갑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스승에게 그러했듯, 내 눈에 고정되었다.


사자들의 보이지 않는 적은 그들이 받아야 할 영광 속에 죽도록 방치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에케네에게 했던 말은 옳다. 그들은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들의 죽음은 상처 입은 자존심에 대한 위안에 불과하다. 그들은 절대 아마겟돈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 도움이 없다면, 그들은 파멸당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헤임 협곡을 점령한다면.”


그 말을 들은 사이네릭의 신경이 바로 곤두섰다.


만약 점령하신다면 이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흑철로 된 작은 두루마리 상자를 건넸다.


이것을 하이 마샬께 전하라. 나는 작별 인사를 싫어한다.”


그는 긴장하더니 결의를 다졌다.


스승님께서 사자들과 더불어 싸우시겠다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건 네 선택이다.”


나는 놀라지 않았을지언정 그의 결심에 감탄했다. 헬브레히트는 훌륭한 인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전하라.”


사이네릭은 성전사의 십자가를 긋고 내가 지시한 대로 나갔다.


다시 혼자 있게 되자 내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이제 모든 것은 나의 옛 헬스리치 방위군이 얼마나 빨리 폭풍을 뚫고 행성 절반을 가로지르느냐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