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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르겔 탈은 가장 뒤늦게 깨어난 사람이었다. 쟈'펜은 그의 크로지우스 마울을 든 채로 그 누구보다 강건하게 서 있었다. 의식이 회복되는 중이라 시야가 흐렸지만, 그는 채플린이 명령을 내리고, 고무시키고, 형제들에게 정신을 다잡으라고 소리치는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다고탈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토사물이 그의 헬멧에 부착된 복스-그릴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쏟아낸 것은 토사물이라기엔 지나치게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말노르는 벽에 기대어 차가운 금속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별다를 바 없었다. 발을 질질 끌거나, 끔찍한 냄새가 나는 체액을 쏟아내거나, 멍하니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이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괴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딱히 시선을 고정하지 않으며 좌우를 살폈다. 잉게텔은 어디에 있느냐고 소리내서 물으려고 하였지만 그의 목에서는 거칠고 끈적한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쟈'펜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부축했다. 아르겔 탈이 일어나자 쟈'펜은 투구를 벗었다. 격실이 어두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창백했다. 하지만 그 밖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잉게텔은 어디로 사라졌나?"



아르겔 탈이 다시 한번 물으려고 시도했다. 이번에는 성공하여 그의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럭저럭 그의 원래 목소리였다. 물론 완전한 그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쟈'펜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라졌네. 복스 통신망이 복구됐고, 함선의 전력도 공급되기 시작했네. 움직일 수 있는 형제들이 현재 함선 구획들을 점검하고 있어. 하지만 그 악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네."



악마라니,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단어였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단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제 실재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아르겔 탈은 유리로 만들어진 돔형 천장을 올려다 보며, 공허 너머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그곳에는 공간이라고 부를 것이 없었다. 최소한 만지고 인식할 수 있는 '공간' 이 없는 것은 맞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허는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물질들과 에너지가 마구 뒤섞여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덮치는 급류와도 같았다. 자색? 혹은 적색인가? 인류가 결코 분류할 수 없었던 색이 가득 차 있고, 살아있는 생물체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오직 쏟아져 내리는 에너지에 휩쓸린 항성들만이 핏발 선 눈처럼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천장 창문에 비친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진주같은 땀방울들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의 땀마저 악마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야만적이고, 정제되지 않았고, 고약한 냄새였다. 마치 내장에 들러붙은 암덩어리처럼.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하네."



아르겔 탈이 말했다. 뭔가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찬 느낌이었다. 차가운 것이 똬리를 틀고 풀려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터져나오는 위액을 억지로 삼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노르가 신음소리를 냈다. 말노르같은 절제되고 강인한 전사가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했다.



토르갈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번들거리며 누렇게 뜬 눈가에, 벌겋게 충혈된 눈이 치켜떠졌다. 그의 흉갑 세라마이트판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염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토해냈던, 비정상적일 정도로 새까맣던 산성 토사물 때문이었다. 그가 말했다.



"우린 본대로 복귀해야 하네. 프라이마크께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아르겔 탈은 날이 부서져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의 검을 발견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으로도 기능할 수 없게 된 물건이었다. 그는 상실감을 느끼며 그 주변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볼터를 집었다. 손잡이를 잡자마자 자신의 렌즈로 총의 현재 잔탄 상황이 전달되었다. 당연하게도 탄창엔 단 한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단 함교로 가세."



살아남은 이들이 없지 않을까. 통로들을 걷던 아르겔 탈이 가장 처음으로 느낀 우려였다. 그리고 그 우려는 함선을 수색하던 각 분대의 보고로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이 함선에 홀로 남겨졌다. 모든 서비터, 승무원, 시종, 목사와 장인, 노예들마저도 모두 죽었다. 워드 베어러는 함선의 모든 구역을 수색했다. Orfeo's LamentDe Profundis보다 작은 구축함이었다. 공격함이었기에 탑재된 부속함도 많지 않았고, 구획이 많이 나눠진 것도 아니었다. 모든 인원을 한계까지 채운다고 해봤자 1천 명 남짓한 인원만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인원들에 다시 100명의 아스타르테스를 합하여, 함선에는 97명의 생존자만 남아있었다. 그 중에 인간은 단 한명도 없었다.









좀 더 일찍 올리려다가 일이 생겨서 이제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