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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년 60살 난 스카웃입니다. 워프 나이라서 물질계에선 어찌 될지 모르지만요. 내 이름은 자스퍼 박이고요, 우리 리전 식구라고는 먼지덩어리가 된 우리 형님들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우리 프라이마크 이렇게뿐이 없답니다. 아차 큰일났군, 아흐리만 같은 소서러들을 잊을 뻔했으니.
지금 워프를 떠도는 아흐리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지 집에는 물질계 침공 나갈 때 빼면 별로 붙어 있지를 않으니까 어떤 때는 백 년을 넘어도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박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프라이마크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아는 게 많은 우리 프라이마크는 금년 나이 만 살하고도 조금 더 먹었는데 호적에서 파였답니다. 호적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왕당파 잡것들이 날더러 ‘호적파인 반역자 잡것의 후손’ 이라니까 우리 프라이마크가 호적에서 파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가족이 있는데 우리 프라이마크는 그깟 통신 한 번 잘못 보냈다고 집안이 뒤집어졌다는가 봐요. 그래서 아버지가 미워했다고 우리 프라이마크를 호적파인 반역자라고 부르는가 봐요.
젠취님 말씀을 들으면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이 군단에 들어오기 한참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아버지가 겨우 300살 좀 넘게 드셨을 때였고요. 우리 할아버지의 본집은 어디 멀리 있는데 마침 이 근처에 새로 신격이 되어보겠다고 젠취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대어 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 주셨는데, 그러다 우리 아버지랑 여러 형제들을 낳고 너무 무리를 하시다가 몇백 년 안 되어 급사를 하셨대요.
내가 군단 들어오기도 한참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니까 나는 할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니 왕당파 놈들이 황제폐하 어쩌고 해도 내가 무슨 생각이 날 턱이 있나요. 할아버지 존안이라는 그림은 나도 한두 번 보았지요.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참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잘난 할아버지일 거야요. 그런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는 건 참으로 분한 일이야요. 하루빨리 블랙 크루세이드가 쭉쭉 진행되어 즉은 그대로 갖다 놓았다는 할아버지 본댁에 가서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요.
그 초상화도 본 지가 퍽 오래되었는데 이전에는 남몰래 그걸 방 한 쪽에 걸어 놓고 “아버지 제가 무슨 그런 큰 잘못을 했다고” 이러고 푸념하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젠취님이 오실 때면 그 그림을 치우라고 늘 말씀하시더니 지금은 어디 갔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 번 프라이마크께서 사방에 다 들리도록 “길리먼 그 놈도 세쿤두스를 세웠잖습니까 아버지” 하면서 꾸러미같은 걸 내동댕이를 치시던데 그것이 아마 할아버지 초상화인 것 같아요.
. 작년 여름에, 아니로군, 가을이 다 되어서군요, 하루는 프라이마크를 따라 여기서 한 워프-거리로 십 리나 가서 미드가르디아 행성이 있는 데로 가서 거기서 전투도 하고 영혼도 수확해서 제물로 바치고 했는데, 거기 소환한 땅이 우리 모성이래요. 거기 말고 물질계에 영토들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제물들로 이렇게 우리가 활동을 하고 또 사이커들도 데려오고 한다고요. 그래도 우주개새기들 밀어버리고 제국 뒤집어서 복수하고 할 전력은 힘들대요. 그래서 프라이마크께서는 이것저것 원대한 계획을 짜신대요. 그렇게 세력을 불려서 펜리스도 침공하고 사이킥 각성도 준비하고 한다고요.
우리 집 식구는 겉으로는 많아 보여도 거지반 먼지뿐이고 또 있는 소서러들도 툭하면 어디 파견 나가고 하니까 정말 많지는 않은데, 이번에 그래서 그 적적한 자리도 채울 겸 프라이마크의 잔 심부름도 해줄 겸 해서 사랑에 로오체 한 분이 와 계시게 되었어요.
금년 봄에는 나를 옹근 마린으로 승격을 시켜 준다고 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동무 스카웃들에게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 돌아오려니까 사랑에서 카이로스 페이트위버님이 (그 우리 사랑에 계시는 로오체님의 형님뻘이야요) 웬 한 낯선 사람 하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카이로스님이 나를 보시더니 이리 올라와서 인사를 드리라고 하시겠지요.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슬비슬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아, 그 소서러 참 곱다. 사우전드 선즈로군?” 하고 카이로스님께 묻겠지요. 그러니까 카이로스님은
“응, 우리 빨갱이네 자식... 사우전드 선 소속 마린이지.” 하고 대답합니다.
“얘야 이리 온, 응, 그 눈은 천상 제 프라이마크를 닮았네그려” 하고 낯선 손님이 말합니다.
“자 다 큰 마린이 되어 왜 저 모양이야, 어서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해요. 너희 17번째 삼촌이 되시는데, 오늘부터 여기 계실 텐데 인사를 드려야지.”
나는 괜스리 즐거워져서 얼른 절을 꾸벅 하고 관등성명을 잘 댄 다음 그만 안마당으로 뛰어들어 왔지요. 카이로스님과 낯선 손님은 크게 웃더군요. 나는 안마당을 뛰어다니면서
“프라이마크시여,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고 법석을 치니까,
“응 그래.” 하고 대수롭잖게 텔레파시가 오더군요.
“오늘부텀 와 계시나?” 하고 내가 혼자 손뼉을 치니까 내 손을 염력으로 꽉 붙잡으면서,
“왜 이리 수선이야.”
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겠지요.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퍽 좋았어요. 어른들 말을 들으면 옛날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부터 두 분이 친했다구요. 어디 먼 데를 가서 명상을 하시다가 요새 큰까마귀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잠자리도 뒤숭숭한 것이 싫어서 우리 프라이마크 곁에 와 계시게 되었다고요. 또 우리도 그 삼촌한테서 지원을 좀 받으면 작전하기도 훨씬 수월하다고요.
그 아저씨는 마도서가 얼마든지 있어요. 오며 가며 내가 근처 지날 적마다 한참씩 그 책을 읽고 계시다가 날 앉히고 여러 권 보여를 줍니다. 또 가끔은 나도 모르는 새 마법진도 그려 줍니다.
어느 날은 점심배식에 조기튀김에 해빔소가 나와서 거르고 슬쩍 나갔더니 아저씨가 점심을 잡수세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잡숫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아저씨가,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보시길래 점심메뉴를 말씀드리고 냉동 앰불 익힌 거나 PX에서 하나 사 먹으려고 했다니까 마침 상에 올라가 있던 삶은 앰불 한 마리를 집어서 나 먹으라고 주십니다. 그래 한참 앰불 껍데기를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뭐가 제일 맛나우?”
했더니 그냥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도 삶은 앰불”
하시곘지요. 나는 좋아서 손뼉을 짝짝 치고
“아 그럼 얼른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떠들지 말어” 하시지만 나는 꼭 맘먹으면 하는 성미라, 그래 안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아버지, 아버지, 17번째 삼촌도 우리처럼 삶은 앰불이 제일 맛있대.”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니 “떠들지 말어” 하고 안 그래도 한쪽밖에 없는 눈을 나한테 흘기시겠지요.
그래도 사랑 삼촌이 앰불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퍽 좋게 되었어요. 그 담부터는 물질계에서 공물이 들어올 때 꼭꼭 앰불을 명단에 올리게끔 했으니까요. 나중엔 아주 앰불 사육장을 한쪽에 차려 놓고 한꺼번에 열 마리도 잡고 스무 마리도 잡고 하여 두고두고 삶아서 반찬으로도 나오고 또 으레 사랑 삼촌한테 한 마리씩 얻어먹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아주 앰불을 그담부터 실컷 많이 먹었어요.
나는 이래서 아저씨가 좋은데 우리 형들 중에는 싫은 사람들이 있나 봐요. 다른 것보다도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전언을 보내고 해야 하니 그게 귀찮은가봐요. 한 번은 아버지랑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프라이마크께서,
“야, 너 어데 가지 말구 로가 삼촌 심부름 해 드려야지‘
하니까,
“아버지가 좀 가서 얼굴이라도 뵈어요. 그 형제를 보러 왔는데 남남취급을 하시니 중간에 우리들만 피곤치 않아요?” 하면서 흥흥 콧바람을 뀌는데 왠지 모르지만 안 그래도 붉은 우리 프라이마크 안색이 더 홍당무가 되어서는 푸드덕 날아가버리시겠지요.
나는 정식 마린이 되고 나서는 마법 수련도 더 재미가 붙었어요. 내 튜터 되는 소서러 형님의 같은 워밴드의 노이즈 마린이 썩 악기를 잘 타요. 그런데 그 악기는 젠취님 예배당 악기랑은 생긴것도 다르고 이상스런 장식도 많고 한데 퍽 이상스레 생겼어도 소리는 잘 나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 프라이마크 개인 처소 근처에도 악기가 하나 있던 것이 생각이 나겠지요. 그래 원정에 따라갔다고 돌아오는 길로 그 앞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더니 프라이마크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거기 악기 놓은 건 어찌 알았누?”
하십니다.
“그 노이즈마린이 막 치는 것도 이거랑 좀 닮았는데 무얼. 그럼 아버지도 악기 탈 줄 아우?”
하고 물었습니다. 기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연주를 하는 것은 본 일이 없었습니다.
프라이마크께서는 아무 대답도 않고 가만가만 악기 덮은 흰 천만 손으로 쓸다가,
“이 악기는 네 할아버지가 예전에 주신 거란다. 너희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도 손을 안 대 보았다.”
하고 우실 것처럼 애꾸눈이 굼질굼질하지요. 나도 그만 슬퍼져서 뛰어나와 버렸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워프 시간이니까 물질계로는 잘 모르겠지만-매일같이 사랑에 놀러가는데 아저씨는 자꾸
“자스퍼 그 눈은 아버질 닮았다. 고 빨간 볼도 아버질 닮았지, 입도 그렇고! 응, 네 아버지도 너처럼 덩치가 크고 헌걸차더마는...”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오히려 아저씨 볼이 빨개져서 ‘흥흥’ 하다가 나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만지면서,
“응, 그 팔뚝도 아버질 닮고, 허리도 아버질 닮고...” 이러길래 내가 그만,
“그냥 들어가서 우리 프라이마크 보러 가” 한 적도 있겠지요. 이상스런 건 그럴 때마다
“아니 안 돼, 난 지금 분주해서”
그러면서도 나는 안 놔주고 괜히 마법진 그린 것이며 수정 조각이며 이런 것들을 챙겨서 날 줍니다. 형들이나 로오체 한 분 하다못해 서비터만 얼씬해도 근엄하게 정좌하는 양반이 그러는 양은 참말로 우습기만 하였습니다.
더 모르겠는 것은 우리 프라이마크인데, 나보고 너무 귀찮게 말라고 일장 연설을 하면서도 실상은 힐끔힐끔 사랑 쪽으로만 종일 성한 눈을 돌려대고 앉았고, 내가 어쩌다 좀 흐트러진 매무새로 아저씨 앞을 지나갈라치면
“응, 아저씨가 흉 볼라.” 하면서 새로 지은 갑옷도 꺼내 주시고 머리에 사이킥 후드도 고쳐 매 주시고 합니다.
프라이마크이 승천기념일인고로 프라이마크께서 갑옷도 갈아입고 깃털도 정돈하고 하는 동안 아저씨를 슬쩍 보았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곱게 차리고 어딜 가나? 승천 축일?”
그래서 “응!” 했더니 아저씨도 로브를 쓱 갈아입고 나를 따라나서요. 그런데 퍽 신기하기도 하지요, 아저씨랑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앉았는데 나보담도 훨씬 카오스 오래 믿은 아저씨가 글쎄 기도는 안 드리고 찬미도 안 하고 뚫어져라 우리 프라이마크만 보고 앉았고, 내가 빙그레 웃어 인사를 드리니깐 마주 웃어주고는 또 우리 아버지만 골똘히 바라봅니다. 그래 내가 짐짓 내 옆에 소서러 형님더러,
“저기 아저씨가 왔다”
하니깐, 툴툴대면서
“우리가 어둠의 대공네도 아닌데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대답도 안 합니다. 그날 예배는 아주 젬병이었어요. 다들 웅성웅성대고 수군수군하고 프라이마크께서는 얼굴부터 날개까지 벌겋게 달아올라가지고 괜시리 가슴의 뿔만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성이 나셨는지 휙 나가버리시겠지요. 그래도 옆에 식구들이 많은고로 나는 안 울고 꾹꾹 참았답니다.
그 후로는 다들 성이 났겠지요. 형제지간에 내 정말 말을 못하겠다느니 뻔히 보이는 걸 안 보인다고 할 수도 없고 남사스러워 못 살겠다느니 하고 형님들이 수군숙덕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아주 뒤숭숭해요. 나는 괜히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는데 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옳다 다들 성낸 앙갚음을 해야지하고 워밴드에서 돌아오는 길로 프라이마크께서 회수해오라신 유물 한 조각을 빼내서 몰래 품에 안고 예전에 선임들이 맥심을 숨기던 관물대 한 구석으로 가서 거기 숨었어요.
깨어나보니 드문드문 텔레파시가 들리는데, 별 일도 없고 그냥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문이 발칵 열리면서,
“자스퍼” 하고 우리 프라이마크가 화가 잔뜩 나서 나를 쏘아보겠지요.
“요것이 호러에 씌었나, 왜 거기는 유물을 안구 가서 처박혀 있담?” 하고서는 금방이라도 울 듯이 목이 콱 메여서 사방에 다 들리게 나한테 너희말고 무엇이 있다고 이렇게 자식들이 속을 썩인담... 하면서 내 등짝을 탕탕 때리고 선임들 앞에 나를 집어던지십니다.
그래 한마디도 못하고 끌려나와서 형님-선임들한테 뒤지게 얼차려를 당하고 밤중에 줄빠따만 몇 시간을 돌았는지 정신이 다 어질어질한데,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 좀 좋은 것을 드리면 화가 풀리시려니 싶지만 참 내가 아직 혼자 물질계 가서 막 뭘 가져올 수도 없고 막막해요.
그러다 문득 저번에 노이즈마린이 꽂고 다니던 꽃 생각이 났습니다. 그건 빨갛고 이상스럽고 향도 좋고 참 예쁘고 그런 꽃이었습니다. 말한다고 나눠줄 리는 만무하지만 향이 하도 좋길래 꽃잎 하나 떨어진 것을 간수해뒀는데 거기가 워프-더스트를 뿌리고 젠취단물을 솔솔 적시니깐 아홉 가지 색깔로 더욱 곱고 더욱 화려하게 피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 나는 그걸 아저씨한테 받은 마도서 종이로 싸고 아저씨한테 받은 리본으로 묶고 하여 한 다발을 만들어 놓고 달려들어가서 우리 프라이마크 옥좌 앞에 놓아드리려니까,
“그건 어디서 났니, 응”
하시길래 엉겁결에
“응!... 이거 사랑에 아저씨, 저 17번째 삼촌이 아버질 드리래” 하고 엉겁결에 둘러대었습니다.
꽃을 들고 한참 냄새를 맡던 프라이마크님 얼굴이 금시에 블루 호러보다 더 파랗게 질리더니 화닥닥 흉갑 속에 꽃을 쑤셔넣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손이며 입이며 어찌나 떨리는지 무섭고 이상스러웠습니다. 한참을 불안하게 사방을 보시더니, 꽃을 싼 종이도 누가 볼세라 백지로 돌돌 말아 허리춤에 꽂으시면서
“그런 것 받아오면 안 된다, 자스퍼.”
하고는 휭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 화를 좀 풀어드린다는 것이 더 성을 내개 하였으니,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지요.
아버지는 그 꽃을 수정 화병에 꽂아서 옥좌 뒤편에 놓아두었습니다. 마법을 걸었는지 어쨌는지 퍽 오래 그 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다 어떤 때는 곷병을 안고 아기 쓰다듬듯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그러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꽃을 받은 그 날 저녁에 내가 아저씨 방을 놀러갔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흠칫하는 것이었습니다. 잘 들어보니 어디서 풍금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풍금 소리! 나는 나도 모르게 프라이마크님꼐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악기 있는 곳은 조명도 키지 않았는데 보름달빛만 안에 넘실넘실하고 은실 같은 가운을 입은 우리 프라이마크만 혼자 앉아 고요히 풍금을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것인데도 어찌나 잘 타시는지 혼이 쏙 나갈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워프 스톰을 직접 귀로 들으면 이럴까 싶도록 대담하면서 마구 변주되는 그 곡조에 한참을 취해 나는 그 곁에 낮았다가 일어서는데,
“난 그저 자식들이면 그뿐이다.”
하시면서 휘-털고 일어나시는 그 뒷모습이란 정말 형용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또 며칠 있다가 워드 베어러란 데서 사람이 오고 해서 또 들썩들썩하였습니다. 그래 며칠을 아저씨 곁에도 못 가보다가 궁금해져서 살짝 문을 열어보았더니 아저씨는 텅 빈 방에서,
“자스퍼 이것 가져 응, 자스퍼는 인제 삼촌도 다 잊겠지!” 하면서 썩 잘 길들여진 우주고양이 한 마리를 나한테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한참 나도 슬쓸해서 앉았더니 또 아저씨가 책상 서랍에서 너희 프라이마크 갖다 드리라고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주어요. 그래서 그걸 들고 갔더니 갑자기 우리 프라이마크 얼굴이 젠취님 얼굴색마냥 붉으락 푸르락 막 천변만화를 하고는 초조하게 발을 구르면서 봉투를 뜯습니다. 첨에 마법진 몇 장, 지도 몇 장은 그냥저냥 읽더니 그 밑에 아저씨가 쓴 편지를 보는 순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그걸 읽는데 숫제 종이가 다 찢어지리만큼 손이며 팔이 덜덜 떨리고 주변에 사이킥 에너지는 난리가 났어요.
한참 후에 프라이마크께서는 그 종이를 가만 가만 접어서 꽃병 속에 넣고는 무어라 쓴 것을 품에서 꺼내십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보고 또 보다가 맥없이 그 자리에 앉으십니다.
“아버지, 피곤해?” 했더니 그냥 말없이 나를 안고 볼을 부빕니다. 그런데 그 볼이 어찌나 뜨거운지요. 코른네 용암덩이도 그보다는 안 뜨거울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밤이 다 되어 설핏 잠들었다 깨 보니 프라이마크께서 서비터들을 시켜 웬 함을 잔뜩 갖다놓게 하시고 그걸 다 열어서 쏟고 계셨습니다. 가만 보고 있으려니 저 제국의 왕당파놈들처럼 쌍두독수리도 달리고 또 옛날 물건에서 봤던 태양 문양도 달리고 한 빨갛고 하얀 옷들이랑 갑옷들이랑 장식이랑 한 무더기였습니다. 그 옆에 파아란 옷을 입고 우로보로스 장식도 달고 한 아버지가 스태프를 들고 젠취에 바치는 찬가를 읊고 계셨습니다. 나는 기어가서 그 옆에 앉았습니다.
“기도해, 아빠?”
했더니 소곤거리기를 그치고,
“자스퍼,” 하고 날 부르십니다.
그렇게 나를 한참을 안고 계시다가 한 손으로는 나를 안고 한 손으로는 쌍두독수리 장식도 만져 보고 옛날 패턴 갑옷들도 만져 보고 빨갛고 하얀 로브들도 개키시고 하면서 아주 천천히 그것들을 다시 함에 넣으십니다. 그러면서 조용조용 속삭이십니다.
“자스퍼, 우리 군단도 원래부터 워프 속에서 산 것은 아니지. 그저 이 아버지가 죄가 많아 그렇지. 아버지가 한때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너흴 다 이 꼴로 만들었지. 자스퍼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게 아니지. 그저 옥좌에 앉아계시지. 인제 아버지는 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젠취님한테 이미 계약을 해서 어길 수가 없어,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에 그까짓 반역자놈의 군단, 하고 자스퍼랑 자스퍼 형제들이랑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워프에서도 욕 먹고 제국에서도 욕 먹고, 커서두 어디 낄 데두 없구, 마법을 아무리 잘 해도 에 그까짓 마법사놈의 자식, 하고 욕이나 먹구.”
그러시다가 또,
“자스퍼, 나는 그저 너희 하나밖에 그뿐이다.”
하시고는 맥없이 벽에 기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또 시간이 지나서 아저씨가 떠나던 날, 아버지는 오히려 새 갑옷에 새 스태프에 산뜻하게 장식을 하시고는 날더러
“자스퍼, 남은 앰불 몇 마리니?”
하시기에, 나는 가서 보고
“여섯 마리”
했더니 프라이마크께서는 손수 그 앰불들을 다 삶으셨습니다. 잘 삶아서 소금까지 종이에 싸 곁들이고는 꾸러미에 담아 들려주시면서
“자스퍼, 이것 삼촌 드리고, 먼 길 가시는데 가면서 잡수시라고 응.”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꾸러미를 받고 아버지 계신 쪽을 휘-돌아보더니 배틀바지에 총총 올라타시는데 프라이마크께서는 아저씨가 아주 가 버릴 때까지 고개를 돌리셨다가,
“자스퍼, 너 쓰랄들한테 말해서 인제 앰불은 안 바쳐도 된다고, 먹을 사람 없다고 그렇게 전언하라고 해라 응”
하시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가시겠지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 목소리가 하도 힘없고 슬퍼 보여서 아저씨가 주고 간 우주고양이를 끌어안고,
“얘, 우리 프라이마크 거짓말 하시는구나. 내가 삶은 앰불 좋아하는 줄 알면서 먹을 사람이 없다구. 근데 왜 저리 힘이 없으실까? 어디 아프신가 보다”
하였지요.
찢었다
'길리먼 그 놈도 세쿤두스를 세웠잖습니까 아버지'
이건 매우 귀하군요
웃다가 쓰러질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