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Though the Warp is Clouded (2)





첫 사이킥 훈련 수업을 시작한 지 2주가 흐르고 난 뒤, 양과 워아디언 111 연대는 란슈에 상륙했다. 해당 행성의 세력 대부분은 5주 전에 이미 카오스에 넘어가 버린 상태였고, 아직 제국에 충성하는 왕국을 치기 위하여 한데 뭉치고 있었다.


'이 요세푸스란 녀석이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수송선이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착륙할 동안, 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와이스가 알려줬던 바에 따르면, 요세푸스가 양이 시달렸던 끔찍한 악몽의 배후에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봉인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양을 집어삼키려는 악몽이나 몰려드는 살육의 충동을 몰아 내주었다.


곧이어 착륙한다는 표시인 붉은 경고등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군화 너머로 덜덜 떨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양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다시 한번 날뛰어볼 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소대원들의 갑옷에는 마엘과 로스가 제공한 푸른 물감이 그려져 있었다. 소대원들은 가장 먼저 선봉에 서서 상륙했고, 행성의 지명에 발을 디딘 소대 중 하나가 되었다. 작전 전에 들려준 브리핑에 따르면, 란슈는 퓨덜 월드 (Feudal World) (*1) 였다. 바이딕이 예전에 퓨덜 월드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신민들은 기술적 무지와 하찮은 권력 투쟁에 빠져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와이스는 행성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으니, 최소한 이곳의 사람들은 제국과 통신하는 법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수송선 문이 열리자, 양의 눈앞에 사바나 지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광활한 들판에 펼쳐진 푸르른 녹색 물결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너울거렸고, 저 멀리 솟아오른 거목들은 빌딩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뻗어 있었다. 거목들은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으나, 자신들이 명실상부한 생테계의 일원임을 드러내듯, 관목숲에 둘러싸여 생명의 활기를 어김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푸르스름한 백색의 창날들. 너른 들판 위에는 거대한 괴수의 흉곽 잔해가 지면 위에 드러나 있었다. 저 멀리 몰려오는 검은 먹구름들은 햇빛을 가리며 점차 거리를 좁혀왔다. 양은 수송선에서 내리며 자그맣게 휘파람을 불었다.


"제국에 있는 다른 행성들은 전부 다 자갈과 모래로만 이루어진 줄만 알았는데."


"저번에 들렀던 행성들은 워아디아의 소박한 맛이 부족하긴 했지."


카울린이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말했다. 양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송선이 거센 풍파를 일으키며 이륙하자 소대의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석영 퇴적물로 점칠된 땅딸막한 석탄 광산 상층부를 파내고 세워진 대도시 샤오-라 (Shao-la)는 양과 동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오-라는 세 방향으로 건설된 칠흑의 거대한 성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고, 산의 정상에는 웅장한 성이 우뚝 서 있었다. 성채는 제국 특유의 건물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더스트시여."


양은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을거라 생각했건만, 제국은 언제나 양을 깜짝 놀래켜 주었다. 성벽 앞에서는 현지 주둔군이 각양각색의 깃발들을 휘날리며 행군하고 있었다. 수백 기의 기마병들이 걸치 화려한 색채의 갑옷들은 양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브리핑에서 라리손 대령이 말하기를, 연대원들은 심문관님이 조사를 진행할 동안 그녀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왜 연대 전체를 끌고와야만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병사들이 들고있는 거... 창이야?"


카울린이 광학 렌즈의 배율을 조정하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병사들은 전부 방패하고, 추레한 체인메일과, 두꺼운 창날을 가진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저들은 마치 블레이크의 판타지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조어비스는 선두에 서서 감마 소대를 도시로 이끌었다. 감마 소대원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현지 병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엄청난 성량을 지닌 요란한 함성은 소대원들의 창자가 꼬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병사들의 열성적인 환영과는 반대로, 그들은 초췌하고 피곤해 보였다.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현지 병사들의 갑옷에 군데군데 묻어있었고, 그중 몇몇은 라스건에 의한 화상에 고통받고 있었다. 로스는 그런 병사들의 시선이 불편한지 라스건을 꽉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동료들한테 속삭였다.


"여기 병사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온 거 같아?" 


"모르겠다. 게다가 쟤들은 꽤나 배고파 보이는데." 카울린이 덧붙였다. "그래도 황제시여. 상상이나 가? 라스건없이 싸운다는 게?" 카울린이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싸운다니까 하는 말인데, 대체 빌어먹을 이단놈들은 어디 있는 거야?"


"글쎄, 우리 때문에 겁먹고 도망쳤을지도 모르지."


양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양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소대원들이 군화로 즈려밟는 진흙투성이  땅들은 나름 잘 다져진 상태였고, 여기저기 쌓여있는 잡동사니 무더기와 흩어진 발자국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서 시선을 돌리자, 처참할 정도로 망가진 공성용 야영지가 눈에 들어왔다. 버려진 텐트들과 군화 자국으로 어질러진 진흙 도로가 도시 주위로 수 마일 정도 펼쳐져 있었다. 카울린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에그리-촌놈들이 검 휘두르는 컬티스트 자식들을 물리치려 등장한건가."


로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번 생각해봐, 카울린." 로스는 앞에서 걸어가는 다른 소대 너머 최선두에 서있는 워아디언 기수병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우리는 이제 이단심문소를 상징하잖아."


"허..." 카울린이 씨익 입꼬리를 당기자 얼굴에 난 기다란 흉터도 같이 늘어났다. "잠시 잊고 있었네." 그러고선 로스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우리가 꽤 무서워 보이는가봐?"


"시꺼먼 갑옷도 확실히 무서워 보이지." 양이 말했다. 마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현지 병사들은 마엘의 로켓 런처를 숭배심이 넘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병사들의 시선을 즐기던 마엘은 활짝 웃으며 그들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러자 현지 병사들도 마엘의 경례를 따라했다. 많이 피로해 보이는 기색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눈빛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왜 이 사람들이 이단심문소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이렇게 반기는지 모르겠어." 양이 바이딕의 강의에서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이단심문소는 그렇게 인기있는 단체가 절대 아니었다.


"이단심문소는 보통 1만 명에 달하는 지원군을 끌고오지는 않으니까." 로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해. 심문관님이 현지 사람들한테 미리 지원군을 데리고 온다고 말해뒀겠지."


현지 병사들 사이에서 낮고 중후한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에 화답하듯이 여러 뿔나팔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뿔나팔 소리는 마치 진짜 짐승이 으르렁거리며 내는 소리 같았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 개방! 성문 개방!" 


여기저기서 수많은 뿔나팔 소리에 뒤섞여 성문을 열라는 외침이 퍼져나갔다. 병사들의 정면에 자리잡은 웅장하고 장엄한 성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성문에 새겨진 제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해골이 반으로 나뉘어졌다. 소대원들은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성벽을 둘러보며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벽의 두께는 10 야드도 넘을 것 같았다. 벌집 모양의 건물들이 단단히 다져진 진흙 길을 기준삼아 사방으로 퍼져있었고,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산의 한쪽 면에 울룩불룩 솟아있었다. 


성벽의 안쪽 면은 아파트들로 도배되었고, 제멋대로 뻗어있는 복합 단지들에서 활기가 넘쳐 흘렀다. 건물 사이사이에 늘어선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고, 작은 창문 사이로 현지 주민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이 워아디언을 향해 꽂혔다. 


널따란 대로가 높이 솟아오른 벽돌 건물들 사이를 가로질렀고, 각 건물 최상층을 연결하는 흔들다리는 구경꾼들로 가득 차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대로 자체가 생기가 넘치는 군중의 집합소나 다름없었고, 시민들 모두가 현지 방언으로 열렬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감마 소대는 하마터면 행군 도중에 멈춰 설 뻔했다.


"씨부랄 맙소사."


허를 찔린 조어비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의안은 연신 군중을 훑어보며 움직였다.


"소대장님?"


로스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양 또한 이곳의 환희에 찬 환영에 깜짝 놀랐다. 사보타주로 인해 현지 시민들의 식량 창고가 깡그리 불에 타버렸다는 사실을 브리핑에서 전달받았다. 그래서 양은 올이 다 드러난 낡은 옷가지를 걸친 수척한 사람들과 마주치리라 상상했다. 물론 현지 시민들은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메마르긴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두 눈동자에 서린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고, 입가에는 희망에 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민들은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성전을 버텨 왔었다.


"우리가 하달받은 명령은 도시 광장에 집결하는 것이다만... 그래도 지금은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전원 퍼레이드 대형으로! 시민들의 환호에 적절하게 잘 응대해라!"


조어비스가 체인소드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오랜만에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AYE!"


감마 소대원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병사들은 어깨에 라스건을 기대어 세운 채로, 서로 발을 맞춰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111연대의 무질서한 대형은 군기와 질서가 잡혔고, 둔탁한 군화 소리가 진흙길 위에서 제식에 맞춘 듯 딱딱 떨어진 박자로 울려 퍼졌다. 다른 소대도 감마 소대를 따라하며 뒤따라왔다. 시민들은 연대의 행렬이 가까이 다가오자 전보다 더욱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고, 군중이 반으로 갈라서며 길을 비켜주었다. 동료들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축복과 환희에 찬 함성은 양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심지어 로스도 평소의 시무룩한 태도를 내다 버리고, 군중의 열정과 환호에 전염된 듯 입가에 커다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양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시민들도 이에 화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군중 속에 뒤섞여있던 사내들은 양을 보더니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입을 헤 벌렸다. 양이 키득거리며 손 키스를 날리자, 사내들은 절박하게 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를 밀치다가 우르르 넘어졌다.


"슬슬 여기가 마음에 드는데."


양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로스는 못말리겠다는 듯 눈알을 굴렸지만, 그녀의 경멸하는 태도도 얼마 가지 못했다. 카울린은 용맹무쌍한 영웅의 역할에 심취해 있었고, 최대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자신의 롱 라스건을 휘둘렀다. 기도문이 적혀진 종이들이 바람의 물결을 타고 병사들의 머리 위로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양은 떨어지는 종이를 낚아채고는, 어린아이가 쓴 듯한 엉망인 글씨에 웃음을 터뜨렸다. 양은 웃으며 플랙 아머 안에다가 종이를 쑤셔넣었다.


소대원들이 도시 광장에 다다르기 전에, 짙은 연기처럼 새까맣고 은빛 'I' 문양을 새겨놓은 발키리가 굉음을 내며 날아왔다. 와이스가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비행선을 마주한 수많은 시민들은 발작이라도 일어난듯 손을 허공에 뻗었다. 곧이어 다른 비행선들이 커다란 화물을 달아둔 채로 발키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발키리의 출입구가 열리며 와이스와 수행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발키리가 활공하면서 일어난 풍파가 도시 광장을 휩쓸었고, 모여든 군중들은 많이 놀랐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제야 양은 어쩌면 이곳의 시민들은 난생처음 비행선을 본 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하신가, 샤오-라의 시민들이여!" 


와이스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쳤고, 복스-캐스터로 증폭된 외침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숙적에 완강히 맞서싸운 그대들의 충성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직접 황제 폐하로부터 내려진 선물을 가지고 왔다네!" 그러자 매달려있던 화물들이 떨어지며 굉음과 함께 지면에 부딪혔다. 화물 상자가 충격에 부서지며 안에 있던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내었다. 포장된 음식 꾸러미들. 셀 수 없이 많은 식량들. 그 광경을 본 군중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군화가 덜덜 떨릴만큼 절정에 달했다.


"내 휘하의 병사들이 식량을 공정히 분배할 것이다! 황제 폐하께서 가호하신다!"


와이스가 움켜쥔 주먹을 흔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가호하신다!"


조어비스가 체인소드를 똑바로 곧추세우며 따라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가호하신다!"


워아디언들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며 새롭게 주어진 임무를 이행하려 앞으로 나섰다. 얼마 안 가 병사들은 굶주린 시민들의 물결에 뒤덮였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손길이 병사들에게 닿았다. 양이 아미노산이 함유된 슬러리(*2)를 내어줄 동안, 그녀의 심장이 쉴새없이 뛰었다. 양은 이성을 잃고 날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젠장, 만일 가드맨이 이런 식으로 대우받는다면, 진작에 입대할 걸 그랬어!"


카울린이 요란한 소동 한가운데서 소리쳤다. 로스는 서둘러 나눠주느라 붉어진 뺨을 매만지며 웃었다.


"좀 닥치고 네 할 일이나 해, 카울린!"


로스가 카울린 보고 쏘아붙인 다음, 자기 가족이 먹을만큼의 식량을 받아들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여인을 꼭 안아주었다. 요즘들어 로스는 잘 웃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원없이 웃어보였다. 물론 양은 이 모든 것이 와이스의 계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연대원들은 시민들을 구하려고 온것이 아니라, 심문관을 호위하려고 온 것이니까. 비록 그 의도가 진실되지 못할지라도, 이번의 선행은 양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1) 퓨덜 월드- 기술 수준이 중세에 머물러있는 제국 소속 행성.

(*2) 슬러리-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둔 걸쭉한 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