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그녀는 모두가 힘을 합쳤음에도 모두를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무려 세 사람의 형상이 되어 나타났다. 에레부스는 그걸 알아차린 순간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직 드러내지 않은 속임수들까지도 있었다. 그 발견은 놀라웠지만, 약간은 전율이 일게도 만들었다.


처음 그들이 도래한 순간만 해도 그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의 동료들이 도래하는 순간은 다른 상황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바닥을 뚫고 나오며 찢어발기고, 그 찢어발겨진 덩어리들은 워프와 뒤섞였다. 공기에는 불이 붙고, 걷어차인 모래가 불타는 구름이 되고, 박살난 토기는 날아다니는 파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했다. 뼈와 힘줄로 빚어진 거대한 존재들이 으르렁거리며 몸을 키울 때마다 돌로 지어진 오두막이 무너져내렸다. 부들부들 떨면서 윤곽이 점점 더 커졌다. 외양이 굳어질 대마다 부서진 돌과 석조 파편들이 여인의 낡은 집이 남긴 폐허를 쓸어내렸다. 놈들이 완전히 형상을 갖추고 지붕과 천막을 뜯어내자 날것의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 핏빛의 붉은 모래폭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그녀 역시 그에 걸맞게 육신이 커지고 있었다. 절대 움츠리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초자연적인 동행들에 걸맞게 나란히 일어선 그녀의 몸은 반투명해진 채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하나 이상이요, 손도 한 쌍 이상이며, 각각 다른 베일이 나선형으로 물결치며 그 육신을 덮었다.


에레부스의 초자연적인 동행들이 에르다에게 괴성을 지르며 밤의 대기에 독성 침을 내뿜었다. 새 모양의 형상이 뱀 머리가 달린 지팡이를 휘두르며 첫 일격을 가했다. 그 뒤로 황소 머리를 한 야수가 불붙은 도끼를 휘두르며 대지라도 후려칠 듯이 달려들었다. 뱀의 형상을 한 짐승은 발목을 미끄러지듯 움직여 에르다의 허리를 감쌌다. 텅 빈 눈의 시체와도 같은 짐승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며 파멸의 길을 불러내고 있었다. 놈들은 에레부스가 불러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성의 존재였다. 천상의 태중에서 태어난 짐승들의 흔적이 그 가죽 위에 번쩍였다. 비스듬한 눈 위로 놈들만이 진정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특별한 증오가 불탔다. 송곳니는 날카롭게 닫혔고, 널찍한 발톱은 무엇이든 할퀼 수 있게 벌어졌다. 놈들은 그렇게 서로 뒤엉킨 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화했다. 만신전이 드물게나마 하나의 목적으로 통합을 이뤘을 때를 보이는 아름다운 표현물이엇다.


하지만 에르다는 그대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두른 땅 자체가 용출해 솟구쳤고, 부서진 돌은 산산조각이 난 기둥이 되어 분출했다. 모래가 눈을 가릴 듯이 폭풍처럼 일었고, 마치 산성 용액이라도 된 듯 덮쳐진 대상을 그대로 부식시키고 태워내 가죽을 벗겼다. 천둥이 하늘을 가르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붉은 달이 저 위로 빛나고 있었다. 야수들은 그녀를 둘러싼 채 졸라들 듯이 다가들었고, 그녀 역시 제 기술을 한껏 발휘해 그런 포위에 맞섰다.


에레부스에게 저 싸움에 낄 자격은 없었다. 모든 것이 펼쳐지고, 그가 불러낸 야수들이 싸우러 나설 때 문지방을 넘을 수 있게 해 주는 게 그의 유일한 역할이었다. 에레부스가 그걸 깨달은 순간, 저 위에서 벌어지는 결전을 보며 그는 넋을 잃은 채 자신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깊고 예술적인 힘이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저 천상은 불가능의 포옹으로 이 대지를 뒤덮었지만, 오직 저 이상한 역마법이 그 포옹을 붙들어 오직 이 한 때, 한 장소만이 그 힘에 붙들려 있었다. 이 이상한 힘조차 워프의 힘일까? 그래야만 했다. 워프는 모든 힘의 근원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에레부스에게 그 힘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물러직 세계의 근간 그 자체에서 유래한 힘처럼 느껴졌다. 흡사 결코 마르지 않을 우물, 모든 것을 마셔버릴 검은 물이 진정 원초의 시작에 뿌리를 내려 결코 잊혀지지 않을 힘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모든 길은 결국 천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이야기를 지어낸다 해도 그렇게 귀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의 첫 계명이요, 다른 모든 것의 근원 아니던가. 그걸 기억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 에레부스는 수많은 에르다가 뒤엉킨 비드-애니메이션의 프레임이 겹치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에레부스는 한 여인이 악마들을 막아서는 것을 보았다. 검은 피부는 그녀가 든 지팡이만큼이나 단단해 보였고, 긴 생애의 정점에 선 위엄을 담은 분노를 느끼게 했다. 에레부스는 별빛처럼 힘을 떨치는 한 소녀가 가느다란 사지로 번쩍이는 낫을 핏빛 달 아래서 물 흐르듯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에레부스는 올리브처럼 검게 말라붙은 노파가 긴 손가락마디로 움켜쥐는 것마다 얼어붙게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 모두가 치명적이었고, 그 모두가 그녀였다.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빠르게 넘어가며 절대 멈춤이 없었다. 마치 진화의 영원이 뒤엉켜 되풀이되는 것처럼, 이 사막의 성지를 침범한 것에 자극받은 것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일종의 건조한 무한이 되어 뒤엉키고 있었다.


에레부스가 처음 에르다를 보았을 때, 드레스를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면화로 지어진 토브(Thob)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것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조각이 되어 어떤 상처를 입어도 일종의 고치처럼 지켜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가능하리만큼 길었다. 마치 커스토디안의 갑옷 아래 수없이 새겨진 그들의 이름들처럼,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름들은 많은 삶의 종말을 의미하건만, 지금 이 조각은 단 하나의 삶을 상징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 삶, 그리고 이곳에서 수없이 벌어진 중요한 일이 얽혀 빚어진 단 하나의 삶이었다.


에레부스는 저 거대한 신성의 격돌에 끼어보려 했지만, 모래폭풍은 그를 밀어냈다. 울부짖는 풍압이 그의 살갗을 불태웠다. 분화구 전체가 산산조각날 듯 거센 격돌이었다. 동심원의 고리가 계속 갈라지고, 잔해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현장을 날았다. 에레부스가 발을 디딘 곳조차도 무너져 내리며 쉿쉿대는 알갱이의 소용돌이로 화하고 있었다.


에르다가 포효한 순간, 에레부스의 귀에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셋 모두 격분 속에서 고통을 담아 포효하고 있었다. 짐승들은 각각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힘 앞에, 그 불타던 증오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시체의 형상이 비틀거렸고, 너절한 살점이 뼈에서 떨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뱀의 형상이 경멸을 담은 발뒤꿈치에 밟혀 쓰러지는 걸 보였다. 황소의 형상이 비틀거리며 지팡이의 끝에서 물러나는 게 보였다. 기이한 색조의 반투명한 깃털을 가진 비열한 새는 가까이에서 상대를 찌르려 했지만, 그저 깃털이 뽑힌 채 낫에 눈알이 찍혀 뽑혀나갔다.


그렇게 격돌에서 새어나온 피가 맹렬히 회전하는 물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진짜 인간의 피도, 그저 그 싸구려 복제에 불과한 피도 한데 어우러졌다. 에레부스는 여인의 격노 속에 묻어나는 고통의 일별을 알아차렸다. 찌푸려진 여인의 얼굴, 헐떡이는 노파의 호흡에서 말이다. 이제 그녀를 휘감았던 조각은 풀려들었고, 많은 곳에서 끊어진 채였다. 유사가 그 모두를 빨아들였고, 피 묻은 발 아래 마치 끓어오르는 물처럼 들끓었다.


진정 장엄할 수 있는 존재였건만. 에레부스는 중얼거리듯 생각했다. 워프의 여왕이 될 수 있는 존재 아니더냐. 안타까움을 담은 미소가 얼굴에 엉겼다. 온 대지가 망각을 향해 흔들리고 있음에도, 자부심을 담은 미소였다. 하지만 내가 밟은 전갈은 다른 전갈일 뿐, 이제 사막은 그 독침에서 벗어나리라. 내게 칭송이 있기를.


결국 네 짐승 모두, 그녀 앞에 목숨을 잃었다. 아니, 네 짐승 모두 이 땅의 권속이 아니었기에, 추방했다고 해야 하리라. 그녀는 감각의 세계에 묶인 그들의 흔적을 솜씨 좋은 재봉사처럼 뜯어냈다. 놈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지만, 에르다는 무자비했다. 영원한 모성의 인내를 담아, 그들의 기괴함을 맞받았다. 그 모든 것을 보며 에레부스는 어떻게 그녀가 위대한 행위(The Great Deed)를 해냈는지 깨우쳤다. 어떤 경외감이 에레부스를 가득 채웠다. 그녀가 품은 것은 그저 진실, 진실 외에 어느 것도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그 시점에 바로 그 곳에서 끝나기 바랐고, 아나테마의 계획이 영원히 마무리되지 못한 채 멈추기를 바랐다. 그리고 바로 지금, 여기 그녀의 집에서, 에레부스는 그녀의 행위가 얼마나 잘못되었고 얼마나 틀렸는지, 그리고 그녀의 개입이 실제로 이뤄낸 결과가 무엇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그녀를 끝장낼 수 있는, 단검이나 다름없었다.


“분노.”


에레부스가 폭풍우를 뚫고 움직이며 말했다.


“집착. 절망. 힘. 이것들이 옥좌의 그가 맞선 존재였소. 내가 가져온 것들이지. 이제야 보시었소? 옥좌의 그가 수 세기 전 마주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보았소?”


그녀는 울부짖고 있었다. 상처에서 치미는 고통, 그리고 에레부스가 가져온 지식의 고통 속에서. 만약 할 수만 있었다면 그녀의 옛 공모자를 불렀으리라. 함께 창조하고, 함께 파괴하고, 사랑했으며, 증오한 바로 그 존재를. 하지만 그는 지금 저 멀리 있었고, 자신만의 문제를 상대하기도 벅찼다. 그녀는 최후까지 저항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 속에 몰아치는 폭풍은 이제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선택을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소.”


에레부스가 말을 이었다.


“그는 선택을 했소. 잘못된 선택이었지. 하지만 선택이란 측면에서 그 무게는 같소. 하지만 당신은, 당신만의 선택을 했지.”


에레부스가 허리띠에서 꺾인 칼날을 뽑으며 낄낄거렸다.


“당신이 원한 것은 모든 가능성이었소. 여기서 살짝, 저기서 한입. 그리고 자기 신상들을 챙겨서는 사막으로 돌아간 거지.”


그의 발이 에르다가 보여준 신상을 짓밟았다. 일그러졌지만, 에레부스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불러낸 초자연적인 동행들의 마지막 조각이 비명을 지르며 현실의 구멍 너머로 던져졌고, 자신들이 함께 불러낸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소멸을 향했다. 에르다는 이제 무릎을 꿇었고, 온 몸에는 멍과 열상이 가득했다. 겹쳐 보이던 얼굴은 다시 에레부스가 처음 마주했던 그 얼굴로 돌아갔다. 드레스는 너덜너덜한 고리가 되어 그녀를 감쌌고, 실타래가 곳곳에 풀려 있었다.


에레부스는 그녀의 곁에 무릎을 꿇고, 지친 에르다의 머리를 위로 끌어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귀신 들린 소년이라 하셨지, 나에게?”


자신을 향했던 모든 사소한 소리를 기억하듯, 에레부스가 악랄하게 쉿쉿거렸다.


“그럴지도 모르오. 어쩌면 늘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필요할 때 무엇을 불러낼 수 있는지는 이제 아셨겠지. 이제 이 소위 귀신 들린 소년이 되는 것도 그리 초라한 일은 아닐 것 같소.”


에레부스는 피가 흥건한 에르다의 목에 의식용 칼을 눌러 겨누어 피부를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옥좌의 그와 다르지. 나에게는 신성을 거역할 가식 따위는 없소.”


에레부스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대가 이 기회를 잡았다면, 나는 그대를 군주로 키워냈을 거요. 지금조차도, 아주 낯선 느낌이지만 자비의 끈이 내 가슴을 누르는 것 같구려. 그래서 제안을 드리리다. 옥좌의 그가 평생에 걸쳐 저항해 온 단 하나의 조건, 그 조건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그대를 살려줄 수도 있소.”


에르다의 검은 눈이 에레부스와 마주쳤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에르다는 그 조건을 듣기 원했다.


“나를 숭배하시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레부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타오르던 불길도 꺼졌다. 사지에도 힘이 풀렸다.


지금을 위해 그는 살았다. 완벽한 패배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에레부스는 에르다를 응시했다. 꿀꺽 침을 삼키는 모습, 그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을 꺼내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고통스러운 숨을 들이킨 에르다는, 에레부스의 투구 너머로 침을 뱉었다. 그리고 비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옥좌의 그조차도 거부했다.”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옥좌의 그였다면 가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에레부스는 에르다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거절에 놀라기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칼자루를 꽉 쥐었다.


“원하는 대로 해 드리리다.”


에레부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신이시여, 정말 아깝게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