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리야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다음 순간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음을 깨달았다.
“망할 소죽.”
그대로 내뱉으며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뻗은 일리야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제복을 다시 펴고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꿈을 꾸었다. 언제나와 같은 꿈이었다. 예수게이의 목소리였다. 검풍의 함교에서 그녀에게 보내졌던 그 목소리.
슬퍼하지 마시오. 우리는 이러기 위해 빚어졌소, 수. 죽기 위해 빚어진 존재들이지.
구역질이 치밀었다. 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망할 놈들.”
다시 중얼거리며 일리야가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소죽이 곧바로 그녀를 발견했다. 완전히 무장을 갖추고 투구까지 쓴 상태였다. 마치 촉박한 통보를 받고 긴급 탈출을 준비하는 사람 같았다.
“깨우라고 말했잖아요.”
일리야가 내뱉었다.
“사과드리오.”
“이제 사과도 지긋지긋해요.”
일리야는 최대한도로 날카로운 시선으로 소죽을 쏘아보았다.
“마음을 바꿨어요. 머물지 않을 거예요.”
소죽이 일리야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격납고에 썬더호크 세 대가 남아 있죠.”
일리야가 말했다.
“한 대를 가져가겠어요.”
“세 대 모두 예비품으로-”
“계획에 대해 나한테 왈가왈부하지 말아요. 내가 직접 세운 계획이니까. 같이 갈 거예요, 아니면 그저 내가 가는 꼴을 볼 거예요?”
소죽은 숨을 들이쉬었다.
“어째서인지 말씀해 주시오.”
“그가 죽을 게 분명하니까요, 수죽.”
일리야는 다시 머리를 부산하게 쓸어넘겼다.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에게 말하러 왔을 때 말이죠.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나는 믿었고. 한 번도 거짓말을 하신 바 없었으니까.”
“수, 내 생각엔-”
“닥쳐요. 날 여기 끌어들인 건 당신이잖아요. 그리고 나서 이 꿈을 꿨다고요.”
일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한 피로감이 일리야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생각이 잘 돌지 않았다.
“그는 내 조언을 원치 않았어요. 작별을 고했죠. 다시 그런 일을 겪을 수 없어요. 다시는.”
“만약 카간께서-”
“미리 자기 운명을 정했다면, 거기에 의문을 제기했을 건가요? 그렇게 말할 건가요?”
일리야는 소죽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잠에서 막 깬 연약한 인간 여성이, 갑주를 두른 거대한 살육 기계와 맞서는 꼴이었다.
“말똥같은 소리 집어치워요. 그런 맹목성이 지금 우리 귓전까지 차오른 꼴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나랑 같이 갈 거예요, 말 거예요?”
소죽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일리야가 다시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당신이 좀 더 나은 조종사죠. 나라면 너무 화가 치밀어서 그 망할 것을 추락시켰을 테니.”
그들은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대부분의 계단이 비어 있었다. 움직이는 동안 통신실에서는 신경질적인 말소리가 들렸다. 공기 필터가 고장났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이곳은 분명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이었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골조만 남은 군단의 인원들은 우주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곧 탈출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전까지 그들은 최대한 아거 센서를 확인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빌어먹을 통신 회선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격납고에 이르렀다. 세 척의 준비를 마친 건십들이 에이프런 위에 올라서 있었다. 거기에 한 척의 인력 수송선이 같이 있었다. 경비조차 없었다. 인력이 너무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녀석을 고른 뒤, 콕핏을 열고 비행 통제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소죽은 침착하게 비행 전 절차를 집행하며 조종석에 앉았다.
“위험할 거요.”
소죽이 말했다.
“아, 퍽이나 안전하겠어요.”
단단히 몸을 묶으며 일리야가 말했다.
“전속력으로 저 틈을 향해 가야 해요. 고도를 유지하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과 교전은 피해 줘요.”
소죽이 곧 엔진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엔진이 포효하며 기체 전체가 진동했다. 활주로 끝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밝히기 위해 주 조명을 켠 소죽은 곧 외문 개방 카운트다운을 작동시켰다.
일리야가 알기로는, 저 격납고 문 너머에는 워로드 타이탄 한 놈이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그들이 나타나면 곧바로 쏴버리려 들 것이다. 어쩌면 방사능으로 뒤덮인 저 황무지 위로 어떤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마지막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했다.
“거기 도착하면 어떡해야 하겠소?”
소죽이 제어 장치에 압박을 가하면서 동력을 높이며 물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찌되오?”
커다란 좌석 위에 앉은 채 일리야는 팔 지지대를 움켜쥐고 곧 찾아올 진동을 기다리며 긴장했다. 군단 건십을 타고 전속력으로 비행하는 것은 컨디션이 좋은 사람에게조차 불편한 경험이다. 지금 일리야의 상태에서는 반쯤도 가기 전에 산산조각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일 거예요.”
자신을 담아 일리야가 말했다.
“그걸 확실히 하셨을 테니.”
격납고 문이 완전히 위로 열리고, 연기가 자욱한 밤 너머로 가느다란 틈이 열렸다. 아직도 화염이 타오르며 장대한 파멸을 비추고 있었다. 극한에 이르는 거리였지만, 일리야는 그곳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수평선 너머 솟구쳐 녹색 불길을 뿜어내는 역병의 산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상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죽은 부스터 점화 준비를 갖췄다.
“확실하오, 수?”
진정 떠날 것인지, 마지막 확인을 담은 물음이었다.
일리야는 턱을 악물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그녀라 해도 겁을 먹는 게 당연했다. 너무 두려웠다.
“해요.”
일리야가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다음 순간 썬더호크의 추진기가 맹렬한 기세로 화염을 토해내며 폭발하듯 에이프런을 박찼다. 소죽은 조명을 껐고, 조종 장치의 각도를 조정한 뒤 피가 얼어붙는 밤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개추
죽기 위해 태어난 자들의 아버지라고 그렇지 않은게 아닌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