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이 모든 걸 거치는 동안, 흑검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괴물. 유령. 그저 텅 빈 껍질에 불과했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떤 죽음이 이렇게 심오한가? 어떤 실망이, 어떤 절망이 이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칸은 이 사실에 격노했다. 칸은 분노로 울부짖으며 상처를 떨옃내고 몇 번이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칸은 일전의 그 전사를 상대로 원했다. 핏속에 불길이 흐르던 그 존재를. 칸은 영혼이 있는 승부를 원했다. 이 플린트 가장자리 같은, 금속과도 같은 견고함만이 자리하지 않은, 영혼의 깜박임을 가진 상대를.
한때, 둘은 함께 웃었다. 으르렁거리는 구덩이에서 함께 싸웠고, 상대의 장갑판을 한움큼씩 뜯어냈으며, 마지막 순간엔 짚더미와 피 속에서 쓰러진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머리를 깨무는 발톱마저도 이걸 막지 못했다. 전투를 벌이는 순간, 발톱은 상대가 품은 진실을 밝게 비추고 있었기에.
“분노… 해라!”
칸이 노성을 내질렀다.
“살란… 말이다!”
오직 살아 있는 것을 죽일 수 있을 뿐이다. 유령은 죽일 수 없다. 그저 도끼가 허공을 가르게 될 뿐. 그저 좌절이, 거듭해서 벽에 부딪힌 순간의 광기가 있을 뿐.
발톱이 그를 거칠게 깨물었다. 칸은 더 처절하게 싸웠다. 그의 속도가 빨라졌고, 쉴 틈 없이 찢어지는 근섬유가 다시 빠르게 회복되었다. 격전 속에 파열된 혈관이 열기 속에서 다시 이어졌다. 지금까지 칸이 견뎌냈던 그 어떤 열기보다도 백열하는 열기가 전신을 휘감고 돌았다.
흑검은 침묵 속에서, 완강하게, 그리고 격노 속에서 그 모든 것에 맞섰다. 마치 우주의 종말과 맞서는 것 같았다. 그 어느 것도 그의 신념을 흔들 수 없었다. 오직 자신 외의 모든 것에 눈이 멀었고, 보석 창고를 터는 도둑처럼 이기적이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에 비길 수 없을 기세로 체인 액스가 맹렬히 울부짖었다. 공기 중의 프로메슘 증기에 불꽃이 튀길 정도였다. 그 아래 피가 능직처럼 뿜어져 내렸다. 칸이 도끼를 휘둘렀고, 유령은 상처를 입었다. 유령이 비틀거렸고, 숨을 차올라했다. 열기가 맹렬히 울부짖으며 칸의 심장들이 맥동했다. 위대한 신이 그의 멍든 귀에 거칠게 속삭였다.
해라. 그걸 해라. 날 위해 해내라.
다음 순간, 유령이 다시 돌아왔다. 큰 키, 어두운 빛, 벼락처럼 굽이치는 눈썹, 검과 갑옷은 빛을 삼키는 어둠 자체였다.
칸은 지고의 극단을 느꼈다. 그가 풀어내린 폭력은 끝없는 기쁨의 합창이나 다름없었다. 둘이 딛고 있던 바닥이 무너지며 파편의 구름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대지에 충돌했음에도 둘의 격돌은 끝없이 이어졌다. 검과 도끼가 휘둘러지며 그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도륙하려 들었다.
“나… 는… 결코…”
칸이 불쑥 내뱉었다. 신이 임한 그의 수족마저도 탈진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광기 속에서 위대한 신이 그의 야수가 된 육신에 임한 그 순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누세리아 이후, 그들은 지금의 월드 이터 군단을 만든 것은 제국이라고 했다. 제국의 잘못이었다. 불의와 폭력이 분쟁에 대한 욕망을 빚어냈고, 흡사 당연히 죽었어야 할 옛 신들에 바치는 의례처럼 검투의 전당에 나서는 리허설을 연상케 하는 그들의 모습을 만들었다. 모든 유혈과 잔혹에 대한 변명이었다. 제국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 는… 결코…”
하지만 지금 칸은 어떻게 순환이 완성되는지 깨달았다. 7년의 총력전이 제국을 어떤 경지에 몰아넣은 것인지 보았다. 제국의 전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았다. 폐를 터뜨릴 것 같은 가장 격렬한 전장의 경지에서도, 끝없는 절망이 드리운 요새에서 주조된 수천의 전사들이 밀려오는 환영이 그를 덮쳤다. 모두가 지금 그의 상대처럼 꺾이지 않는, 광신적인 죽은 영혼들이었다. 그들이 믿는 어떤 대의 때문이 아닌, 그저 그들이 자리한 땅을 포기하는 법을 모르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들. 칸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았고,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느꼈다. 칸은 이미 무한한 고뇌 속에서 고통받는 은하에 어떤 새로운 고통을 몰고 올 것인지 알아보았다. 그 진실 속에서, 그 신실한 칸조차도 온몸을 떨어야 했다.
“나… 는… 결코…”
칸은 계속 싸웠다. 그의 야성이,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누구도 막지 않은 채, 놈이 움직이게 둘 수 없었다. 허락할 수 없었다. 테라에는 아직 그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었다. 열기와 영예, 그리고 가치 있는 살육이 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곳, 그들이 처음 빚어진 곳, 테라에서 놈을 막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이 차가운 홍수 속에 휩쓸릴 것이다.
그는 버텨서야 했다. 저항해야 했다. 인간성을 위해, 열정의 삶을 위해, 고통과 감각이 빚어낸 영광의 맥동을 위해, 그리고 그 무언가를 위해.
“나… 는… 결코…”
칸이 숨을 헐떡였다. 시력은 망가졌고, 손은 이제 움켜쥘 수 없었다.
“망가… 지지는…”
흑검이 다시, 또 다시, 거듭해서 달려들었다. 이렇게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무 완벽하고, 어떤 타협도 없고, 동정도, 후회도 없는 격전이었다. 살인적인 일격이 덮치는 걸 볼수조차 없었다. 공허의 무게와 영원의 빠르기를 담은 칼끝이 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장엄한 허무함에 칸 안에 거하는 대신조차 공격이 닥쳐오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칸은 쓰러졌다. 침묵 속에 그는 처형되었다. 땅에 쓰러진 그에게 던져진 것은 냉엄한 무시 뿐이었고, 파괴된 그의 육신은 문명의 잿더미 속에서 짓밟혔다. 목은 으스러졌고, 두개골은 부서졌으며, 가슴은 움푹 패였다. 사지가 절단되어 그루터기만 남아 있음에도, 칸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워프의 기운에 감싸인 갑주에서 반응로가 꺼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격노를 쏟아내며 몸부림을 쳤다. 칸이 마지막으로, 최소한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를 죽인 자, 검은 템플러의 거대한 측면이었다. 그의 깨끗한 칼 끝이 아래를 향한 채, 그 둘 사이의 마지막 승부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코… 망가… 지지는… 않았다…”
발톱이 주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격렬한 고통 속에서 칸은 숨을 헐떡였다. 우주가 경박한 장난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네놈… 만큼.”
칼이 휘둘러졌고, 신은 칸을 떠났다. 칸은 옛 고향의 폐허에서 죽음을 맞았다.
당분간 와이프 간병도 하게 될 것 같고 해서 번역에 쏟을 시간이 또 잘려나갈 것 같아서 미리 올림. 즐감.
역시 스마제일검 - dc App
하이고... 완쾌를 빕니다
반역파들은 너도 나도 즐겜을 추구하는데 충성파는 점점 독해지는것의 가장 극단적인 예인가. 잘 낫길 빕니다
아이고, 잘 돌봐주세요.
지금은 아내분께서 무사하시기를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