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록은 3급 유물-기록문으로 분류되며 허가받지 않은 자의 열람을 금한다.


과욕에 찌든 방종한 두 눈에 저주 있으리라.




열람자격을 얻었다면 다음 데이터 카드를 열람하라.




***옥좌에 영광을***






이 기록문은 영광되며 영원하신 옥좌에 계신 분이 인류의 가장 빛나던 시기를 이끄셨을 때 발견된 기록이다.




발견장소는 대성전 당시 정복된 가스행성 어등고-7이며, 토착 외계종의 저열한 언어로 기록되었다.


어등고-7은 제국의 영광된 품으로 돌아오기 전 '필라넥스'라 불리는 외계종에 의해 지배당하던 행성이었으며, 이 기록문은 그 거주민 중 하나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이 외계종들은 어등고-7을 '본네사'라고 불렀다.


'필라넥스'는 매우 우둔하고 저열하며, 또한 나약한 절지류형 외계종이다. 그들의 신체구조는 가스형 행성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으며, 기낭에 가스를 채워 부유하고 가느다란 여섯개의 집게발로 행동하는 저급한 종족이었다. 또한 그들은 페로몬을 발하여 서로 의사소통했으며, 이 기록문 또한 페로몬으로 작성된 것을 동면장에 넣어 보존한 것이다. 이 저등한 종족은 기록문을 남기는 데 매우 도착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형태의 페로몬-기록문이 그들의 멸망 후에도 남았다.


이 기록문은 지금은 이단으로 판정받은 테크-프리스트의 '만능번역기 6호 시제품'에 의해 번역되었다.




우리 제국민은 이 역겹고 나약한 종족이 우주에서 사라졌음에 진실로 기뻐해야 할 것이다.




추신1: '필라넥스' 종족은 더 이상 우주에 없다.




추신2: '필라넥스' 종족의 시신은 화성의 박물관에 보존 처리되어있다. 연구를 원한다면 화성의 관계교단에 연락하라. 약 200년의 검토기간이 있을 수 있음.




***첫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일곱 번째 아내 큐네(번역자의 첨언: 필라넥스는 수컷이 암컷보다 수명이 10배 가까이 길어 재혼이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행성은 정말 아름다워. 나는 최근에 개발된 부유열기구를 타고 일주일만에 이 행성을 돌아볼 수 있었어.


큐네, 당신이 있는 그 곳에서도 보이겠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우리 행성은 꼭 보석 같아. 짙은 보랏빛, 녹빛, 적색의 안개가 휘감아도는 구름 아래의 지표는 단단한 금속이지. 나는 이런 행성을 보살피는 뼈-건축가가 된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 당신의 대부께서 날 추천해줘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넌 여기서 우리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 지 짐작도 못할 거야. 오늘 나는 넓이가 ##*$&(번역자의 첨언: 이 부분의 번역은 실패했다. 필라넥스의 숫자 단위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도 넘는 거대한 열기구들을 봤어. 두 발 달린 노예들이 열심히 그 열기구의 피부를 꿰매고 있었지. 듣자하니, 그 열기구들은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거야! 이제 사냥꾼들만이 우주로 나아가던 시절도 끝난 거지. 이 열기구들은 무척 저렴하고 만들기도 쉽다고 해. 우리 가족들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래. 드디어 우리가 우주로 나가는 거야.


당신의 세 번째 부속지를 쥐고 저 먼 곳의 별들을 보게 될 날이 기대되어 견딜 수가 없어.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 거라 생각해?




***두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일곱 번째 아내 큐네, 일이 지체되고 있어.


두 발달린 노예들은 그리 성실한 일꾼이 아니야. 그들의 허파로는 우리 행성의 대기에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건 알지만, 도대체 왜 하루에 %&%&^시간 이상을 자는 걸까? 그들은 정말 게으른 생물인가봐. 그들이 잠을 자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또 열기구의 생산이 늦어졌어.


이 노예들은 정말 이상해. 그들은 날아다니지도 못하고, 두 발로 땅을 기어다니는 주제에 팔도 두 개 뿐이야. 도대체 어떤 무능한 신이 저런 비효율적인 신체를 사랑할까? 또 손가락들은 얼마나 부러지기 쉬운 지. 지난번엔 내가 주의를 준다고 살짝 잡아당겼더니 팔이 통째로 뽑혀버렸어.


하는 수 없이 그날 저녁은 망가진 노예로 대체해야 했지. 그것들은 상당히 맛이 없어, 큐네. 설령 당신의 요리 솜씨라고 해도 그 뻣뻣한 가죽을 맛좋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 거야.


아무튼 큐네, 사랑해.


우린 곧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노예들을 조금만 더 잡아오기만 한다면 말이지.




***세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여덟 번째 아내 큐오네, 오늘 드디어 열기구들을 완공했어! 노예들이 대부분 죽기는 했지만 말이지.


오늘 저녁은 우주에서 먹을 거야.


궤도 엘리베이터의 %&^&번 게이트로 와 줘. 맛 좋은 델페로-증기와 유나열매가 섞인 가스를 준비해둘게.




***네 번째 기록 시작***



큐오네, 문제가 생겼어.


아주 심각해.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하겠어.




***다섯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여덟 번째 아내 큐오네, 내가 겪은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날도 나는 노예를 잡으러 간 사냥꾼들의 전투-열기구가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오는 걸 감독하고 있었어. 평소대로라면 전투-열기구는 가스고래처럼 우아하게 정거장 안으로 착함해야 했지.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


비틀거리며 날아오는, 만신창이가 된 찢겨진 열기구가 단 한대만이 돌아왔어. 맙소사, 서른 대가 넘게 사냥을 나갔었는데 단 한 대만이 돌아왔다고. 단 한 대만이.


열기구의 상태도 끔찍했지만, 그 안에서 나온 사냥꾼들의 상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지.


큐오네, 알고 있어? 우리가 옆의 행성에 들어가 잡아오는 노예들은 인간이라고 불리는 생물체들이야. 두 발달린, 작고 약하고 날아다니지도 못하는 원시생물이지. 그들은 원시적인 투사무기가 무장의 전부고, 더군다나 가스로 호흡을 하지도 못해. 아주 쉬운 사냥감이란 말이지. 사냥꾼들은 그저 수면 가스를 뿌리고, 마취-다트를 발사해 비틀거리는 그들을 포획해 노예로 삼는 것이 일의 전부였단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되질 않았던 것 같아.


우리가 본 사냥꾼들의 몸에는 끔찍한 구멍들이 잔뜩 뚫려 있었어. 마치 안에서 폭발한 것처럼 말이야. 신화 속의 맹수처럼 무언가가 그들의 몸을 찢고 지나갔던 것 같아. 내가 알기로 인간들에게 그런 강력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사냥꾼들을 죽인 것일까?


사냥꾼들은 전부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어. 그들의 기낭을 꼬매려고 애를 썼지만 내장이 모두 불타버린 뒤라 소용이 없었지. 혹시 인간들이 갑자기 빠른 기술진보라도 이룩한 걸까? 아니면, 그들의 원시적인 종교에서 믿던 '천사들'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듣자하니, 인간들은 전쟁의 신을 섬긴다는 모양이야. 금속으로 옷을 만들어입고 불로 만들어진 화살을 쏘는 전쟁의 천사들이 자신들을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거지.


그게 제발 유치한 망상이길 바랄 뿐이야.


큐오네, 맙소사. 우리가 우주 너머에서 발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친절한 친구나 눈부신 진보 따위가 아니었던 걸지도 몰라.


***여섯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여덟 번째 아내 큐오네, 오늘 사냥꾼들의 대함대가 궤도정거장에서 출정했어.


내 ^*&&^년에 걸친 생애 동안 그보다 장엄한 광경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 큐오네, 상상할 수 있겠어? 한 대만 있어도 장엄한 전투-열기구가 수 천대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장면을 말이야. 어젯밤에는 전투-열기구들에 부유가스를 주입하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우리 궤도 건축사들은 지금도 뿌듯해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사냥꾼들의 함대는 이제 노예들의 행성을 깨끗하게 정화할 거야. 지난 번에 목숨을 잃은 백 명의 사냥꾼의 목숨값을 치르는 의미에서 말이야. 듣자하니, 씨종자만 남기고 다른 모든 인간들을 처분한다는 것 같아. 사냥꾼들은 정말이지 독이 오른 기세야.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무기는 노예들에게 사용되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강력하지. 여자인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번에 삼 십발의 다트를 쏘는 투척기와 가스-폭탄들이 열기구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광경은 정말 장엄해. 그런 것들이 수 천대가 넘게 있다고 생각해 봐!


설령 인간들의 신이라도 우릴 막지 못할 거야!


이제 노예들은 우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게 될 거야. 그들의 죽음으로 말이지.


사랑해, 큐오네. 다음 연락에서는 승전보를-비록 상대가 노예 인간들이긴 하지만-전하길 기대해줘.




***일곱 번째 기록 시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 큐오네.


아무도.




***여덟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여덟 번째 아내 큐오네. 경악했을 것이란 걸 알아.


부디 겁먹지 말고 잘 들어줘, 큐오네.


&*^&시간 전에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서 사냥꾼들의 대함대가 전멸했다는 걸 알아냈어.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어. 노예들의 행성으로 일주일을 거쳐 날아간 사냥꾼들의 열기구는 그곳에서-무언가를 만났어.


오, 큐오네. 미안해. 난 도무지 그것을 묘사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그것들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배들이었어.


믿을 수 있겠어? 우리의 마을 하나보다 더 거대한 배들이 노예행성의 상공에 떠 있었고...그들은 가스-파리를 부속지로 눌러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쉽게 사냥꾼들의 열기구를 파괴했어.


끔찍했어.


그 금속 전함들은 빛보다 빨리 날아오는 화살을 쏴. 그것이 열기구를 관통하면, 안은 열로 지글지글 끓어오르다가 눈부신 섬광과 함께 타올라. 삼 천대의 열기구 중 절반이 그렇게 죽었어. 단 다섯 대의 금속 배에게 말이야. 그러나 그 불타는 화살에 맞아죽은 사냥꾼들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 그들은 우리의 열기구에게 화살을 낭비하기 싫었는지 중간부터는 그저 우리를 들이받기만 했어. 열기구는 그들을 피하기엔 너무 느렸지. 나는 망원경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우리 동포들의 기낭이 우주에 흩어지다, 얼어붙어 부서지는 걸 보았어.


사냥꾼들 중 몇몇은 필사적으로 페로몬-포낭을 우주에 내던졌어. 항복한다는 뜻이 담긴 페로몬들이었지. 하지만 그들은 전혀 공격을 멈추지 않았어. 페로몬을 알아듣지 못한 걸까? 아니면 들어줄 생각이 없던 걸까? 양쪽 다 가능성이 있겠지. 결국 모두가 죽었어. 모두가.


그 금속의 배들을 무엇 때문에 우리를 공격한 걸까?


우린 그저 노예의 처벌과 정의의 실현을 원했을 뿐이야. 저런 무서운 적들에게 공격받을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단 말이야.




큐오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듣자하니 왕께서 직접 그들을 만나신다는 모양이야.


그들도 문명인이라면 대화가 통할 수 있겠지. 저런 위대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종족이 문명인이 아닐리는 없지만...


큐오네, 너무 걱정된다.




***아홉 번째 기록 시작***



그들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어.


그들이 우리의 왕을 죽였어.




***열 번째 기록 시작***



사랑하는 나의 열 번째 아내 비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편지를 남기게 되어 유감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설명부터 해야겠지. 우리 행성을 불태우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 내막은 잘 모르겠지. 우리에게 전쟁을 선언한 그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들은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비오. 믿을 수 없지만 그들은 인간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노예로 부리고, 먹어왔던 그 가축들 말이야.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징집된 병사들-그러니까, 살아돌아온 몇 없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인간이 맞다고 말해. 그들은 우리가 노예로 부리던 그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저 먼 별 너머에서부터 전함과 무기를 들고 온 거야.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인간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강력한 걸까?


내가 아는 인간은 우리 몸길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미숙한 생명체들이야. 하지만, 별들 너머에서 찾아온 그 빛나는 인간들은 전혀 달라. 그들의 덩치는 우리만큼이나 크고, 팔은 여전히 두개 뿐이지만 우리의 부속지를 단번에 쥐어 으쓰러뜨릴 정도로 힘이 강해. 비오, 나는 궤도-건축사야. 나의 임무는 열기구를 타고 전황을 관측해 보고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들과 우리 종족이 싸우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아왔어. 아마도 이 행성의 누구보다도 새로 나타난 '인간'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


그들은 잔혹해, 비오.


나는 그들이 터지는 화살을 쏴서 한꺼번에 수 십명의 전사들을 잡아 찢어버리는 것을 보았어. 전사들이 날아 도망가려 몸부림치면, 그들은 하늘로 뛰어올라-맙소사, 인간들은 날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칼날이 달린 몽둥이로 전사들을 내리쳐 찢어버려. 게다가 그들은 땅을 기는 기계, 하늘을 나는 기계, 대륙을 잡아부수는 기계까지 가지고 있어. 그것들이 바닥에 붙어 천둥소리를 내며 기어다니면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아. 그 안에 담긴 힘으로 따지면 지진보다도 훨씬 강력하겠지.


비오, 부디 믿어줘.


나는 그들이 행성 하나를 부수는 것도 보았어. 단 한 발의 화살을 쏴서, 그 행성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죽였어. 왕태자께서는 이 일을 비밀에 붙이셨지만,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렇게 사라진 식민지 행성을 말이야.




비오, 너는 알 수 없겠지만, 우린 이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을 거야.




살아남을 수 없을 지도 몰라.




왕태자께서는 필사적으로 번역가들을 닦달하고 계셔. 저 강철의 인간들과 평화협정을 하신다는 것 같아.




그게 가능할까?




***열한 번째 기록 시작***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에게.




어제 비오가 죽었다.




^*&^&년 전에 폭격으로 죽은 큐오네와는 달리, 그녀는 인간의 손에 잡혀 찢겨죽었다. 강철의 옷을 입은 그들이 내 집을 부수고 들어와, 미쳐 달아나지 못한 그녀의 목을 잡아 뜯고 그녀의 기낭이 터져버릴 때까지 짓밟았다. 비오는 살려달라는 페로몬을 페로몬낭이 터질 때까지 내뿜었지만 그들은 페로몬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있다고 해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왕태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평화협정에서 불에 타 버린 뒤 우리 성계가 함락될 때까지 겨우 사흘이 걸렸다. 사흘만에, 본네사의 모든 궤도 방어기능이 침묵했다. 그러자 인간들은 강철의 배들을 대기권 아래로 내렸다. 그들의 배에는 불타 죽거나 찢겨 죽거나 토막난 우리 종족들의 시체가 창대에 꿰어 수 없이 널려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은, 그 뒤에 찾아온 것에 비하면 차라리 온건한 편이었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전사들을 우리의 아름다운 행성에 상륙시키기 시작했다.




우리의 첨탑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전사들을 죽이고, 우리의 아기들을 밟아 뭉개며, 그들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어떤 전사의 다트도 그들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들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전사들의 팔다리가 뜯겨나갔고, 며칠 뒤에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상대로 화살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은 쓰레기를 청소하듯이 우리를 맨손으로 때려 죽였다.




죽음이 넘쳐난다.




전쟁이 시작된 뒤로 우리 종족은 총 400억명이 죽었다. 강철의 인간들은 단 한 명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걸으며, 아무런 말없이 그저 죽음만을 창조했다.


종말이란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잔혹하고 어처구니 없었다.




나는 행성에서 마지막 남은 열기구를 타고 정처없이 표류하는 중이다. 그들이 나를 격추시키지 않는 것은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어서일 뿐이겠지.




우리의 아름다운 행성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들이 강철의 배에서 쏟아부은 금속화살들은 행성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내부를 노출시켰다. 대기는 모두 증발했고 가스가 누출되어, 우리 종족은 대부분 호흡불가로 즉사하거나...혹은 자살했다. 곧 나도 그리 될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그저 이 일을 아직 끝까지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복수심일까? 우리가 그들의 동포를 노예로 삼고 먹어치웠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복수심으로 이루어졌다기엔 너무도...신념에 찬 것이었다. 광신. 증오.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




오늘 아침 나는 우리 행성의 대기권을 온통 덮은 강철의 배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심연을 넘나들고, 오만하게 함수를 내세워 공허를 가로지르며 영원한 전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분명했다. 그것들은 복수 따위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리라.


정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물건들.


그들은 우리 종족을 몰살시키고, 본네사를 차지한 뒤에도 계속해서 우주를 불태우며 나아갈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왜 정복을 하려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우리를 절멸시켰을까? 다른 종족들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될까? 나는 알 수 없다. 알고싶지도 않다.


그들이 불러올 재앙과 그들이 쏟아낼 피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331대 왕 후유케록스께서 말씀하시길, 망치로 흥한 자는 망치로 망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저들은 다르다. 강철의 배를 타고 재앙을 나르는 저 종족은 다르다.


저들은 그들 스스로가 망치다. 뼈를 분지르고 살을 찢어 피를 들이마시며 날뛰는 전쟁의 신의 손에 쥐어진, 망치다.




그들이 스스로 망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처럼 순순히 멸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친 신의 손에 쥐어진 망치처럼, 부러지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을 으깨며 나아가리라.




***기록 종료***




***좋은 외계인은 죽은 외계인 뿐이다***





묘사만 보면 오버로드 닮았네

작가가 저그유저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