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도로 위로 흐릿한 소음과 움직임이 오가며 불안감을 키웠다. 맹렬한 폭풍과 갓 시작된 고통 속에서, 온 사방이 혼돈에 빠진 듯 보였다. 안정적인 것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덧없음이 흘러가고 있었을 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 도시 밖의 현실보다 나은 삶에 대한 다짐이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굶주렸으며, 조금만 긁어내서 표면이 드러나면 그 아래의 두려움은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전부 너무 빠르게 퇴화하고 있군.”


안개가 엉겨붙은 전망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채, 칸다와이어가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지상 차량들은 텅 빈 첨탑과 사람들이 우글대는 거주 블록 사이에서 쏟아지는 눈보라를 뚫고 줄줄이 주요 통로에 진입한 채 동력을 차단했다. 질서가 확실히 자리잡은 중심부에서였다면 강대한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의 아직 불완전한 그림자 아래에서조차 모든 것이 자리를 잡은 채였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 교외의 무질서한 외곽 지대와 싸구려 판자집들 사이로 들어가면 제약은 순식간에 느슨해진다. 그리고 주민들은 저 불완전한 성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둔중한 장갑차조차도 끔찍한 바람을 맞으며 개스킷이 날아다니는 판이었지만, 아르비테스는 모든 동원 가능한 전력을 다 긁어모았다. 한 줌이나 될까 한 진압용 항공기들이 태풍과 맞서며 날아올랐고, 탐조등이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몇몇 군중은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가는 중이었고, 상당수는 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얼굴에 복면을 두른 채 폭풍에 맞서 몸을 낮추며 나아가고 있었다. 다들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채였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들이 어떻게 다 알게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교육받지 못한 막대한 인원들이 어떻게 패닉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아마 어떤 장거리 감지탑에서 신호를 잡았고, 보호되지 못한 통신 라인을 통해 메시지가 넘어갔을지도. 어쩌면 메니알 한 놈이 잡담하던 게 새어나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추위를 뚫고 근무지를 벗어나 나불거렸을지도.


몇 시간 안에, 각각은 모두 자신만의 선택을 했다. 혹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라 해야겠지만 말이다. 병사들은 급히 막사에서 일어나 벽으로 소집되었다. 일꾼들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르비테스의 집행관들은 새로운 탄약 팩과 두 배의 전투식량을 지급받았고,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상황을 통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채 순찰에 나서야 했다.


지상 차량들이 관문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20분 내에 남서쪽에서 이어지는 주요 접근로가 저들의 손에 의해 폐쇄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로 쫓겨난 컨베이어 차량들과 대형 화물 트럭들이 잔뜩 튀어나와 고립된 상태에 빠지게 될 게 거의 분명했다.


칸다와이어는 몸을 기대고 있는 운전자 쪽을 바라보았다.


“전방에 신호가 있습니다, 전하.”


운전자가 보고했다.


“보안 부대가 동원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입이 차단되는 중입니다.”

“알겠네.”


칸다와이어는 내심 폐쇄 절차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2차 경로에 대한 좌표를 가지고 있겠지.”


운전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임무로 돌아갔다. 몇 초 후, 호송대는 왼쪽으로 크게 꺾어들어가 주요 통로를 벗어나 좁은 측면로를 따라 미끄러지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량 위의 조명만 남긴 채, 여전히 빛을 끈 채로 진흙투성이 길을 따라 움직였다.


진행되는 일의 속도, 그리고 서두름은 칸다와이어에게 어린 그녀가 겪었던 예상치 못했던 탈출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녀의 삶은 때때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서둘로 뛰어가면서 어떻게든 무질서한 조류를 앞서기 위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감히 그런 삶이 이제 끝날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녀의 높은 지위 때문에, 불안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언제나 혼란이 다시 찾아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황제는 분명 테라에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오래 묵은 병리는 여전히 수면 아래 숨어 있었다. 자신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차체에 장비된 기관포의 약실에 탄약을 장전하는 소리가 칸다와이어의 귀에 들렸다. 동쪽 벽이 몰아치는 바람 사이에 흐릿하게 들려왔다. 광원은 적었고, 반쯤 지어진 거주용 주택과 창고가 정글처럼 모여 있었다. 지저분한 눈이 덮인 케이블이 그 위에 지붕처럼 둘러졌다.


“스캔 완료했습니다, 전하.”


운전자가 침착하게 보고했다.


“출구 경로에 경비대원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철저하군.”


칸다와이어가 말했다.


“하지만 충분히 벗어날 수 있네.”

“명령을 내리십시오.”


차량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약간은 개활지가 되었다. 거주 블록 뒤로 건축 자재와 움직이지 않는 부양 비계들이 배치된 황무지가 드러났다. 성벽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위, 락크리트가 덮이지 않은 얼어붙은 진흙이 펼쳐졌다. 동쪽 방벽의 내부 곡선지에 맞닿은 이 지점은 산업 지대의 건설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미래에 솟을 첨탑의 기반이 반쯤만 세워진 텅 빈 구멍에 불과했다.


성벽 인근에 건물의 기초가 자리잡았다는 것은, 성벽 자체가 일시적으로 기능을 잃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지역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경비대원들은 취약 지역의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라면 모를까, 차체 선두에 장비된 삽 위에 하이 로드의 인장이 새겨진 십수 대의 장갑차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칸다와이어는 다가오는 검문소를 힐끗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경비대원들이 포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전방 도로로 통하는 길 위로 묵직한 차단봉이 내려왔다. 라스 사격이 차량들을 향해 뿜어지며 밤하늘을 찢고 차량을 뒤흔들었다.


“가능한 한 인명 피해는 최소화하도록.”


칸다와이어가 지휘 통신 회선으로 복스 교신을 보냈다.


“그냥 깔끔하게 통과한다.”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었고, 차량들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연이어 포가 불을 뿜었고, 전방의 바리케이드는 포격에 얻어맞아 박살나고 비틀렸다. 금속제 차단벽이 부서지고, 플라스틸 파편이 폭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날았다. 집중 포격 아래 황궁 경비대원들의 대형은 박살났고, 몸을 낮춘 채 진흙밭에 구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몇 초 후, 차량들은 보안 경계선을 뚫고 들어가 채굴을 위해 만들어진 긴 경사로를 박살내듯 뚫고 나아가갔다. 비례골 이루어진 미로가 그들을 감쌌다. 차량들이 방벽 아래 노출된 고르지 못한 지형 위로 요동치며 나아갔다. 수 톤에 이르는 암석과 금속 아래 산 채로 매장될 것 같은 짧은 불안감이 칸다와이어를 감쌌지만, 잠시 후 그들은 다른 쪽의 경사면을 돌아 텅 빈 밤을 향해 다시 올라가고 있어다.


어깨 너머로 나타난 차량들이 좁은 후면 관측창에 들어왔다. 요동치는 차량 안에서 보는 도시는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눈보라에 가려진 어둠의 도시, 물러진 녹색 구름과 몰아치는 바람이 도시를 후려치고 있었다. 옛 봉우리의 원시적인 분노에 맞선 드높은 성채였다. 언젠가 황제의 비전이 완성되면, 이곳은 태산만큼이나 험난한 곳이 되겠지만, 오늘 밤만큼은 위태롭고 연약해 보였다. 심지어 방벽 곳곳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공식적인 성문 외에도 수많은 비공식적인 성문들이 자리잡은 채였다. 결코 오늘의 공격에서 이 도시는 살아남지 못하게 되리라.


차량들은 속도를 유지한 채, 고원 온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 위로 맹렬하게 달려나갔다.


“추적이 있습니다.”


칸다와이어가 생각하는 가운데, 운전자가 끼어들었다.


칸다와이어는 전방의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번호가 매겨진 신호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먼저 든 생각은 잘못 알았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다시 떠올렸다. 상대에 대한 믿음을 잃을 필요는 없었건만.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일었다.


“만약 질문을 해 오면 차량을 멈추도록.”


로브에서 암호 코드를 꺼내며 칸다와이어가 말했다.


차량이 점점 속도를 늦추다가 진동하면서 멈춰섰다. 밤공기 위로 아크 조명과 섬광, 그리고 투구에 장비된 조명들이 곳곳에서 빛을 뿜었다. 금속성의 무언가가 장갑화된 유리를 두들겼고, 칸다와이어는 잠금 해제 버튼을 눌렀다. 창문이 쉿쉿 소리를 내며 열렸고, 더러운 눈보라가 몰아쳐 들어왔다. 온도는 살을 에는 듯이 떨어졌다.


재호흡기와 병 모양의 아이피스를 갖춘 폐쇄형 헬멧이 어둠 속에서 쑥 나타났다. 그 뒤로 동력 갑주를 갖춘 병력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모두들 무장을 갖춘 채였다.


“우릴 통과시켜야 할 걸.”


칸다와이어는 선두의 병사에게 자기 증표를 내밀었다. 주먹 만한 크기의 신분증이었다.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의 인장이 찍힌 신분증.


병사는 신분증 홀더를 받아든 후 식별 장치에 신분증을 꽂아넣었다. 몇 번 딸깍거리는 소리가 난 끝에, 길게 이어지는 보증서 문장들이 마이크로렌즈에 찍히며 삑삑대는 소리가 났다. 병사는 자기 분대원 하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 분대원은 통과 이미터를 차량의 후드에 부탁했다.


“남서쪽 능선입니다.”


병사가 묵직한 복스 그릴을 거쳐 말했다.


“지휘부가 표준 절차를 시행했습니다. 보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 그들은 조심스레 운전하기 시작했다. 나아갈수록 곳곳에서 분주하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드러났다. 대형 병력 장갑차들이 얼음 위로 정차해 있었다. 묵직한 기갑 차량들이 장갑차량들을 스치고 지나가며 연기를 뿜어냈다. 사방의 보병들은 환경 방호복을 두른 채, 정규전 대열을 갖추며 움직였다. 일부는 예상한 대로 용병들, 그리고 증강물로 무장한 병력들이었다. 수 세기 동안 펼쳐진 전쟁 덕분에,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지 않던가. 하지만 대부분은 제국군 정규 병력들이었다. 노역 때문에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흐릿해지지 않은 병력들이 대부분이었다. 의심을 부르지 않으면서 이런 정도 규모의 병력을 긁어 모으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다른 추적은 없었다. 호송대는 덜컹거리며 미끄러지듯 움직여 군중 사이를 파고들었다. 중궤도차량 사이로 가느다란 길을 만들 듯이 차량들이 움직였다. 거대한 고원이 다시 솟기 시작한 왼쪽으로 작은 거주구역 크기의 기계화 장비들이 수렁을 헤치며 움직였다.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부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반중력 전차들도 보였다. 리펄서 패널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지휘부는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십수 개의 군기가 우뚝 솟아 있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랍토르 임페리알리스가 새겨진 채였다. 랍토르 임페리알리스 주변을 작은 문장들이 감싸둔 채였다. 백여 개에 이르는 대대와 전재들의 문장이었다. 모두 지구를 하나로 통일한 통합의 건설자들이었다. 가장 크고 강력한 차량들은 능선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거대한 포함의 마름모꼴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중 라스캐논 포신과 복합 대장갑탄이 곳곳에 엿보였다. 플레이머가 대지를 휩쓸며 눈을 녹여 거품이 이는 오물로 만들었다. 휴대용 조명 스탠드가 강한 빛을 발하며 대지 위를 비췄다.


“충분히 왔군.”


칸다와이어가 지시를 내리자 호송대는 멈춰섰다.


흉측한 시커먼 환경 방호복을 두른 칸다와이어는 출입 해치를 따라 나오려고 발버둥쳤다. 방호복 덕분에 평소보다 더 움직임이 힘들었다. 수렁을 가로질러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칸다와이어는 순간 이 살인에 익숙한 자들 앞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 것인지 상상하게 되었다.


경호원들이 따라 붙었지만, 이 거대한 군대 앞에서는 그들조차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다가오자 한 무리의 기계화된 병력들이 경례를 바쳤다. 그리고 곧 호위하듯 따라붙어 언덕을 따라 공회전하는 포함들과 군기를 지나 능선의 가장 높은 곳으로 안내했다.


눈 내리는 어둠을 등지고 움직이지 않는 전사들이 보였다. 순간, 커스토디안을 떠올렸지만, 키, 그리고 갑주가 달랐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더 거칠고, 묵직하고, 금보다는 청동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대부분은 심하게 손상된 채였고, 각각의 장갑판은 대강 망치로 두들긴 강철로 대체되어 있었다. 여전히 진홍색 깃털 장식을 꽂은 채, 얼어붙은 호우에 흠뻑 젖은 두꺼운 진홍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한때 통합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 영상 속에서 그들이 들고 있던 낡은 병장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 몇 년 전 그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첫 장면을 보고 그들의 불합리성을 비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웃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나 마찬가지로 야만적이었고, 그들의 낡은 지휘 사슬에서 벗어난 이들은 지금 쓰라린 상처를 입은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서보 관절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살점이 썩어가는 악취가 풍겼다. 결과가 어떻게 되건 간에, 그들은 오랜 세월 존재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이미 전투 직전의 광기에 빠져 있었고,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대개 그저 뚱한 채였고, 혹은 다가올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위험이 안개처럼 이곳을 뒤덮고 있었다. 추운 밤 사이로 흐르는 공포. 그들은 공포를 일으키기 위해 설계되었고, 아직 그 능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그들의 주인이었다. 그의 상태는 한결 나아 보였다. 낡은 갑옷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좋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청동 같았지만, 너무 어두운 색채였기에 강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처럼 붉은 옻칠로 안감을 두르고, 전투의 영예를 상징하는 기념물들이 새겨져 있었다. 투구 위에는 묵직한 장식이 새겨져 있었고, 복스 그릴은 영원히 남을 일그러진 얼굴을 체화했다. 건틀릿 한 쪽에는 브로드소드를, 한 쪽엔느 총을 쥐었다. 흡사 물고기의 측면처럼 비늘로 뒤덮인 타바드가 널찍한 흉갑판 위에 둘러졌고, 뭉툭한 정강이받이에는 군단의 벼락이 새겨져 있었다.


발도르는 분명 이 존재보다 컸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목도한 이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잔인함으로 표상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선마저 아파오게 만드는, 일종의 증폭된 악랄함이 있었다.


“프라이마크 우쇼탄 전하.”


칸다와이어가 정중하게 말했다.


“드디어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썬더 워리어가 고개를 숙여 칸다와이어를 응시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쇼탄의 목소리는 끔찍했다. 흡사 찰과상을 입은 목소리랄까. 경직된 성대, 그리고 손상된 복스 유닛 때문에 목이 졸린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직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제정신이었다.


“이 꼴을 다 꿰뚫어볼 배짱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 내 믿음을 확인하게 되어 기쁘군 그래.”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칸다와이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서 만난 모두에게 똑같은 사과를 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길 바란 적이 없었으니까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한 가지 상기시켜드릴 것이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피가 흘러서는 안 됩니다. 무정부상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복구하려는 것이지, 파괴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쇼탄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투구는 얼어붙은 채였고, 재호흡기 배출구에서 숨결이 솟아났다. 발도르가 저 세상 끝, 몰란드 센에서의 우쇼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가 칸다와이어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마치, 살육에 미친 유령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


“우리는 결코 우리 맹약을 깨지 않았다.”


우쇼탄이 으르렁거렸다.


“왜 이제 와서 우리가 맹약을 깨리라 생각하나?”


겁먹지 않기 어려운 두려운 존재였지만, 칸다와이어는 이런 전사들과 맞서며 일생을 보냈다. 이 모든 전사들은 유전적으로 강화되었건 아니건 간에, 그저 상대의 연약함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칸다와이어는 당당히 서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이것은 곧 진보였다.


“믿겠습니다, 프라이마크시여.”


칸다외이어의 말이 이어졌다.


“약속을 지키십시오. 그렇게 하면 오늘 밤 이 도시는 그대의 것입니다.”





오파르는 처음부터 확신했었다. 증거가 희박하고 정황이 불투명한 순간조차 그는 가장 확신하고 있었고, 입증할 방안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확신을 강하게 드러내 보였다. 우오마를 설득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지만, 원래 우오마는 긴 시간 동안 확신을 다지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칸다와이어가 충동적이고, 자신만만한데다, 쉽게 발끈한다고 생각했다. 모두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토록 낮은 지위에서 테라의 고위직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칸다와이어는 매우 예민한 감각을 발전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의 경시는 그 예민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 때문에 때때로 멍든 자존심이 폭발하곤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는 수많은 세월 전 그 모든 것을 배우는 데 몰두했던 소녀와 다를 게 없었다. 종말이 다가왔음이 분명해짐에도 아버지 곁에 머물고 싶어했던 그 소녀 말이다. 행동하기 전, 모든 사실이 자신의 앞에 드러나기 바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하이 로드가 제국이 내세우는 민간 우위는 공허하고,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는 그저 군인들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껍데기에 불과함을 진정으로 믿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황제가 속고 있거나, 혹은 그저 냉소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믿게 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통합의 미사여구가 그저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수많은 금빛의 화려함이 그녀를 현혹시켰을 것이다. 오파르는 결코 속지 않았다. 그는 커스토디안이 왜 그렇게 차려 입고 다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만약 살인자들을 신의 갑옷 아래 감춘다면, 놈들이 검을 들어 올리는 그 순간까지도 숭배 받지 않겠는가. 오파르는 너무도 어두운 시대를 살아 왔다. 해안부터 산맥까지, 수많은 살인자들을 봐 왔다. 살인자를 본 순간,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무엇을 입건, 얼마나 정중한 예의를 갖췄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발도르의 병사들은 그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다른 기능은 없었다. 그들에게서 모든 감정은 배제되었고, 무시무시한 기계적인 침착성으로 대체되었다. 놈들은 악마였고, 악몽의 시대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아라랏 산에서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용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썬더 리전은 위대한 성전의 선두였고, 황제의 강대한 힘을 표상하는 존재였다. 수많은 아이들이 그 무거운 갑옷을 흉내낸 것을 걸친 채 유전자 마녀들이나 돌연변이들과 싸우는 놀이를 했다. 어른들은 십일조를 카타에기스에 아낌없이 기부했고, 감사와 감탄의 장광설을 적은 신용장을 보냈다. 황제의 군대가 언급될 때, 존경을 받는 것은 항상 썬더 워리어들이었다.


발도르처럼 메마른 영혼이라 해도, 그런 것을 견디기는 어려웠으리라. 아마 그것이 모든 것의 동기였을 것이다. 질투보다 더한 동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칸다와이어는 물론 레기오 쿠스토데스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오파르 역시 그 부분에서는 칸다와이어가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유전적 안정성에 관한 문제, 영향력과 명성을 놓고 벌어지는 각 썬더 리전의 광포한 전투는 그 통합된 목소리를 약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노골적인 권력욕이 그 동기였을 수도 있으리라.


굳이 고르자면, 오파르는 후자 쪽이 더 유력하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지구는 이제 정복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전사들로 가득한 행성, 이제 평화가 오면 전사들의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카타에기스와 쿠스토데스라는 두 레기오가 공존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발도르는 그 둘 중 자신의 동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정도로 무자비한 존재다.


각 군세간의 경쟁이 정치와 외교의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났다면, 공정한 투쟁이 되었을 것이다. 황제의 호의, 혹은 불호가 자리하는 것은 프로보스트 마샬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었고, 군령은 엄밀히 따지면 칸다와이어의 직권이 미치는 범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량 살육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오파르는 수많은 소문을 들었다. 하이 로드들의 성채 통로에서, 온 사방에 뻗친 정보원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모두 오파르에게 들어왔다. 제국 소속 군세의 부대 전체를 하나의 야만적인 작전으로 몰살시킨다? 고위 평의회와 어떤 민간의 권위도 개입한 바 없이? 이는 계몽된 국가의 행태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은 군벌이나 할 행동이었고, 제국을 사제왕의 연방, 아프릭의 기술 산적떼, 혹은 그 동류에 불과한 존재로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어쩌면 황제 본인이 승인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분명히 입장이 취해져야 했다. 발도르의 야심은 억제되어야 했다. 법 뒤에 숨겨진 진정한 힘이 그것을 눌러야만 했다. 하이 로드들이 알고 있는 한, 썬더 워리어들은 공식적으로 기록말살된 바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여전히 황제의 평화를 집행하는 선봉에 있는 전사들이었다. 이것이 이 모든 행동의 기초가 된 사실이었고, 칸다와이어가 움직이도록 설득한 단 한 가지의 근거였다. 그 후 그녀가 요구한 것은, 확실성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발도르가 직접 고백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오파르는 황궁의 커스토디안들을 추적했고, 수입된 무기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들은 오파르로서는 당황스럽게도, 무슨 일이 닥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일에 걸쳐 자신들의 전력을 다시 가다듬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쇼탄의 군대는 이제 황궁 앞에 서 있었고, 이제 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보아야 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판결의 도구가 도래한 순간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낸다. 비록 그들이 통상의 ‘사람’보다 덜하거나 더한 구석이 있지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그가 취했던 길을 다시 더듬었다. 도시의 중심부에서 준비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서쪽 기슭으로 움직였다. 올라가고 있는 병사들 때문에 도로가 한창 붐비고 있었다. 당황한 지휘관들이 방벽으로 서둘러 병력을 소집한 결과였다. 우쇼탄은 특별히 자신의 접근을 감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명령이 내려진 순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황궁은 지금 모든 전쟁이 본질적으로 끝났다고 여기는 안일한 이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오파르는 숫자를 꿰고 있었기에, 지금의 방어 전력이 저 군세를 오랫동안 막아낼 수 없으리라 여겼다. 커스토디안은 수적으로 열세였고, 그가 예상한 곳보다는 기이하리만큼 세나토룸 깊숙이에 자리 잡고서 자신들의 명성대로 영원한 파수를 서는 채였다. 


지금 그들의 목전에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이상, 그들 역시 튀어나올 것이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지하에 남아 무엇을 하겠는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관하고 있던 모든 것을 노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 그걸 숨겨두어 봐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오파르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의 광대한 정경을 끊김 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쪼그려 앉은 채, 얼어붙은 난간 위에 팔다리를 쭉 펴고서, 잘 조율해 둔 증강 식별기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날아드는 눈발의 회백색 흐릿함 뿐이었지만, 곧 거리 측정기가 굳건한 실체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색된 도식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폭풍에 대한 정보를 살피며, 커스토디안 개개인의 열상 이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제법 긴 시간 동안 판독했음에도, 수백여 개의 음성 이미지가 포착되었을 뿐이었다. 서로 연결된 건물들의 미로 속을 이동하는, 강화되지 않은 군대의 이미지 판독이 잡힌 것이었다.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커스토디안의 열상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미친 짓이었다. 마지막 생존한 썬더 리전의 프라이마크가 지금 황궁 앞에 있고, 제국의 수도를 수호하는 존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없다면, 싸움은 벌어질 수 없다. 그리고 태양이 떠오르기 전,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이 오파르를 감쌌다. 오파르는 아거 센서로 급히 온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도, 세나토룸 상부의 높은 난간을 따라 폭발과 함께 잔물결이 일었다.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커스토디안이 아니었다. 진청색 문양을 갖춘, 제국군 연대 소속 장병들이었다.


반쯤 그 문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거 센서의 데이터 판독 결과, 그들은 카스텔란 익젬플러 소속의 병력들이었다. 그들은 바깥쪽이 아닌,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진눈깨비에 덮인 벽을 가로질러 더 많은 폭발이 일어났고, 아다만티움 판이 깨지고 보도 위를 덮었던 타일이 날아갔다.


오파르는 덜덜 떨면서 망토를 두른 채 일어섰다. 어깨 너머로, 사자의 문에 이어진 거대한 아치길을 바라보았다. 탐조등이 빙글빙글 돌며 생생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솟구치는 연기의 벽으로 가로막힌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를 돌아보았다.


모든 게 잘못되었다, 오파르는 역겨움을 느끼며 깨달았다. 옛 고향의 신의 이름에 걸고, 모든 게 잘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