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2)
흐릿해져 가고, 망각 속으로 잊혀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녀는 12살의 마지막 겨울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
조선 팔도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한창 시끄럽던 시기. 어릴 적 그녀는 여느 또래들과 다를 바 없는 개구쟁이였다. 남다른 게 있다면, 더 천방지축으로 뛰놀고 계집년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겠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반쯤의 조롱이 섞인 한탄 속에서 언제나 또래들보다 앞장서서 마을의 모든 악동 짓을 하고 다녔던 점이었다는 것이다.
뒷산에 올라 옆 집 어르신의 수박을 서리하고, 염소 꼬랑지에 불붙이고 다닌 일은 예삿일이었다. 동네 마을 잔치가 열리던 날엔 암탉 자기가 잡겠다고 난리치다가 닭들이 달아나 잡으러 다녔던 고생도 있었고, 동네 개울가에 개구리를 잡아 동네 꼬맹이를 놀래키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진 바람에 하마터면 평생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눌이로 만들 뻔 한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동네 최고 어르신이었던 박 돌배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매질을 하거나 귀를 잡아당기며 굉장히 혼을 냈었다. 특히 어눌이로 만들 뻔 했던 날, 그녀는 꼬마 아버지에게 정말 눈물 콧물 쏙 빠지도록 두들겨 맞고 얼굴이 퉁퉁 불도록 맞았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아무데도 못 나가고 끙끙 몸살 앓아 큰 고생하기도 했었다.
때로 부끄럽게도 옷을 홀라당 벗겨 머리에 바가지만을 씌운 채로 동네를 돌아다니게 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애였다지만 그 때 그녀는 또래에 비해 꽤나 성숙했던 몸이었고 동네 남자 애들은 그 때 그녀를 안 보는 척하며 힐끔 훔쳐보는 일도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밤마다 꽤나 끙끙 앓아댔을 것이다.
지금에야 그 땐 그랬었지 하며 시근둥, 피식하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그 때 당시에 그녀는 굉장히 창피해하며 동네 남자 애들을 피해 다니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청개구리 심정이었는지 단순히 바보였는지는 몰라도 동네 쑤시고 다니고 온갖 말썽을 일으키던 짓을 그만 두지 않았다.
달리 생각해보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은연중에 받았던 무시와 천대가, 단지 무당의 딸이란 이유로 그녀에게 그대로 되돌아왔었기에 그런 반발심에서 일으켰던 일들이었지 싶었다. 그저 사고를 쳤단 이유로 어린 아이가 받기에 너무 가혹한 벌들을 받은 게 아닐까한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그나마 용하다는 무당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겐 그다지 자상한 어머니는 아니셨다. 요즘 시대로 말하자면, 그저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밖에 하지 않는 사실상의 방치를 한 채로, 어머니는 하루 이틀, 혹은 며칠이나 멀리 떠나 산 너머 굿해주고 오시거나 아님 며칠 동안 이어지는 굿 잔치로 인해 집에 빌 날이 많으셨다. 그래서 그녀가 마을에 당하던 학대를 어머니는 상세히 알고 계시지는 않으셨다. 워낙 그녀가 똥고집이기도 해서 그런 말들을 딱히 언급하지도 않기도 하였고.
그런 그녀를 보듬어줄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아버지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어머니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 채 침묵을 지키셨고, 동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나무꾼 최 씨에게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만주로 떠났다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그 때는 다 끌려가던 시기라며 나는 그나마 다리가 절뚝거려 용케 끌려가진 않았다고 씨익 바보스럽게 웃던 최 씨였다. 왜구 놈들의 강제 징용으로 인해 끌려가던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애써 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하셨을 것이라며 자기 위안을 한 번씩 해본다. 뭐 아무렴 어떠랴. 그 진실을 이야기 해줄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당당한 만주 독립군 용사로 남으련다.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의 부재를 딱히 크게 느끼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가끔 가다 보는 어머니였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굿해주고 얻어오는 떡과 소량의 돼지 고기 등을 봇짐에 싸 머리에 얹고 돌아오실 때엔 세상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었었다. 어린 자식이 밥이나 제대로 먹었으랴, 어디 해코지를 당하진 않았으랴 걱정도 할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바구니에서 꺼낸 떡을 맛나게 쩝쩝대고 있노라면 그저 우물물을 퍼와 조용히 밥그릇에 물을 담아 주었을 뿐 별다른 말도 안부도 꺼내지도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오신 날 밤, 두터운 이불을 펴고 들어가 오랜만에 둘이 함께 잠 잘 수 있는 날이면 평소 별다른 일이 없으시면 하얀 소복에 단아하게 머리를 틀어 아무런 장식도 없는 비녀를 꽂으신 어머니가 신님들을 모신 제단 앞에 촛불을 킨 채로, 조용히 바느질을 하시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불 쏙 두터운 이불이 등을 덮는 불편함에 발을 펑펑 차보면서도,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고왔던 분이셨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녀가 잠 들었다고 판단될 때면 슬그머니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보름달 빛을 받으며 가무를 추시던 모습을 몰래 일어나 훔쳐보기도 했었고 평소 조용히 나긋나긋하게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만약 무당이 되지 않으셨다면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딴따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당.
무당이라.
아마 시간을 되돌려 그 때 당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머니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날들은 오지 않겠지.
그녀가 이제 막 12살이 되던 해. 그 해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던 해였다.
어느 날 7월 초 즈음해서 북한군이 트럭을 몰고 마을로 나타났다. 그들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남쪽 괴뢰군들이 전쟁을 일으켜 우리 조선 인민공화국을 침범했으니 총칼 들 수 있는 동무들은 날래 나와 괴뢰군들을 무찌르자며 동네방네 북치고 다니면서 장정들을 모아 그대로 떠났다. 한창 동네에서 애들과 함께 놀던 그녀는 인민군들이 마을 장정들을 줄지어 끌고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들은 인민군이 주장하던 자발적인 자원이 아니라 마치 소도축장에 끌려가는 가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몇 달 후, 끌려갔던 장정 중 한 두명만 돌아올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어디갔냐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던 것이다. 전쟁이란 남은 이들의 입을 무겁게 채워주는 족쇄와도 같았으니까. 그저 그들의 지친 몸과 슬픈 눈동자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기에.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남쪽에서 남한 병사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그 때 그 날 일어났었던 끔찍한 학살들은 그녀로선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다. 남한 병사들은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마을 사람들을 하나 하나 추궁하며 빨갱이 병력이 숨어들었다는 첩보를 받고서 왔으니 그들을 내놓으라 소리를 질러댔다. 어차피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많아도 50명 채 되지 않을 인구에 숨길 사람 어디 숨기겠냐는 항변이 뒤따랐지만 남한 병사들의 귀에 그런 말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쏜 사격음이 신호탄이 된 듯 마을 사람들은 비명과 혈흔을 흘리며 그렇게 학살 당했다. 박돌배 어르신, 나무꾼 최씨. 바보 될 뻔한 꼬맹이. 어린 아이 여자 할 것 없이, 그렇게 모두들 총탄에 학살당해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제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들일지라도 증오에 집어삼켜질 때엔 그 것이 옳고 그름을 따질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기에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치 않았지만, 머리로선 그들을 이해하였다.
그녀가 그 마을에서 어머니와 더불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우 간단하였다. 무당을 죽이는 건 재수 옴 붙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귀신과 관련된 이들을 죽인다는 것을 전혀 반겨하지 않았다. 죽인 무당에게 내려진 신이 살인자에게 붙는다던지, 아니면 무당이 다스리던 귀신들이 무당이란 족쇄에서 풀려나 살인자들에게 들러붙는다던지 이유는 어찌되었던 다양하였다.
죽은 마을 사람들 시신이, 마을 한 가운데에 모여 화장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그녀와 어머니 단 둘만 남긴 채 마을을 떠났다. 증오의 시대에 그런 슬픔이 마을에 내려졌다는 사실만으로 어린 그녀에겐 매우 충격적이었건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온갖 헛것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온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12살짜리 아이가 흘리는 땀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불이 땀에 흠뻑 젖어 몇 번이나 갈아줘야 했을 정도였으며 그녀의 눈에 천장을 기어다니는 온갖 이상한 검은 형체들과 희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체를 취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 길게 늘어서며 얼굴로 추정되는 곳엔 눈이 있어햘 위치에 공허한 어둠으로 가득한 두 눈만이 존재했고 입은 길게 찢어져 두 귀에 닿을 듯했다. 그 공포스러운 모습에 그녀는 매번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어머니를 찾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은 무덤덤해지고 힘이 풀려 그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몸 위를 기어다님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때론 매우 선명하게 보여 그녀가 아예 움직일 수 없는 가위 현상이 일어났었고, 가끔씩 이지만 그래도 옆에 놓인 물을 혼자서 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이불에 누워 숨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당이셨건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 즉, 수건에 물을 적셔 고열로 고생하는 그녀의 이마에 얹여놓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자, 그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무당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이 후 그녀에게 신내림 굿을 해주었다. 거짓말 같이, 그녀를 괴롭히던 고열과 환영이 사라졌고 며칠이 지나자 몸이 멀쩡해져 집 근처를 배회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온전히 나은 건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고열이 지속되어 신체 일부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몸이 어느 정도 다 나아가던 때, 그녀는 그녀에게 내림굿을 해주었던 무당을 따라, 함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따라가기 싫다는 둥 어머니와 함께 떠나자는 둥 울고 불고 난리를 쳤었건만, 그녀의 어머니는 단호한 얼굴로 그녀에게 이 곳을 떠나야함을 알려주었다. 이 곳에 남았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경고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에서 첫 눈이 내려오던 날.
그녀는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그녀의 어머니와 그렇게, 헤어졌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음을 직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향해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제단 위에 모셔둔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 그녀는 몇 번이나 돌아봤건만 한 번도 돌아보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야속하기만 하였다. 허나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그건 눈물을 감추려 애써 돌아보시지 않으셨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며칠이나 걸려 도착한 함흥에서, 수도 없이 많은 피난민들에 섞여 들어가, 1.4 후퇴 당시 많은 이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에게 내림 굿을 해준 무당을 신어머니라 불리게 되고, 애동제자로 들어가 무당 일을 배우게 되었다.
무당의 딸로 태어난 이상, 무당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법이라 배웠건만.
무당 일을 배우면서도, 자신의 또래가 학교를 가는 모습을 내심 부러워하고, 한창 사춘기 때 굿당에서 가출하여 며칠이나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기구한 팔자가 서러웠다. 결국은 먼 길을 가든 가까운 길을 가든 어디로 가든 결국 그녀는 다시 무당으로 되돌아왔다.
나이가 들어가고, 신어머니가 굿을 못할 나이가 되어 그녀가 굿당을 물러받게 되자 결국 이게 내 팔자구나 싶었다.
“...바람이 차구먼”
산기슭, 부산의 대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낡고 작은 기와집 형태의 굿당.
검은 하늘에 달린 보름달의 빛이 작은 마당을 차갑게 쬔다. 그에 맞춰 느룹나무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종이들과 작은 깃대들이 바람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며 살랑 살랑 부드럽게 흔들렸다.
벌써 12월인가. 시간 참 빨리도 흐르는군. 매번 12월만 되면 옛날 그 때가 생각난단 말이지.
12살의 소녀는 이제 80을 바라보는 새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되어 그저 밤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대도시의 불빛들이 그녀에게 나를 봐달라는 듯 흐믈 쯔믈 빛나고 있었지만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새하얀 소복.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채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양반다리 하여 앉았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하고, 양 손과 얼굴엔 검은 버섯이 피어올라있었건만 두 눈만은 사람의 심장을 꿰뚫어볼 듯 예리하였다.
60년 넘게 무당 일을 해옴에 나름의 신력이 생겼는지 부산 내에서 가장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병원에서 진맥 불가능하다고 여긴 원인불명의 병도 낫게 해주고, 재수 옴 붙은 불운한 사람에게 붙은 잡귀를 쫒아내 그가 복권에 당첨되게 해준 일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사기꾼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그녀가 진정 신력이 대단한 무당이라 추켜 받았다. 일에서 은퇴하여 제자들에게 굿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닌 그녀를 찾았다. 좋은 일로 찾아오든 나쁜 일로 찾아오든 말이다.
그녀에게 세속적인 문제들은 이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이제 내일 모레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그녀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노릇이었다. 용하다는 덕분에 재산은 억 단위로 세야할 정도가 되었건만 그녀가 낡은 굿당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돈이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손에 쥐다가 펴다가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돈이었고 명예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건 진즉에 제자들에게 나눠줘 보내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그녀 혼자 먹고 살 벌이 정도만 되면, 그 정도가 족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여흥거리와 즐거움이라면 그저 밤하늘의 달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보름달의 누르스름한 차가운 빛이 빛나는 밤.
찬 바람이 이제 누룹나무를 지나, 굿당으로 넘어 그녀에게 다가와 살랑인다.
“...손님이 오는구만”
이 굿당에 찾아올 손님은 없었다. 제자들은 모두 산 아래로 해산하여 부산 도심 속에서 굿당을 차렸으며 산기슭 이 작은 굿당엔 오로지 그녀 혼자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야심한 밤에 찾아올 손님이란 아무도 없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강도나 불량배. 혹은 야행길에 길잃은 등산객 한 둘 정도가 기껏해야 전부였다. 허나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오고 있는 사람은 그런 한심한 부류가 아님을 말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종이 바람의 흐름에 맑고 고운 소리를 내었다. 장독대 옆에 만들어둔 산에서 내려오는 물받이 통에서 물이 흘러 톡톡 떨어지고 있었고 이 야심한 밤에 자유 자재로 고개를 이리 저리 내돌리는 올빼미의 울음 소리와 이에 화들짝 놀라 다람쥐가 도망간다.
심신을 달래주는 이 자연적인 소음 속. 흔히 고요함이라 표현되는 이 공간적 배경에 약간의 불협화음이 들어와 분위기를 깬다. 저벅 저벅 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 꽤나 큰 키를 지닌 사내가 그에 걸맞는 발소리를 내며 차분하게 굿당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자 노안임에도 그녀는 그 사내의 차림새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일단 한 눈에 보아도 그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일반인 기준에 놓고 보아도 상당한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었고 구리빛 피부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검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으며, 짙은 눈썹. 우뚝한 코와 굳게 다문 입을 보건데 아마 젊은 여성들이 본다면 몇 번이나 되돌아볼 정도로 잘생긴 남성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금빛 눈동자였다. 흔하지 않은 건 둘째 치더라도, 그녀가 보기에도 그 금안은 말로 형연하기 어려운 깊은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청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잘 갈무리되고 닦은 검갈색 구두가 이 산 속에 어떻게 먼지 하나 묻지 않고 그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그 손님이 결코 평범한 방문객이 아님을 깨달았다.
“...산 속에 길을 잃은 행인이오.”
사내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놀랄만도 하건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내를 그윽 바라본다. 그에 사내는 살짝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간다.
“유명한 사찰이 있다고 들어 그 곳에 방문했던 찰나였소. 그러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내려가던 도중 날이 어두워져 어디 신세좀 질까 돌아보던 중에 이 곳을 발견하게 되었소이다.”
“...이 곳은 굿당이외다.”
그녀는 갈무리된 목소리로 답한다.
“신을 모시는 곳이고, 신내림을 받은 무당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오. 안됐지만, 이 곳에서 하룻밤 재워 줄 수 없소이다.”
그 말에 사내는 애석하다는 듯 두 손을 가벼이 들어올린다.
“재워 줄 수 없다면 사람을 받아 줄 수 없는 것이오?”
“사람을 들릴 경우는 단 하나, 굿과 관련된 사항에서만 받아들이외다.”
“그렇다면 딱 되었군. 사찰에 방문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굿과 관련된 일이었던 참이었지. 그게 잘 안 풀려서 시간이 지체된 것이었지만 말이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녀로선 사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사내를 들이는 것을 거부해야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어차피 늙은 여자를 상대로 그가 뭘 어떻게 해볼 이유가 없었고, 게다가 그런 사내론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로 이 곳에 들어오는 셈이라면, 여기 모셔진 신들께서 천벌을 내리실 것이외다.”
그래도 경고는 해두는 게 좋겠지. 그녀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구부정한 허리 뒤로 뒷짐 진 채, 부드러운 경고를 해주었다. 사내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신발을 벗은 채 마루 위에 올라섰다. 낡은 목재가 맞물리는 삐걱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그 사내의 덩치에 비해선 제법 작은 소리였다.
“...이왕 이렇게 들이게 되었으니 통성명이나 하도록 하지요. 나는 최 옥이라 하오. 외자 이름이지. 60년 넘게 무당 일을 해온 무당이외다.”
“만나서 반갑소, 최 옥. 이 시대에 당신과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겠소.”
그 말에 최 옥은 콧방귀를 뀐다. 안 쪽 작은 방으로 안내하며, 그녀는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사내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한국말을 잘 배우긴 했으나, 그런 쓸데없는 허레 허식들을 붙일 필요까진 없소. 그저 늙은이를 감동시킬 생각이었다면 헛 짓이었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겠구려. 난 그런 것들에 그다지 감동받는 늙은이가 아니라우.”
“아니, 난 진심이오. 왜냐하면 이 시대에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오.”
사뭇 진지한 말투에 최 옥은 살짝 고개를 뒤로 돌아본다.
“...수행하는 사람이우? 그런 것치곤 옷이..‘세속적’이오.”
그 말에 너털 웃음을 짓는다.
“수행. 그래 어떻게 보면 수행이라 볼 수 있겠군. 아니 경험?. 경험에 가까운 일이지. 어린 소년과 사뭇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펼친 뒤로 그 생각에 잠겨 다른 일들을 하지 않았으니.”
“...소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대와 내가 나눌 이야기 주제에 필수적인 정보가 아니기에 몰라도 된다오.”
“아까 전엔 굿과 관련된 이야기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소년과 나눈 이야기가 그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우?”
“관련이 있고 말고. 이는 앞으로 미래가 결정될 일이기도 하니 말이오.”
우뚝하고 발을 멈춘다. 최 옥은 순간 이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나 위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사내의 정체는 무엇이지.
“...아까 통명성한다고 하지 않았수? 난 자네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네 그려.”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지.”
사내는 그녀의 귀에 살짝 갈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한다.
“굳이 나의 이름을 알고자 한다면, ‘계몽’이라 부르시오.”
왠지 최 옥은 긴 밤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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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관련 다큐멘터리 보다가 삘받아서 써보는 글.
단편 문학 챌린지 주제 - [승천, 광신, 팬티]는 반 정도 적은 뒤라 마저 적고 中편 써보겠습니다..
황가놈 이 또!
잘보고가유
문학추 뭔가 마지막 교회가 생각나는 느낌이네
사실 황제와 무당이 만나서 만담하는 건 마지막 교회에서 따온 것 맞아요. 그런데 내용과 결과를 마지막 교회랑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초중반만 보고 햄갤 관련 없는 줄 알고 신고할 뻔
황제...ㄷㄷ - dc App
굿 담편 ㄱㄱ
이거 후속작 안나오시오?
구상은 했는데 아직 타이핑 한 글자도 안 적었네요. 안 그래도 조만간 올라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