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랑단 정벌이 끝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군단을 지원하고, 마지막 프라이마크 코르부스 코락스가 나타나고, 제국의 모든 기록에서 두 명의 프라이마크가 사라지고, 하이로드가 해야 하는 일은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고, 특이사항으로는 코락스와 커즈는 ‘처음부터 쌍둥이로 계획된 프라이마크’ 라는 거지. 하필이면 알파리우스 만난 뒤라서 표정 관리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도대체 왜 코락스에게 기밀사항인 웹웨이를 말해줬냐는 거다.황제와의—무려 하루 동안!—대화를 마치고 겨우 만난 프라이마크에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속으로 “ 씨발 ” 욕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 지금 말로 욕 하셨습니다. ) 반대편 벽에 서 있던 누이가 수화로 지적했다.


“ ( 죄송합니다. ) “


내 호위를 맡은 커스토디안 가드 들은 먼저 질문하거나 비상 상황이 아닌 이상 절대로 내게 이야기를 걸지 않지만, 시스터즈 오브 사일런스는 예외적으로 스스럼 없이 대해주곤 해서 시간이 빌 때는 심심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실수가 있을 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다만 그 실수가, 프라이마크 전부가 모일 회의석에서 한 게 문제였다. 아직 아무도 없고, 황제 폐하의 두 발톱과 하이로드 케이 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날 싫어하는 새끼들이 쌍수를 들며 나를 비판하고. 비난하며. 모욕할 실수임에는 분명 했다. 확실히 긴장을 하긴 한 모양이네.


코락스와의 회의에서 인수인계와 딜리버런스 처우에 대해 욕설이 난무하는 전투에서 승리하고, 어쩌다 보니 여유가 생겨서 테라로 향하려 했더니 폐하의 칙서가 날아왔더라. 투덜대면서 읽어 보니 ‘ 모두가 모인 기념으로, 프라이마크 전체가 참석하는 회의를 개최하길 원한다. 그대도 참석 하라. ‘ 로 요약가능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너무 늦은 거 아니냐는 생각은 둘째 쳐도, 별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찰 끝나고 준 케이크로는 부족할 정도로 과하게 뒤집어 엎긴 했다. 뒷배는 황제 폐하 였고 테라에서 말카도르 영감님이 그러라고 시켜서 그대로 따랐을 뿐이지. 이번 회의에서도 그동안과 같이 적당히 욕 먹고 적당히 반박하면 될 것이다. 근데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 그나마 속 좀 풀어서 나아진 게 망정이지. “


누이들에게 수차례 지적 받고도 고쳐지지 않은 혼잣말을 일삼으면서, 그때 알파리우스와 오메곤에게 ‘장난’을 당하고 한 분풀이는 꽤나 극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은 사라졌고, 그동안 저도 모르게 쌓인 울분도 어느정도는 덜어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딴 놈에게 쌓인 걸 자신들에게 푼다는 걸 알고도 받아준 거겠지. 물론 그렇다고 사과는 할 생각 없다. 케이크 범벅인 그 꼴이 조온나 웃겼거든! 싸가지 없는 다른 놈들에게도 할 기회가 생기기를!


“ …생귀니우스는 빼고. 전하 께서는 참으로 인격자이시니. “


실 없는 혼잣말과 온갖 망상들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지쳐갈 때 즈음, 첫 번째로 나타난 프라이마크는—


“ 오, 마침 있었구만! 밖으로 나와라! 회의든 나발이든 나중에 하고, 일단 붙자!


스페이스 울프의 리만 러스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쿵쿵 걸어왔고,


“ 이 씨발, 좆 됐네. “


직책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언사를 질책할 누이들은 프라이마크의 귀환에 맞춰 어느새 자리를 비운 지 오래 였다.





마그누스 더 레드는 점점 가까워지는 강렬한 불쾌감에 표정을 굳혔다. 퍼라이어의 능력이 자신을 갉아먹는 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특이하고 강렬한 힘은 단 한 명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케이, 하이로드의 그 능력은 사람에게 공포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특유의 성질이 있었기에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다른 형제들의 평가도 그러했고. 그런 케이가 보통의 퍼라이어와 다른 것은, 그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


그렇기에 커진 호기심으로 불쾌감을 억누르며 연 회의장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혀를 빼물고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리만 러스의 머리에 왼 발을 얹은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의 케이였다. 지금 이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 가 하는 의문을 가진 마그누스는, 이내 자신이 온 것을 본 하이로드가 ‘힘’을 갈무리하는 걸 보며 불편한 속이 진정되어 가는 걸 느꼈다.


“ 한 판 붙자고 칭얼 거리는 똥개 새끼 교육 좀 시켰습니다. “


“ …그렇군. ” 그의 말 대로, 저렇게 쓰러져 있는 놈은 확실히 당장은 늑대로는 안 보였다.


멀뚱히 서 있는 케이와 기절한 채인 러스를 바라보던 마그누스는 잠시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며 참아냈다. 그 대신에 혀를 빼물고 기절해 있는 ‘똥개’의 모습을 머리에 각인시키려 애쓴 다음, 지정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을 뿐. 그를 잠시 바라보던 케이는 누워있는 러스의 머리를 걷어차 깨웠다.


“ …크헉! 으아! 아직 살아 있군! “


“ 지랄하지 마시고, 패배자는 폐하께서 오실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닥치고 계십쇼. “


“ 젠장, 한 번 정도는 붙어도 되잖아! “


“ 저는 그 손가락 하나로 제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초인과 싸울 생각을 하는 머저리가 아닙니다. “


“ 그 머저리를 손도 못 댄 나는 뭐냐 되냐 그럼? ”

 

그 머저리를 손도 못 댄 저 놈은 뭐가 될까, 눈을 감은 채로 혼자 생각하던 마그누스는 저 딴 야만인과 똑 같은 생각을 한 자신을 저주하면서 모든 인내심을 끌어 모아 어금니를 확 깨물고 물 마시는 척을 해야 했다. 스스로의 행동이 명백히 어색하다는 걸 알고 있고 다른 이들도 알아챌 것이나, 다행스럽게도 문을 열고 다른 형제들이 들어왔다.


“ 자리는 놔두고 서서 뭐하고 있나? “


“ 아마도 또 케이에게 퍼라이어 능력으로 쓰러졌다 깨워진 모양이지. “


페러스 매너스와 펄그림이 먼저 들어서서 상황을 확인하고, 뒤를 이어 다른 형제들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묵묵히 걸어가는 페투라보의 모습이 있었다. 그 또한, 앉자마자 눈을 찌푸리며 케이를 바라봤지만.


티격태격 거리는 케이와 러스를 구경하면서, 다른 프라이마크들 또한 들어서며 한 두마디를 남기면서 자리에 착석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코락스가 발견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의 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다들 즐기는 모양새였다. 얼마전 케이에게 영혼까지 털리다시피 시달린 코락스 조차도, 도착해서 본 어린애들 말싸움 같은 그 모습을 보곤 피식 웃을 정도로 유치했기에. 로갈 돈과 라이온만이 그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을 따름이다.


“ 또 쓸데 없는 싸움을… “


“ 두 사람 다, 폐하께서 오시는 자리니 자중해라. “


둘의 만류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러스가 물러나고 분위기는 가라앉는 듯 했다.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물잔을 든 케이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얼른 황제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잘 지냈나. “


“ 서류에 치여 지냈지요. 군단 관리는 잘 되어 가시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


“ 그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


상석에 가까운 케이의 옆 자리를 배정받은 건 콘라드 커즈 였다.


입장상 그가 프라이마크 에게 꺼려지는 입장이기에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고, 들이대는 러스를 막아 내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니까. 정작 커즈에 대한 조롱이 심해지는 역효과가 있었으나, 더 이상 밤의 유령이 아니게 된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하이로드만이 그에게 미안해 할 뿐.


“ 해드린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


케이는 항상 자신이 한 거라고는 커즈의 명령으로 소집된 나이트 로드 전체에게 내 ‘힘’을 해방해 본 것 밖에 없다고 여겼다. 물론 미리 사이커를 확인하고 따로 빼놓고. 문제는 그게 심하게 영향이 있는지, 난폭함은 줄어 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고, ‘ 약탈만 일삼던 예전 보다는 낫다. 크게 문제 있는 자들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 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케이는 자괴감 때문에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예전 군단 분위기 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하지만… 이후에 들어온 이들은 엇나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늘 염두해 둬야했다.


“ 그대의 힘을 겪은 이들이 있고, 나도 있으니까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 “


“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


두 사람의 말이 끝나고 난 후, 호루스를 대동한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