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아래에서 조종석이 부르르 진동하였다. 조종석의 서스펜서 장치는 손상과 정비 불량, 그리고 시간의 게슈탈트 속에서 마모되어 있었다. 자야의 배갑(背甲)이 조종석의 등받이에 난 홈을 따라 맞물려 들어가고, 조종석과 갑옷이 연결되면서 조종석에 붉은 빛이 들어오고 세 개의 모니터가 켜졌다. 묵직한 군화가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등자에 연결되었다. 장갑을 낀 손은 조종석의 팔걸이에서 솟아난 조종 레버를 붙잡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을 따라 정비탑의 사다리를 올라왔던 토롤렉은 이제, 자야의 머리 위에 달린 기밀문 앞에서 그 수척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토롤렉은 여러 개의 바이오닉 의수를 뻗어, 버클을 잠그고 삽입형 인터페이스 케이블들을 자야의 투구에 꽂았다. 하지만 성구 관리인은 조용히 축복의 말을 웅얼거리는 것 외에는 그리 오랫동안 미적거리고 있지 않았다. 토롤렉은 자야에게 행운을 빌어주고는 기밀문을 닫았고, 철컹 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은 잠겼다.


자야는 투구의 시야 피드 화면을 통해 격납고 내부를 바라보며, 기사를 고정시키고 있는 정비탑 다리가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렸다. 문장도, 군기도 달려 있지 않은 세 기의 에런트들-Errants*가 정비와 재축성, 그리고 그 이전에 재무장을 위해 각기 자신의 승강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면을 쿵쿵 울리며 걸어가던 세 기사들 중 한 기는 자야의 곁을 지나가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어깨를 구부리고 면갑을 그르렁거리며 숙여 보이며 간단한 인사 비슷한 동작을 해 보였다. 그녀가 타고 있는 기사는 여전히 정비탑에 고정되어 있었던 탓에 자야는 그 기사에게 마주 인사를 보내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자야는 복스-플레이트로 손을 뻗어, 그녀에게 인사한 기사의 조종사에게 펄스 신호로 답신을 보내주었다.


(*역주: 나이트 에런트. 아마 가장 유명한 패턴의 나이트 기체들 중 하나일 듯. 보통 장착되는 무장은 써멀 캐논과 리퍼 체인소드, 혹은 썬더스트라이크 건틀렛.)


자야는 자신에게 인사한 자제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기사의 기체에 그려진 문장과 내걸린 깃발을 통해 그것을 타고 있는 모든 자제들이 누군지를 알 수 있었던 옛 나날들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니까. 심지어는 기체에 예술작품처럼 그려져 있던 킬 마크들조차도 사라져 있었다.


수치심의 불꽃이 새로이 타올랐다. 비리디온 가문과 하이락이, 그녀의 치세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척 얄궂게도, 그녀의 이 수치는 가문의 기록들 속에 기록되지도 못할 것이었다. 가문의 모든 기록보관소들은 이미, 수천 세대 동안 비리디온 가문의 고향이었던 행성과 함께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까. 내가 점점 감상적이 되어가고 있군. 자야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처형될 날만 기다리고 있었건만.

토롤렉이 옳았다. 감사할 줄 모름이란 과연 불경한 악덕이었다.


조종실을 메우고 있던 으스스한 붉은 빛이 한 번, 두 번 깜빡이더니, 주위의 빛이 돌연 숨막힐 듯한 진홍색에서 옅은 노랑색으로 바뀌었다.


“정비탑 이탈.” 복스 너머로 토롤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야는 조종 레버를 붙잡고는 천천히 앞으로 밀었다. 기사의 움직임에 동조하여 조종실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자야의 조종석에 달린 균형 유지 장치는 몇 초 뒤에야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지만, 기사가 성큼성큼 걸음을 뗄 때마다 휘청이며 심하게 기울어지는 조종성은, 평생을 안장 위에서 보내왔던 자야에게 있어서는 조금씩이지만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저번과는 달랐다. 그녀가 타고 있는 이 병기는, 그녀가 이전까지 탑승하였던 남작 전용 랜서-Lancer*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거닐고 있었다. 이 기사의 피스톤-힘줄이 압축되고 이완될 때마다 쉭쉭 뿜어져 나오는 공기 소리도, 그 걸음 속도조차도 옛 기사와는 달랐다. 기사가 걸음을 뗄 때마다 기사는 전혀 다른 소리의 합창을 이루며 덜컹거리고, 철컹거리고, 찰칵거렸다. 조종석도 자야의 몸무게와 움직임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기사를 빠르게 움직일 때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자세 및 박자 보정이 필요했다. 시야 모니터들도 다른 위치에 설치되어 있었고, 화면에 떠오르는 데이터 피드와 조준선, 그리고 아우라-점궤는 이따금씩 일시적인 지연을 일으켰다. 특정 방식으로 운용하려 들면 조정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조종실의 냄새마저도 옛 기사와는 달랐다. 하이락의 일루바(iluva) 향초에서 나는 성스러운 내음이 아닌, 오랜 부식으로 인한 악취 속에 감추어진, 불탄 피와 금속의 냄새가 여전히 조종실 안에 눌러 붙어 맴돌고 있었다. 토롤렉이 여러 번 축성을 했지만 이 냄새만큼은 제거할 수가 없었다. 비리디온 가문이 얻어낸 새 기사들은 전부 난파선들과 테라의 충성파 가문들이 사용하지 않는 전리품들로부터 긁어 모은 것들이었고, 그 모든 기체들에서는 악취가 났다. 그런 운명을 맞이한 기체들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역주: 아마도 세라스투스 나이트 랜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보통 장착되는 무장은 세라스투스 쇼크 랜스와 이온 건틀렛 실드.)

그렇다고는 하나, 진짜 문제는 이러한 변화들에 자야가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변화들을 일일히 다 세어 분류하느라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버린 것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고결한 기사 혈통을 타고 나지 않은 이들이라면 쉬이 이해할 수 없을 만한, 훨씬 직설적인 무언가였다. 일생 동안 자신 전용의 기체를 조종해왔건만, 지금 자야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곧 그 문제였다. 그녀는 지금 다른 누군가의 피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었다.


자야는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기사를 움직여 격납고 내부를 걸어 다녔다. 품위라고는 없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몸 역시 흔들리며 조종석의 벨트에 몸이 부대껴 대었다. 무기 체계 화면들 위에 떠오른 룬 표식들이 자야의 잔탄량을 정확한 수량이 아니라, 예상 탑재량을 표시한 무게 수치로 표시해주었다. 자야는 피부가 곤두서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 번 치명적인 병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피가 혈관 속을 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지금 타고 있는 이 병기를 처음 보았을 때 이래로 처음으로, 자야는 자신과 이 기체가 연결되며 몸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적들을 살육할 수 있었다. 다시 적들을 파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힘이요, 권능이리니.


네 이름은 무엇이었지? 자야는 조종실 내부를 둘러보며 머릿속으로 질문하였다. 네가 부서지고, 수치 속에서 죽어가도록 남겨지기 이전에, 너는 대체 무엇이었느냐?


자야는 기사를 빙글 돌려, 격납고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망가진 전차와 부대 수송차량들이 기동 훈련을 위한 장애물로서, 그리고 기사의 팔에 달린 근접무장으로 공격하기 위한 목표물로서 잔뜩 쌓여 있었다. 그들이 섬기는 남작의 접근을 눈치 챈 두 명의 기사 자제들이 자신들이 탑승한 기체를 돌려, 자야의 진로에서 벗어나며 그녀에게 기사를 움직일 공간을 주었다.

장갑판으로 둘러싸인 구획 칸 안에서 거대한 엔진 블록이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음이 느껴지자, 그 순간 자야는 욕설을 내뱉었다.


자야는 시선을 힐끗 돌려 왼팔의 포대와 연결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지직거리는 화면 위에 나타난 목표 조준점은 목표에 고정되지를 않고 있었다. 목표 정렬 벨은 계속해서 낭랑한 신호를 울리고 있어야 했건만, 그 대신 벨소리는 더듬거리며 딸꾹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래, 이놈의 기체는 원래 이 모양이지. 이놈의─


아니. 더 이상은 변명하지 않겠다. 자야는 더 이상 기체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야는 조종석 위에서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불편하게 흔들리는 걸음의 흐름을 타며 기사의 왼팔을 들어 올렸다. 탄도 계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조준도, 그리고 망설임도. 자야는 기사의 팔을 들어 올리고, 포문을 열었다.


균형 유지 장치는 나중에야 작동을 하였고, 자야의 몸은 2초 동안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심하게 진동하였다. 하지만 그 진동 속에서도 자야는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예광탄이 연달아 울부짖으며 날아가 수송기의 잔해를 풍비박산 내버리자, 자야는 음침하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날아간 예광탄은 그을린 기체를 뚫고 들어가며, 노란색으로 녹아 내린 구멍들을 내었다. 자야의 심장이 여섯 번 박동하였을 무렵, 수송기는 이미 거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한때 부서진 수송기가 있었던 곳에는 이제 망가진 금속 잔해들만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자야는 앞으로 성큼성큼 전진하였고, 갈퀴 발톱이 달린 기계 발은 격납고 바닥 위에 흩어진 수천 개의 탄피들을 밟아 부수어버렸다. 오른팔에 달린 칼날이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작동하고, 검신에는 에너지를 튀기는 역장이 씌워졌다. 두 번째로 울린 천둥 소리가 넓은 격납고를 뒤흔들고, 자야는 검을 휘둘러 부서진 수송기의 잔해를 옆으로 날려버렸다.


잠시 후면, 자야는 복스 너머에서 환호성을 들은 것을 기억할 것이었다. 잠시 후면, 자야는 토롤렉이 기뻐하며 축복의 말을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었다. 잠시 후면, 자야는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푹 쉴 수 있을 것이었다.


나이트-캐스티게이터-Knight-Castigator*는 팔을 뒤로 휘두르면서 균형을 잃고 거의 쓰러질 뻔하였다. 자야는 반대쪽 발을 쿵 하고 내리찍어 넘어지려 하는 기사를 붙들어 세우고는, 즉시 등을 쭉 곧추세워 기체를 꼿꼿이 세웠다. 또 한 번 골이 울릴 정도로 강렬한 일제 사격이 쏟아지며, 제 1 화기의 쌍열 포신에서 예광탄이 물밀 듯 쏟아져 나갔다. 쏘아진 예광탄들은 부서진 세 대의 라이노들의 차체를 때리며, 그 위로 촘촘한 자국들을 만들어내었다.



(*역주: 나이트의 한 종류. 사격 무장으로는 캐스티게이터 볼트 캐논을, 근접 무장으로는 템페스트 워블레이드를 주로 장착한다.)

다시 한 번 검이 떨어져 내리고, 마치 전사가 쓰러진 적을 끝장내 듯, 기사는 검을 내리찍어 목표를 꿰뚫었다. 자야는 한쪽 발을 들어 부서진 민간 수송차량 위에 쿵 하고 짓밟은 뒤, 검을 비틀어 뽑으며 기사를 그 자세로 유지시키고 세워 두었다. 이번에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부서진 금속 조각들이 역장의 열기에 녹아 내리며 칼날의 옆면 위에서 지글거렸다.


거대한 기사는 격납고의 시종들과 서비터 노예들, 그리고 그들을 감독하는 성구 관리인들 앞에서 검을 높이 들어올려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들어올린 검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작동 중에 있는 다른 기사들이 자야의 동작을 엉성하게 따라하며, 각기 가능한 최대한 매끄러운 동작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어떤 이들은 검을, 또 어떤 이들은 탄환 없이 텅 빈 포신을 들어 올렸고, 또 다른 이들은 확성기를 통해 거친 나팔소리를 울렸다. 무장하지 않고 있거나 그 외의 이유로 침묵하고 있는 기사들은 도색되지 않은 면갑을 숙여 존경을 표하였다.


최고 성구 관리인, 토롤렉은 네 개의 의수들 중 두 개의 손에 든 데이터 슬레이트를 바라보더니, 그가 섬기는 남작의 조종실로부터 전해져 오는 데이터 피드를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풀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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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나뽕을 이렇게 또 다시 질러주는구나. 크르르, 못 참겠다, 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