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능력 / 산 아래 / 천사의 말]



 해는 이제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레뮤엘은 자기 천막의 차양 아래서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지만, 카미유는 다시 한 번 사람 잡아먹는 산의 비밀 통로를 오르고 싶어 하고 있었다. 사우전드 선과 스페이스 울프 두 군단이 그토록 서둘러 높은 산골짜기 속으로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산을 올랐을 때에는 해가 저물어 그나마 선선한 날씨였는데도 거의 쪄 죽을 뻔했건만. 한낮에 등산을 하면 어떻게 될지 따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조금도 호기심이 안 들어요?" 카미유가 캔버스천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은 채, 다 헤진 가죽 수통에 든 물을 마시며 물었다. "내 말은, 대체 무엇이 아스타르테스들의 심기를 거슬렀기에 전투 탱크까지 끌고 갔겠냐고요? 그것도 랜드 레이더를요. 당신도 봤죠?"


 "봤지." 레뮤엘이 반다나로 이마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퍽 인상적이던데."


 "인상적이라고요?" 카미유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인상적이다 이상이죠. 정말 놀라웠다구요."


 "그래 그래, 놀라웠지. 하지만 아니. 난 그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지던 어차피 때가 되면 우리도 알게 되겠지 뭘."


 "당신이야 그렇겠죠." 카미유가 지적조로 말했다. "당신은 이제 사우전드 선과 직통 연줄이 생겼잖아요." 


 "글쎄 그런 게 아니래도." 레뮤엘은 말했다.


 "그런 게 아니면 뭔데요?" 이번엔 칼리스타가 물어 왔다.


 스페이스 울프 군단이 도착한 이후로 세 사람은 매일 밤마다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칼리스타가 적은 글귀가 세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가 되어 세 사람을 어두운 비밀의 공모자처럼 묶어 두고 있었다. 칼리스타와 카미유와 시간을 보내면 보낼 수록, 레뮤엘은 자신들 세 사람이 단지 칼리스타의 글에 대한 관심 이상의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흐리만 공께서는 그저 나의 잠재력을 보신 거야." 그리 말하긴 했지만, 그 말만으로 사우전드 선 군단의 사서장이 자신을 소환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은 레뮤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잠재력이요?" 칼리스타가 다시 물었다.


 레뮤엘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말했다.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걸."


 "아 정말, 그래서는 대답이 안 되잖아요." 카미유가 보채듯 말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아흐리만의 말에 레뮤엘이 느꼈던 두려움은 곧 자신의 힘에 대한 끓어오르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레뮤엘은 다른 사람의 속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진실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카미유와 칼리스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레뮤엘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혹시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자 레뮤엘은 카미유의 말에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저번 밤에, 칼리스타 양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잖나. 뭐라고 불러야 한다? 아마 그, 접신(channeling)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떤 힘을 내려 받아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글로 쓸 수 있게 해 준 거지."


 "그걸 재능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은데요." 칼리스타가 뾰루퉁하게 말했다.


 "그래, 자네라면 그렇겠지." 레뮤엘은 맞장구를 쳐 주며 말했다. "그게 자네가 말한 대로 그렇게 괴로운 거라면 말이야. 하지만 칼리스타 양의 능력이 육신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다 치고, 어쨌던 칼리스타 양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렇지?"


 "그렇죠." 칼리스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레뮤엘은 칼리스타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에 얼마나 불편해하고 있는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지, 사실 나도 그런 능력이 하나 있거든." 레뮤엘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능력인데요?" 카미유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칼리스타의 아우라에서 흥미를 느끼는 기색이 나타났다.


 "어떤 보지 못하는 것이요?" 칼리스타가 물었다.


 "굳이 부르자면, 아우라라고 불러야겠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아지랑이 같은 거야. 덕분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고, 또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읽을 수도 있지. 그런 종류의 것이야."


 "그럼 지금 내 기분은 어떤데요?" 카미유가 물었다. 레뮤엘은 미소를 지었다.


 "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구만, 친애하는 아가씨." 레뮤엘이 말했다. "지금 당장 나를 덮쳐서 복상사 직전까지 범하고 싶지? 에리스 양만 없었더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 위에 올라탔을 텐데 말이야."


 카미유는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요, 믿을게요." 카미유가 말했다.


 "진심이야?" 칼리스타가 물었다.


 "아니!" 카미유는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레뮤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파트너로서 좋아하는 취향은 다르다구."


 "아 그렇구나." 칼리스타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칼리스타의 시선은 레뮤엘에게로 향했다. "진짜로 읽을 수 있는 거 맞아요?"


 "그래, 읽을 수 있네." 레뮤엘은 말했다. "칼리스타 양은 지금 무척 부끄러워하면서, 카미유 양이 굳이 자네 앞에서 자기 성적 취향을 떠들지 않아 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 또 내 말을 믿고, 자네만이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에 안도하고 있잖나."


 "그건 굳이 특별한 힘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거거든요, 레뮤엘." 카미유가 말했다. "그런 건 저라도 알 수 있다구요."


 "그렇지. 하지만 카미유 양도 내 말을 믿고 있잖나. 자네도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안 그런가?"


 카미유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건 거짓말이로군." 레뮤엘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음료를 챙기며 말했다. "자네는 뭔가를 만지면 그 물건의 기원을 알 수 있지?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서부터, 또 그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물건의 역사 전부를. 그렇기 때문에 늘 장갑을 끼고 다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뭘 빌리는 일도 없는 거고. 카미유 양을 탓하는 건 아니야.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비밀을 전부 읽게 된다니, 무척 괴로웠겠지."


 고개를 홱 돌린 카미유의 눈매는 풀이 죽어 축 쳐져 있었다. 레뮤엘은 카미유를 안심시키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젠가 카미유 양이 아고루의 유적지에 묻힌 어느 물건을 만지는 것을 봤네." 레뮤엘이 말했다. "그 물건에 손을 댄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지. 안 그래?"


 카미유는 여전히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네, 맞아요. 처음부터 가능했던 건 아니었지만요. 한 13살 때부터가 시작이었죠."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카미유 양." 레뮤엘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두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생각엔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모인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거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생각해 보라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재능을 가진 세 사람이 우연히 이렇게 한데 모이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내가 수학자는 아니지만 그리 높은 확률은 아닐걸."


 "그러니까 당신 말은, 우리가 이곳에 모이게 된 것이 의도적이었던 것이란 말인가요? 대체 무엇 때문에요?"


 레뮤엘은 뜨거운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생각에는 우리 보호자들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레뮤엘은 말했다. "한 번 둘러보라고. XV군단에 배속된 리멤브란서가 몇 명이나 되지? 전 원정대에 걸쳐 42명 정도에 불과하지 아마. 우리 인원수를 생각하면 나는 우리가 선택된 데에는 리멤브란서로서의 재능 이상의 다른 이유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사우전드 선의 선택을 받은 건 다 우리가 이런 능력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요?"


 "거의 확실하지." 레뮤엘이 말했다.


 "이유가 뭘까요?" 칼리스타가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더군." 레뮤엘이 토로했다. "다만 내가 사우전드 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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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갑자기 섹드립 훅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