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스투 칼리마쿠스는 인도이-Indoi 아대륙 출신으로서, 데이터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세부적인 정보들까지 까다롭게 관찰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대성전 극초기의 기록 대부분을 필사한 바 있는 마하바스투는 사우전드 선 군단이 최초로 선택한 리멤브란서들 중 한 명이었다. 마하바스투의 명성은 그가 군단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마하바스투는 군단에 배속되는 즉시 마그누스 더 레드의 전속으로 배정되었다.
재건된 군단이 승리의 팡파레와 관중의 환호성, 그리고 휘날리는 장미꽃잎 속에 프로스페로를 떠나던 그때부터 마하바스투는 마그누스의 곁을 지키며, 프라이마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흔히들 마그누서의 서-Book of Magnus라고 부르던 커다란 책에 기록하였다.
사우전드 선 군단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대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어려웠던 리멤브란서들은 조금의 시기심도 없이 마하바스투 칼리마쿠스를 의지하곤 하였다. 레뮤엘이 마하바스투 칼리마쿠스와 만난 것도, 포텝 호에서 개최되었던 '최상의 데이터 수집 형태'에 대한 심포지엄에서였다. 그리고 지식의 세부에 대한 두 사람의 기호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신께서는 세부적인 것들 속에 거하시지." 포텝 호의 매혹적인 도서관에 보관된 수많은 필사본들 중 하나를 세심히 연구하며, 마하바스투는 그리 말했더랬다.
"신이 아니라 악마겠지요." 레뮤엘은 대답했었다.
"친애하는 레뮤엘 군, 그건 전적으로 그 세부적인 것이 무엇에 대한 것이냐에 따라 달린 것이라네."
칼리마쿠스는 정력적인 사람이었고, 표준 기준으로 한 130대 정도 되는 자기 실제 나이보다 절반은 젊은 사람처럼 활력이 넘쳤었다.
그러나, 지금의 마하바스투 칼리마쿠스는 그 나이를 곧이 곧대로 다 먹은 노인처럼 노쇠한 모습이었다.
늙은 리멤브란서가 책을 펴자, 레뮤엘은 칼리마쿠스의 어깨 너머로 그 책을 들여다보았다.
"화가의 공책이로군요." 페이지 위에서 화가가 목탄과 연필로 그려 놓은 스케치 윤곽선을 발견한 레뮤엘은 말했다. "어르신께서 스케치도 하시는 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어르신 치고는 영 선들이 흐릿한 것이, 언어로 표현하실 때만큼의 세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칼리마쿠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이 맞네, 레뮤엘 군." 칼리마쿠스가 말했다. "나는 화가가 아니지. 사실, 더 이상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다네."
"저, 죄송하지만 마하바스투 어르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난 이것들을 그린 기억이 없네." 마하바스투가 무척 흥분한 채 안달을 내며 말했다. "그림이던, 글이던, 이 책에 기록된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기록한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이것들만은 전혀 기억이 없어."
노인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본 레뮤엘은 마하바스투의 아우라에서 일렁이고 있던 불안의 감정이 시린 슬픔으로 교체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쓴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단 말일세."
"혹시 의무대(medicae corps)에서 검진은 받아 보셨나요?" 카미유가 물었다. "제 삼촌도 나이를 드시더니 정신이 이전 같지 않아지셨거든요. 그분도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시더라고요. 심지어 방금 말해 준 것조차도요. 그리고 이내는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아내와 자식들도 기억하지 못했죠. 눈앞에서 그렇게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너무 슬펐었어요." 하지만 마하바스투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그렇게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인지 장애와 기능 장애 패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네, 쉬바니 양.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메디카이더러 내 뇌를 스캔해 보라고 했었지." 마하바스투는 말했다. "내 두뇌와 피질 하부 영역의 뉴런 수와 시냅스 수는 대체적으로 정상 범주였네. 메디카이도 내 측두엽과 두정엽에서 퇴화나 악화 증상을 찾지 못했지. 유일하게 발견한 이상은 뇌의 대상회(帶狀回) 부분에서 발견한 작은 그림자뿐이었네만, 이 모든 현상들을 설명해 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찾지를 못했어."
레뮤엘은 공책 위의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거친 스케치와 휘갈겨 쓴 낙서들로부터 뭔가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다.
"이걸 어르신께서 직접 그리신 건 확실한 겁니까?" 레뮤엘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기이한 문장들을 살피며 물었다. 글씨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어떤 언어인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책이 평범한 기록장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은 마도서였다.
"확실하네." 마하바스투는 말했다. "내 필체로 쓰여졌거든."
"그걸 어떻게 구분하세요?" 칼리스타가 물었다. "어르신께서도 대필 장치를 쓰시잖아요."
"그래, 쓰고 있지, 아가씨. 하지만 대필 장치를 쓸 만하게 조정하려면 먼저 사용자 본인의 필체로 조율을 시켜야 한다네. 아마 어떤 필적학자도 내가 쓴 글씨와 내 대필 장치가 쓴 글씨를 구분하지는 못할 게야."
"이거 뭐라고 쓴 거예요? 못 읽겠는데요." 카미유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네. 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어야."
"이건 에녹어-Enochian입니다." 레뮤엘이 말했다. "이른바 천사의 말이라고도 불리죠."
"천사요?" 카미유가 물었다. "그런 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죠?"
"테라에 있는 내 서재에 리베르 로아게스-Liber Loagaeth의 불완전 사본이 있거든." 레뮤엘이 설명했다. 세 사람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레뮤엘은 덧붙였다. "옛 지구의 고대 마법사들이 하늘과 교신해서 받은 기도문들의 목록이라고 전해지는 책이야. 그 책도 이 낙서와 똑같은 언어로 쓰여져 있었지. 내 실력으로는 아주 작은 일부 밖에는 번역을 못했지만. 내가 들은 바로 리베르 로아게스에는 그에 대한 문자표가 들어 있는 클라베스 앙겔리카이-Claves Angelicae라는 책이 한때 한쌍으로 붙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책의 사본은 나도 구할 수가 없었지."
"에녹어라." 마하바스투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거 흥미롭군. 좀 더 알려 주게."
"저기, 다들 잊어버리신 것 같은데, 아까 마그누스 더 레드 전하께서 중대한 위험에 처하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칼리스타가 물었다. "그 문제에 먼저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물론 그렇지, 그래 맞아!" 마하바스투는 그리 외치더니, 책의 페이지를 촤라락 넘겨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위에는 목탄으로 빠르고 격정적으로 휘갈긴 스케치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스케치에는 커다란 숲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나신의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본 레뮤엘은, 그것이 사실 숲이 아니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구불구불한 뱀 같은 촉수들이 커다란 구덩이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 앞에는 마그누스 더 레드임에 분명한 인물이 대여섯 개의 촉수에 붙들려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마그누스의 전사들 역시 공격을 당해 커다란 동굴 안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어느 산 안에서...
"이게 뭐죠?" 카미유가 물었다.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마하바스투도 말했다. "레뮤엘 군?"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도 영 좋지 않은 상황 같군요."
"그림 밑에 저 글자는 뭐죠?" 칼리스타가 물었다.
그림 아래에는 하나의 단어가 휘갈겨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에녹어 단어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레뮤엘은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싸늘하게 식어 내리는 감각을 느꼈다.
"판파즈(Panphage)." 레뮤엘이 읊은 단어에 마하바스투가 몸을 움찔거렸다.
"뭐요?" 칼리스타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모든 것을 삼키는 자'라는 뜻일세." 레뮤엘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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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 리베르 로아게스랑 클라베스 앙겔리카이라는 책 실제로도 있는 거다.
번역 재밌게 보고있음 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