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뜨거운 공기 너머로 짐승들이 야만적인 울부짖음을 토해내자,
공기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그 떨림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엔젤스 오브 앱솔루션(Angels of Absolution)의 5th 중대의 마스터*이자,
챕터 내 최초로 프라이머리스화를 거친 중대장인 카라엘은 블랙 카라페이스를 통해
두꺼운 파워 아머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야만적인 울부짖음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그 묵직한 압박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엔젤스 오브 앱솔루션 내에서 챕터 중대장을 부르는 호칭.)
공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보통의 전사라면 쉬이 두려움에 압도되어 자리에 얼어붙은채로 그대로 최후를 맞이하거나,
그나마 용기있는 필부라면 제 목숨을 위해 도주하고도 남을 정도의 압박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선 수천의 병사들ㅡ이 폐허가 되어버린 광산 행성의 생존자들이자, 급조된 민병대원들
은 라스건 내지 오토건을 쥔 채로 굳건히 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긴장 속에 떨고 있는 어린 소년병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다크 엔젤의 후계 챕터이자, 라이온의 자손답게 그 또한 의무에 충실하며ㅡ
누구보다 과묵한 인물이였지만
이 행성에 불시착한 이후로 이어진 기나긴 수 년간의 전투들 속에서
그는 자비심ㅡ어쩌면 심경의 변화 같은 것을 겪으며
최근 들어서는 필멸자들에게 좀 더 마음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통 그의 작전 지시는 수신호 내지는 헬멧 디스플레이 바이져의 신호로만 이루어졌지만,
그는 마치 소년을 안심시키려는듯, 이번만큼은 직접 육성으로 명령을 지시했다.
"우리는 오늘도 승리하리라! 사격 준비."
그를 따르는, 20 명의 중대 마린들ㅡ5th 중대 최후의 생존자들
은 그의 신호에 따라 볼트건을 들어올렸다.
비루한 광부 생존자들 또한 일사분란히 참호를 차지한 다음 라스건을 들어올렸다.
사격선으로 첫번째 녹색 외계인들의 물결이 진입한 순간,
마스터의 수신호에 따라 첫번째 사격선의 볼트건과 레이져 광선들이 거의 동시에 쏟아졌다.
2.
2명.
2명의 형제들이 목숨을 잃었다.
5th 중대의 4th 분대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알카리엘 형제는 참호로 진입한 수십마리의 오크들에 맞서,
단검 하나로 백병전 끝에 수많은 난도질용 칼들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5th 중대의 6th 분대 서전트 형제이자, 마스터의 동기였던 볼카르 형제는 한 오크 데프건에서 발사된 기이한 레이져 광선에 의해 그 자리에서 소멸당했다.
그리고 수백명의 민병대 병사들이 죽었고, 다수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이 삭막한 광산 행성, '시프' 행성의 마지막 남은 지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와 같은 피해가 오늘 단 하루에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많은 피해가 일어날 것이리라.
급조된 야전 작전 회의소에서, 중대 선임 서전트가 그를 찾자
마스터는 다른 민병대원 장교들(이라고 해봐야, 대다수는 전투 경험조차 없는 자들이였지만.)을 물리고 그를 맞이했다.
"서전트 아카른 형제, 무슨 일인가?"
"..지금껏 중대장님의 판단을 의심한 적 없었으나,
오늘만큼은 긴히 참언해야겠습니다."
"무엇인가?"
"저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선조 챕터의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께서는 모든 언포기븐(the Unforgiven)을 호출하였으며,
저희는 어디까지나 사절 자격으로 이번 출정에 임한 것입니다.
물론 저희에게는 이 행성의 군단 시절 유물을 회수하는 부차적 임무
ㅡ이 행성 토착민들에게는 핵무기 격납고로만 알려진 비밀 무기고 내부 유물들의 회수ㅡ
도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임무입니다.
저희는, 다시금 말하지만 사절입니다. 모 챕터의 대표입니다.
비록 워프의 격류와 예측 못한 오크의 해상 습격에 불시착하여 고립되었지만..
그것도 이미 오래 전 함선의 수리가 완료되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은 여기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유물들 모두는 회수하지 못하겠지만, 최소한만 수습한다면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니힐루스의 어둠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길을 가로막았다지만,
네비게이터-프라임의 보고에 따르면 최근 어둠이 상당히 걷힘에 따라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냉정히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대답 대신 구형-홀로그래픽 테이블에 입체적으로 출력되고 있는 데이터들을 내려보았다.
적 규모, 점령지와 세력 분포 등등..모든 수치가 이어지는 수 달 내의 패배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동요조차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워프-여행의 실패를 대비한 프로토콜에 따라, 중대 라이브러리안..'전' 라이브러리안 형제 우르카엘 형제가 조난 신호를 보냈네.
그것은 가장 안정화된 루트에 따라 전송되었기에, 본 챕터에서도 현 상황에 대해 숙지하고 있을 것이며,
본 챕터에서는 선조 챕터에 이를 통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제들을 파견했을 것이네.
그러니 주 임무는 걱정할 필요가 없네."
"그것조차도 사실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실익과 효율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명백히 비효율적인 전투 중에 있습니다. 이 짐승들은..시카트릭스 말레딕툼이 야기한 문제들에 비하자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 행성 또한 지하 방공호에 보관된, 고대 군단 유물을 제외하면 별다른 가치가 없습니다.
남은건 수만에 불과한 행성의 비루한 인구와 광물이 거의 고갈된 말라비틀어진 행성 하나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솔직히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남은 장비와 탄약이 고갈 직전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라스건과 오토건을 들고 싸울 지경입니다.
알고 싶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솔직히 말하겠네." 그가 서전트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는 수십 일 밤낮을 고민했었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라이온께서는 무슨 선택을 하셨을까, 라는 것을.
그 분이시라면 무슨 선택을 하셨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다만 그 분이 하셨을 선택을 따를 뿐이네.
수호의 의무ㅡ제국과 인류의 수호 말이네.
먼 옛날, 우리의 아버지 라이온께서 칼리번의 백성을 수호한 것은 다만 숭고한 명예와 의무에 따랐던 것일 뿐이였지 않았나?
우리가 떠난다면 저들은 분명 잔악하게 도축되고 말 것이네. 오크들은 행성의 남은 자원들을 전부 소모하여, 더 큰 위협으로 퍼져나가겠지.
자네도 알잖는가? 지금껏 전사한 형제들이 그냥 전사한 것은 아님을..
그러한 의무들에서 회피하고 싶지는 않네. 이게 내 판단이네."
"...솔직히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중대장님과 이 행성 아래 함께 묻히겠습니다.
의무만큼은 역시 저 또한 감히 외면할 수가 없군요." 서전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허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네.
나는 모든 사안을 종합해서 고려한다네.
분명 지원이 도착할 것이네. 분명ㅡ" 복스 채널 신호에 따라, 마스터가 잠시 대화를 중단했다.
중대 테크마린에게서 보고된 내용을 확인한 마스터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내 지원이 당도했네, 형제여!
우리의 존경하는 선조 챕터에게서, 그리고.."
"블러드 레이븐?"
2.
행성은 분류상 광산 행성이나, 자원은 오래 전 고갈되었으며
비정제 원료들을 가공하는 공장들은 가동을 멈춘게 이미 수세기 전의 일이였다.
이제는 그 소유주였던 기계교 파벌조차 관심을 끊었기에,
다시 높고 푸른 자연의 색으로 돌아온 하늘은 끝없이 펼쳐진 평탄한 황무지 위로 텅 비어 있었는데
근 수백년 동안 딱 두 번 이 하늘이 가득 채워진 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오크들의 함대ㅡ대균열에 휩싸여 이 외딴 행성에 좌초된 소함대ㅡ가 행성에 강하했을 당시였고
두번째는 바로 지금이였다.
쏟아지는 드랍 포드들과, 후속하는 썬더 호크들이 푸른 하늘의 도화지를 강철의 비로 칠하고 있었다.
이미 궤도 반대편에서는 궤도에서 주인 없이 정차 중인 오크 함선들과 스페이스 마린 함선들간의 해상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이미 오래 전 주인을 잃은 폐함선들에 불과했으며,
결국 지상에서 워로드를 패배시키느냐가 중요한 핵심이 될 터였다.
전술-논리 코지테이터와 각종 전술 정보들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5시간 내 오크들이 마지막 방어선을 강타할 예정이였으며
사전 배치가 더 유리하다는 합의 아래 먼저 블러드 레이븐의 공습군이 지상의 참호 방어 네트워크망을 보강하기 위해 강하했다.
연합 함대 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다크 엔젤 측이였으나,
의외로 이번 방어선 강화에 참여한 다크 엔젤 마린들의 수는 적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크 엔젤 측으로부터 다른 설명이 들어오지 않았으나, 마스터 카라엘은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에게 감히 의문을 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지상에 강하하여, 참호선 사이 사이로 파고드는 적색의 마린들만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였다.
블러드 레이븐. 이들은 처음 만나는 아스타르테스 챕터였다.
아무리 처음 보는 챕터라지만, 카라엘은 다소 부정적인 판단만이 떠올랐는데
일단 이 적색의 마린들은 전체적으로 갑주가 과할 정도로ㅡ마치 고의적인 것처럼, 허름했으며(물론 자신들이 말하기를, 아주 귀하고 전통있는 아머라지만)
결정적으로 챕터의 스카웃 마린들의 모습에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마스터 카라엘님, 저는 스카웃-서전트 사이러스라고 합니다.
현 시간부 챕터 마스터 '가브리엘 안젤로스'님의 명에 따라, 정찰대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확보한 정찰 정보들을 카라엘님의 부대 및 궤도상 다크 엔젤 동맹군에게 전송하였습니다.
혹시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목표가 있으신지요?'
"따로 없네. 다만.." 카라엘은 초면에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싶었지만 결국 질문을 꺼냈다.
"자네들은 스카웃 위장-포막도 없나?"
스카웃 위장 포막. 이것은 스카웃이라면ㅡ특히 위험한 전장 근접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스카웃 신병이라면
모든 챕터에서 지급해주는 위장용 망토 형태의 장비로,
주변 환경의 외형 및 심지어는 온도 등까지도 분석하여 정확하게 묘사하고 감지 장비까지 차단함으로써 스카웃을 발각 위험에서 보호하는 장비였다.
그런데 지금 블러드 레이븐이 운용하고 있다는 스카웃 정찰팀들은 단 한 명도 이 위장포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신병이 챕터의 근간이거늘..카라엘은 당연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사이러스가 우물쭈물거리는 태도에, 카라엘은 얼굴을 살짝 찌뿌렸다.
팀장이라는 자가 그런 것조차 모른단 것인가?
그때 반대편에서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 챕터는 일명 '아케론 성전'이라는 전쟁 당시, 대적과의 전쟁에 상당한 전술적 자산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는 스카웃 위장포도 포함되지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 그런데 자네는..?"
"마텔러스입니다. 챕터의 마스터 오브 더 포지이며, 선임-서전트 '타르커스'와 함께 현 참호 네트워크망 '천사의 방패' 방어 작전의 총괄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사이러스 형제는 이쯤에서 보내겠습니다. 그는 스카웃 마린들과 다른 중요한 작전을 맡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아..그런가?" 이쯤 되자, 카라엘은 블러드 레이븐 챕터의 챕터 마스터에 대해서 다소 섭섭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마스터 오브 포지가 챕터 테크 마린들 및 무기고의 총지휘관이라 해도,
전시 작전을 어디까지나 기술병에 불과한 인물에게 맡긴다는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였다.
그리고 다른 지휘관은, 챕터의 중대장도 아니고 서전트라고?
이쯤 되자 그는 블러드 레이븐의 챕터 마스터라는 인물을 만나고 싶을 정도였다.
"자네 챕터의 챕터 마스터는 어디 계신가?"
"아 지금 오시고 계십니다."
그때, 한 척의 백색 썬더 호크가 근처 강하 지점에 착륙했고,
곧 백골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터미네이터 마린들이 그야말로 흉폭한 위압력을 풍기며 내려오기 시작했다.ㅡ데스윙.
붉은 눈을 빛내는 터미네이터들 중에서, 마치 천사의 날개와 같은 강철 깃털 장식으로 투구를 장식한 데스윙 분대 서전트가 카라엘에게 직접 다가왔다.
"자네가 마스터 카라엘인가?"
"예 그렇습니다." 카라엘은 그가 하대를 하고 있음에 살짝 불쾌함을 느꼈으나, 곧 무시했다.
계급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위라 해도, 그는 명예로운 시조 챕터의 최고 엘리트 집단 '데스윙'의 서전트였다.
수백년 경험에서 앞서는 전사이니, 하대한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맞이하라." 그가 무뚝뚝하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존귀한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이자, 챕터의 위대한 영웅이며 진실의 수호자이신 아즈라엘님께서 몸소 행차하고 계시니."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였다. 존귀한 다크 엔젤의 최고위 지도자, 아즈라엘님과 만나는 순간이라니!
그런데 그 감격의 순간에, 마치 눈치 없는 필멸자마냥 마텔러스가 끼어들었다.
"아 잘 됐군요. 마침 저희 챕터 마스터께서도 썬더호크 하나 잡고 내려오고 계십니다."
자기네 챕터 마스터를 표현하는데 존칭조차 하나 붙이지 않다니..
카라엘은 블러드 레이븐의 이해할 수 없는 풍습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무튼 두 챕터들의 군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보통 한 챕터의 가장 위대한 전사-지휘관이 모이는 자리는 그만큼 위대하기 마련인데,
처음 두 챕터의 군주들이 서로 만나 의례적 인사를 나눈 이후부터ㅡ지금까지 나눈 대화라든가를 가만히 뒤를 따르며 듣고 있노라니
카라엘은 그냥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두 아스타르테스 챕터들을 각자 통치하는 위대한 영웅 둘의 대화란, 대체로 이러했다.
"아아, 위대하신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이시여! 비록 이 몸 또한 같은 챕터 마스터라지만 항시 공의 영웅담에 귀를 기울이며 흠모의 마음을 품고 있었음을 아시는지요?"
"그리하신가?"
"본디 저희 블러드 레이븐은 프라이마크를 잊은 챕터이나, 저는 항상 모든 프라이마크들 중 가장 위대한 분이신 라이온 엘'존슨님께 존경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챕터 인원들 대다수가 그 분께 상당한 존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챕터에 이상하게도 다크 엔젤과 관련된 연결점이 많은 것 또한 아시는지요?
예컨데, 제가 지금 착용한 이 망토 '사자의 갈기'는 M41.652년도 '사무엘라' 유행의 망토로써 경이 착용하신 망토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그런다는건 역시..아니 혹시라도 저희 챕터 또한 더 퍼스트의 먼 후예가 아닐까하는ㅡ"
조용히, 우아한 걸음걸이로 참호선 일대를 전망하며 상황을 관찰하는 고귀한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과는 달리,
소위 챕터 마스터라는 자, 가브리엘 안젤로스는 그 거구의 터미네이터 갑주를 입었음에도 마치 어디 시종마냥 그의 뒤만을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아첨인지ㅡ진심인지 모를 잡소리나 떠들고 있었다.
그것은 챕터에 따라서ㅡ특히, 스페이스 울프 같은 잡스러운 챕터의 경우라면 호의를 살법도 한 수준의 아첨적인 태도였으나
존경하는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 아즈라엘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고 오만한 눈빛을 빛내며 왼쪽 뒤에서 보좌하듯 따라다니는 거구의 가브리엘을 올려다보았다.
"이보게 챕터 마스터 안젤로스경, 더 퍼스트의 챕터 마스터이자, 그대의 선배로서 감히 조언하자면..
쓸데없는 아첨과 환대는 집어 치우게. 전투에서 그러한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그리고 자꾸 챕터의 유사점이라니 뭐니 하면서 우리와 연관된 것들을 열심히 언급하려는 시도는 좋으나,
더 퍼스트에서는 모든 후계 챕터들에 대해서 관리하고 기록하며,
그 명부에 자네 챕터는 조금도 언급되어 있지 않네. 그러니 쓸모없는 기대는 버리게나.
다크 엔젤 기원의 유물이라고? 어디서 선물받았겠지. 그 뿐이네.
자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 망토 정도야, 은하계 전역에 수백 수천여 챕터들에게 뿌릴 뿐이네."
카라엘은 그의 다소 오만하고 험한 태도에 혹여 가브리엘이 분개하지는 않을까 크게 염려하였으나,
뜻 밖에 가브리엘은 오히려 더 환한 미소로(물론, 반쪽이 기계로 대체되고 그나마 남은 반쪽도 흉터 투성이이기에 말 그대로 살인마의 미소같았지만) 반기며 말했다.
"하하! 역시 듣던 명성대로 대쪽같은 기상이로군요! 라이온께서도 돌아오신다면 그대를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비록 그대가 후배이지만 참 배울 점이 많군요."
"뭔 소리지?"
반문하는 아즈라엘의 표정에서, 카라엘은 잠깐의 분노가 떠오르는 것을 본 것도 같았다.
그때 마텔러스가 나서려 들었는데,
그 순간 아즈라엘을 호위하는 데스윙 터미네이터 서전트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거칠게 썬더 해머를 내세우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챕터 마스터끼리 대화 중이거늘, 어디 잡스러운 테크 마린이 끼어드느냐?"
"아 괜찮네, 그는 나의 대변인이라네 데스윙-서전트 형제."
"그러니 내 이번은 너그럽게 봐드리리다, 존경하는 데스윙 사촌 형제." 마텔러스는 서보-암으로 데스윙의 썬더 해머 쥔 손을 살며시 치웠다.
덕분에 순식간에 무례한이 되어버린 데스윙-서전트는 잠깐 분노에 사로잡혔으나,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요즘에는 테크 마린도 아너 가드로 쓰는 챕터도 있군 그래?" 아즈라엘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하하! 공정 인사 채용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
"..뭐 그건 그렇다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구려.
그대가 챕터 마스터가 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사건이며, 그에 비하자면 본인이 의무에 봉사하게 된 것은 수백년 전의 일인데 그대가 선배라니..
해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소.
아니면, 그대의 판단력에 쉬이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겠소만.."
"그와 관련하여, 정식 연도상으로는 저희 챕터 마스터께서 분명 늦으시지만,
니힐루스의 영향으로 시간대가 변질된 것을 고려하자면 실질적인 복무 년도는 이쪽이 훨씬 높습니다.
이분께서는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님보다 1년 더 많은 복무일수 동안 봉사하셨습니다."
마침내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아니 그대는 날 희롱하려는 것인가 지금?
복무 년도가 본인보다 더 높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하필 딱 1년이 더 높다고? 1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단 1년이?
아니 이건 도대체 뭐하자는ㅡ이건 완전 억지로 날 놀리겠다는ㅡ!"
"증거도 있습니다. 저희 챕터는 니힐루스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록을 남겨왔는데 한번 대조해보시겠습니까?
이미 당신께서 전송하신 기록 내 복무 기록표를 확인한 후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존귀한 더 퍼스트의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이시여."
"허허 마텔러스, 그만하게. 존경하는 더 퍼스트의 챕터 마스터이자 본인이 아끼는 우리 후배님께서 착각할 수도 있는걸 뭘 또 그렇게 핀잔을 주려고 그러나, 떼끼 이 사람!"
순간 빡친 아즈라엘은 당장 기록을 내놓으라고 소리지를 뻔 했지만, 간신히 냉철하게 그것을 억눌렀다.
어차피 니힐루스 이후의 모든 기록은 인도미투스 성전군에서 사용하는 성전군-기록법, 일명 '템푸스 인도미투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저렇게 뻔뻔하게 나대는 것도, 아마 이미 완벽하게 조작이 끝났기 때문이겠지..
입증이 안 되는 상황에서 기록을 내놓으라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터였다.
애초에 자신의 실수였다. 복무 년도로 만남 전부터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챕터의 자랑스러운 공식 기록ㅡ자신의 복무 연도가 포함된ㅡ
을 미리 사전에 블러드 레이븐 측에 전달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것을 미리 판단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였다.
"..내 실례가 많았네." 순식간에 분노를 감춘 아즈라엘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허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내, 준비할 일이 많아서 야전의 일은 그대에게 위임하리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
그렇게 두 챕터간 역사적인 수뇌부의 첫 만남의 장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정확히 3시간 20분 후,
첫번째 그린 스킨들의 물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
아군의 전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전투의 시작과 함께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카라엘은 블러드 레이븐 전사들의 전투 능력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참호선을 채운 마린들은 일사분란히 움직이며 쏟아지는 외계인 보병들을 향해 핀포인트 볼터건 사격을 가했으며,
후방열의 헤비 볼터를 위시한 데바스테이터 중화기병들은 적재 적소에 화망을 집중시키며 코덱스상 적 돌격대의 제압이라는 전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일부 참호선이 놉 등의 강력한 백병전 전문 보병들의 난입으로 혼란에 빠질라치면,
요충지에서 날아온 어썰트 마린 점프팩 보병들이 적들이 확보한 참호선 교두보를 강타하며 일대에 오크들의 피를 흩뿌리거나,
혹은 리버 분대가 무자비한 단검술과 백병 보병 전술로 오크들을 말 그대로 흉폭하게 제거했다.
전선 유지 병과의 택티컬 마린과 인터세서 분대, 백병 공습 계열의 리버와 어썰트 마린들 간의 전투간 상호보완성과 유기력은 완벽했다.
카라엘은 그들 옆에서 함께 싸우며, 전투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감탄한 것은..
그는 최전선에서 적들을 향해 볼트건 사격을 가하는 블러드 레이븐측 야전 지휘관, 타르커스라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일어나라, 병사여. 싸울 수 있겠는가?" 타르커스는 전방에서 슈타 기관총을 난사하는 오크를 정확한 핀포인트 사격으로 쓰러트린 직후,
자신의 옆에서 총탄에 부상당한 병사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무, 문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에 가서도 살아남는다면, 그 때 인사를 받지."
이와 비슷하게, 다른 블러드 레이븐들 또한 주변에서 민병대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최전방에서 보루가 되어 싸워주고 있었다..
필멸자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모습은, 카라엘에게 그 어느때보다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비록 이상하리만치 낡고 헤진 파워 아머였음에도 불구하고ㅡ그들은 민병대 병사들을 위해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스스로 방패가 되어, 적들의 총탄 앞에 스스로를 들이미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행성 반대편 궤도에서, 블러드 레이븐과 다크 엔젤의 주력 함대가 오크 함대를 격파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블러드 엔젤 측 정찰대들의 활약ㅡ유도 및 테러 작전 등
과 일부 다크 엔젤 함선들의 궤도 포격을 통해
적 오크들은 하나의 거대한 무리가 되어 행성 유일의 지하 마을로 향하는 입구에 위치한 이 참호 네트워크를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방어 전선의 유지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명예로운 더 퍼스트 측에서 이미 데스윙을 배치 예정 중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지막 순간 정확한 데스윙 터미네이터들의 배치만 실행된다면,
오크들의 위협을 영구토록 끝낼 수 있을 터였다.
잠상을 멈춘 카라엘은 달려드는 오크 그리친 수 마리를 단칼에 베어 토막내버렸다.
놈들의 역겨운 내장과 검붉은 피가 메마른 지면 위에 흩뿌려졌다.
그 순간 민병대 장교의 다급한 목소리가 긴급 전파용 복스-채널에 들어왔다.
"마스터! 소초 X-12 지점에서 긴급 보고입니다. 핵 격납고를 향해 다수의 오크들이ㅡ그 중에는 오크 워로드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됬습니다."
"알겠다. 방어 태세를 격상하라. 적의 직면한 공격에 대비할 것을 지시한다."
예측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오크들은 지금까지 핵 격납고의 위치를 모르고 있었기에, 단 한번도 공격이 들어왔던 적이 없었고
이에 따라 최소한의 방어 병력들만을 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오크의 흉악한 마두가 그 지점을 공격하다니? 그것도 대규모 병력이었다.
이렇게 되면 아주 큰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철문 너머에 보관된 고대 유물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핵 격납고가 위치한 동굴은 지하 갱도를 통해 지하 민간인 마을로도 침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노련한 지휘관으로, 예측 못한 상황에서도 순식간에 최적의 안을 마련했다.
그는 블러드 레이븐 측 함대에 상황을 전파하여, 예비 병력을 해당 지점에 긴급 배치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남은 엔젤스 오브 앱솔루션의 전투-형제들과 함께 직접 핵 격납고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작전 재배치에 대해 통보하자
블러드 레이븐측 야전 지휘관인 '타르커스'의 음성이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마스터-중대장. 참호 네트워크 일대는 저희 블러드 레이븐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습니다.
그런ㄷ 워로드가 그쪽에 이동 중이니, 마스터측 전 병력을 해당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점은 이미 고려하였으나..그렇게 되다면 블러드 레이븐측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네."
""그 누구도 우리를 얕보지 못하리라,(None shall find us wanting),
같은 아스타르테스로서의 명예로 맹세하거니와, 전선은 여기서 단 한치도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여."
그 대답에, 카라엘은 이제는 감사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전술적 필요성에 의거했다지만,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통보로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저들은 신뢰와 믿음 속에 피해가 될지도 모르는 작전 변경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탁하고 있지 않은가?
"알겠네. 부탁하네, 형제여."
마침내 그들 또한 형제임을 인정하며, 마스터 카라엘은 전투-형제들과 함께 썬더호크에 신속히 탑승했다.
...
핵 격납고는 거대한 절벽-바위 아래에 뚫린 동굴 입구 너머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략 수십미터 가량의 높이에 왠만한 언더하이브 도로만한 길이의 통로에는 요충 지점마다 방어 소초들과 장애물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끝에는 거대한 아다만틴 철문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덕분에 핵무기라고만 알고 있는 행성 거주민들은 정확히 무엇이 그 뒤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허나 그는 이 뒤편으로, 군단 시절의 명예가 담긴 무기들ㅡ작게는 고대 군단형 움브라 패턴 볼트 피스톨부터, 크게는 1대의 시카란 베나터 전차까지ㅡ
의 상당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카라엘은 적들을 최대한 소모시키고 움직임을 지연시키기 위해, 모든 장애물들을 일정 간격대로 최대한 재배치하는 한편,
모든 민병대 병력들은 지하 마을로 향하는 갱도의 바로 앞 소초의 방벽에 집결시켰다.
여기가 최후의 방어선이 될 터였다.
궤도상 전술-사진을 통해 확인된 규모를 보아, 각종 장애물들조차도 오크 워로드와 그 무리를 참호 네트워크망 일대의 전투 종료까지 지체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다크 엔젤 측이 짧게 데스윙을 지역에 배치하겠다 통보했고
그렇다면 별 문제는 없을 터였다.
지평선 너머로 짙은 먼지구름이 올라오는게 보이기 시작했고,
오크들의 츄럭들 및 배틀웨건들이 동굴 입구를 건너자
곧 장애물들ㅡ윤형 철조망들 및 차량 차단용 가시 차단선들과 대전차용 지뢰들 등등이 피해를 일으키며 저 멀리서 폭음이 들려오고
동굴 내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투가 임박했다.
카라엘은 전투-형제들의 전투 준비 태세를 다시금 확인하는 한편,
민병대 필멸자 병사들을 독려하며 곧 펼쳐질 전투에 대비했다.
그 순간 다크 엔젤 측으로부터 지령이 하달되었다.ㅡ당장 무기고의 철문에 위치할 것.
철문은 일직선 구조의 동굴 가장 후미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갱도를 차단하는 방어 소초와의 위치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였다.
전투가 임박한 순간인데 지금?
그러나 그는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마린들의 준비 태세를 확인 완료하자,
그는 곧바로 뒤편 무기고 철문을 향해 질주했다.
그가 철문 앞에 위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케한 유황 냄새가 코 끝에 스며들었고
곧 번쩍이는 빛과 함께 육중한 거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ㅡ데스윙 터미네이터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엘, 저 문인가? 무기고의 문이?"
아즈라엘을 맞이한 카라엘은 바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 적 규모와 구성에 의거, 최적의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며
현재 적들의 현황은ㅡ"
"이미 알고 있네. 모든건 이미 고려되었네.
그러나 역시 시간이 다소 촉박하니,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린 카라엘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즈라엘과 함께 나타난 것은, 겨우 두 명의 데스윙 뿐이였던 것이다.
아무리 데스윙이 백전불패의 은하계 최강 전사들이라고는 해도ㅡ겨우 2명의 어썰트 터미네이터들은 분명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터미네이터들은, 스톰 쉴드 대신 다른 장비들을 들고 있었다.
그것이 매스-텔레포트용 신호기 비콘이라는 것을 눈치챈 카라엘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 속에 감히 아즈라엘에게 질문을 건냈다.
"저..외람된 말이나 어째서ㅡ"
"의문을 표함은 용납할 수 없는 예외이나, 지금은 용납하겠네, 마스터 카라엘.
또한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나, 이번에는 알려주겠네 형제여.
먼저, 어째서 겨우 3명이서 여기 들어왔는가, 에 대해 묻고 싶겠지.
답은 간단하네."
"여기의 방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카라엘이 충격 속에 되물었다.
"자네들이 부가 임무라 알고 있는 유물 회수의 임무는.. 그대들이 수행해야 할 주요 임무였다네 형제여.
사실 사절단 임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네. 이미 라이브러리움을 통해 주요 사항들은 각 언포기븐 챕터들에게 긴밀히 전파되고 있었으니 말이네.
그럼에도 구태여 성가시게 일을 진행한 것은.."
"이 뒤편에 보관된 무기들은..그 가치도 가치거니와, 무엇보다도 '폴른'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라네."
"...예?"
"이 뒤편의 무기들은, 군단 시절 간악한 폴른 배신자들이 사용하던 무기들이네.
칼리번의 몰락 이후, 도주한 폴른들 중 일부가 이 행성에 무기들을 숨겼지.
이와 관련하여, 전임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들은 폴른들의 무기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그저 핵격납고 정도로 정보를 조작하고,
외부 접근을 고의적으로 차단하여 행성을 외딴 낙후지로 만들었지만 본인은 생각이 조금 달라서 말이네.
현 시국에서, 그러한 무기들을 버려두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
사절 임무를 주 임무로 두면서도, 반드시 이 행성에 들릴 것을 전제 임무 조건으로 하명한 것 또한 그것과 관련이 깊다네.
왠만해서는 외부인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론 그대 또한 모 챕터의 이너 써클 일원이나, 그럼에도 사전에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하네.
허나, 그것은 구태여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네.
불필요한 지식은 곧 화를 부르는 법이지.
그대들은 그저 고대 군단 시절 유물 정도로만 알고, 그리하여 간단히 회수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였네.
예정대로라면 그대들은 무기고에서 '평범한 유물'들만 회수하고 진즉 그것을 더 퍼스트에 전달했어야 했으나..
이상하게 지연되더군ㅡ아 이 부분은 자네를 책망함이 아니네.
오크의 행성 침공, 워프의 동요 등은 예측하기 힘들었겠지."
철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즈라엘이 감격한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 무기들의 가치는 엄청나다네.
외부로는 절대 공개할 수도 없으나, 파괴할 수도 없지.
이제 텔레포트로 무기고 전체를 회수할 생각이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수되겠지.
차후 이번 임무에 대한 그대와 그대 형제들의 공은 물론 막대할 것이네."
"..이 행성 사람들은 어찌되는 겁니까 그러면?
여, 여기가 무너진다면..갱도를 통해 오크들이 지하 거주지로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하 거주지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블러드 레이븐 측에서 사수 중인 참호 방어망까지도 양면에서ㅡ" 동요하는 카라엘의 질문을 끊으며, 아즈라엘이 답했다.
"아쉽지만..본인은 비밀을 처리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을 여기서 취할 생각이라네.
물론 더 퍼스트의 정보망과 첩보망 덕분에, 지금껏 이 무기고는 낡은 핵 격납고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역시, 그 존재조차 아는 이가 없는 편이 더 완벽하겠지?"
"지금까지 수고 많았네, 형제여.
프라이마크 라이온께서 말씀하시길, '가장 신실한 이ㅡ그 보상과 목표조차 바라지 아니하며, 오직 명령에만 충실한 이', 라 하셨으니,
이번 임무에서 그대의 능력과 의지는 충분히 입증되었네.
곧 그대 챕터의 이너 써클, 그것도 상급 좌석에서 만나게 되겠군." 충격에 휩싸인 그에게, 아즈라엘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 혼란 속에서, 그는 죽어간 형제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볼카르 형제의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떠올랐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형제들의 인식표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죽어간, 수많은 하찮지만 용감했고, 명예로웠던 민병대 병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에 대한 신뢰 속에, 명예로운 수호의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전투-형제들과,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끔찍한 최후조차 기꺼히 받아들였던, 그 수많은 필멸자들의 최후가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 모습들이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려서,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안되겠습니다."
"..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떤 질책이 오든, 그는 달갑게 감수할 생각이였다.
불복종에 대한 대가가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의 '비밀들의 검' 검끝을 통해 집행될지라도, 그는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였다.
그러나 상대는 블돚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