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전쟁은 끝났으나, 이제는 정비와 복구라는 길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된 작업이 남아 있었다.

승리를 기념하여, 행성은 엔젤스 오브 앱솔루션의 소유로 들어가게 되었다. 

앞으로 이 행성은, 챕터의 새로운 신병 모집 행성으로 사용되리라.

이미 챕터 측에서는 어뎁투스 어드미니스트라툼에 공식 서한을 전송함과 동시에,

챕터 단위로 행성 개간 및 기계교 협력 하 요새 수도원의 건설을 위한 함대를 파견했다. 


다크 엔젤 측은 최소한의 정비만을 수행하고는 그대로 행성에서 철수했는데,

그동안 아즈라엘은 '그 사건'이후 단 한번도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외교적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채플린 아즈모다이가 일임하여 전담했다.

채플린 답게, 그는 코덱스적 규격에 맞춘 보상과 사과를 정확하게 수행하였기에,

블러드 레이븐 챕터는 이를 조금의 불만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블러드 레이븐은 마지막까지 복구 작업에 전념했다. 그 점에 대하여, 카라엘은 또다시 감사를 표했다.


마침내 그들이 떠나는 날, 카라엘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몸소 가브리엘의 함선에 들어가 인사를 건내기를 청했고,

챕터 마스터 가브리엘은 이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형제들..엔젤스 오브 앱솔루션 전체가 큰 빚을 졌습니다.

저희 챕터 마스터께서도 그대들의 헌신에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오. 그대들이라도ㅡ우리와 똑같았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카라엘은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들이였다면..

폴른과 이너 써클의 굴레에 갇힌 자신들은..그들처럼 진정한 아스타르테스로 헌신할 수 있었을까?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침묵 끝에, 무언가 결심하고는 

견갑에 장착된 한 금색 장식물 하나를 떼서 가브리엘에게 건냈다.


"이것은..'인정의 인장'입니다. 챕터를 명예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지요.

엔젤스 오브 앱솔루션의 5중대는 그대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언제고, 그대들이 원한다면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형제여..감사히 받아들이겠네. 이런 값비싼ㅡ흠흠! 아니 내 말은, 명예적으로 값진 선물이라니..

그대와 함께 싸운 명예는 우리 또한 잊지 않을 것이오 형제여."


"그대 가는 길에 영광만 있기를, 챕터 마스터 가브리엘." 카라엘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들에게도, 영광만이 기다릴 것이오." 가브리엘이 미소지으며 화답했다.




...

모든 외부인들이 사라지자, 어디선가 삼삼오오 블러드 레이븐 마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양 손에는 그들이 이번 전투간 착용했던 아머들이 마치 버리려는 쓰레기들마냥 안겨 있거나 아예 마대자루에 쓰레기마냥 담겨 있었고,

그 모습은 이전에 했던 말처럼 '귀한 챕터의 유산'을 다루는 자세가 절대 아니였다.

마텔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짜증 섞인 기계음 속에 지시를 내렸다.


"자 못쓰게 된 파워 아머는 옆에 반납하고, 이제부터 여기 이번에 새롭게 '전술적 징발'한 검은 갑주랑 유물 볼트건을 하나씩 들고 숙소로 들어가서 챕터색 도색을 실시한다. 실시!"


"실시!" 마린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한쪽에 기존 낡은 아머들을 쓰레기마냥 버리고는,

한쪽에 마련된 검은 도색의 장비들을 챙겨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입가에, 한껏 미소를 지으며.

간간히 마텔러스는 일부 마린들을 따로 불러다가, 격납고 무기고 한구석에서 '궤도 포격' 징계를 지시했다.

그러나 궤도 포격 자세로 머리를 박으면서도, 귀한 유물 파워 아머를 손에 넣은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를 떠나질 않았다.


"구태여 벌을 줄 필요가 있나?"  가브리엘이 물었다.


"이 놈들은 그래야 합니다. 세상에, 조금 낡았다고 일부러 적의 총탄에 맞아주면서까지 일부러 파손시켜서 새로운 아머를 받으려 들다니요!

에이 빌어먹을 놈들! 그렇게나 비싼 아머가 받고 싶었더냐?" 


"뭐 어떤가? 덕분에, 오히려 헌신적인 자세로 싸워준다고 생각해서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때 사이러스가 찾아왔다. 그는 블랙 카라페이스가 없는 스카웃 마린이기에 따로 파워 아머는 없었지만,

대신 양 손의 손가락들에 디지털 웨폰 반지들이 손가락당 2개씩 주렁주렁 끼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텔러스가 기가 차다는듯이 물었다.


"자네 손가락으로 궤도 포격이라도 쏘려는건가?" 


"어디까지나 필요에 따라서네. 뭐 아무튼.." 사이러스가 이어서 말했다.


"제법 위험했습니다.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가, 설마 오크어를 눈치챌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오크어 관련해서는 좀 더 배우셔야 할 듯 합니다."


"허허 그런가? 오크어에 관해선 그래도 열심히 배웠다고는 생각했는데 말이지..

어디 한번 자네가 들어보게. '감착 가치 앙는가?'" 가브리엘이 제법 유창한 브로큰 잉글리쉬로 말하는 모습은 기괴할 정도였다.


"훌륭하십니다. 그저, 아즈라엘 놈이 눈치가 빨랐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마텔러스가 말했다.


"그나저나 마지막에..제법 긴장했습니다.

설마 바닥까지 뜯어볼 줄이야.." 마텔러스가 이어서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이러스에게 칭송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전 사이러스가 전투 시작 전에 스카웃 위장 포막을 왜 그렇게 가져가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스카웃 위장 포막을 선물 포장지처럼 사용해서 유물들을 하나하나 포장하고는,

1층과 2층 사이의 빈 공간에 넣어둘 줄이야..

1층과 2층 사이에 진짜 수납 공간을 마련하자는건 제 아이디어였지만,

거기까지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고맙네. 허나 그것은 사실 챕터 마스터께서 내리신 지시였네. 난 명령에 따랐을 뿐." 사이러스가 겸손히 답했다.


"허허, 역시 도둑..아니 전술적 징발에 역대 최고로 뛰어난 챕터 마스터답습니다."


"난 오히려 스스로 아쉬웠네.

데스윙 택티컬 드레드노트 아머를 징발하지 못해서 아쉬웠지.

제길, 갑옷만 벗긴 다음 환자만 후송하면 다 끝날 일이였는데!

이미 그리친 놈들이 갑옷을 해체해서 훔쳐갔다는 시나리오도 다 짜놨단 말이네!" 사이러스가 아쉽다는듯이 투덜거렸다.


"설마 그 독한 놈이 같은 아군을 공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텔러스가 동감하며 말했다.


사이러스가 수송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송선의 1층과 2층 사이의 공간ㅡ

실질적인 화물 수송칸은 위와 아래에서 보기에는 복잡한 전선들이 가득한듯이 보였지만,

사실 그것들은 실제 공간을 가리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한 서비터가 위장용 가짜 전선 덮개판 하나를 치우자, 그 안의 빈 공간으로 스카웃 위장 포막들에 싸인 유물들이 드러났다.

스카웃 위장 포막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 데스윙 터미네이터의 날카로운 인공 센서들에 걸렸을지도 모르지, 사이러스는 생각했다.

이번에 챙긴 유물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직도 하차 작업 중이였다.


그때 타르커스가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다소 그늘져 있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경례하고는 말했다.

 

"..이번 징발 작전을 위해 수 명의 전투-형제들이 사망했습니다.

지난번 아케론 성전에서의 피해가 크다고는 하나, 꼭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자네를 위해서는 특별히 다크 엔젤 군단 컴퍼니 마스터가 사용했다던 아티피셜 리젼 파워 아머를 남겨놨다네.

아 그리고 자네, 움브라-페록스 패턴 볼트건 가지는게 소원이라 그랬던가?

마침 운 좋게도 한 정 이번에 건졌다네. 다른 형제들 눈 피해서 몰래 자네 숙소에 넣어뒀으니 꼭 확인해보게." 


가브리엘이 그의 어깨 견갑에 손을 올리고는 한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예! 꼭 이렇게 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챕터 마스터!

현명하신 판단이었습니다!" 


"역시 그렇지? 하하하!"


가브리엘을 따라 모두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곧 무기고는 하하호호, 흥겨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

..


더 락의 어딘가,

침침한 조명 아래,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 아즈라엘은 무언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 천천히 아즈모다이가 다가와 가벼운 헛기침으로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괜찮으신지요?" 채플린 아즈모다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즈리얼은 기계수로 대체된 손목 부분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아 괜찮네.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네.

그 덕분에 오히려 지금 더 냉정해질 수 있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떻게 눈을 속였을지 대충 감이 오더군..

그 전선들..흥분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형태를 돌이켜보니 분명 쓸모 없는 전선들이였어.

그러니 그 전선들 아래에 진짜 빈 공간이 있었겠지. 하하, 분노에 눈이 멀었지 뭔가?"


"...." 아즈모다이는 침묵을 지켰다. 


"허허, 괜찮다네. 내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이라 생각한다네 오히려.

침착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적의 거짓에 속았지. 참으로 어리석었네.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이야."


"허나..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아 마침 다 되었네.

자..이번 언포기븐 소집의 안건이네. 블러드 레이븐에 대한 안건도 새롭게 올렸다네."


"그 말인즉슨.."


"그래. 역시, 크림슨 세이버의 최후에 대한 경고가 이제는 많이 흐려진 모양이야..

그렇다면, 새로운 경고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겠지?"


"...그 도둑놈들..더 퍼스트의 분노가 무엇인지,

똑똑히 맛보게 될 것이다!"




....

한편 그 시간, 블러드 레이븐의 함대는 워프 여행을 통해 다음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유일하게 차단막이 내려오지 않은 전망창을 통해, 휘몰아치는 워프의 조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약한 필멸자들이라면 정신을 상하고 심지어는 정신병을 일으킬 터였으나,

챕터 마스터 가브리엘과 같이 굳건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자에게는 그저 휘몰아치는 해류에 불과했다.


가브리엘은 사이러스의 인기척을 느끼고 물었다.

뒤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와 사이러스는 먼 옛날 크로누스 성전 때부터 함께한 전우 중에 전우였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역시, 괜찮은지 염려가 됩니다..

아즈라엘..이번은 우리가 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역시 그와 다크 엔젤은 위험한 것이 아니였을런지요?"


"염려 말게. 다..생각이 있으니."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얕보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