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배신


아스라니와 일라나는 신전 근처에 가는 걸 꺼렸다.


물론 다른 모두는 정반대였다. 사드마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이 행성에 사는 이들 대부분이 그 신전을 찬양했다. 그 과격한 아름다움, 넘치는 색과 소리에 열광했다.


매일같이 색다른 식사가 제공되었으며, 그 재료는 행성과 종족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스라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동료라고?” 일라나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실제로 그럴 만한 일이었기에 아스라니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우리만 이런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저번의 우르비 님도 그렇고. 분명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데가 있어? 다른 별들도 이곳처럼 신전들이 세워진다던데.”


“뭐라도 하지 않으면 늦을거야.” 아스라니는 이미 결심을 굳힌 눈치였다. “이제 저들이 은하


의 어린 종족들에게도 손을 뻗을 거야. 모두를 노예나 그보다 더한 걸로 만들겠지. 그럼 아엘


다리는 짐승만도 못한 괴물로 전락할 걸.”


“방법은 생각해봤어?” 일라나는 여전히 못미덥다는 표정이었다.


“시도는 해봐야지.”



“저기요, 잠시만.. 어이쿠!” “조심 좀 하쇼.” 이보다 더 나른할 수 없는 소리가 밑에서 답했다.


아스라니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걸로 몇 번째인지 모르겠군.” 그는 겨우 한숨을 내쉬며 분수대 위에 걸터앉았다.


아스라니가 택한 방법은 괜찮아 보이는 이들을 찾아 설득하는 것이었다. 대놓고 정보망에 입


체영상을 올리기도 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탓이다. 좋은 점은 의외로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았단 점이다. 나쁜 점은 누구도 끼어들길 원치 않는다는 거였고.


‘성가셔 하는 걸까, 두려워하는 걸까?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지.’


인도자들은 이미 이 행성의 지배계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곳곳에서 방종을 설


교했고, 지나친 쾌락과 고통의 미학에 대해 혀를 놀려댔다. 열 중 아홉이 그들의 말에 귀기울


이며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아스라니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온통 희미하고 어둡고 나른한 이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


로 과연 얼마나 더 갈까? 인도자들이 제시하고 아엘다리가 갈망하는 쾌락은 보다 끔찍한 것이


었다. 머지 않아 지금에 질리면 나아가서는 서로를 고문하고 죽여댈지도 모른다.


“설마!” 아스라니는 잠시나마 떠오른 암울한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 그런 야만은 오래 전에 


잊혀진 것이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성과는 있었나?” 우르비가 아스라니의 집을 찾은 지도 세 번째였다. 밖에서 맘놓고 대화하긴 


어딘지 꺼림칙했다. 아스라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도 하네. 다들 미쳐가는 세상이니 말이야. 조금이라도 다른 티를 보이는 게 두려운 거지.”


“그들이 뭉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아스라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쩌면 우리가 미친 놈들 일지도 모르죠.” 


“그런 말 말게!” 자조 섞인 아스라니의 말에 우르비는 펄쩍 뛰었다.


“희망을 놓아선 안되네. 머잖아 그들에게 저항하는 이들이 더 늘어날 거야. 버텨야만 하네.”


“아스라니, 손님이야.” 갑자기 일라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괜찮아? 누군데 그래?” 아스라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왔다.


사드마가 이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날 용서해주게, 아스라니.” 들어온 지 한참동안 사드마는 한탄과 참회의 말을 늘어놓았다.


대충 요약하면 자신은 인도자들이 그런 괴물들인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사드마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매일같이 죽어나간다네. 제물로, 실험대상으로 말일세. 그들은 완벽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속였어. 이제와선 희생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럴 권리가 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네.”


아스라니도 일라나도, 우르비까지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몰랐다.


인도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드마가 문제였다. 분명 그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속은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이제 와서 자넨 뭘 하고 싶은 건가?” 아스라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구해주게. 신전 밑의 비밀 공간에 수많은 인질들이 있네. 그들을 구하면 인도자들이 얼마나 가증한 놈들인지 증언해줄 거야. 부탁이네. 나를 도와주게.” 


사드마는 거의 옷이라도 잡고 늘어질 기세로 애원했다. 아스라니는 애처롭기도 했지만 의심이  가시질 않았다.


“생각해 봐야 하네. 우리에겐 그럴 힘이-” “안돼!” 사드마가 울부짖었다. “그들은 오늘 죽을 


거야. 막아야만 해. 날 못 믿는 건 아니지? 우린 친구잖나?”


“일단, 사드마.” 우르비가 사드마를 일으켜 세웠다. “잠시 나가있게. 얘기를 해봐야겠네.”



사드마는 훌쩍거리며 문 밖으로 나갔고, 남은 셋은 가능한한 조용히 속삭였다.


“믿을 수 없어요.” 일라나가 먼저 말했다. “이제서야 탈퇴를 하겠다니, 게다가 인질들 얘기도 수상해요.”


“저도 동의합니다.” 아스라니가 우르비를 보며 말했다. “사드마는 제 친구였지만 지금도 믿을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우르비도 동의하는 듯 했다. “맞는 말이네. 나르쉬 놈이 우릴 처리하려는 걸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일라나와 우르비는 얼이 빠졌다.


“생각해보세요. 신전은 인도자들의 본거지에요. 사드마의 말을 다 믿을 순 없지만, 분명 잡힌 


이들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허점을 칠 수 있어요.“


“무모한 소리! 도대체 어떻게 우리 셋이 저들을 헤집어 놓겠나?”


“보안용 무기를 주십시오. 가능하면 치명적인 걸로 말입니다.” 아스라니가 대놓고 말하자


우르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알겠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뭔가 생각을 해놔야 하네.”




잠시 후 아스라니는 밖에 있던 사드마를 껴안았다.


“사드마, 이 친구야. 고생많았네.”


“날 믿어 주는 건가?” 사드마는 넘치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인질들을 구출하기로 협의를 봤네. 자네 친구가 설득한 것이니 감사하게.” 우르비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사드마, 인질들을 구출할 기회는 있나?”


“내가 보초들을 빼놓겠네. 그 다음에 우린 감옥에서 그들을 구할 거야.”


“어서 진행해야겠지. 안내를 부탁하겠네.” 아스라니는 금방에라도 신전에 뛰어들 듯 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밤에도 신전은 음울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명은 꺼지지 않아 오히려 낮보다 그 과장된 색이 두드러졌다.


“여전히 괴상한 곳이군요.” “그러게 말이네.” 아스라니와 우르비는 주위를 경계하며 신전 정


문으로 다가갔다. 일라나가 문을 만지자 아무 소리없이 문이 열렸다.


“가시죠.” 셋이 신전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주위의 모든 것이 그야말로 거슬리는 것 투성이였다. 좌석은 누가 앉으란 건지 굉장히 딱딱했으며, 황금빛 기둥에는 가시


가 잔뜩 돋쳐 흡사 장미덩굴 같았다. 색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부조화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신상이 눈에 띄었는데 여러 개의 팔과 가슴을 가진 아엘다리 모습이었다. 사타구니


는 가려지지 않아 뭐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였다.


“제단 아래쪽이라고 했네.” 녹색의 제단 아래쪽을 두드리자 제단이 열리며 그 아래 어두운 계


단이 드러났다. 셋은 서로 눈짓을 하며 한 명씩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엿보는 누군가가 따라 붙었다.




지하는 온갖 냄새로 들끓었다. 향긋하기도 하지만 뭔가 타는 냄새가 더 강했다.


“이런 데서 잘도 버티는 군.” “저들에겐 좋은 냄새인가 보죠.”


“조용히.” 아스라니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는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질이 있긴 했군요.” 일라나가 중얼거렸다. 


“저 앞이군.” 조심스레 걸어가자 투명한 창들 너머로 벌거벗은 아엘다리들이 보였다.


대부분은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몇몇은 팔이나 다리 한 쪽이 없었다.


“세상에!” “그거 되게 놀란 모양이네, 친구?”


사드마가 뒤에서 짤막한 총을 들고 나타났다. 얼굴에는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건가? 굳이 여기까지 데려오고 나선 죽일 셈이었군.” 아스라니는 분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건 자네 탓이야. 아스라니. 자넨 인도자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어. 근데 걷어찼지.”


“비열하기 짝이 없군. 이게 친구를 대하는 예의인가?”


“조용히 하시죠. 그리고 얌전히 구는 게 나을 겁니다.”


“틀렸네.” 우르비는 재빨리 손을 휘둘렀고 눈부신 광선이 사드마의 손을 잘라냈다.


사드마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이 자식들, 날 속인건가?!” 사드마는 팔을 감싸며 겨우 말을 뱉어냈다.


“자네 꽤나 멍청하군. 이 정도로 속진 않는다네.” 우르비는 사드마의 총을 주워들었다.


“준비는 단단히 해왔지. 이제 우린 저들을 정말로 구할 거네.”


“유감이네. 사드마.” 아스라니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자네를 믿고 싶었는데.”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퍼지고는 진동이 일었다. 아스라니는 휘청거렸지만 이내 우르비


를 부축했고, 일라나도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사드마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뭐야, 무슨 짓을 한건가?” 아스라니의 질문에 답하듯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사드마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다들 죽일 생각이었어. 사드마는 물론이고.” 일라나는 그야말로 치가 떨렸다.


그리고 질주가 시작되었다. 넷은 너나 할 것 없이 계속해서 뛰기 시작했다.


연기가 계속해서 앞길을 막았고 그들은 연신 기침을 토했다.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돌과 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드마는 피할 겨를도 없이 


파묻히고 말았다.


셋은 제단 위로 빠져나왔고 신전이 멀쩡한 데에 놀랐다. 아마 예상보다도 더 깊거나 먼 곳에 


있었던 듯했다. 밖은 다행히 아직 어두웠다. 


“사드마는 죽은 걸까?” 아스라니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밑에 있었으니 그럴 거야.” 일라나가 아스라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셋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