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끝내게." 금빛 피부의 전사가 말했다.
금빛 전사는 마그누스와 러스 사이에 마치 주먹다짐을 말리는 중재자처럼 서 있었다. 워드 베어러 군단 프라이마크의 숭고한 풍채를 바라본 순간, 아흐리만이 이전까지 품고 있던 로가의 옛 인상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로가의 두 눈가에는 검은 먹(kohl)이 칠해져 있었고, 그 눈동자에는 무한한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와는 결코 나누지 못할 슬픈 비밀을 짐 지고 있는 사람처럼.
로가의 갑옷은 어두운 색으로, 영겁의 세월 동안 바다 밑에 놓여 있었던 돌의 색이었다. 갑옷을 이루는 모든 장갑판은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색조가 잡혀 있었으며, 그 위에는 콜키스의 고대 서적들에서 필사한 설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쪽 견갑 위에는 묵직한 책 한 권이 매달려 있었는데, 텔레포트로 일은 바람에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페이지들이 펄럭였다.
로가의 양 어깨 위에는 무척 짙은 진홍색의 망토가 매달려 있었고, 비록 겉보기에는 비무장 상태인 것처럼 보였지만, 프라이마크에게 있어 진정으로 비무장 상태란 있을 수 없었다.
아흐리만은 세 프라이마크 사이에 오가는 모든 말들을 들었다. 그들이 나누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정신 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도록 아로새겨졌다. 그 모든 대화 속에 담긴 의미가 남은 생애 동안 그를 사로잡게 되리라.
"비켜라, 로가." 리만 러스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침착한 척 내보였던 겉치장은 그 순간 이미 떨어져 나가 있었다.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내 두 형제가 서로 피를 보려 하는 참인데도 말인가?" 로가가 말했다. "그건 내가 참견할 일이 맞네."
"비키라고 했다." 러스가 가죽이 감긴 검 손잡이 위로 손가락을 구부리며 되풀이해 말했다. "도와줄 생각이 아니라면─"
"어쩔 텐가? 나도 베어 버릴 텐가?"
러스가 머뭇거리자, 로가는 러스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부탁이네, 형제여.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로가는 말했다. "이 유혈의 길을 계속한다면 자네가 잃어버릴 애정과 우애의 유대를 생각해 보게."
"외눈박이 놈은 선을 넘었어, 로가. 놈이 우리 피를 흘렸으니,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지."
"오해로 인해 흘린 피 아닌가." 로가가 말했다. "화를 가라앉히게, 형제여. 분노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아. 분노가 자네의 마음에 안개를 드리우게 내버려 두면, 결국 분노가 가신 뒤에 남는 것은 후회뿐이네. 듈란-Dulan에서의 일을 기억하나?"
"그래." 그렇게 말하는 러스의 얼굴에서 분노의 기운이 누그러졌다. "사자왕과 함께했던 전장이었지."
"그리고 자네는 쓰러진 폭군의 옥좌실에서 존슨과 주먹다짐을 벌였지. 그럼에도 자네들 두 사람은 지금 맹세를 나눈 전우가 아닌가. 이 일 또한 그와 다를 바가 없네."
마그누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아흐리만은 숨을 참았다. 이처럼 위대한 존재 둘이 공격성을 거의 표정 위로 드러낸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장면이란, 그가 지금껏 보아온 것들 가장 위험한 광경이었다.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할까?" 포시스 트'카르가 아흐리만의 지시를 구하며 속삭였다.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걸세." 아흐리만은 말했다.
세 전사들의 불멸의 육신 속에는 거대한 에너지가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 사이로 불똥을 튀기는 긴장감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곤두서 있었다. 아흐리만은 세 전사들의 막대한 사이킥적 존재감이 자신의 머리 뚜껑을 짓눌러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감히 감각을 개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네도 외눈박이 놈 편에 서려는 건가, 로가?" 러스가 말했다. "더러운 마술 따위나 다루는 놈을? 저기 있는 저... 괴물의 시체를 한 번 봐. 내가 심장에 총알을 박은 녀석의 시체를. 저걸 보고도 내가 틀렸다고 말해 보라고."
"진-시드의 불안정함이 두 형제가 서로 전쟁을 벌일 이유가 되진 못하네." 로가가 타이르듯 말했다.
"이건 진-시드가 불안정하고 자시고의 문제만이 아니야. 이건 요술이라고.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마그누스가 흑마술의 수렁 속에 빠졌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눈을 감았지.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돼, 로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놈의 군단에 속한 모든 전사가 오염됐어. 전부가 사술과 사령술을 다루고 있다고."
"사령술이라고?" 마그누스가 비웃으며 말했다.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충분히 잘 알고 있지." 러스가 내뱉었다. "넌 선을 넘었다, 마그누스. 이제 여기서 끝이야."
로가가 자신의 흉갑 위에 금빛 손을 얹고는 말했다. "그런 힘을 다루는 것은 모든 군단이 마찬가지이네, 형제여. 자네의 룬 사제들이라고 다른가?"
러스는 고개를 젖히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포효하듯 터져 나온 그 웃음소리에는 크나큰 유쾌함과 시끄러운 우스움이 담겨 있었다.
"폭풍의 자손들을 저 요술쟁이들과 비교하겠다고?" 러스가 물었다. "우리가 다루는 힘은 펜리스의 천둥 속에서 태어나 세계 대장간에서 단련된 거야. 그 힘은 자연 세계의 힘으로부터 와서 우리 전사들의 영혼의 용기로 모양지어지는 것이지. 사우전드 선을 더럽힌 부패에 오염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이제는 마그누스가 웃음을 터트릴 차례였다.
"정말로 그 소리를 믿고 있는 거라면, 자넨 정말로 바보 천치로군!" 마그누스가 말했다.
"마그누스! 그만하게!" 로가가 꾸짖듯 외쳤다. "지금은 이런 논쟁 따위를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네. 내 가장 아끼는 형제 둘이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실망하실지 내 비통할 지경이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이것인가? 우리 아버지께서 이 천상을 이 잡듯이 뒤져 가며 우리를 찾으신 이유가 고작 이런 거였겠나? 우리가 필멸자들처럼 한심한 말다툼이나 벌이라고?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위대한 운명이 주어져 있고, 그렇기에 이런 사소한 일들 따위에는 초연해야만 하네. 우리는 아버지의 정복의 화신들이요, 이 우주를 그분의 영광으로 밝히기 위해 풀려난 불타는 정의의 혜성들일세. 우리는 아버지께서 오신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은하계로 파견된 그분의 사자들이란 말일세. 우리는 마땅히 제국의 가장 선하고 순수한 것들의 밝게 빛나는 예시가 되어야만 하네."
로가의 말은 그 목소리를 듣는 모두에게로 와닿았다. 그 말에 담긴 근본적 진리가 마치 마음을 달래는 연고처럼 스며 들었다. 아흐리만은 자신들이 상황이 이렇게 통제에서 벗어나 과격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데에 수치심을 느끼며, 이 상황이 내포한 진정한 공포를 보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와 맞서 싸우다니.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
황금빛 프라이마크는 내면에서부터 빛을 발하는 듯 보였고, 그가 말을 하는 동안 피부에서는 신성한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한때 성내듯 쿵쾅대던 심장은 이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페이스 울프 전사들은 조금씩 검을 낮췄고, 사우전드 선의 방어 태세 또한 그에 화답하듯 느슨하게 풀어졌다.
"난 저 녀석이 이 세계를 파괴하도록 좌시하지 않을 걸세." 마그누스가 코페쉬를 낮추며 말했다.
"이 세계는 자네가 지키고 말고 할 게 아니야." 러스가 쏘아붙였다. "이 세계를 발견한 건 내 군단이야. 이 세계는 내 것이니 내가 보기에 적절한 대로 다룰 걸세. 이곳의 백성들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졌어. 우리와 합류하고 살거나, 우리와 맞서 싸우고 죽거나. 그리고 놈들은 죽음을 선택했지."
"세상 모든 것이 다 흑백논리로 정해지는 건 아니네, 러스." 마그누스도 응수하였다. "우리가 마주치는 것마다 전부 파괴해 버린다면, 이 성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기는 것에 의미가 있지. 성전이 끝나고 나면, 그때에나 우리는 남은 것들을 다루게 될 거다."
마그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그때가 되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폐허뿐일 걸세."
리만 러스가 서리 두른 칼날을 낮췄다. 살인적인 분노는 이제 잠잠해진 상태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러스는 그리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로에서부터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도로 끝에 다다랐을 때에서야 다시 고개를 돌려 마그누스를 마주보았다.
"이게 끝이 아니야." 러스가 단호히 말했다. "펜리스의 피가 자네 손에 묻었으니, 우리 사이엔 정산할 몫이 남아 있다, 마그누스. 이 먈나르-Mjalnar의 칼날에 걸고 맹세하지."
늑대왕은 자기 손바닥에 대고 칼날을 그어, 반짝이는 진홍색 핏방울들을 부서진 바닥 위로 흘렸다. 그리고 늑대왕이 고개를 젖혀 울부짖자, 온 산맥이 울부짖는 것 같이 될 때까지, 전사들이 주군의 포효에 목소리를 더하였다.
그 비통한 울부짖음은 산의 가장 높은 첨탑까지 치솟고, 가장 깊은 골짜기에까지 울렸다. 그것은 죽은 전사들에 대한 애가(哀歌)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오싹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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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유명한 아크 리치 사건의 전말.
이전에 누가 갤에 이 부분에 대해서 글을 올린 게 있었는데, 이렇게 번역을 하면서 다시 보니까 고의였는지 본인도 잘 몰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편파적으로 글을 써놨더라고.
그 글에서는 스울이 민간인 학살을 하니까 정의로운 마그누스랑 사선이 그걸 못 참고 말리다가 유혈사태가 났다는 마냥 써 있었는데, 실제 전말을 보니 그런 거 없음.
스울이 민간인 학살을 아예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마그누스랑 사선은 민간인 학살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다. 아흐리만 같은 양심파도 좀 불편하다 뿐이었지. 저놈들이 관심이 있었던 거는 그냥 도서관 지키는 거뿐임.
민간인 학살을 막기 위해 스울과 충돌한 게 아니라, 스울이 도서관까지 부숴버리겠다니까 그거 막으려고 충돌한 거다.
애초에 앞장에서도 언급이 나왔지만 사선이 산 중간 부분이 공습을 가하고 워베가 제국군이랑 같이 산 아래서부터 훑으면서 올라왔다면 스울은 산 위쪽으로 바로 강습해서 도시의 지도부를 제거하는 것이 전략이었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을 할 여지도 적었음. 30K 스울 성향 상 아예 안 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리고 지들은 육체 변이 일으킨 배틀-브라더 죽여 놓고 사선에서 고작 늑대 몇 마리 죽였다고 피의 복수니 어쩌니 했다고 스울이 졸렬한 것처럼 얘기해 놨던데, 늑대가 죽은 건 맞긴 한데 파보니에서 스울들한테 사이킥 써서 생고문한 거는 언급도 안 했음.
여튼 여기서는 스울이 잘했고 사선이 나빴다고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이전에 정보가 너무 편파적으로 퍼져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연표상 저때 로가는 이미 타락했음
그렇다고 하더라. 민간인 학살이야 타락 전에도 하던 짓이지만 - dc App
로가의 카디아 발견이 966.M30이고 저 사건은 999.M30임. 이미 타락하고도 30년 넘게 흐른 후였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