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스문트는 눈길을 돌리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팔랑크스에서의 일이었습니다. 함대가 분산되어 상황에 따라 테라로 복귀하거나 이스트반으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기스문트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나타니엘 가로의 폭로 이후, 모든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 함선 내부을 감돌던 긴장감을 기억했다. 일부는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증거를 본 자들은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없었다. 진실이 드러난 이후, 임페리얼 피스트는 전쟁을 준비했다.


저는 하부 거주 구역을 걷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함 말고는 생각 할 수 없었습니다.”


네게 명확함이 부족했느냐?”


돈의 건조한 목소리는 그의 안색마냥 분위기를 읽어낼 수 없었다. 지기스문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제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원형 홀 주변에 찾아온 밤의 그림자로 향했다.


어쩌면 목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이라?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음에도 목적을 찾았더냐?”


지기스문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제가 받은 명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지기스문트는 눈을 깜박이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당시 팔랑크스에서의 나날들은 여태까지의 평생보다 기억에 선했다. 당시에 나타니엘 가로의 말이 자신에게서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가기라도 한 듯, 위축된 느낌이었다.


여태껏 오랫동안 대성전을 수행하면서 일말의 의심 없이 걸음을 디뎠었습니다. 모든 전역의 모든 전투, 모든 일격에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 힘이었으며,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돈의 눈은 어두워진 듯 했다.


캡틴, 네 생각은 명료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그런 것 같습니다, 주군.”


그래서 명을 거역했던 것이냐? 네 목적의 순수함이 어지럽혀졌기에?”


돈의 목소리에서는 비록 억누르고 통제되었을지라도 노기가 분명했다.


아닙니다, 주군. 저는 당신의 뜻에 의문 없이 행했을 것입니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지기스문트는 돈의 목소리에서 얼음을, 이루어지고 있는 심판을 느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전부 말씀드려야 한다.’ 라고 생각했으나, 말을 이으며 아버지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저는 캡틴 가로가 데려온 민간인들의 거주 구역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조용했기에 홀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해 보면 그곳은 조용했다. 함대 전체가 준비를 갖추느라 부산했고 긴장감이 깔렸지만, 당장 그가 걷고 있던 갑판은 조용했다. 그 순간, 활발한 순간 사이에서 고요함의 회랑을 따라가는 자신 만큼이나 낯설게 그 일이 벌어졌다.


그 여인이 ‘1중대장이시여.’ 라고 말을 건 순간에야 제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검을 뽑고 바로 그쪽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이 누구더냐?”


지기스문트가 회상하며 시선을 들어올렸다.


리멤브란서였습니다.” 당시의 기억이 지금 당장보다 생생해졌다. 옅은 색의 로브를 입은 인간 소녀였다.


케일러였습니다. 주군께 말을 걸었던.”


기억한다.”


돈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유프라티 케일러 주변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기스문트는 일종의 사교(邪敎) 조직이 소녀의 주변에 생겨났음을 알고 있었다. 제국의 진리에서 갈려진 한 분파였지만, 위험했다. 어떤 이들은 소녀가 마녀라고, 다른 이들은 성녀라고 말했다. 소녀는 부정할 수 없는 자신감과 기품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도 그러했다. 지기스문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돌이 늘어선 통로에 서 있었던 케링러를 보는 순간 흐릿해진 것 같았다.


케일러는 단지 그 곳에 서서 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오리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러한 차분함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연약한 얼굴 속에서 이해의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묻지도 않은 질문의 답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렇게 말했었다.


무어라 말했더냐?”


돈의 질문하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가져온 현재로 기억이 녹아들었다.


제가 당신을 찾아가 테라로 돌아가기를 청할 만큼 충분했습니다, 주군이시여.”


무엇이기에 그리도 충분했느냐?”


돈의 질문이 지기스문트의 귓가에 맴돌았다. 순간이 확장되면서 활발해진 감각이 그를 채웠다. 아버지의 등 뒤 10보 뒤에 있는 대좌의 완벽한 결, 미풍속에 흔들리는 석상을 감싼 천의 움직임. 바람 속에 떠다니는 먼지들, 연기의 궤적과 먼지,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지금 느끼는 냄새는 지금은 반쯤 잊은, 이오누스 평원의 유랑캠프에서 지냈던 짧은 유년기의 그것임을 느꼈다. 잃어버린 고향의 냄새였다. 반쯤 잊은 수십 년의 시간 찌꺼기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이것이 떠올랐는지 궁금했다.


지기스문트는 돈의 눈을 마주보았다.


단순히 말로만 무어라 하지 아니었습니다.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지기스문트는 말을 멈추고 케일러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정하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케일러의 목소리에는 비탄이 서려있었다.


전쟁이 테라로 닥칠 것이라 보여주었습니다.


돈이 지기스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그 가능성을 떠올리는데 리멤브란서는 필요치 않았다.”


그 동작에 담긴 위압은 자신의 심장을 노린 총구와도 같았다.


호루스가 여기 오지 않고도 우리를 격파하려 들 수 있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이제 너는 내가 내린 결론을 돌려주며 그것을 계시라고 부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