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스가 여기 오지 않고도 우리를 격파하려 들 수 있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이제 너는 내가 내린 결론을 돌려주며 그것을 계시라고 부르는구나.”


주군이시여, 저는 당신께서 동의하지 않으시길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기스문트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허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호루스가 전쟁을 테라로 몰고 오리란 당신의 판단에 의문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선택을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했습니다.”


돈이 시선을 돌리자 그의 얼굴이 갑자기 깔린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반역자들이 여기에 올 수 있느냐는 사실의 여부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입니다.”


지기스문트는 말을 하며 그 때를 회상했다.


선택하셔야만 합니다.


케일러가 말했다. 자신은 그녀의 어리석음이 퍼지지 않도록 숙소로 돌아가라 명했어야 했다.


임페리얼 피스트의 1중대장이신 지기스문트시여, 당신은 스스로의 미래와 군단의 미래를 선택하셔야만 합니다.


그녀의 말이 자신을 자리에 못 박히게 만들었다. 잊었고 낯설어진 공포가 생생하고도 강렬하게 차올랐다.


어디에 계실지 선택하셔야만 합니다. 당신의 임무에 따라 행동할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에 당신의 아버지 곁에 계실 것인지를.


지기스문트는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무엇의 마지막 말이오?”


그녀가 말했다.


한 때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마지막입니다.


지기스문트는 시선을 아버지에게 고정시키며 자신이 한 말의 효과를 읽어내려 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말이 흐릿한 현실 속에서 꿈을 움켜잡듯, 악몽이 피어나듯 생생했다.


저는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함선들이 들어찬 하늘은 강철이었다. 불길이 열대성 폭우처럼 쏟아졌다. 갑주를 입은 시신들이 그들 사이를 오가는 타이탄의 높이만큼이나 쌓였다. 수십만, 수백만,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무너진 벽 사이로 난입했다. 불타는 황궁의 염화에 날개가 붉게 비치는 천사가 있었다.


적은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놈들의 숫자는 해를 가리고 지면을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시여.”


돈이 노호하며 말했다.


많건 적건 오게 두어라.”


우리의 숫자는 적을 것이나, 놈들의 숫자는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그 이상입니다. 그게 우리가 종말을 맞이할 때의 핵심입니다.


물이 쏟아지듯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들이 검게 그을린 성벽에서 추락하며 부서지고 유혈이 낭자했다. 연기의 줄기가 너무나 높아 함선으로 가득 찬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 적은 계속 몰려들었다. 폭발한 함선의 잔해들 주변으로 더욱 더 많은 병력이 지상으로 강하했다.


케일러가 말했다.


무슨 일이 닥칠 것인지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보이는 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우주는 끝없는 전쟁에 휘말렸다. 제국은 스스로 전복되었으며, 칼날의 끝에서 모든 것이 걸린 최후의 결전까지는 오직 시간문제였다.


지기스문트는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그리 될 것입니다, 아버지시여.”


제국의 육신이 마지막 숨을 몰아쉴 시기가 닥칠 것입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실임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지기스문트의 내면에서 또 다른 것이 보였다. 볼 수 없는 가까운 미래에 이름 없는 행성계 변두리의 우주에 자신의 시체가 부유하며 얼어붙은 모습을.


저는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 테라로 돌아오기를 선택했습니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가 결단을 내리기 까지 며칠을 고뇌했다. 그러나 가능성이 마음을 갉아먹었다. 은하계에서 호루스가 제국을 향해 움직인다면 어디일 것이고, 다른 결과가 일어날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길은 무엇이오?


지기스문트의 물음에 케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죽음입니다. 이름 없는 별의 빛 속에서 죽음으로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외롭고 잊혀진 죽음입니다.


그녀는 조용한 복도에 지기스문트를 남긴 채 떠났다.


그게 제가 테라로 돌아온 이유입니다. 저는 제가 이곳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고, 그 점은 진심이었습니다.”


돈은 여전히 지기스문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적이 오라 하십시오. 저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버지시여.”


침묵하는 돈의 얼굴은 바닥을 내려다보는 석상의 움직이지 않는 모방이었다. 지기스문트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흐릿해지는 빛을 꿰뚫는 듯 했다. 지기스문트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선택받았다. 이 순간 나는 여기에 있기로 정해진 것이다.’


돈은 황혼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왼손을 굽히고 장갑을 낀 손가락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그가 시선을 올리자, 지기스문트는 아버지의 눈에서 차가움을, 얼음 같은 번득임을 보았다. 돈이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자 나오는 목소리는 닥쳐오는 폭풍의 속삭임 같았다.


네가 날 배신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