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은 이 대화를 즐기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틀어박혀 4개의 군단을 지휘하고 있네. 무엇이 그를 위협할 수 있다는 건가?"
"7개 군단이 집결하고 있네. 자네의 말대로 아이언 워리어 군단이 우리와 함께한다고 해도 아직 5개 군단이 더 남아있지. 이쪽은 6개 군단이니 이기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 피해는 극심할 것이야.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던가? 우리에겐 테라라는 목표가 남아있고, 5개 군단을 제압한 뒤에 남아있을 호루스의 군세로는 황제를 이길 수 없어."
자'펜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겔 탈은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소름 끼치는 침묵, 불신자를 마주했을 때 풍기는 분위기였다.
"자네는 자네 군단의 채플린들을 도무지 믿지 않는군. 나이트 로드 군단과 알파 군단에 대한 우리의 암약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가? 로가께서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설파하셨다네. 우리에게 필요한 군단은 전부 우리 쪽으로 돌아섰어. 충성파 군단이 이스트반 V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종말 뿐이다. 아르겔 탈,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강하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내 그들의 시체로 증명해 보이겠네."
"이 음모는 정말로 구역질이 나는군."
"프라이마크께서 계획하시고, 호루스가 결정한 작전이네."
아르겔 탈은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것은 아우렐리안의 계획이 아니야. 그 분의 이름을 빌린 에레부스와 코르 파에론의 계획이지. 그들의 비열한 악취가 여기까지 나는 듯 하이. 로가께서는 황금과도 같으며 빛나는 영혼을 가지신 분이다. 그런 분께서 이런 저급한 속임수를 계획하셨을 리가 없어. 이것은 그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하찮은 것들이 세운 계획이다. 프라이마크께서는 그 작자들을 아끼시지. 그 독사같은 인간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셔."
"마스터 오브 페이스(Faith)에게 무례한 언사는 그만 두도록 하게."
그의 말에 아르겔 탈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었다.
"마스터 오브 페이스? 코르 파에론이? 마치 암살자가 독 묻은 단검을 숨긴 것 같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군단의 정치판에서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아. 코르 파에론이 군단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날을 보게 되다니 말야. 특히 자'판, 자네는 원래 그를 싫어하지 않았나? '불순한 영혼', '가짜 아스타르테스'. 자네가 그를 칭했던 말들이라네."
마침내 자'펜이 눈을 돌렸다. 창피함에 눈길을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했다.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지."
"그래. 자네를 보니 그렇다는 것을 알겠군."
아르겔 탈은 자신의 뼛속 깊이 엄습하는 고통을 줄이고자 다시 한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주먹이 욱신거렸다.
"그럼 이제 대충 정리하도록 하지. 나는 통합해야 할 세계가 있어서 말야."
"괜찮다면 나 역시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대답해 줄 테니 물어보게."
"시레니 말일세. 노화 방지 시술을 또 받은 것 같더군."
"그 일로 날 탓하거나 그녀를 책망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프라이마크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었네. 그 분께서는 여전히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계시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명하셨네."
칼같이 자르는 그의 대답에 자'펜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알겠네. 그럼 아퀼론은?"
아르겔 탈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전과 똑같지.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오히려 전에 비하면 의심마저도 줄어든 편이라네. 그는 황제에게 이 일에 관련하여 어떤 소식도 전할 수 없을 게야."
"내가 심어놓은 안전장치는 어떤가?"
"문제 없이 기능하고 있다네."
"직접 확인해봤겠지?"
채플린은 그의 형제가 꽤 불편해 하는 것을 느꼈다.
"확인해보았네.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 어차피 오늘 밤에 재정비를 할 계획이었으니 말일세."
그는 자신의 업무 책상으로 가 허리에 매달려 있던 경전을 펼쳤다. 천천히, 하지만 꼼꼼하게, 그는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경전의 책장을 넘겼다. 각 책장마다 성스러운 주문과 의례 기록, 찬양 구절과 의식 순서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르겔 탈은 그 책으로 다가갈 때마다 프라이마크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비밀을 읽는 것만 같아 가슴이 쓰라렸다. 짐작한 대로, 로가는 채플린 형제단과 자신은 결코 알 수도 없는 비밀들을 많이 공유한 듯 싶었다.
"책의 내용이 더 풍부해졌군."
"그렇다네. 매달 우리는 성스러운 일을 행하며 얻은 구절로 새로운 장을 채워나갔지. 프라이마크의 정신은 이상으로 불타오르고 있네. 우리는 그것을 첫 번째로 듣는 자들임을 명예롭게 여기고 있지. 그 말씀을 적인 종이가 이제 1천 장이 넘는다네."
제 1301 함대의 데이터 뱅크에는 프라이마크가 작성한 서한을 전산화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아무나 읽기엔 너무도 중요한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서레이티드 선 챕터의 채플린들은 각자가 서한 조각들을 자기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들이 거니는 길목마다, 그들이 만나는 세계마다 로가의 말씀이 퍼지도록, 그 자신들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경전이 된 것이다. 아르겔 탈은 사 파레스의 유해에서 로가의 서를 입수했고, 기밀 유지를 위해 그것을 파기하였다. 불경한 행동인 것을 알았지만, 잘못된 자의 손에 떨어지게 놔두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채플린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겔 탈. 자네 말처럼 나는 너무 오랫동안 군단을 떠나있었네. 나는 덜떨어진 4군단의 저능아들을 개화시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말았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형제들과 함께 로가의 말씀을 나누고 우리 군단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것이었는데도 말이야."
"사과는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데 행성 강하까지 38분 남았네. 일출 전에 갑판으로 올 수 있도록 하게."
자'펜은 그의 아이 렌즈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데이터 목록을 읽고 있었다.
"이번 교전에는 전장 수칙이 있군. 리멤브란서들을 전장에 대동하는 것인데, 난 이 수칙을 자네가 용인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진홍의 군주는 대답 대신 조그맣게 툴툴 거리며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잠시만 기다리게."
문 앞에 다가선 아르겔 탈이 멈췄다.
"뭔가?"
"이미 일어난 일들은 빠르게 흘려보내게. 형제여, 지금은 다가올 반란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 몸 속에 뭔가 느낀 적 없었나? 이를테면, 변화 같은 것 말일세."
챕터 마스터는 갑자기 자신의 손이 욱신거린다고 느꼈다. 마지 누군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주먹을 헤집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르겔 탈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로 답했다.
"그런 적 없었네. 자네는 어떤가?"
자'펜은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새해맞이 첫 번역
이 소설 흥미진진한게 재밌네
나도 이 소설이 재미있지만 계속 읽고있으니 '호루스가 모든 반란을 주동했다' 에서 '호루스가 카오스한테 속았다'는 방향이 더 확실하게 기울어지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책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