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워리어 군단은 수십년 동안 대성전의 파성퇴이자, 감히 황제의 뜻을 가로막는 무수한 난공불락의 요새를 짓뭉갠 철퇴였다. 그로 인해 4군단은 공수 양면으로 공성전의 달인이자, 응징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프라이마크 페투라보 역시 면도날같이 예리한 감각으로 그 어떠한 적의 약점이라도 바로 간파하여, 잔혹하면서고 결정적인 전투로 확대하는 무자비하면서도 효율적인 지휘관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있어 패배 자체가 죄악이며,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대가도 지불했다.
그러나 이 경탄할 만한 기록이 군단 내부에서 끓어오르던 오랜 불화를 가려버렸다. 잘못된 운용과 더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불러온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외부로 드러나며, 4군단과 그들이 헌신하던 대성전의 불신이 생겨났다. 군단원들과 내성적인 프라이마크의 내면에 우울감이 자라났고, 편집증 역시 강해졌다. 호루스의 반역이 이스트반 3에서 드러나던 시기에 아이언 워리어 군단은 이미 은하계 도처에 분산되어 무수한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던 한편,모성 올림피아의 반란을 강경 진압하며 이미 위기의 상태였으나, 반역자들을 응징하라는 호출에 즉각 응답했다. 그러나 4군단의 군주 페투라보가 군단의 주력을 이끌고 이스트반 5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분노는 반역자가 아닌 충성파들에게 돌려졌다. 그들의 내면을 오랫동안 오염시켰던 독소가 결실을 맺었고, 그 이후로 이어진 어둠의 수 년 동안 수십억이 고통 받았다.
기원 : 밀집 대형과 강철의 군기들
4군단은 다른 형제 군단들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대성전 이전에 벌어진 테라 통합 전쟁 막바지에 창설되었으며, 4군단의 기원에 대한 표면적인 자료는 상당히 남아있다. 4군단의 기간 병력이 된 이들은 세크암라크의 아우로 고원지대에 자리한 범죄자들의 요새에서 살아남은 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일대의 호전적인 총기 애호자들 및 기술 부족들에게서 창설 초기의 군단원들이 보충되었다. 이들은 테라 통합 전쟁에서 황제의 세력에 편입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충성스러운 구역이 되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4군단의 진 시드는 평균 이상의 수용률과 더불어, 달의 유전 컬트에게서 기술 지원을 받기 이전 까지는 개선이 어려웠던 일부 군단의 진 시드와 비교하면 장기 이식의 거부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이 장점이 의미하는 바는 4군단의 전력이 급속도로 증강될 수 있음이었고, 다른 초기의 군단들이 1개 백인대 이상을 동원하기도 버거웠던 시기에 4군단은 전투 준비를 마친 다수의 완편 대대들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4군단은 1, 5군단과 더불어 매우 신속하게 대성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4군단은 테라 통합 전쟁 말기에 마지막 저항세력 격멸에 투입되었으며, 태양계 통합에도 참가했다. 이 사실에 대한 증거는 황궁에 남아있는 프레스코 (석회벽이 굳기 전에 그리는 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시도티레 궤도, 지덱 군도, 에코 얼음기지, 메흐 야스트 전투에서의 영광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메흐 야스트가 특기할 만한데, 이는 베누시안 응징 전역의 가장 핵심적인 전투였으며,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 4군단은 밀집 대형과 자랑스러운 강철의 군기들…” 로 황제의 지휘를 받으며 치명적인 리토 골렘과 마녀 군단들의 척추를 꺾었다고 한다.
이러한 4군단의 전과가 황제와 동맹을 맺은 화성으로부터 최신예 장비와 차량을 우선적으로 공급받는 한편, 원래대로라면 3군단으로 배치될 인력까지 흡수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다. (3군단은 타 세력의 사보타지로 추정되는 재앙적인 사태로 인하여 군단의 진 시드 대부분을 잃었다.)
진 시드 이식의 적합성과 뛰어난 전공으로 인하여 4군단은 대성전 초창기에 가장 병력이 풍부한 축에 드는 군단이었고, 그로 인해 다수의 원정함대로 전력을 나눌 수 있었다.
아워붐은 온다
그리고 저걸 10분의 1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