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그저 살덩어리flesh에 지나지 않네. 머세이디Mersadie. 내 무구를 전부 떼어놓고, 내 육체적인 강화시술을 전부 제쳐놓고 다시 한 번 보게나. 그것들은 그저 내 의무를 다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니 말일세. 나 또한 그저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네.


자네는 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허나 그 또한 맞네. 맞는 말이지. 나는 전쟁을 위해 빚어졌어. 우리 모두가 그렇지. 왜냐하면 우리의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고, 우리에게는 전쟁을 잘 치루어야 할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우리 이전에 있었던 그 누구보다도 더 말일세. 허나, 우리는 그저 단순한 전사warriors이기만 한 것만이 아닐세. 전쟁은, 올리톤 양, 우리가 가진 기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네. 가장 쓰라리고 씁쓸한 건, 물론 맞네만, 다른 많은 역할 중 하나일 뿐일세.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그 모두에 극도로 뛰어날 수 있도록 빚어졌다네.  


아, 아투오에서의, 그리고 케스카스틴에서의, 그리고 또 안드로브 성계에서 우리 루나 울브즈가 활약했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달한 전쟁수행을 보여주었지...


미안하네, 깜빡 옛 기억에 잠기고 말았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언젠가는 - 나는 진심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믿네 - 전쟁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걸세. 전쟁이 더 이상 우리의 의무여야 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는 그럴 날을 고대하고 있네. 나는 전쟁을 치르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전쟁을 통해 이루어낸 평화 속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네.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세우고 일구어내는builders 이들일세. 아시겠나? 그게 바로 내가 자네가 이해하기를 바라는 바라네. 우리는 만드는makers 자들이야. 물론, 때때로 석재는 정과 망치로 부서지고 잘리고 알맞은 크기로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네. 허나 그건 오로지 그 위에 굳건한 건물을 세우는 데 필요하기 때문일세. 우리는 문명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네, 리멤브란서 양. 쉬운 일은 아니고, 신속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이 과정에서 피가 흐른다면 그건 오직 필요악이여서일 뿐이고, 그때마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 그 강가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눈물을 흘리네.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이 대업을 피흘리는 일 없이 끝낼 수만 있다면 그 대가로 내 목숨도 바칠 수 있네. 하지만 그렇게 순진해 빠진 말은 집어치우지. 그럴 리가 없으니. 자네에게는 기꺼워할 일이지. 우리는 이 일을 바로 자네를 위해 하고 있는 것이니. 인류 전체를 위해서 말일세. 그리고 이건 우리가, 머세이디, 나는 믿고 있네만, 함께 해나가는 일일세.


무슨 말이지? 아, 맞네. 그분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지 않지.


울라노어에서의 승리 이후, 내 아버지께서 내 곁을 떠나셨을 때, 한동안 나는 진심으로 허전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네. 물론, 그분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에 자랑스럽고 영광되다 느끼기는 했지만---


놀랐었냐고? 아니, 놀라지는 않았네. 내 고백하지. 기민하고 날카로운 질문이었네, 아가씨. 잘 꿰뚫어 보았어. 내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려 드는군. 음, 말해두건대, 나는 그게 놀랍지 않았어. 나여야만 했으니까. 나 외에 다른 선택지라고는 없었네. 나는 자랑스럽고 영광되다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안도했네. 만일 그 역할이 나 이외에 다른 형제에게 돌아갔다면, 물론 그들 모두 그 역할을 맡기에 합당한 이들이지만, 나는 매우 불쾌했을 걸세.


허나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깊은 상실감이었네. 그 강가에서의 내 아버지처럼.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은, 우리의 업이 마무리지어졌다는 의미이며, 나는 그저 텅 빈 왕관과 공허한 직함만을 물려받는 거라 느꼈기 때문일세. 내 안에 짜넣어진 포부와 열망Aspiration 때문에. 아시겠나? 내가 공허하게 느꼈던 이유는 바로 더 이상 이룩해낼 것이 남지 않았을 거라는 까닭이었어.


허나 정복할 별들은 아직 더 남아있었지.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걸 깨달았다네. 아, 자네가 묻기 전에 미리 말해두는 거네만, 내가 사용한 단어 '정복' 은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좀더 광의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이네. κατακτώ 말일세. 합류시켜야 할 세계가, 해방해야 할 별들, 두 팔 벌려 맞아들여야 할 사회가 있었네. 우린 전쟁보다도 더 많은 평화를 가져왔다네. 우리는 수천 개에 달하는 문화와, 그 모두가 옛 지구로부터 흩어지고 잃어버렸던 소중한 보물인 것과, 화평을 맺었네. 우리는 우리의 친족을, 우리 가족으로부터 뻗어나간 갈래를 되찾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였지.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세상에, 머세이디, 나는 칼을 쥐기보다 앞서 내 손을 뻗었네. 전쟁, 워마스터, 성전... 이 모두가 그저 인류를 고무하기 위해 골라내어진 낱말일 뿐이야. 무겁고 진지하여, 듣는 이들에게 깊고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우리의 위업과 성취를 강조해줄 단어. 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프로파간다일 뿐이야. 자네가 기록해 본향에 보내는 역사와도 별반 다르지 않아. 힘과 용기를, 함께 뜻을 합칠 것을, 투지와 결단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어찌되었건 결국에는 한낱 단어, 우리가 하는 일의 오직 일부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일세. 내 생각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을 쓸 일 자체가 없어질 것 같네만.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는 거지.


아니, 아닐세. 리멤브란서 양, 나는 그 단어들과 함께 나 또한 잊혀지고 버려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내 역할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야. 머세이디 아가씨, 자네가 나를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걸세. 나는 내가 무엇인지 잘 아네. 머세이디 올리톤, 덩치만 놓고 보아도 나는 자네보다 족히 네 배는 더 큰 사람이네. 나는 내 본질과 성질에 대해 익히 이해하고 있네. 리멤브란서 양, 나 또한 인간이네만, 내가 나를 두고 그저  단순히 한 사람의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그때야말로 자네가 나를 두려워해야 할 진짜 이유가 생기는 순간일 걸세. 왜냐하면 그 때는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어떤 위험한 종류의 자기부정에 사로잡힌 때일 테니까. 나는 내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네. 나는 그 사실을 확고히 받아들여야 하네. 나는 초인이지. 나는 프라이마크고. 나는 루퍼칼이야. 나는, 옛적 엘레니키Eleniki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신demigod이네. 나는 그걸 숨길 수 없네. 나는 그걸 숨기지 않아야 하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내 용도와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가 무엇인지 받아들이고, 그에 기꺼워한다네.

나는 위대한 일들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네. 이건 내가 자만하는 게 아니야. 자네가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자네 얼굴에 다 써 있는게 훤히 보이네. 다시 한 번 말하네만... 이건 오만이 아니야. 이건 허심탄회한 수락이지. 그 누구라도 몸뚱아리 하나에 이만한 능력과 잠재력을 집어넣기 전에는 먼저 그게 자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부터 할 것이야. 내가 나 스스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척 한다면 그거야말로 자만이고 오만이겠지. 내가... 나 스스로를 깎아내렸다면. 내가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가장했다면, 음... 자네가 우려해야 할 이유가 될 것이야.


나는 내가 무엇인지 아네. 나는, 건전한 이유와 방식으로, 내가 무엇인지가 두렵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때야말로 매우 위험한 무언가일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