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을 삼키는 은하(Cannibal Galaxies)
1: i
공감의 주술
그가 아주 젊었을 때, 200살, 어쩌면 300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그는 한 남자가 벽에 형상들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화가는 제 손가락을 붓 삼고, 짐승의 해골로 만든 잔을 물병으로 삼았다. 영양과 들소가 도약하는 형상, 깜짝 놀란 사슴이 벽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형상까지.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그렸다. 활과 창이 손에 들렸다. 그 일전까지 사람을 그리는 이를 본 바는 없었다. 그는 아주 젊었으니까.
예술도, 장식도, 전일의 사냥을 기념하는 것도, 지난 일을 기록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귀중한 안료를 낭비할 뿐이었다. 그저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뿐.
주의 깊은 관찰 끝에, 그는 알아차렸다. 그 그림이 내일을 위한 그림이라는 것을. 미래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고, 계획을 세워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화가는 제 의지를 펼치고 있었다.
영양을, 들소를, 그리고 사람을 그려내 그렇게 이뤄지리라는 뜻이었다. 동물들은 이렇게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 있을 것이니, 활과 창을 이렇게 들고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이 창에서 영양을 향해 움직이는 길, 그 길이 바로 창이 나아갈 길이었다. 여기를 창으로 찌르고, 이 측면을 공략한다. 그렇게 이 사냥감을 죽일 것이라는 미래.
이를 지켜보며, 그는 이것이 공감의 주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상에 그쳤던 일이, 미래에 일어나리라는 의식적인 연습. 오늘 이 벽에 안료를 들여 그려진 그림은 내일 현실 속에서 일어날 일이었다. 영양은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할 것이다. 이 그림을 보라. 이미 공격 속에서 죽음을 맞았으니.
화가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이 미래를 성화하기 위하여, 내일 모든 것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 헌신을 다짐하며 화가는 손을 물통에 담근 뒤 손바닥을 펴 벽에 눌렀다. 자신의 계획 위에 자신의 흔적, 자신이 헌신하겠다는 뜻을 남긴 것이다. 이렇게 일어날 것이며, 자신의 손을 통해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영양은 이미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 내일이 실패하는 길은 신들이 인류에게 등을 돌리고 세상의 법칙을 되돌리는 것 외에 없으리로다. 그들이 약속한 그 법칙은 결코 되물릴 수 없을 것이지만.
그리고 그 젊은 나이에, 그는 신을 불신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신들의 존재조차도 불신하게 되었다. 그들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세상의 자연칙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았으니.
그는 화가를 지켜보며 계획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일종의 계시라 해야 할 것이다. 계획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며, 단 한 사람의 작품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을 확신하기 위해, 스스로의 헌신을 담아 자랑스러운 자국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그의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3만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미래를 설계했다.
긴 세월 전, 나에게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지금 그의 손을 바라본다. 그 손에 우주가 쥐어져 있었건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이 엿보인다.
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직 소수만이 그의 존재 곁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가 인간적인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아차릴 정도로 근접할 수 있는 것은 그 소수 중에서도 소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섭정이며, 조언자이자, 그의 벗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의 요구였기에, 긴 세월 동안 나는 그의 그림자처럼 가까이 위치했다.
그 손들. 그 위대하고 권능을 품은 손. 오라마이트로 그의 손이 둘러진 것은 단지 황금빛으로 빛나기 때문이 아니다. 양자적으로 거의 불활성 상태이기 때문에 사이오닉 세공과 비물질적인 힘을 다루기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맨손으로 그를 행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고 전도성이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라 해도, 맨손과 날것의 정신으로 이마테리움을 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마테리움이 뿜어내는 힘은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라 해도 스치는 정도로라도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순간 화상을 입게 될 것이다. 더 오래 노출되는 순간 살점은 벗겨지고, 피는 끓어오르며, 그가 앉은 자리에 녹아내린 채 들러붙어 더는 일어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황금빛 갑주로 스스로를 두른 채, 흡사 무덤에 조각된 신상처럼 침묵 속에서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다. 아니, 어찌 보면 더욱 나쁘다고밖에… 그에게서, 한때 대지 위를 디뎠던 폭군들이 떠오른다. 화려한 족장들, 그리고 예언자 군주들까지. 인류의 시체 위에 자신의 천박한 강역을 건설하고서, 보석과 귀금속들로 몸을 두른 채 왕관을 쓰고서 스스로가 인간 위에 있노라 선언했던 자들. 오직 한심스럽고, 과대망상적인 폭력배들. 그들은 결코 필멸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고, 그는 그 모두를 경멸했다. 그 오만함을 꾸짖었으며, 그들을 그 자리로부터 끌어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국가들이 그의 손 앞에 해체되었고, 왕조가 끝장났다. 폭군과 독재자들은 축출되었고, 궁성들은 파괴되었으며, 핏줄은 끊겨 나갔다. 수많은 옥좌실이 피로 물들었고, 텅 빈 옥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옥좌를 떠날 수 없었다.
거대한 연단의 발치에서, 영원의 시간을 기다린다. 연단 아래 계단을 지키고 있는 두 섬세하고 신적인 야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내 시야에 닿는 범주 안에서 가까이에 다가오지 못한다. 하지만 우즈카렐 오피테(Uzkarel Ophite), 그리고 카이칼투스 더스크(Caecaltus Dusk), 두 명의 레기오 쿠스토데스 프로콘술은 군주를 등진 채 조각처럼 고요히 서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의 손가락이 경련하고 있음을.
그런 미세한 징후를 살피는 것은 나의 영역이다. 고통의 흔적이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리라. 기호, 상징, 기표, 인장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품은 진정한 뜻을 식별하기 위해, 현실을 표현하는 부음 부호로서 내가 사용해 온 도구들이다. 나는 그의 인장관이며, 이 시대가 시작된 이래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역할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그를 위한 나의 오랜 봉사도, 이 시대 자체도.
그의 아들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오고 있기에.
말카도르의 시점.
공감주술이라고 용어가 있음
아 그게 낫겠네. 내가 저런 쪽엔 약해서. 수정하겠음.
선추후 감상!
아 저번 다른 블붕이 올려준 토막번역에 갑옷이 봉인구인가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옥좌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위한 보후구라는 의미구나 - dc App
보후구->보호구 - dc App
아 3만년의 기나긴 설계의 끝이
도입부 보니 황가놈 계획세우는 버릇을 저렇게 묘사한게 참 인상적 - dc App
와 근데 진짜 연출 좋다 고대의 화가가 그리는 그림을 관찰하면서 통찰하는 초월자라니
와 묘사 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