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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헤도니스는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진한 사향과 사프란 향의 시녀는 어디있는가?
은 고리와 바늘로 꿰인 연분홍색의 봉긋한 한쪽 가슴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들은 지극히 낯선 이들이었다.
햇빛이라곤 본적도 없는 듯 탈색된 피부에,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가운데 선 자는 대머리에 핀들이 얼굴까지 그물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여자로 보이는 다른 이는 찢어진 목 사이로 성대가 꿈틀거렸다.
안경같은 눈알에 부풀어오른 살덩어리와, 눈도 코도 없이
이빨을 딱딱 부딪히는 일그러진 살구색 괴물.
그들 모두 고행하는 수도사처럼 근엄하고 어두우며, 무엇
보다 상처투성이였다.
가운데 선 자가 기묘한 저 세상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상자를 열었고, 우리가 왔다."
1
"상자라고?" 헤도니스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상자를 스쳤다.
"너희는 슬라네쉬의 시종이 아니란 말인가?"
수도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난 저걸 어렵게 샀단 말이다. 위대한 비취 왕홀의 아이들
이 내놓았지. 한없는 쾌락과 방종을 약속했단 말이다!
이런 우라질 놈들이 사기를 쳤단 거잖아!"
사실 헤도니스는 돈을 준적이 없었지만, 굳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수도사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여성같은 수도사가 말했다.
"너는 우리와 가야한다."
"꺼져버려!" 헤도니스의 말에 입만 있는 수도사는
이빨을 더 드러내며 으르렁그렸다. 뚱뚱한 수도사가 말리
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으리라.
"너는 궁극의 경험을 요구했다." 가운데 서있는 자가
상자를 오른손으로 가리켰다.
"우린 너에게 쾌락을 보여줄 것이다. 네가 세상에서 찾아
헤메던 것. 물질의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감각."
"당신들이 그런 걸 줄 수 있다고?" 일단 헤도니스는
한번쯤 들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성 수도사가 든
휘어진 칼이 신경쓰인 탓이다.
"네가 우리와 가면." 가운데 선 이의 검은 공허같은 눈이
헤도니스와 마주쳤다.
"너는 네가 머물던 이 도시의 모든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역에서 오로지 그대를 위한 곳이 주어지
리라."
"시녀들은? 아니면 무한한 만찬이 주어지나? 술이나
온갖 음악은? 그런 비슷한 게 있긴 한가?"
"네가 맛볼 감각은 그런 것을 넘어선다. 더이상 의존할 필
요도 없을 것이다."
헤도니스는 잠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그는 언제부터 이 길에 들어섰던가? 온갖 호기심과 충동으
로 넘치던 17살 때? 아니면 처음으로 교단에 들어간 20살?
교주를 목졸라 죽이던 24살인가? 그는 매 순간 실험했다.
감각과 쾌락과 온갖 자극을 만끽하며 말이다.
그러나 만족이 없었다. 그래, 정말 빌어먹게도 말이다.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기대치도 않던 기회가 있었다.
좀 지나치게 삭막하고 피폐해 보이지만.
"음, 나는..."
"그만!"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2
"뭐하는 놈들이지?" 두껍고 위협적인 집게발이
허공을 갈랐다. 헤도니스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연보랏빛 살갗, 접시같은 두 눈. 뒤로 휘어진 뿔 한쌍,
검은 가죽으로 덮이고 온갖 문신이 그려진 가슴.
그랬다. 바로 쾌락의 대공을 모시는 시종들, 데모넷들이었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있었다.
"누구냐?" 여전히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수도사가 물었다.
"너희는?" 도도하고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세우며 데모넷
들이 다같이 물었다.
"우리가 질문했다." 여성 수도사의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너희가 답해. 우린 너희같이 칙칙한 놈들과는 말하기 싫어."
데모넷들의 집게발이 위협적으로 부딪혔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천사라 한다. 다른 자들에겐 악마라고 불린다."
결국 가운데 선 수도사가 답해주었다. 데모넷들은 핀이 사방에 꽂힌
그 머리를 보며 색다른 피어싱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제 너희 차례로군."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 분노가 보였다.
"아, 좋아. 우리는 쾌락의 대공의 시종들이다.
여기 이 가련한 영혼을 데려가려다 갑자기 공간이 비틀리
지 뭐야? 그래서 지켜봤는데 네놈들이 훔치려고 하던데."
우두머리 데모넷은 자신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말을 퍼부
었다.
"그는 우리 것이다." 딱딱하고 단호하게 수도사가 답했다.
"뭐? 이유나 말해봐."
"그가 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수도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저게 뭐야?" 우두머리 데모넷이 다른 데모넷들에게 물었다.
"몰라." "잘 만든 상자네." "근데 좀 밋밋해보인다."
결국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말해라. 우리와 함께 가겠느냐?" 수도사들은 이제 데모넷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뭐야, 안되지." 그러면서 데모넷은 불쾌할 정도로 높은 소리로 비웃었다.
"우리는 저 놈이 태어날 때부터 지켜보았어. 그러니까 우리
들 거라고. 알겠니?" 마치 어린애를 달래듯이 데모넷은
지나칠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린 그한테 한없는 쾌락을 선사해 줄 수 있어.
절제도 규칙도 모르는 한없는 환희 속에 푹 잠기게
할 수 있단 말이지."
"너희의 그 모습은." 수도사가 데모넷을 군데군데 훑어보았다.
"낭비다. 방종이다. 타락이고. 퇴폐적이다."
"와우, 칭찬은 예쁘게 하네."
"너희는 진정한 감각에 무지하다."
데모넷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곤 우두머리가 그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교태도 웃음도 없었다.
"다시 말해볼래?" 칼날처럼 서늘한 목소리였다.
"너희는 무지하다. 쾌락을 모른다. 고통을 모른다.
그저 허망하고 불쌍한 것들이다."
다른 수도사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 발칙한 것들이!"
집게발이 가운데 있던 수도사의
목을 겨누었다.
하지만 집게발이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무, 무슨-?!" 작은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이
집게발을 칭칭 감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힘을
주었지만 쇠사슬은 더욱 거세게 죄여왔다.
그리고 쇠사슬은 한 개가 아니었다.
처음엔 갈고리가 양 눈꺼풀 속으로,
그다음엔 등뼈를 따라 6개가 세로로,
다음엔 얇은 입술 양옆으로,
그리곤 허벅지 뼈 근처 근육과 발목 관절 속으로,
팔과 다리 뼈를 뚫어 골수 속까지,
콧구멍 양 옆으로...
"아, 아, 아..." 데모넷은 처음 느끼는 감정에 질려 있었다.
낯선 공포가 그를 압도했다.
감히 비명을 지르는 게 두려웠다.
수도사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이제 알겠나?"
그리고 수도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건 천천히 진행되는 폭발이었다.
서서히 온몸의 살가죽이 늘어나는 걸로 시작되었다.
분홍색과 자주색 체액이 스며나와 사방에 튀었다.
눈에서는 눈물인지 뇌인지 모를 진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발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는지 모를 정도로 늘어난다.
집게달린 팔이 점점 가늘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귀는 이미 휴지처럼 찢어진 채다.
데모넷의 척추가 진주색인 줄은 모두 처음 알았다.
코에서는 피가 섞인 주홍색 물이 바닥에 톡톡 떨어진다.
그리고 쾅, 대신 계속되는 비명 소리.
"꺄아아아아아-!"
비명, 비명,
높이의 끝을 모르는 비명,
울부짖음, 표효,
절규, 고함.
그리고 폭발.
그렇게 쾌락의 대공은 한동안 충실한 시녀를 잃었다.
헤도니스와 데모넷들은 온갖 액체와 살덩이로 범벅이
되었다. 버터와 난초, 장미, 박하, 오래되어 묵은 고기의
냄새가 공기를 가득 메웠다.
헤도니스의 아랫도리에서 오줌이 질질 새나왔다.
마침내 수도사들이 다른 무리에게 눈길을 돌렸다.
질세라 남은 다섯 데모넷들이 달려들었다.
3
헤도니스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전혀 다른 두 무리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하나는 삭막하고 창백하며, 하나는 화려하고 번쩍거린다.
그리고 눈부시게 빨랐다.
"이런 세상에." 그래, 그 말 밖에는 할 수 없겠지.
이빨만 큰 수도사가 데모넷의 목을 물어뜯었다.
맛이 이상한 듯 돌아서곤 침과 살을 가래처럼 뱉었다.
데모넷 중 하나는 여성 수도사의 뚫린 목을 노렸다.
그 과정에서 왼쪽 어깨 아래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뚱뚱한 수도사는 두 데모넷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데모넷들은 그에게 고통을 주려 급소를 피해 서서히 베는
방법을 구사했지만, 그의 전의만 북돋아주었다.
남은 데모넷은 최대한 빨리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로가 데모넷을 좀먹고 있었다.
그 동안 우두머리-가운데 서서 말하던- 수도사는
앞으로 두 걸음 걸었을 뿐이다. 간혹 손짓을 하는 것 빼고
그에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데모넷은 말그대로 땀에 절어 기진맥진했다.
"이런 망할 자식이."
눈에 땀이 흘러오자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뭐야, 뭐냐고!" 자포자기하다시피 한 데모넷이
집게발을 휘둘렀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바닥에 여전히 데모넷이었던 잔해가 가득했던 탓이다.
헤도니스는 집게발을 보았다.
두 무리에 비하면 너무나 굼뜨고 비대한 몸으로
피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갑자기였고
또 칼보다 예리한 집게발이었다.
집게발 끝이 헤도니스의 목을 갈랐다.
선명한 붉은 색 분수가 뿜어졌다.
4
비명은 없었다. 유언도, 발악도 없었다.
그저 바닥을 기는 하얗고 비천한 육신이 있을 뿐이다.
"멈춰."
우두머리 수도사가 왼손을 들며 말했고,
다른 모두는 복종했다.
데모넷들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물질계에서
처음 겪는 패배와 아픔은 쓰라리기 그지없었다.
"왜?"
여성 수도사가 묻자 우두머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미 죽은 몸이 방 가운데에 늘어져 있었다.
"그럼 있을 필요도 없겠군."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모넷들이 숨만 쉬며 지켜보던 그 때
이빨만 달린 수도사가 데모넷의 목을
집고 들어올렸다.
"놔, 놓으라고!" 말을 듣지 않는 사지에
침범벅인 거대한 이빨이 다가갔다.
"그만둬."
우두머리 수도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지만 그 어두운 시선에 수도사는 순순히 복종했다.
우두머리 수도사가 한 걸음 물러나는 동시에
방이 어둡고 이상한 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이 빛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거야!" 데모넷이 남은 집게발을 들어올렸다.
수도사들은 무시로 대답했다.
그렇게 다시 방이 원래대로 돌아갔을 무렵,
데모넷들은 비틀대며 일어섰다.
오늘의 치욕을 절대 잊지 않겠노라 맹세하며
그들이 왔던 장밋빛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의 처벌과 고문을 각오하면서.
그렇게 자칭 쾌락주의자라던 한 불쌍한 인간은
목숨을 잃었고, 본디 섬기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슬라네쉬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종족을 두고 다른 전쟁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 이야기는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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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네쉬가 헬레이저 스럽긴 하지 - 블랙라이브러리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윗글 참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 dc App
고맙습니다
님 내가 떠오른 소설 설정이 있는데 평가 해줄수 있어??? - dc App
방명록으로 올려주시면
ㅇㅋ 좀 있다가 올릴께 - dc App
올렸어
재미따
영화에서 임팩트 있던 핀헤드 목소리가 생각나서 몰입감있게 봤음 ㅋㅋ the box, you opened it, we came
정말 고마워요
전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