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황제의 발 밑을 노리는 뱀
“아이오니카.” 사내가 향하는 곳이었다.
함교에는 여러 아스타르테스와 승무원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손목에 새겨진 쌍두 독수리와 해골 문신이 그가 누군지를
말해주었다.
폴룩스, 한때 쌍둥이 인퀴지터로서 행동했던 자.
이젠 혼자였다. 심지어 이 함선에서도.
“곧 워프에서 나갈 것이오.” 결국 블랙 리가 말을 걸었다.
폴룩스는 고개만 끄덕였다.
리는 바로 고개를 돌려 형제들에게로 향했다.
“저 자는 우릴 무시하고 있어.” 키르스가 폴룩스를 뒤로 흘겨보았다.
“봐주게. 엄연히 공무 수행 중이잖나.”
“아무리 인퀴지터라 해도, 우리 챕터를 이렇게까지 대할 수 있나?”
키르스가 가슴을 세게 두드렸다. 리는 그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평범하군.” 적어도 공업 행성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온통 공장이었고, 흙이나 바다같은 건 없었다.
“정말 문제가 있는 겁니까?” 키르스는 보통 인간처럼 투덜거렸다.
“그렇소.” 폴룩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선 생산이 계속되고 있소. 공장도 기계도 계속해서 돌아가지.”
“그럼 그게 왜-”
“쉬지 않고 말이오.” 폴룩스는 키르스의 말을 냉큼 잘라버렸다.
키르스는 얼굴을 붉혔지만, 그럼에도 설명은 이어졌다.
“먹거나 자거나 쉬지도 않고 돌아가는 공장이란 말이오.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고 보시오?”
“누가 신고한 겁니까?” 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자인 아탈이라는 노동자요. 뭔가 다들 이상하다, 기계 같다라며
계속 떠들었지. 하지만 그의 말에는 일관성이 있었소.”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소. 어쩌면 자기도 늦은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곤 그는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스타르테스들이 뒤따랐다.
“이상하군.” 확실히 누구라도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거리에 없는 것이다.
“연락이 안 된다고는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는데.”
“공장 안으로 갑시다.” 폴룩스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문 앞에 다가가자, 소리와 울림이 전해졌다. 확실히 기계소리였다.
하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겠소.”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치 기다리던 것처럼 저절로 열린 것이다.
이제 소리를 감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공작 기계보다 3배는 더 큰 기계가 연신 벨트를 회전시켰다.
뜨거운 열기와 수증기가 섞여 뭉클대는 안개를 이루었다.
그리고 작업대가 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모든 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서비터인가?”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폴룩스는 고개를 저었다.
“더 안 좋은 거요.”
그 정도로 다들 표정이 없었다. 동작에는 일체 낭비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부속이 된 것처럼, 레버를 당기고, 나사를 조이고,
무거운 연료통을 나르고, 소각로를 움직였다.
그들의 눈에는 은색 광채가 떠올라 있었다.
“왜 우리가 들어왔는데 반응이 없지?”
“이런 이단 놈들은 처음이군.” 몇몇은 노동자들 눈앞에서 손을 흔들기도
했지만,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공장의 일부로서 작동할 뿐이었다.
“저게 놈들의 우상인가?” 키르스는 물론이고 모든 아스타르테스들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황제를 닮아 있었다.
아머와 망토, 날개달린 장식도 비슷했다. 다만 은백색으로
치장되었단 게 다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페로크리트 벽처럼
창백한 회색인 그 얼굴 위에는 파이프를 구부려 만든 수많은 뿔들이 돋아 있었다.
“다들 멈춰라!” 폴룩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짓입니까?” 키르스가 화를 내건 말건, 폴룩스의
목소리는 온 공장에 울려퍼졌다.
“멈추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주어진 권한으로
이 공장을 박살낼 것이다!”
“도대체 무슨-” 하지만 키르스는 입을 다물었다.
모든 노동자들이 멈춘 것이다. 아스타르테스와 인퀴지터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마치 이제야 보인다는 듯.
“누구십니까?”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걸음걸이로 한 노동자가 다가왔다.
그 역시 아무 표정도 없었지만, 눈동자가 또렷한 은색이었다.
“이제야 나타났군.” 폴룩스가 재빨리 볼터를 겨누었다.
“누구십니까?”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폴룩스는 대답없이 탄환 세례를 퍼부었다.
그는 결국 바닥에 널부러졌다.
“인퀴지터 폴룩스.” 리가 말했다. “갑자기 이래도 되는거요?”
“아직 모자라오. 보시오.” 폴룩스는 볼터로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 있던 시신에서는 아무 피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비틀대며 일어서려고 까지 했다.
“황제시여.” 리가 탄식했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라이트닝 피스트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젠장, 저것들 뒈질 생각을 안 해!”
그렇게 말한다고 쓰러져줄 리는 없었지만,
사실 키르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마린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나마 그럴 듯한 공격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캡틴.” 요지부동의 목소리가 리의 귓가에 들렸다.
“뭐요?! 할 말 있으십니까!”
“저 우상을 보시오.” 그 말에 리는 눈길을 돌렸다.
그 저주받을 우상 위에는 맨 먼저 탄환을 맞은
그 노동자가 올라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저 놈은 뭐야!” 당연히 리는 볼터를 갈겨주었다.
그런데,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정말로 죽은 것처럼.
그리고 우상 주위에 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금속가루로 된 안개같은 기운이 사방을 감싸왔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다시 멈추었다.
“사격 중지! 주위를 경계하고, 특히 저 우상 쪽을 조심하라!”
리는 우상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차가운 바람이 한동안 몰아치고, 그것이 나타났다.
먼 옛날 전설에서나 볼 듯한 반인반마였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은과 철로 만든 해골갑옷같았다.
눈꺼풀 없는 눈 안에선 검은 거울같은 눈이 번뜩였다.
그 위로는 기묘하게 구부러진 뿔이 위용을 뽐냈다.
무엇보다 그것은 마린들보다 두 배는 컸다.
“쏴라! 황제의 적에게 죽음을!”
늘 그랬듯 탄환과 연기의 향연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서 있었다.
“이런 망할.”
<너희는 누구인가?> 마침내 그것이 말했다.
쇳덩어리가 말을 건네듯 아무 온기도 억양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는 넌 누구냐?” 폴룩스가 마치 인사를 건네듯 말을 걸었다.
<나는 폐허의 기사다. 질서와 지속의 군주를 따른다.>
순순하게 대답을 하는 모습에 폴룩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놈은 처음 보는군. 수많은 악마들을 상대했지만,
저런 호칭은 들어본 적도 없어.”
<물러가라.> 폐허의 기사가 말했다. <너희도 우리가 필요할 터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리는 기사의 갑옷이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너희는 인류의 제국에 속한다. 너희는 질서를 바란다.
제국의 번영을 원한다. 무한한 지속을 원한다.>
“그런가. 알겠네.” 폴룩스의 말에 마린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폴룩스는 품에 숨겼던 칼을 꺼내
기사를 향해 휘둘렀다. 상처와 함께 철골이 휘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죽을 가치밖에 없단 걸 잘 알겠네.”
“인퀴지터를 지원하라! 저 악마 놈을 지옥으로 돌려보내라!”
라이트닝 피스트는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여전히 폐허의 기사는 상처를 부여잡고 있었다.
보통의 상처라면 무시하겠지만 이 검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낯선 열기가 상처를 태우고 있었다.
그래도 기사는 독오른 꼬리를 잔뜩 세우고 휘둘렀다.
인퀴지터는 간신히 칼로 독침을 막아내고 있었다.
갑자기 날아온 탄환이 독침을 정확히 맞추었다.
키르스는 대놓고 웃어보였지만 폴룩스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폴룩스는 악마를 향해 뛰어들었다. 손도 써보기 전에
기사의 하체에 검이 깊숙이 박혔다.
한동안 날선 사이렌같은 외침이 들리곤
폐허의 기사가 주저앉았다.
“죽은 건가?” “사라지는 거요.”
폴룩스가 무심히 대꾸했다.
그의 말 그대로 기사는 형태를 잃고 서서히 부서져갔다.
“대단한 검이로군.” 키르스가 말했다.
“그런 무기도 쓰시는 줄은 몰랐소.”
“필요하니까.” 폴룩스는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폐허의 기사? 그건 또 어떤 혼돈의 권세요?”
“모르오.” 그 짤막한 대답에 리와 키르스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당신도 모른다고?”
“혼돈이란 걷잡을 수 없는 거니까.”
폴룩스는 기사가 사라진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아, 결국엔 죽었잖아!” 이현은 현실세계에서
첫 패배를 슬퍼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저런 사기적인 인퀴지터가 나오지?”
결국 아이오니카에 교단을 세우는 건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에휴, 그래도 다른 카오스 교단엔 침투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이현, 아니 니르트의 교단은 다른 신들의
교단을 뺏는데는 실력이 있었다. 심지어 그 슬라네쉬 교단
마저도.
이현은 다시 뺏은 교단들이 어떤지 로그인을 시도했다.
“야, 되는거야? 마는거야?”
동현이 진우의 어깨 뒤에서 속삭였다.
“조용히! 이대로 쓰고 거울 앞에서
이 주문을 외치랬어. 그러면 악마가 나타난다고.“
동현이 보기에 글자라고 적어놓은 건
참으로 단순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글자를 보면 볼수록 뭔가 어지러움이
이는 것이다. 특히 눈이 아프기도 했다.
진우는 친구가 아프건 말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제보니 그 글자들 밑에는 삐뚤빼뚤한 한글
발음이 같이 적혀 있었다.
주문이 멈췄다.
“야.” 동현이 말했다. “아무일도 없잖아.”
“좀만 기다려라.”
“뭘 기다려! 이게 진짜..” 어디선가 뭔가 걸어오고 있었다.
“밖에 누구 있냐?” “오늘은 나밖에 없..겠지?”
걸음소리가 거울 속에서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졌다.
진우와 동현은 친구답게 서로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붉은 피부와 근육이 뚜렷한, 뿔과 발굽이 달린 악마가
걸어나왔다.
반갑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악마는 검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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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하는 글자는 다크 텅(dark tongue)입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