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재와 먼지를 일으키다
-시체에 부패의 징후가 없다.-
기계교 사제의 기지에 대한 감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론
그 이상이었다. 스트레인과 사제들은
말 그대로 시체들을 밟고 지나가야 했다.
누운 채로, 도망치다가, 싸우다가 죽은 자들.
모두 말라비틀어졌어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마 공기가 희박했던 탓이라고 사제들은 짐작했다.
“생명 반응이 불확실하다고 아까 보고했었지?”
스트레인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은?”
-2분 30초 전, 7초 동안 감지. 심장박동과 체온.
이후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몇 명이냐?”
-정보가 불충분합니다.- 사제는 고개를 떨구었다.
스트레인은 신경쓰지 않았다. 뭔가 살아있다면
그건 일반인이 아니라 보다 월등한 신체를 지닌
프라이마크일 거라 생각한 탓이다.
물론 정지장 속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하지만
발밑에 깔린 자들의 결말을 볼 때, 일반 승무원들은
입막음을 당했을 게 분명했다.
“감지되었던 곳을 추적해라.” 스트레인이 다시 앞장섰다.
창백한 조명 4개가 그 앞을 인도해주었다.
“여기로군.” 스트레인이 문을 두드렸다.
문에는 아무 개폐장치도 틈새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동 손잡이가 달린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게 될 문이었다.
-장비를 작동하겠습니다.-
“시도해 보도록 해.” 스트레인이 물러서자
한 사제가 손에 달린 드릴을 작동시켰다.
요란하게 불꽃 튀기는 회전이 끝나고,
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흥미롭군.” 스트레인이 중얼거렸다.
사제들은 원인을 분석하느라 기호가 잔뜩 섞인
토론을 시작했다.
“할 수 없지. 내가 해보겠다.”
-주의. 소재가 매순간 성질을 바꿉니다.
간격은 1에서 2.5초. 강도와 유연성에 감소 없음.-
스트레인은 대답은 않고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어느새 오른손엔 긴 창이 들려 있었다.
번갯불이 창날 속에서 이글거렸다.
니르트가 이번 일로 직접 무기를 하사한 만큼 스트레인도
그저 기다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창이 문 한가운데를 내리쳤다. 드릴과는
비교도 안 되는 번갯불이 문 전체를 감쌌다.
사제들은 물러나지 않고 문과 창을 번갈아 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창이 뿜는 번개는 문을 태우는 게 아니라
녹이는 듯했다. 그렇다고 고열을 일으키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설탕을 물에 녹이는
모습과 비슷했다.
문은 굳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서서히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가운데 구멍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문은 없던 것처럼 하얀 가루만이 잔뜩
쌓였다.
-생명 반응 감지. 2명.-
“뭐지?” 너글이 갑자기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등을 따라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른은 뭔가 놓친 듯한 느낌에 위를 노려다보았다.
젠취는 내내 기다리던 뭔가를 받은 듯한
충족감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새로운 간계를 꾸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슬라네쉬는 펄그림과 흐드러지게 술잔을 나누다
그를 집어선 궁전 밖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넷은 새 먹잇감이 생겼단 사실에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넷 다 이미 늦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저건 뭐냐?”
방은 실로 밋밋했다. 온통 하얗기만 했다.
흰 빛을 내는 벽들 가운데에는 침대 두 개가 있었다.
침대라곤 해도 딱딱하고 하얀 직육면체일 뿐이었다.
그 위에는 실로 거대한 인간들이 누워 있었다.
한 명은 침대와 구분이 안가는 흰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얼굴조차 창백해
백색증을 의심케 했다. 그러나 그 근육과
균형미 있는 신체는 대리석 조각상같이
예술적이었다.
다른 한 명은 재를 머리에 뒤집어쓴 듯
진한 회색 머리카락을 지녔다.
독특하게도 그의 피부색은 머리보단 연한
회색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세련된
얼굴과 몸을 지니고 있었다.
“저들이 프라이마크인가?”
-신체 구조, 신장, 기타 정보 수집 중.-
스트레인의 질문에도 사제들은 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결론: 데이터 부족. 유전자 채취 필요.-
“왜 깨어나지 않나? 정지장이라도 있나?”
-추측 결과 격리실의 소재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소재는 미확인, 연구 결과 없음. 그러나
정지장처럼 유기체와 물질의 상태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러면 이 방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불가합니다. 방 중앙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도 같은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겠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스트레인은 조심스럽게 왼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뭔가 위험하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흠. 안되겠군.” 스트레인은 괜히 손을 탈탈 털었다.
-지원을 요청하시겠습니까?-
“일단 보고를 드린다. 너희는 대기하라.”
“방에서 옮길 수 없다고?” 니르트는 보고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방 자체가 저들을 정지시켰습니다.” 스트레인이 답했다.
“그렇다면 방을 박살내야 하는데, 그러면 사제들과
저는 무너진 돌들 아래 매장될 것입니다.“
“가운데에만 정지 상태가 지속된다고 했지.”
“네.”
“만약 방이 있어도 그들의 위치만 바꾼다면?”
스트레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질문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니르트는 먼저 답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물러납니까?-
“아니다. 나의 주인께서 답을 내리셨다.”
스트레인은 다시 복잡한 술식을 허공에
그렸고 당연히 그레이 웜들이 쏟아졌다.
-저들도 당신과 같은 영향을 받습니다.-
“입 다물고 봐라.” 사제들은 정말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 웜은 쏜살같이 기어가 침대 밑을 에워쌌다.
그리고 촉수들을 뿜어 침대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침대 밑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흰 파편들 위로 두 거인이
떨어졌다. 그레이 웜들은 살살 그들을 움직이며
밖으로 빼내왔다.
“이런. 꽤 간단했군. 역시 정지 상태는 저 침대 위와
같은 높이에만 계속되는 거였나.”
-신체 반응이 활발해집니다. 맥박이 상승 중입니다.
체온은 정상 범위 내입니다.-
“내가 건드려보지.” 스트레인이 손을 내밀었다.
잿빛 손이 그의 손목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새하얀 얼굴과 회색의 얼굴 둘 다 일그러져 있었다.
공포와 분노, 경악이 섞인 표정이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얼굴을 지나갔다.
둘 다 눈꺼풀을 움직이자 붉은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들이 처음 내뱉은 말은 똑같이 한 단어였다.
원망으로 찬 한 단어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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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진짜, 정말로 프라이마크 이야기를 상세히 풀 예정입니다. 물론 마린들도.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