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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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폰이 걸친 탄띠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랑거렸다. 라드-그레네이트 다발이 그가 입고 있는 붉은 세라마이트 갑주에 부딪혀 덜그럭거렸다. 제폰은 자신이 스스로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기꾼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허벅지 위에 총집으로 매여 있는 볼카이트 피스톨은 안 쏴 본지 몇 년은 지나 있었고, 파워 아머의 백팩에 꽂아둔 파워 소드로 대련을 해본 지도 오래 전이었다. 마찬가지로, 바알의 돌연변이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끈에 매어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볼터도, 청소하고 정비할 때 외에는 건드려 본 적이 없었다.

 에어스피더 수송기가 그를 히말라지아 산맥을 반쯤 가로질러 황궁의 고강도 보안 핵심부까지 날라다 주고 난 뒤, 제폰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생생하게 박동하고 있는 제국의 심장부를 걸어갔다. 이따금씩 지하 수송용 포드나 영구 가동 중인 승강 플랫폼에 의존하기도 하면서.


 제폰은 디오클레티안과 아칸 랜드와도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디오클레티안은 그에게 불가능의 도시가 지닌 어두운 신비들과 만인대가 맞서 싸우고 있는 적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아칸 랜드는 웹웨이의 구조와 그것이 인류에게 있어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길고 시끄러운 장광설을 열정적으로 늘어놓았다. 대수도원장에게 각인된 지도도 검토해보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의문이 아니라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제폰은 자신이 받은 계몽이 모두 거짓이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믿으면 좋을지, 제폰은 알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만인대가 황제를 섬길 자로 그를 선택했다는 사실과, 자신은 죽어가며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황제를 섬기리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인대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제폰은 떠났다.


 리브라리움의 기록보관소에서부터 연장되어 뻗어 나온 구획들을 지나, 바글거리는 난민들의 무리들에게 주어진 박물관 구획들을 지나, 그리고 저장고들과 병기고들, 심지어는 옛 테라의 주조장들 사이까지 지나, 제폰은 엄숙한 침묵 속에서 걸어갔다. 등에 맨 점프 팩의 큼직한 두 제트 터빈들 때문에 그의 걸음걸이는 약간이지만 과장되게 변해 있었다. 점프 팩의 두 엔진은 그의 견갑 위로 불쑥 솟아 올라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의도된 것 마냥 날개 같은 형상을 띄고 있었다. 끊임없이 제폰의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서보-스컬들은 그에게 센서-안구 침 다발들을 향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는, 통합 생체 측정식 신원 확인 과정을 위해 그를 스캔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보-스컬들은 만족한 듯 딸깍 소리를 내고는 다시 원래 향하던 방향으로 둥둥 떠가곤 하였다.


 목적지로 향한 지 첫 날 하루가 끝날 즈음이 되서야 제폰은 첫 번째 봉인을 지날 수 있었다. 계속해서 폐쇄 상태를 유지 중인 원형 폐쇄문(iris gate)*는 그에게만은 폐쇄를 풀어주었다. 문의 한쪽 옆에는 일백 명의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들이 팔랑크스 진형을 이루고 서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다섯 명의 커스토디안들이 서있었다. 제폰은 망설임 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 문으로 들어갔다. 그가 지나가자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들은 그에게 엄숙하리만치 정중한 인사를 보내었지만, 커스토디안들은 그를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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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위에 사진 같이 생긴 거. 문이 눈의 홍채(iris) 같이 생겼다 해서 저렇게 부르는 듯.)

 제폰이 걸어 오던 내리막길이 다른 길들과 합쳐지며, 동료 순례자들이 제폰과 합류하였다. 덜컹거리는 무한 궤도 달린 배틀 서비터들이 수백 기씩 무리를 지어, 하나의 복도를 따라 줄줄이 이동하고 있었다. 커스토디안들이 그것들에게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으나, 그 서비터들은 모두 황궁의 지하실로 이동 중에 있었다.


 두뇌에 칩이 박힌 이 호송 대열에 제폰이 합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비리디온 가문의 일원들의 껑충한 형체가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거대한 기사들은 천둥 같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석재로 이루어진 방들과 복도를 진동시켰고, 자야와 그녀의 전쟁-궁중의 모습에 제폰은 자신의 삭막한 마음이 약간이지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가문들로부터 기증 받고 구걸해낸, 도색도 되지 않아 훤히 드러나 있던 강철의 청회색은 이제 기체들 위에서 사라져 있었다.. 제폰은 비리디온 가문의 기사들이 그들이 이전에 사용하곤 하던 청록색 문장을 달고 있기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기사들은 가문의 문장 역시 달고 있지 않았다. 비리디온 가문 기사들의 갑주는 흑색과 금색으로 도색되어 있었고, 거기에 그들이 과거에 거둔 업적들을 기록한 군기들은 달려 있지 않았다. 기사들이 비스듬히 들고 있는 방패 위로, 다시 한 번 그들의 새로운 문장이 드러났다. 테라와 화성의 통합을 상징하는 제국의 아퀼라 문장이었다. 그야말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순수한 문장이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자야 남작의 거대한 형체를 바라보며, 제폰은 공용 복스-링크를 켰다.


 “비리디온 家는 전진한다.” 제폰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비리디온 家는 전진한다.] 잡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선두의 기사가 고개를 돌리고, 기사의 볼트 캐논에 사슬로 매달린 커다란 황동 아퀼라 장식이 그에 따라 흔들렸다. 기사는 경보 나팔을 석조 복도를 따라 울려 퍼트렸다. 행렬을 따르던 다른 기사들 역시 나팔과 경적을 울려 그에 답하였고, 그로서 비리디온 가문은 자신들의 행진에 찬사를 보내었다.


 둘째 날의 여명 무렵, 행객들은 이미 햇빛과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도달해 있었다. 제폰이 터덜터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피스톤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묵직한 금속성 발소리와 함께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황궁의 성벽 안에서는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며 노역하고 있었으나, 제폰을 비롯한 행렬은 그들 중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다. 마치, 이곳이 제국의 심장부가 아닌 그저 텅 빈 영역, 돌과 그림자의 왕국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처럼.


 제폰과 행렬은 계속해서 걸어갔다. 몇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들은 봉인을 하나씩 하나씩 통과하였고, 각각의 원형 관문들은 활짝 열린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찰자도, 경비원도, 빗장조차도 걸려 있지 않은 채로 말이다.


 행렬은 히브란 아치-Hibran Arch를 통과했다. 옛 밤 내내 타올랐던 횃불들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로 히브란 아치가 둥근 천장을 받치고 서있었다. 행렬은 패배한 전쟁군주들의 초상화에 그려진 눈동자들이 보내는 시선 아래에서 영원의 행진로-Processiocal of the Eternals를 걸어갔다. 행렬은 히말라지아 산맥의 척추를 이루는 자연 암반 속을 파고든 황궁의 지하 기반 아래까지 내려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길은 여전히 내리막을 이루고 있었다.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서비터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서비터들의 곁에는 로브를 뒤집어 쓴 아뎁트들이 함께 있어, 현무암으로 된 암반 속을 파고든 기계장치들과 기관장치들을 손보고 있었다. 지반 그 자체로 이루어진 복도들은 여전히 높고도 넓었고, 그 덕에 기사들은 한 번도 기체의 허리를 굽히거나 다른 경로를 찾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아도 됐다. 복도의 바닥은 수없이 많은 발걸음과 차량의 무한 궤도에 짓밟혀 침식이 되어 있었다.


 그가 지닌 직관적인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제폰은 호송대 앞에 다른 경로들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음을 자신이 대체 언제 깨달았는지, 그 정확한 순간을 확실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봉인 다음부터였던가? 아니면 여섯 번째부터였던가? 그 많던 갈림길들이 언제부터 하나의 최종 경로로 합쳐졌었지?

 제폰의 본능적인 방향 감각은 서서히 진실을 곡해하기 시작했다. 굽이길과 모퉁이들은 그의 방향 감각을 망가트렸고, 길은 항상 내리막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르막길을 오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행성의 지각판 속 깊숙한 곳에 남아 있었다. 제폰은 미궁 속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부유한 자들이 만들곤 하는 취사선택적 미로 정원과도, 신화적이리만치 거대한 감옥과도 달랐다. 그것은 고대 테라의 전승에 나오는 진정한 미로, 성스러운 신전과 순례의 장소들에서 언젠가 보았던 듯한 그런 미로였다. 제폰은 제국 이전 시기의 정신성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장소들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과거에 성당의 바닥이나 지면 위에는 미로의 도면들이 새겨져, 순례자들로 하여금 성당 중심부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걸음을 인도해주는 길을 이루어 주곤 했었다. 그것은 무지에서 계몽에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명철을 위한 여정을 위해 새겨진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또한 그와 같은 여정이란 말인가?


 천둥소리가 들린다.


 그 생각이 뇌리 속에 떠오르기 무섭게, 제폰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분명 천둥소리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터널들을 지날 때마다 거짓 천둥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제폰은 벽을 따라 희미한 표시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한쪽 의수를 들어 벽 위에 쌓인 먼지를 최대한 섬세히 털어내어 보았다. 간단하고도 원시적인 그림들이 그의 세심한 손길 아래 드러났다. 그 그림들은, 가장 원시적인 인간 문명들에서 보이는 동굴 벽화들과 닮아 있었다. 제폰은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이따금씩 그 원시적 예술작품들을 살펴보기 위해 멈추어 서곤 하였다. 간략하게 그려진 사람들이 창을 들고 거대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흐릿하게 그려진 인간들이 불을 묘사한 적황색 곡선들 주위를 둘러싸고 모여 있는 그림도 있었다. 수십 명의 인간들이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저 높은 곳에 위치한 구체, 태양을 숭배하고 있는 그림도.


 머지 않아 행렬은 어느 다리에 도달하였고, 그와 함께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길은, 깊은 심연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서비터들은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거나, 무한 궤도를 굴려가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들은 머뭇거리며 고삐를 당겨 그들의 전쟁 갑주들을 멈춰 세웠다. 제폰 역시 기사들과 함께 멈추어 섰다. 제폰은 그가 타고 있던 수송 차량으로부터 미끄러지듯 내려와, 무한히 이어지는 암흑 속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천둥소리의 근원지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황궁의 지하 저수지를 위해 채집된 테라의 수자원이 저 높이, 동굴의 천장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숨막힐 듯 놀라운 광경에 제폰은 처음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띄우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그 폭포의 엄청난 규모와, 그것이 울부짖으며 내는 귀가 멀어버릴 듯한 굉음의 압력은 그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끔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제폰은 해양성 행성들에서도, 폭풍우가 휘몰아 치는 행성들에서도 싸워본 적이 있었지만, 이 장소는 그곳들 못지 않게 장엄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바알에서 태어난 소년이었고, 그 머나먼 별처럼 방사능에 찌들어 갈증에 허덕이는 행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행렬은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계단이 수 미터로 이어지고, 수 미터는 수 킬로미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둥소리가 멎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거짓 신들을 조각한 거대한 석상들 아래, 그리고 이미 오래 전 사멸한 정착지들의 유골을 담고 있는 균열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 그 위에 지어진 이 미궁. 그 미궁 속을 헤쳐나가는 동안, 제폰의 관심은 불안한 의심을 따라 표류하였다. 또 하나의 넓은 석조 아치 다리를 가로지르는 동안, 제폰의 눈에 태양 없이 싸늘하게 식은 어느 도시, 그 전체의 잔해가 들어왔다. 그와 그 무덤-도시 사이에 엄청난 고도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제폰은 유리창 없이 텅 빈 검은 눈동자 같은 창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나먼 과거의 유령들이,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지나고 있는 것을 공허하고도 음울한 침묵 속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장소가 햇빛 아래 서있었을 때,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이었을까? 제폰은 자신이 그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인지,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누군가로부터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카스 만다우-Kath Mandau다*.] 복스를 통해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주: 카트만두-Kathmandu. 현재의 네팔의 수도임.)


 제폰은 그의 발 아래로 500m 밑에 놓여 있는 사멸한 도시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그곳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흙먼지의 내음이 담겨 있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디오클레티안 공?” 제폰은 복스를 통해 답신을 보냈다.


 [이 장소가 한때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지. 이곳은 카스 만다우라는 이름의 도시다. 사가르마타-Sagarmatha*, 혹은 네팔이라고 불리우던 국가의 수도였지. 한때 이곳은 세상의 지붕이었다.]


(*역주: 네팔에서 에베레스트 봉을 부르는 이름. 네팔어로 “하늘의 이마”라는 뜻.)


 “그것 참 시적이로군요.” 그리고 이제, 그 도시는 사멸한 채 황궁의 기반의 일부로서 쓰러져 있군. 오직 저 위의 세상에 그 이름만을 남겨놓고. “감사합니다, 디오클레티안 공.”

 저 앞쪽, 행렬의 선두에 있을 커스토디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다리는 지지대와 흑철 지지탑들로 보강되어 있었다. 저 멀리 떨어진 동굴의 벽면까지 이어지는 석조 통로를 지지대들이 하나로 묶어두고 있었다. 지하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으로 인해 공기 그 자체가 어슴푸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독기가 치솟으며, 그 열기가 제폰을 괴롭혀 대고 있었다.


 녹아 내린 암석이 부글거리며 걸쭉하게 흘러 내려, 저 아래의 심연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행렬이 건너고 있는 다리는 테라의 지각에 벌어진 상처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 상처란 마치 행성의 맨틀 그 자체까지 닿도록 활짝 벌어져 있는 듯하였다. 타오르는 행성의 혈액이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저 멀리, 저 발 밑 깊은 곳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어두운 그늘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키우기만 하면서.


 행렬이 미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자, 보다 더 많은 이미지들이 석실의 벽 위로 나타났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황토와 목탄으로 그린 벽화에서, 솜씨 좋게 그려진 모자이크화와 인상파 화풍의 풍경화로 변모하였다. 태양과 우주, 테라의 푸른 하늘과 그 너머에 놓인 칠흑의 공허를 그린 그림들. 고요한 밤하늘을 향해 노래하였던 극초기의 기계 장치, 위성들을 묘사한 상형문자들까지.


 그 다음으로 암흑기의 그림들이, 옛 밤 시기의 그림들이, 테라를 황폐화시켰던 통합 전쟁 시기의 미술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전까지의 그 어떤 전쟁들과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흉포했던 전쟁들로 인해, 그림 속 도시들은 존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육신의 인류-Men of flesh돌의 인류-Men of stone에 맞서, 그리고 강철의 인류-Men of steel에 맞서 투쟁하였다. 제폰은 우주의 그림 속에 그려진 바알의 모습을 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알의 그림은 그의 손이 닿기에는 너무 높은 천장의 벽화 가운데에 그려져 있었다. 제폰은 양 주먹을 모아 자신의 심장 앞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엄숙히 경의를 표하고는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제폰이 걸어 지나가는 벽면 위로, 두 번 다시는 없을 규모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괴의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옛 밤 이후 하나의 종족이 그 주인의 황금빛 손길에 인도되어 하나로 모이고, 구원을 받는 장면들이 그 뒤를 이어 그려져 있었다.

 그 뒤로, 괴물들의 그림이 이어졌다. 인류의 악몽으로부터 초래된 악마들의 형상이, 화염과 얼음, 연기와 홍수로 이루어진 영역들 속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림이. 붉은 피부에 황동 갑주로 무장한, 뿔 달린 괴수들. 고대의 조류(鳥類)의 얼굴과 형태를 띄고, 송장을 먹고 있는 해골 춤꾼들. 제폰은 그림 속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 속에서 나타난 괴물들의 형상을 보았다. 자신이 어릴 적, 잠결에 상상으로 빚어 내었던 그 괴물들을.


 어떻게 저것들이 저 그림 속에 있을 수 있는 거지?


 그에 대한 대답이 저절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폰은 또다른 변화가 발생한 것을 눈치채었다. 이번에 변화한 것은 그의 주변 환경이었다. 기계장치와 기관장치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 장치들은 지면에 박혀 있거나, 미완성된 벽화와 모자이크화들로부터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행렬이 굽이길과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쿵쾅거리는 공장의 금속성 음악은 점점 더 커져갔다. 벽 위를 채우고 있던 여러 시대들의 그림들이 사라지고, 기계장치들에 전력과 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전선과 도관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모든 장치들은 다급히 필요한 탓에 황궁의 기반을 이루는 바위 속에 비집어 넣어, 고정시켜 놓은 듯 보였다.


 기관장치들 중 일부는 마치 원심분리기가 혈액을 회전시키 듯 화학 약품들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장치들은 동력을 빨아들이는 것인지 생성시키고 있는 것인지 덜덜덜 요동을 치고 있었고, 개중에는 동력을 다른 곳으로 뿜어 보내기 위한 교차점 역할을 하고 있는 장치들도 있었다. 탑처럼 높이 쌓인 상자들이 각각의 방마다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그 밑에는 미완성된 건축 구조들이 가려져 있었다. 사방 모든 곳에 로브를 뒤집어 쓰거나, 코트나 작업복을 걸치고 있는 인부들이 있었다.


 제폰은 두 눈으로부터 조용히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내기 위해 헬멧을 벗었다. 이 여정, 이 미궁 전체를 통과하면서 동안 겪었던 고뇌가, 그가 이전까지 품고 있었던 의심을 대신해 그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이 여정이, 워프 없는 인류의 삶의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이곳이 웹웨이로의 통로였다…. 인류는 명철을 얻기 위한 여정으로서 이 미궁을 통과하고, 이 모든 상징들 속에 휩싸여, 별들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했어야만 했다. 한 인간의 비전을 통해, 종족 전체가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통로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잠긴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암반의 많은 부분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었고, 계몽을 이끌었어야 할 통로는 이제 마그누스의 어리석은 우행 이후에 박아 넣어진 고대 기술의 기계장치들로 인해 망가지고 훼손되어 있었다. 전쟁이 이 마지막 희망의 장소에까지 그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돌연, 앞으로 몇 개월 뒤면 이곳이 파괴될 그 광경이, 너무도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호루스가 이끄는 반역자들이 테라에까지 당도하게 되면, 그 우상파괴자들의 난폭한 손길이 이곳을 덮치리라. 과연 저 반역자들이 이 미완성된 미궁이 약속하는 미래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무지와 분노 속에서 이곳을 훼손해버리고 말 것인가?


 제폰의 입가에 떠오른 미약한 미소는 작고도 음울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폰은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확신을 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황제의 비전이 미완성된 채로 끝난 데에 비통해하고 있었다. 미궁을 걸으며, 제폰은 자신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제폰은 창백한 두 눈동자를 지그시 감았다.


 “어째서 울고 계십니까, 블러드 엔젤이시여?”

 제폰은 고개를 돌려 자야의 최고 성구관리인을 돌아보았다. 행렬 사이에서 그가 있는 부분 가까이에는 오직 서비터들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토롤렉, 그것이 이 사제-장인의 이름이었다. 몇 주 전 황궁의 흉벽 위에서 보았을 때, 그 한 번 외에는 본 적이 없는 자였다.


 “상실감 때문이네.” 제폰은 그리 말하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거의 다 온 건가?] 자야 남작이 범용 복스 채널을 통해 물었다.


 [어디에 말인가?] 디오클레티안이 태평히 대답하였다.


 [황궁 지하실에. 황제 폐하의 연구소에 말이오.]


 커스토디안의 대답이 즉각 되돌아왔다. [그 둘은 같은 것이다.]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마지막 봉인을 지난 이후부터 우리는 이미 황궁 지하실 내부에 있었다. 이곳이 바로 황제 폐하의 연구소이다. 이 모든 곳이 다.]


 제폰은 다시 헬멧을 쓰고 목덜미의 잠금 장치를 잠갔다. 기압으로 인해 짧게 쉭 하는 소리가 났다. 제폰은 파워 아머 내부의 재순환된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로부터 채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행렬은 영원의 관문-Eternity Gate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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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끝나고 인턴 준비 중. 내일이 면접이라 시간이 안 될 거 같아서 오늘 먼저 올려 놓는다.

위에 14장 밑에 부제가 들어가야  할 곳에 있는 저 그림은 원본에도 그대로 올라와 있는 거임.

이번 장은 부제가 없고 그 대신에 저 그림 하나만 떡하니 그려져 있더라.

이번 장 내용에 따르면 황궁은 현재 카트만두가 있는 위치 그 위에 있다고 보면 될 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