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브 II는 광물이 풍부하고, 이 행성에서만 나는 특출난 보석을 특산품으로 삼는 행성이다.
하지만 행성 전역을 뒤덮는 모래폭풍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었고, 이에 표면에서의 생활은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한 행성이었다.
이것이 행성의 거주지가 개미굴과 같이 지하로 파고드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이유였다.
하여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공기를 정화하고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 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통제실이 중요한 이유였다.
적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당연히 통제실의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들어올 수 있는 통로에 잡동사니와 분대지원화기로 진지를 설치하고 농성 준비를 해놨었다.
가장 넓은 통로라도 사람 셋이 지나가기 버거운 넓이인 데다, 방어자들이 설치한 진지 외에는 엄폐물이 극도로 적은 공간이었기에 그들의 방어선은 잘 훈련된 행성방위군이라도 뚫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는 행성의 정예병들을 가볍게 웃도는 무기로 무장한 로그 트레이더의 수행원들이었다.
학살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전투가 끝나고 난 뒤, 수행원들은 그대로 통제실까지 밀고 들어갔다.
통제실 내부에 있는 반군들도 나름대로 무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바깥의 인원들에 비하면 정말로 초라할 정도의 무장이었다.

"통제실을 점령했습니다, 리토 팀장님."
"좋아. 우리가 점령한 지역 이외의 환기 및 광원 시스템을 꺼버리게."

검은색 카라페이스 아머를 입은 남자가 명령하자 곧바로 몇몇 인원들이 통제실의 코지테이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실의 모니터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구역에 전원이 차단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럼, 우리 일은 끝난 거지?"

인간이 가만히 모니터를 노려보는 리토에게 말을 걸었다.
중무장한 리토와는 다르게 인간은 여전히 검은 페도라와 코트를 입은, 얼핏 보기에는 평상복과도 같은 차림새였다.
리토의 얼굴까지 가리는 투구가 살짝 돌아갔다가 다시 모니터로 향하였다.

"일단은. 다만 이걸로 끝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네."
"어차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행성방위군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치?"
"그랬으면 하네만..."

리토가 말끝을 흐리는 순간, 인간의 복스캐스터에서 소리가 났다.

"별종, 들리나?"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겠는데."
"네가 똑바로 된 이름을 말해 준 적이 있어야 부르지."

통신기 너머 목소리가 짜증을 가득 담아 대꾸했다.

"아무튼, 너희 팀원은 이제 진압팀하고는 따로 떨어져서 움직여."
"어... 그 말은 복귀해도 된다는 거지?"
"1점짜리 농담이었어."
"아, 제발. 한,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승강기를 통해 지하 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가. 가능하면 반군 지휘부를 찾아서 제거해. 작전 수행 중에 일어나는 일은 재량껏 처리하고."

인간이 칭얼거렸지만, 상대는 그에게 할 일만 전달하였다.
통신을 끝낸 인간은 어느새 자신의 주위로 다가온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들었지? 가자."

인간의 말에 그의 팀원들은 곧바로 자신의 장비들을 챙겨 들었다.

"리토, 먼저 가본다."
"몸조심하게."

인간의 팀원들은 반군의 시체를 치우고 그들의 장비를 수거하는 인원들 사이를 지나 승강기로 향했다.
승강기는 통제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고, 입구가 열린 채 멈춰있었다.
케이타를 마지막으로 팀원들이 전부 올라타자 그녀가 물어봤다.

"어디까지 내려가?"
"최하층까지."

그 말에 케이타가 조작 손잡이를 하강 위치로 움직였다.

"안 움직이는데?"
"반대로는?"
"마찬가지야."
"기다려봐."

인간은 곧바로 자신의 통신기에 대고 통제실에 있을 다른 팀장을 호출했다.

"최하층까지 가려고 하는데, 전력 좀 넣어줘."
"알겠네."

잠시 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케이타는 재빨리 손잡이를 반대쪽으로 돌렸고, 다시 한 번 덜컹거린 승강기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층을 벗어나자마자, 엘다는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답답했던 얼굴에 바람이 닿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며 엘다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타도 자신이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다만, 그들과는 반대로 바르파는 오히려 자신의 헬멧 위치를 조절하며 파워 아머와의 사이에 틈새 하나 없도록 하였다.
케이타가 답답하지 않냐며 물어보자 바르파는 오히려 그녀에게 그녀가 입고 있는 카라페이스 아머를 다시 한번 점검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던 중, 인간의 복스캐스터에 연락이 왔다.

"위니아 팀, 들리나?"

리토의 목소리가 들리자 인간이 응답했다.

"무슨 일 있어?"
"그 승강기는 최심부까진 내려가지 않네. 중간부터는 다른 승강기를 찾거나 걸어서 내려가야 할 것이야."
"알겠어."

승강기가 내려가면서 창살 사이로 복도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비효율적인 구조를 가진 승강기라고 생각하던 엘다에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몬-케이."
"응?"
"우리가 내려가는 곳은 안전한가?"
"무슨 소리야?"
"적들이 점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그렇지. 물론, 그에 대한 대책도 준비해 놨어."

그렇게 말하며 인간은 케이타에게 다음 층에서 승강기를 멈추라고 말했다.
승강기가 멈추자 인간은 팀원들과 함께 내렸다.
이어서 통신기를 통해 승강기를 가장 아래로 내려가게 조작할 것을 요구한 뒤, 팀원들에게 무언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게 뭐야?"

케이타가 인간에게 받은 손잡이가 달린 네모난 모양의 물체에 대해 물어봤다.
다목적방독면을 꺼내 착용한 인간은 자신도 똑같은 것을 꺼내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앞으로 쭉 뻗었다.

"여기 옆에 보면 버튼이 있지?"
"응."
"이걸 누르면-"

인간이 비어있는 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물체가 좌우로 벌어지며 가운데에 레일이 있는 틈이 생겨났다.

"-이렇게 돼. 그리고 이 상태에서 손잡이 위에 있는 이걸 밀면-"

인간이 엄지손가락으로 손잡이 위의 버튼을 밀자 레일이 다시 닫히며 내부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레일이 아래로 움직여. 아래로 당기면 반대로 움직이고."
"그래서 이게 뭔데?"

케이타가 물어보자 인간이 말 대신 보여주는 게 빠르다며 바르파를 불렀다.
바르파는 익숙한 듯 장비를 잡고는 엘리베이터 샤프트에 그걸 끼웠다.
뛰어내리며 장치를 작동시킨 바르파는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를 본 케이타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저렇게 내려간다고?"
"헬멧 끼고, 혹시 모르니까 무기도 들고."
"이런 씨발..."

케이타가 주저하는 사이 엘다는 다시 헬멧을 끼고 장치를 손에 잡았다.

"선 잘 보고 끼워. 아래로 내려가는 줄에다 장착해야 해. 끼운 뒤에는 뛰어내리면서 손잡이 버튼을 당기고. 빠르게 해야 된다. 알지?"

엘다가 준비를 마치자 인간이 마지막 조언을 했고, 엘다는 왼손에 라스피스톨을 든 채 장치를 끼웠다.
끼우는 순간 엘다의 손이 줄의 움직임을 따라 아래로 딸려 내려갔고, 엘다는 곧바로 몸을 던졌다.
장치를 끼웠다곤 했지만, 아직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기에 자유낙하와 다를 바 없었고, 이에 엘다는 재빨리 손잡이 위쪽의 버튼을 당겼다.
자신의 몸무게가 한쪽 어깨에 지탱되며 순간적인 충격이 전해져 왔다.
짧은 신음을 흘리면서 엘다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통로 사이사이로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보였고, 저 아래에 먼저 내려가서 승강기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르파가 보였다.
승강기와 엘다간에는 거리가 꽤 있었으나, 내려가는 속도가 생각보단 빨랐기에 그녀도 곧 승강기 위쪽에 착지했다.
엘다가 내려오자 바르파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당겨 줄에서 멀어지게 했다.

"처음 치곤 잘했다."

약간의 노이즈가 섞인 바르파의 칭찬에 엘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정도로 답했다.
엘다는 어깨를 풀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등에 라스카빈과 라스라이플을 매단 케이타가 양손으로 장비를 잡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케이타의 표정은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몸을 움츠린 모습에서 그녀가 잔뜩 긴장하고 있음이 보였다.
바르파 역시 똑같이 생각했는지 케이타가 내려오는 걸 기다렸다가 엘다가 내려왔을 때와는 달리 곧바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 씨발... 난 이런 장소가 너무 싫어..."
"그래도 재미있지 않았어?"

인간이 내려오면서 케이타의 말에 덧붙였다.

"재미는 애미 씨발."

행성으로 내려가 행성방위군을 지원할 것이라고 전하는 인간의 말에 침대에 누워있던 케이타가 중얼거렸다.

"왜? 그래도 네 소원처럼 성계 밖으로 나왔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행성이 위기에 빠졌건 말건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
"몬-케이들은 종족애도 없나?"
"뭐?"

엘다의 말에 케이타의 고개가 돌아갔다.

"동족이 위기에 처해있으면, 당연히 돕는 게 맞지 않나?"
"그렇지!"

인간이 엘다의 말에 동의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알지?"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돕는 게 맞다, 케이타."
"잠깐만, 잠깐만. 왜 다들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케이타가 자신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지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그야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맞긴 하지.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능력이 될 때 얘기잖아? 행성에서 반란이 일어난 걸 우리가 무슨 수로 도와줘? 아스트라 밀리타룸 정도는 되어야 개입을 하지."
"케이타, 너무 우리 상단을 작게 보는 거 아냐?"
"우리 상단이야 크지. 근데 이 장소에는 우리 상단이 전부다 와 있는 게 아니잖아?"

케이타의 말에 엘다는 몇 주 전 일을 떠올렸다.
다른 행성-마크라지라는, 엘다도 들어본 적 있는 행성이었다-에서 온 상단주가 상단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중대 사항을 전했다.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역증서를 그의 아들이자 엘다가 속해있는 함선의 함장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상단주의 함선을 비롯하여 상단의 3/4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떠나갈 것이란 내용이었다.
엘다는 워프 항해라는 것에 큰 걱정을 하였지만, 의외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케이타가 다시 분해해서 엘다의 후드에 장식한, 인간이 준 정체불명의 무언가 덕분인 듯했다.
그 증거로, 인간은 엘다에게 항해하는 내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후드를 벗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에 엘다는 잘 때조차 후드를 착용하고 다녔고, 그런데도 체취가 거의 나지 않는 걸 신기해하는 케이타에게 시달려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도착한 첫 행성이 바로 이곳이었다.
새로운 개척지는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나아가기 전 앞으로도 이러한 행성을 몇 군데 더 들릴 것이라고 인간이 설명해줬다.

"우리가 주력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우린 행성방위군을 돕는 정도야. 그 대가도 분명 있을 거고."
"용병이란 거네."
"어느 정도는. 사실 그것보다는 새로운 단장님의 성향이 더 강하게 작용된 것 같지만."
"그 인간은 그 나이 먹고도 여전히 소년 같은 면이 있다니까."

케이타가 가볍게 툴툴거렸다.

"탐험가가 모험심을 잃지 않는 건 좋은 마음가짐이다."
"아, 그래. 바르파. 너도 우직하지."
"아무튼, 이번엔 지하로 내려갈 거니까 다들 단단하게 무장해야 할 거야."
"지하? 아, 젠장..."

인간의 말을 들은 저격수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난 그런 곳이 정말 싫어."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돈 모아서 방어구를 더 사던가."
"지금 있는 것만 해도 존나 부은 거 거든? 어떤 떡대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말이야."
"널 생각해서 그런 거다."

바르파가 담담하게 말하자 케이타가 장난스럽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너도 헬멧을 챙기는 게 좋겠어."

그들이 그러는 사이 인간이 엘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꼭 필요한가?"
"아마도. 지하다 보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 알지?"
"하지만 난 헬멧이 없다. 추적자들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다."
"그럼 무기고에서 슬쩍 하지 뭐."

그렇게 말한 인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다에게 따라오라 했다.
케이타가 심심하다며 따라왔고, 바르파는 자신의 장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일어났다.
결국, 엘다에게 맞는 헬멧을 찾는데 팀원들이 전부 달려들었다.

"너희는 어떤 방어구를 착용하지?"
"나는 얼굴만 가리는 가면 비슷한 걸 쓰고, 케이타는 평범한 헬멧, 그리고 바르파는 엄청 두꺼운 걸 써."
"네가 쓰는 것과 비슷한 게 여기 있나?"
"이거 정도?"

인간이 방독면과 비슷한 물건을 들어 올렸다.
그걸 건네받아 살펴보던 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보이는군. 그걸로 하지."
"아니, 이건 안 돼."
"왜지?"
"그야, 네 귀가 바로 드러나 버리잖아. 정체는 숨겨야지. 알지?"

엘다는 그의 의견에 순순히 마스크를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이어서 가장 먼저 헬멧을 추천한 건 의외로 바르파였다.

"이건 어떤가?"

그가 건낸 건 한눈에 봐도 단단한 헬멧이었다.
검은색 금속으로 이루어진 헬멧은 눈이 드러나는 부위를 최소화하고, 그나마 드러난 부분도 짙게 칠해진 방탄 플라스틱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거 숨은 쉴 수 있는 거 맞지?"
"정화시스템이 있다."

케이타의 말에 바르파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케이타는 그 대답에 뭔가 말하려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됐다고 말했다.
그사이 엘다가 그 헬멧을 받아들었다가 써보지도 않고 다시 바르파에게 건넸다.

"지나치게 무겁군."
"그만큼 튼튼하다."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튼튼함은 둔함일 뿐이다."
"그럼 이건 어때?"

케이타가 오토바이 헬멧과 비슷한 걸 내밀었다.
짙은 남색 보호구를 받아 둘러보던 엘다는 그걸 머리에 써 봤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가볍고, 네 정체도 숨길 수 있어."

하지만 엘다는 다시 헬멧을 벗어 케이타에게 돌려줬다.

"지나치게 압박되는군."
"음... 그 머리카락을 집어넣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머리카락이 노출되잖나."
"그럼, 머리망을 하는 건 어때?"

케이타의 제안에 엘다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괜찮을 것 같군."
"그럼 이걸로 된 거지?"
"아니. 그건 안 돼."
"왜?"

인간이 반대하자 케이타가 되물어봤다.

"그건 순수하게 방호만 되잖아. 통신장비에 공기 여과 장치도 있어야 하고, 혹시 모르니 야간투시 기능 정도는 달린 걸 찾아봐야지."
"바라는 것도 많다, 진짜.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어?"
"깜빡했어."

인간의 말을 들은 케이타는 혀를 작게 차며 주변을 뒤적거려 다른 헬멧을 집어 들었다.

"자. 그럼 이거면 되지?"

어두운 녹색을 띤 금속으로 된 헬멧은 눈 부위만 코팅된 강화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었다.
강화 플라스틱 주위는 살짝 돌출되어 있었고, 정수리 부분에는 추가 장갑을 덧대어 작은 언덕처럼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다만 얼굴을 집어넣는 부분에는 구멍이 뚫린 조금 말랑한 재질로 되어있었다.
엘다가 그걸 받아서 머리에 쓰자, 케이타가 헬멧의 한 부분을 눌렀고 엘다는 자신의 목이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음에도 압박되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이렇게 압박이 심한가?"
"목 부분에 추가 방어구를 장착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거라 그래. 불편해?"
"신경 쓰이는 정도지만, 견딜만 하다."
"그럼 됐지? 머리망은 내가 나중에 줄게."

케이타가 인간을 바라보며 말하자 인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 준비된 거 맞지?"

최하층에 도달한 승강기가 멈춰서자 인간이 작게 말했다.

"통신 주파수부터 다시 확인하자. 다들 내 말 들려?"

인간의 말에 각자가 대답하자 인간이 이어서 말했다.

"다행히 내려오면서 적이랑 마주치진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을 거야. 내려오면서도 중간중간 불 꺼진 층들 있었고. 아마 이 아래도 그렇겠지."
"적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다의 말에 케이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인간 역시 예상하고 있었는지 바로 설명했다.

"그래서 진입은 바르파가 맡을 거야. 그 뒤로는 내가 뛰어들 거고. 케이타가 제일 마지막에 내려와."
"내가 먼저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나?"
"너는 지원 사격보다는 근접전이 전문이잖아. 만약 아래에 적이 있다면 바르파를 도와서 곧바로 지원 사격을 할 수 있는 인원이 내려가는 게 맞아. 그렇다고 케이타를 내려보내기에는, 혹시라도 적들이 근접전을 걸어온다면 그때는 내가 더 나으니까."

엘다는 인간의 설명에 수긍하며 비어있는 오른손에 검을 들었다.
그 행동을 기점으로 각자 자신의 무기를 꺼내어 들기 시작했다.
케이타와 인간은 라스카빈을 들었고, 바르파는 왼손에 해머를, 오른손에는 작은 방패를 들었다.
모두 무장을 마친 걸 확인한 인간은 승강기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

"아, 이 생각을 못 했네."

인간이 깜빡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 있어?"
"입구가 좁아. 다른 사람은 문제없지만, 바르파가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겠네."
"그럼 어쩌지?"

잠시 생각하던 인간은 엘다에게 검을 빌려달라 했다.
검을 받은 인간은 검의 역장을 키고 입구 주변을 조심스럽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잘린 틈새 사이로 승강기의 빛이 들어오자 인간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칼질을 마친 인간은 칼을 엘다에게 돌려주고 무전기를 켜 통제실에 전원을 차단하라고 말했다.
틈 사이로 나오던 불빛이 꺼지자 인간은 바르파에게 해머를 빌렸다.

"원래는 조용하게 시작하려 했는데, 조금 소란스러운 방식으로 시작해야겠어. 순서는 그대로. 바르파, 내려가자마자 바로 망치 돌려줄게."

그렇게 말한 인간은 숨을 들이쉬며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의 다음 행동을 눈치챈 다른 팀원들이 긴장했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미리 흠집을 내뒀던 승강기의 천장이 떨어져 나갔고, 바르파가 곧바로 그 구멍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