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계 전사(Warp Translation) 시작합니다.
셋… 둘… 하나…"
항주사(Navigator) 아키미나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함교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그녀는 갑자기 함교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이 아니라 도축되는 동물이 질러대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단말마의 비명이
강력한 초능력자인 그녀의 염력으로 증폭되어 순식간에 함선 전체에 폭풍처럼 몰아치자,
질서정연했던 함선의 완벽했던 기율은 순식간에 깨어졌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울음소리였다.
승무원들 중 일부는 그 소리에 공명하듯 자신의 머리를 와락 움켜쥐었다.
크란츠 역시, 지휘고 뭐고 당장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그의 머리는 수십명이 두들겨 패는 것처럼 쿵쾅거렸고, 고막은 금세라도 터져나갈 듯이 욱신거렸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본 그의 눈에
함선의 모든 감지장비가 미쳐 날뛰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들어왔다.
블랙 레코닝의 전탐병은
광분하고 있는 계령(Machine Spirit)을 진정시킬 요량으로
최선을 다해 빠르게 눈앞의 룬 문자를 두들기며,
계속해서 계령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주문을 걸었다.
각고의 노력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자 그는 속수무책인 표정으로 지휘석을 올려보았고,
크란츠는 그의 눈동자 속에 자리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장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각하.
탐지기에 따르면…
그저 저들의 숫자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많은 거라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의 생체 전함들이 탐지기의 녹색 화면을 뒤덮고 있었다.
놈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크란츠의 눈에 이들은 여러 점들이 아니라,
명멸하는 밝고 거대한 빛덩이 하나가 함선을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눈사태 속에서 눈결정 하나의 경로와 속도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듯이
지금 상황에서 저놈들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란츠는 직감적으로
놈들 중 일부가 그들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판사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대부분의 함교 승무원들은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육벽(肉壁)의 섬뜩함에,
제자리에 못박힌듯 마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고,
일부는 자리에서 이탈한 채, 현실을 부정하며 울부짖었다.
"너무 많아…"
한 승무원이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거칠게 말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외치며 함교 밖으로 나가려고 뛰쳐나갔다.
"너무 많다고!"
바로 그때, 치안원의 산탄총이 불을 뿜었다.
탈주병의 피가 크란츠의 뺨에까지 튀었다.
그는 사살 당한 시신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무심한 표정으로 얼굴에서 피를 닦아냈다.
"자리를 지켜라."
크란츠는 공포에 질려
당장이라도 터져나올듯이 두근거리는 자신의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외쳤다.
승무원들은 그의 명령에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지만,
크란츠는 자신의 닭살을 뒤덮은 식은땀의 끈적함이 느껴지듯,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저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란츠는 다시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강철처럼 지엄한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남몰래 깊은 심호흡을 여러번 반복했다.
여기서 그들이 결코,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다면, 그가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국에게 지금 이 사태에 관한 경고를 보내야했다.
각오를 다진 크란츠는 이를 악다물고는 통신사의 자리로 달려갔다.
"함대 전체 주파수와 민간 주파수도 가리지 말고 통신 접속이 가능한 모든 주파수를 열어."
통신수는 사시나무 떨 듯 와들와들 심하게 떠는 바람에
크란츠에게 송화기를 전달하다가 거의 바닥에 떨굴 뻔 했다.
항주사(Navigator) 아키미나는 여전히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저거 닥치게 해!"
크란츠가 으르렁 거렸다.
마침내 통신선은 조용해졌다.
그는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들이키고는 최대한 침착하고 명확한 어조로 통신을 개시했다.
"여기는 크란츠 판사, 네 임무를 기억하라!
외계인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통신가능한 모든 주파수와 닿을 수 있는 성계 내 모든 대역으로 방송한다.
에그란스 성계에서 타이라니드 생체 함대와 조우했다.
추정 숫자는 수천이 넘는다.
모든 함장들은 즉시 최선을 다해 회피 행동으로 이행해라.
우리는 반드시 이 경고가 제국에 닿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원감사(遠感士; Astropath)가 성간통신을 발신하지 못했습니다, 각하."
통신사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보고했다.
"전부 왜곡계(Warp)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간답니다."
"모두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 시도하라고 말해."
크란츠가 일갈했다.
아스트로패스가 진짜 3D직종이네..
등장할 때마다 한 명씩 터져 나가요.
워프는 왜곡계라기보단 왜곡우주? 왜곡계우주?라고 번역하는게 더 나을듯 워프우주라고 번역되어 왔던 것 때문에 그에 맞추어서 어미에 우주를 붙이는게 어감이 좀 더 좋음 - dc App
의견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