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버티는 방식이… 흐으음…”
앙그론의 한 손이 순간 그의 두피를 덮었다. 칸은 그의 손가락이 깊게 패인 흉터의 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랑 비슷하군. 네놈의 피도 나처럼 스스로 굳어지고… 그 냄새도…”
앙그론이 다시 주먹을 쥐었고, 칸은 그 강대한 힘이 팔뚝을 타고 어깨로, 목으로, 그리고 다시 한번 분노의 가면으로 화하여 프라이마크의 얼굴에 엉기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서툴게 한쪽 무릎을 꿇은 칸은 새로이 닥칠 공격을 예상하고 이를 악물었지만, 앙그론은 그저 칸의 주위를 계속 돌 뿐이었다.
“맨주먹으로 싸우는 전사라기보단 무기에 익숙한 행태군. 내가 널 죽이는 곳이 뜨거운 먼지 위에서였더라면, 네 이름을 알아냈겠지. 나에게 충분한 예를 갖추고, 함께 밧줄을 새겼을 테니.”
칸을 둘러싸고, 소리 없는 묵직한 발자국이 계속 옮겨졌다. 흡사 묵직한 사슬을 어깨 위에 두른 듯, 프라이마크의 시선이 칸의 위로 올라 앉았다.
“네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죽음을 맞는다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았나?”
칸은 그게 신경이나 쓰일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답해야 할 질문이 아니었다. 지금 칸은 이 자리에 사절로서 군단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온 것이지, 토론을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희는 주군께서 이끄시는 군단입니다, 프라이마크 앙그론이시여. 저희는 주군의 도구이며 주군의 명을 따릅니다. 적의 죽음을 명령으로 내리실진대, 저희의 죽음 역시 주군의 명으로 가능하나이다.”
이번에는 주먹질이나 조르기, 혹은 걷어차기가 아니었다. 그저 두 빈 손이 그대로 칸의 머리를 연이어 후려칠 뿐이었다. 칸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한 번만 날 더 조롱하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네놈의 해골을 부숴 버리겠다.”
앙그론의 목소리는 절제된 떨림이었다. 그것이 노호보다도 더 두려웠다.
“내 전사들, 내 형제자매들, 오오, 내 용맹한 이들, 내 형제들, 내…”
몇 초 동안, 앙그론은 그저 고개를 까딱이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입이 벌어진 채, 아무 소리도 빚어내지 않은 채였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나를 남겨두고 다 죽었어, 나는…”
앙그론의 주먹이 움직여 허벅지와 가슴 위를 때리기 시작했다. 한 주먹을 당겼다가, 다른 주먹이 그대로 임과 뺨을 감쌌다. 방 안의 새로운 정적 속에서, 그가 자기 살을 물어뜯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앙그론은 무릎을 꿇고, 제 얼굴 앞까지 들어 올린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근육은 팽팽하게 조여진 채였다.
침묵이 내렸고, 마침내 그 침묵을 깬 것은 칸이었다.
“저희는 주군의 군단입니다. 주군의 피와 유전자로 저희가 빚어졌고, 주군의 형상대로 저희가 깎여졌나이다. 저희는 주군이 계신 곳을 찾아 지금까지 싸워 왔고, 피를 흘리며 세계를 불태웠나이다. 수많은 제국을 조각냈고, 수많은 종이 저희 앞에 망각되었나이다.”
제발 말을 마치게 해 주소서, 주군이시여. 칸은 제 목소리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저희 청원을 주군께 전하는 것으로 제 임무는 끝나고, 저는 만족하나이다. 주군의 뜻대로 하소서.
“저희는 절대 주군과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저희 프라이마크시오,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저희 혈통의 조상이시며 저희의 근원이십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주군께 맞서 싸울 수는 없으며, 제 전투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나이다. 저희는 이곳에 사절로서 왔으며, 저희 군단과 저희… 저희 황제 폐하를 위하여 왔나이다.”
칸은 순간 긴장했지만, 앙그론은 이번에는 그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다.
“저희는 주군께서 빚어지실 때부터 준비된 생득의 장소에 서실 것을 간청하기 위해 주군 앞에 온 것입니다.”
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앙그론이 여전히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린 곳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조차도 프라이마크가 열기처럼 뿜어내는 폭력의 기운이 칸을 멈칫하게 했다. 칸은 불안한 숨을 몰아쉬었다. 상처가 발하는 고통이 그의 의식 가운데 머물며 쏘아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칸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서, 보트 행성의 산자락에서 최면으로 새겨진 전장 훈련을 떠올리며 고통을 억눌렀다. 그러면서, 칸은 다시 의지를 다졌다.
칸은 그렇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짤막한 휴식 속에서, 칸은 제 마음을 이 임무에 온전히 바쳤다. 전장에서, 요새화 작업에서, 검을 휘두르는 적 앞에서 집중하듯 말이다. 칸은 자신의 임무에 대해, 재앙에 가까웠던 행성 표면 강화 전후 황제 폐하의 기함에서 벌어진 사태를 담은 보고서에 대해, 그리고 제 프라이마크가 뱉은 말에 대해 생각했다. 저 아래에서 전투가 벌어졌음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칸은 저들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느꼈다. 지금 시체가 되어 누워 있는 반군들은 그들의 프라이마크 영도 아래 움직이는 영광을 누렸으니까. 그 자리에서-
“솔직히 그들이 부럽습니다.”
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군과 함께 싸웠던 이들, 그들을 제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이다. 그들은 주군을 따라 전장에 섰고, 제 형제들과 제가 주군께 청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나이다. 그들이 그러했듯, 저희 역시 주군 곁에서 싸울 기회를 주소서.”
천천히, 프라이마크의 손이 얼굴에서 내려왔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깨지지 않은 조명에 등을 대고 무릎을 꿇은 채였다. 실루엣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적외선을 볼 수 있는 칸의 눈에는 앙그론의 얼굴이 들어왔다. 거대한 얼굴 위로 씁쓸하고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가? 대못도, 밧줄도 없는 주제에. 칸, 소위 군단에 속해 있다고 했더냐? 조롱하려거든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거다. 수용소에서 너랑 했을 법한 건 운동 정도밖에 없다. 조추라는 아주 무자비하게 널 박살을 냈겠지. 혓바닥이 날카로운 꼬마였다.”
미소에서 씁쓸함이 사라졌다.
“그 녀석은 다른 사람들을 미끼로 꼬여내곤 했어. 감옥에서 처음 그런 꼴을 봤고, 떠돌면서도 그러는 걸 자주 봤다. 그 자식이 조롱하고 나면,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지. 그리고 그 꼬맹이와 놀림거리가 된 놈은 나머지보다도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뭐랄까… 좋았지. 보기 좋은 꼴이었다. 조추라는 자기가 죽는 날이 오면, 저를 죽인 놈을 비웃으며 죽겠다고 항상 맹세했었다.”
미소가 사라지고, 앙그론의 입이 잔인하게 비틀렸다.
“나는 그에게 말했어… 말했다고… 으으.”
큰 주먹이 다시 바닥을 후려치고, 칸은 그 충격을 느꼈다. 다시 말하려 했지만, 앙그론의 팔은 시각의 흐름보다도 빠르게 뻗쳐 왔다. 그대로 앙그론의 손이 칸의 턱과 목을 한번에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앙그론의 외침은 너무도 거대했고, 거의 백색 소음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손은 흡사 자루라도 흔들 듯 칸을 뒤흔들었다.
“우린 맹세했다! 맹세했다고!”
앙그론은 칸을 앞뒤로 흔들어댔다. 그의 다른 손은 바닥을 거칠게 후려치고 있었다. 그 모든 소란 속에서, 날카롭게 새로운 냄새가 칸의 후각에 새겨졌다. 칸은 그것이 갓 흘린 프라이마크의 선혈임을 깨달았다. 앙그론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돌바닥을 계속 후려쳤다.
“우린 맹세를 바쳤다.”
앙그론의 말이 이어졌다. 흡사 강철을 짓씹어 비틀면 저런 소리가 날까 싶은 것 같은 신음에 가까운 낮은 소리였다.
“데쉬아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들 각자에게 내 밧줄에 새로운 상처를 새겨달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밧줄에 새로운 상처를 새겼지. 그리고 우리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높이 선 자들에게 1백 년은 피를 흘려야 할 상처를 새겨 주겠노라고 맹세했다!”
앙그론이 칸의 목을 억세게 조여댔고, 칸은 그것을 뿌리치려는 욕망과 맞섰다.
“그놈들의 증조할애비조차 공포에 질려 울부짖을 그런 상처를 말이다! 감히 다시 뜨거운 먼지 위를 바라본 순간, 똑똑히 떠올리게 될 그런 상처를!”
앙그론의 울분.
앙그론은 이거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캐릭터성도 어느정도 유지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