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프; 현재]
부정할 수 없는 본능이, 모든 요술에 대한 뼛속 깊은 증오가 그렇게 말해왔다. 저 밖의 무언가가 이런 짓을 부리고 있었다.
“전하!” 카이파 모라그가 데스 가드로서 가장 두려움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시종무관의 희미한 형상이 모타리온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그의 완갑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들리십니까?”
모타리온은 거칠게 시종무관의 건틀릿을 쳐내고는 막힌 목을 뚫으려 갑판에 검은 액체를 뱉었다. “물러서라.” 이 기습 공격이 자신에게 통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프라이마크가 부하들에게 이런 꼴을 보인 건 최악이었다. 자신의 아들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고, 모라그의 걱정은 더욱 깊어져 갔다. “나는 괜찮다.”
그는 테르미누스 에스트의 함교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격을 당했던 군단원들이 차례로 일어서고 있었고, 몇몇은 콧구멍과 눈가에 흐른 짙은 보라색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익사 직전 건져 올린 사람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많은 인간 승무원들은 운이 좋지 않았다.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농노 장교들이 죽어 있었고, 조종석에도, 갑판 위에서 고통스러운 자세로도 쓰러져 있었다. 모타리온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얼굴을 붉은 누더기가 될 때까지 긁어댄 조타수와, 지지 기둥에 일부러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은 듯한 화기통제관을 보았다. 암울한 표정의 군단 아포세카리가 쭈그려 앉아 오스펙스 감지기로 죽은 여성을 조사하고 있었다.
사신의 마음 속에서 갑자기 분노가 타올랐다. '인간이란 이리 가여운 존재인가.' 프라이마크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지휘갑판 중앙으로 걸어갔다. “누가 이걸 설명 좀 해보게.” 그가 명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겐가?”
“저흰 아직 천계의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티폰이 눈앞의 유경(油鏡) 투영 화면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는 닫힌 관문과 밀폐된 차폐막의 가장자리로 스며드는 불길한 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워프 공간으로 이동하는 동안, 초감각 센서가 예기치 않은 에너지 방출을 감지했습니다.”
“사보타주인가?” 모라그가 낮고 경고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니면 오작동?”
“아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1중대장이 말했다.
“다른 함선들의 상태를 다오.” 모타리온이 명령을 내리고, 티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의 부지휘관 그레이브 워든 비오스가 통신 제어판으로 교환원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다른 함선에서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티폰이 화면에 줄줄이 펼쳐지는 문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 농노들의 사상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합니다. 대부분 자해로 추정되며, 일부는 승무원들이 하부 갑판의 에어록을 열어 우주로 방출되었다고도 합니다.” 1중대장은 살짝 우려하듯 잠시 말을 멈췄다. “이 주석에 따르면... 일부는 강제 처형이 필요했다고 하는군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크로시우스?” 모라그는 얼굴이 망가진 승무원을 미심쩍게 보는 아포세카리에게 물었다.
“공허의 저주요.” 아포세카리는 식어가는 시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본 적 있소. 비물질계의 손길이 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광기에 물들이던 일을 말이오.”
“그렇다고 하기엔 갤러 필드는 온전해.” 모타리온은 에너지 방어 장벽을 제어하는 황동 계기판을 노려보았다. 다이얼은 모두 최대치로 설정되어 있었다.
“요술이 어떻게 테르미누스 에스트 안으로 침범했는지 아느냐?” 그는 방독면 너머로 티폰을 응시했다. 옛 동지는 언제나 사이커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고, 인간의 사신은 이 부분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티폰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질책을 느꼈으나, 이 미끼에 걸려들지 않았다. “시종무관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적들이 우리를 상대로 배치한 무기일 수도 있고, 워프의 특성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변화무쌍하며 굽이치는 바다의 영향은 완전히 예측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습니다.”
모타리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신은 워프 항해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함선이 출항하기 몇 주 전에 도착하거나, 눈 깜박할 사이에 현실 공간에서 한 세기가 지나는 괴이한 시간 이동 현상, 유령과 환각, 기타 현상 등을 말이다.
하지만 실체도 모르는 괴질이 닥쳐와 불굴의 육신을 지닌 데스 가드를 꺾었다고? 이런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사이킥 폭풍도, 파멸풍의 흔적도 아니다. 빨리 답을 찾거라, 1중대장. 집결 시간을 지켜야 되건만, 이 군단의 임무를 영원히 지체할건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티폰이 주저하는 순간 비오스가 입을 열었다. “전하. 함대의 다른 함선 몇 척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다른 사령관들도 비슷한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수천 명의 인간들이 죽고, 군단원들도 잠시 쓰러졌다고 합니다.”
“지휘관들과 말해보마.” 모타리온이 몸을 돌리자 한 줌의 반짝이는 형상이 공중에서 나타났다. 그 후 천장의 홀로리틱 투영기에서 쏟아지는 레이저 빛으로 조각된 십여 명의 데스 가드 장교들의 입체적인 형상이 펼쳐졌다. 이 환영들은 전송 오류로 깜박거리며 흔들렸지만, 프라이마크가 익숙한 얼굴들과 갑주의 문장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그중 첫 번째 환영에게 직접 말했다. “칼가로, 내 말이 들리느냐?”
“예, 모타리온 전하.” 그레무스 칼가로 사령관의 눈이 인공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현재 회복 중입니다. 인내 호에 약간의 피해와, 엔진실에 무장 전투가 있었습니다.”
“누구와 전투 말이냐?” 모라그의 질문은 관례에 어긋나지만, 프라이마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무시했다.
“불명입니다.” 칼가로가 말했다. “첫 번째 보고에 따르면 갑판 농노들 사이에서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인원들은 진압되었습니다.” 모타리온의 병기장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티폰과 그의 소함대가 떠난 동안 칼가로는 프라이마크의 부사령관으로 복무했지만, 이 냉철한 장교는 기함 인내처럼 강력한 전투 바지선의 함장을 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칼가로와 나란히 서 있는 영상이 말했다. 세롭 카르굴은 흉성의 장교이자 모타리온이 임명한 고위 군단원이었다. “사상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함선에 있던 그 순간에... 모두가 당했습니다, 전하. 온 군단이...” 카르굴의 손이 반사적으로 목을 만졌다.
“그래.” 모타리온의 그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도 느껴졌네.”
순양함 봉홧불의 말렉 보스와, 끝없는 전진 호의 함교에 있던 기디우스 크랄을 비롯한 다른 지휘관들도 지친 표정으로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센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봉대가 세 척의 함선을 잃었다고 합니다.” 크랄이 말했다. “구축함 두 척과 공격순양함 한 척으로, 총격전은 없었습니다. 자폭이나 심각한 시스템 오류의 결과로 추측됩니다.”
“한 미친 영혼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끌고 간건가.” 모라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았다.
“분명 이 악영향이 저희 함대의 모든 함선에 미쳤을 겁니다.” 티폰이 말했다. “단순한 오작동으로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 이건 누군가의 의도입니다.”
“사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천계에서 이탈하고 재정비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카르굴이 덧붙였다. “이 고통의 영역에 위협이 있다면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보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게 우리를 향한 무기의 공격이라면, 퇴각 시 다시 한번 공격당할 수 있소이다.”
“이번엔 준비가 되어있소.” 다른 군단원이 반박했다.
모타리온의 본능은 카르굴의 의견이 옳다며 메아리쳤다. 당장은 자신의 함대를 악마가 들끓는 공간에서 최대한 멀리 몰고 싶었지만, 과묵한 보스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서늘하고 위협적인 위기감이 그의 마음의 지평선을 떠돌았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프라이마크는 저 너머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저는 보스 함장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티폰이 말했다. “저희는 데스 가드지 않습니까? 저희는 미지의 위협 앞에서도 물러선 적은 없습니다.”
프라이마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사태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모타리온이 오랜 침묵을 깨고 선언한 후, 티폰의 부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비오스. 모든 함선에 함대 중앙으로 모여 대열을 좁히라는 명령을 보내라. 필요하다면 큰 함선들은 갤러 필드의 범위를 확장해서 다른 함선들을 완전히 보호하도록. 일단은 신속히 전열을 가다듬는 게 먼저다.” 저 너머의 위험에 대비해 방패를 올리며 전진하는 전형적인 데스 가드의 전술과도 같았다. 프라이마크는 칼가로와 다른 홀로그램 이미지를 다시 돌아보았다. “내 아들들아, 네 함선과 승무원들을 살피고, 이번 공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거라. 더 이상 위협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차원 이동은 하지 않겠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제 판단으로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크랄은 굵직한 팔을 앞으로 접었다. “예정대로 테라의 관문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워마스터께서 침공을 미루실 것 같습니까?”
“내 형제는 내가 없다면 시작조차 못한다.” 모타리온이 자신의 발언을 깊게 생각치 않고 쏘아붙였다. “내 명령대로 하거라.” 그는 손날을 휘두르며 비오스에게 홀로리틱 통신을 끊으라 명령했다.
“전하.” 티폰이 앞으로 나서며 고요하고도 강렬히 읊조렸다. “이 공격의 근원을 빨리 찾을수록 좋습니다. 제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썩 좋지는 않겠구나.” 그가 대답했다. 옛날 옛적에 이런 대화는 두 사람의 얼굴에 냉담한 미소라도 지어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1중대장은 주눅 들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전문가 부하 몇 명을... 함대에서 데려오겠습니다.”
모타리온은 그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파악했기에. 턱이 점점 굳어간다. 사이커. 요술사 놈들. 그가 평생동안 척결하려 싸워왔던 족속들이자, 지금도 군단을 공격하고 있는 존재의 손길에 닿은 자들.
그는 티폰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문제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이 자는 내 전우며, 첫 친구이자 나와 같은 배척당한 자다. 하지만 저 안에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독이 잠들어 있어. 나는 다루기조차 증오스러운 그 무기가.’
사신은 전에도 여러 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눈을 감아줄까? 양심을 뛰어넘은 편의의 문제라는 걸 깨닫는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배후에 수상한 것이 있다면 밝혀내겠습니다.” 티폰이 말했다.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모타리온. 전하의 깃발을 제게 내려주었으니, 제가 이 문제의 근원을 찾게 해주소서.”
“가거라.” 모타리온이 마침내 입을 떼었다. “하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 해답을 가져다오.”
티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명 받았습니다.”
1중대장이 물러나자 모타리온은 방금 내린 명령을 생각하며 지휘대 뒤편으로 걸어갔다. 데스 가드 군단원들 모두가 차원이동의 충격 속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군단의 종부로서 모든 전사들이 자신과 똑같이 끔찍한 공포의 순간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아스타르테스 전사들도, 그 어떤 프라이마크도 모를 숨통이 조이고 질식할 것만 같은 마비를.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지만, 그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믿을 수 없는 순간에, 모타리온은 나약해졌었다. 그의 기억이 자신을 이 똑같은 공포로 가득 찼던 과거의 시점으로 끌고 갔고, 자신의 아들들도 같은 공포를 나눴는지 의문만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어 받아들인다면 그 공포에 형태와 힘을 부여할 것이다. '차라리 부정하고, 무시하여 없었던 일처럼 덮는 게 나을 것이라.'며 그가 생각했다.
다른 선택으로는 그가 직면하고 싶지 않던 기회를 향해 문을 여는 것이었다.
“모타리온 전하?” 그의 시종무관이 옆에 서있었다. 모라그는 아둔한 자가 아니다. 주인의 얼굴에서 새로운 거리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티폰 중대장이 요청하는 건 뭐든지 해주도록.” 인간의 사신이 돔으로 싸인 함선 천망대로 통하는 해치를 열며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구나.”
매번 수고요 모사장 좋아
모타리온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