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스턴과 자우체는 면도를 해야 했고, 세베린은 벌써 며칠동안은 잠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멜리신은, 그 논리적이고 침착했던 멜리신은, 재앙 같았던 아카식 리더 시운전의 여파로 완전히 기가 꺾인 것만 같았다. 네 사람은 마그마 시티의 메디카이 병동에 있는 달리아의 침상 주위로 둘러앉아, 달리아를 간병하며 안달을 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의료 서비터들이 달리아의 피를 채혈하고 바이탈 사인을 감시했다.


 병실에서는 소독제와 비누 냄새, 그리고 제스 아뎁트가 자신의 갑옷에 즐겨 사용하는 연마제 분말의 냄새가 풍겼다.


 "너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이 꼬마 아가씨야?" 얼마 전, 병실에 들어왔다가 달리아가 깨어 있는 모습을 본 자우체는 말했다. 저 무뚝뚝한 기술자의 얼굴에 떠오른 진심 어린 감정에 달리아는 감동을 받았더랬다.


 "죄송해요." 달리아는 말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럴 생각은 아니셨다네." 칵스턴은 억지로 미소를 띄워 보이며 말했지만, 달리아는 청년의 눈 아래에 검게 기미가 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을 흘렸는지 눈시울이 부어 있었다. "사이킥 에너지로 포화 중인 방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서는,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정말 아니었어요." 그리 말하면서도, 달리아는 그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소리인지 알고 있었다. "그냥 조나스를 거기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요."


 아무도 달리아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모두가 조나스의 죽음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세베린은 특히 더 조나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달리아는 손을 뻗어 세베린의 손을 잡아 줬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주가 지나면서 세베린의 얼굴에서 보였던 괴로움은 점점 녹아 내려 갔지만, 친구의 눈에서 보이는 슬픔에 달리아는 가슴 아파했다.


 공방 안에는 조나스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조나스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몸의 원자 하나조차도 남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돔의 벽감 안에 들어 있던 사이커들 역시 아무도 아스트로노미칸의 거대한 에너지로부터 살아남지 못했다. 바짝 말라 비틀어진 사이커들의 시신은 둥글게 말린 태아의 크기까지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번 시운전으로 죽은 사망자의 숫자는 도합 2천 37명이라고 했다. 그 수치는 모두의 목에 아다만티움 사슬처럼 묵직한 비통함을 매달았다. 최근에 있었던 파괴의 밤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치가 화성의 다른 곳들에서 발생한 피해에 비하면 얼마나 적은 손실인지도.


 그리고 달리아는 자신이 자그마치 7일 동안이나 차도 없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칵스턴이 그 동안 내내 가까운 의료소에 연결된 바이오-모니터와 픽트-카메라를 가지고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는 것도.


 또 칵스턴이 결코 자신의 침대 맡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몇 번이고 안심을 시키고 나서야 돌아가며 간병을 하기로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달리아가 깨어난 뒤로 5시간 정도가 지났고, 달리아는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제스 아뎁트의 질문을 받는 데에 보냈다. 친구들은 그런 뒤에야 겨우 달리아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제스 아뎁트 예하께선 그날 일에 대해 뭐라고 하셔?" 모두가 서로를 돌아가며 끌어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린 뒤에, 세베린이 질문을 던졌다.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실망하셨을 텐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자우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과부하되긴 했지만, 장치는 본래 목적대로 기능했어. 그저 그게 오래 가질 못했을 뿐이지."


 "제스 아뎁트 예하께서 뭐라고 하셨지, 달리아?" 멜리신이 바로 본론으로 파고들며 물었다.


 호기심 가득한 동료들의 표정을 본 달리아는, 동료들 또한 아카식 리더 공방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하께선 공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조나스 밀루스가 제게 뭐라고 말했는지 전부 다 알려 달라 하셨어요."


 "그래서 그 자가 뭐라고 했는데?" 칵스턴은 물었다.


 칵스턴의 손을 꽉 움켜쥐며, 달리아는 병실 위쪽 모서리에 달려 있는 픽트-카메라를 힐끗 올려다봤다.


 "그냥 죽었어요." 달리아는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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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메디카이 의사는 달리아가 다시 일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 후로 달리아는 제스의 개인 공방에서 여섯 자전 주기 동안 아카식 리더 장치를 재건하는 데에 착수했다. 타 버린 부품은 교체하고, 살아남은 부품은 재측정하면서.


 제스와 달리아는 어림짐작을 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달리아는 마땅히 제스가 내어 준 수치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요청했어야 했지만, 프로젝트의 상세한 부분들에 너무 집중한 탓에 아뎁트가 내어 준 수치를 의심할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었다.


 그런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모두에게 철저한 이중 점검과 확인 절차가 강요되었고, 모든 서비터들은 살아 숨쉬는 아뎁트에게 작업물을 검사 받아야 했다.


 바닥에 심겨졌던 은제 배선들은 다 녹아 버렸기에, 바닥 전체를 다 들어내, 보다 높은 규격의 전선이 삽입된 석판들로 갈아 끼워졌다. 장치의 부품들은 모든 면에서 다 검사를 받아, 보다 성능을 발전시키고 다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할 방법이 없는지 재평가되었다.


 여러 명의 아뎁트들과 서비터들이 공방 안에서 달리아와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이전에 아카식 리더 장치를 설치할 때와 같은,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경이감은 이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서비터들이 바닥의 석판을 들어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드릴 소리만이 돔 안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었다.

 돔의 벽감들은 비워져 있었다. 이전에 벽감 안에 묶인 사이커들의 보지 못하는 눈 아래서 작업을 하면서 불안해했던 만큼, 사이커들의 부재가 더욱 예민하게 느껴졌다. 텅 빈 침상들이 자신들이 만든 장치로 인해 죽은 이들을 음침하게 상기시켜 줬다. 공방 안에 모인 작업자들은 당장 손에 잡힌 일에만 굳게 고개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제스는 달리아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포로 돌아간 이전 실험의 결과를 처리하는 데에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뎁트는 자신의 도제인 폴크-Polk라는 이름의 마고스에게 현장의 책임을 맡겼고, 폴크와 로-뮤 31의 감독 아래 작업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되어 갔다.


 언젠가 한 번 달리아는 로-뮤 31에게 왜 제스 아뎁트가 공방에 없는 것인지 물은 적이 있었지만, 로브 차림의 수호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이라곤 "예하께는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시다" 라는 말뿐이었다.


 달리아는 지금껏 아카식 리더야말로 제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제스만한 위치의 아뎁트라도 무시할 수 없을 만한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제스와 아주 가끔씩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저 조나스 밀루스가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확인만 해 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제스는 지쳤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누스피어 아우라를 보면 아뎁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뎁트가 숨기고 있는 두려움을 읽어 보면, 실패한 실험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왜 제스에게 공감능력자의 유언을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마음 속 본능적인 부분, 달리아가 아카식 리더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 준 바로 그 부분이, 아뎁트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은 무척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해 주고 있었다. 물론, 달리아 자신도 아는 것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마는.


 지식은 힘이니, 이를 잘 지켜라. 기계교의 격언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달리아는 이 지식을 무척 잘 지킬 셈이었고, 달리아가 감히 신뢰할 만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사람들 중에, 제스 아뎁트는 없었다.


 새로운 아카식 리더 장치의 재건 작업은 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수신기들은 다음 작동 시에 장치에 흐를 것으로 예상되는 증가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구력과 용량을 변경해 두었다.


 화성과 테라가 다시 정렬 위치까지 오려면 몇 개월은 더 지나야겠지만, 여전히 아스트로노미칸의 힘은 대량의 사이킥 에너지를 채집할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원이었다.


 새로운 사이커들은 이미 벽감 안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연단 위 왕좌에 앉을 또 다른 공감능력자는 아직 흔적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이 달리아는 눈물겨우리만치 감사했다.


 공방 안에서의 활동이 끝에 가까워지자, 달리아는 자우체와 칵스턴이 헬멧을 조립하고 있는 작업대로 다가갔다. 자우체는 손목에서 돋아난 압출 촉수를 통해 선반(旋盤)*과 연결되어 있었다. 레이저 선반이 쉭쉭대며 고급 강철을 절단하는 소리가 꼭 귀신 우는 소리 같이 들렸다.


*역주: 물건을 얹어 놓는 선반이 아니라, 금속이나 돌 따위를 회전시켜서 갈아내거나 파내는 데에 쓰이는 공작용 기계.


 뇌리에 파고드는 귀곡성에 달리아는 몸을 움츠렸다.


 칵스턴이 달리아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달리아 역시 미소지으며 같은 식으로 인사하고 있으려니, 자우체가 작업에서 시선을 들며 선반을 정지시켰다.


 "달리아." 자우체가 작업대에서 기계 촉수를 거두고, 보호 고글을 젖혀 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니?"


 "좋아요, 자우체." 그리 말하며, 달리아는 연단 위로 시선을 돌렸다. 청동 갑옷 입은 제스 아뎁트와 로-뮤 31이 멜리신과 세베린의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저기, 그 선반 다시 켜 줄 수 있어요?"


 "다시 켜 달라고?" 자우체가 칵스턴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왜?"


 "부탁이니까, 그냥 좀 켜 주세요."


 "왜 그래, 달리아?" 칵스턴이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난 괜찮아요." 달리아가 다시 말했다. "제발, 선반 좀 다시 켜 주세요. 두 분한테 할 말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 들었으면 좋겠어요."


 자우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작업대에 촉수를 연결시켜 레이저를 작동시켰다. 다시 한 번 금속 자르는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고, 조작 플레이트가 불똥 튀는 선반 주위로 강철을 옮겼다. 자우체와 칵스턴 두 사람 모두 달리아의 말을 듣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저희가 아카식 리더에 사용하는 완충기 있잖아요. 공감능력자의 헬멧에서 외부의 간섭이 접속하는 것을 막아 주는 부품이요. 그걸 휴대용으로도 만들 수 있을까요?"


 자우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휴대용이라. 그건 왜?"


 "복스-씨프 녹음기를 차단하고 픽트-피드를 방해하려는 거지." 칵스턴이 달리아의 말뜻을 추측하곤 말했다.


 "네." 달리아가 말했다. "정확해요."


 "그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자우체는 말했다. "난 비밀이란 게 싫어. 비밀로부터는 어떤 좋은 것도 나오지 못한단 말이다."


 "그래서, 만들 수 있어요, 없어요?" 달리아는 물었다.


 "그야 당연히 만들 수 있지." 칵스턴이 말했다. 칵스턴의 동안은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간단한 거잖아요. 그쵸, 자우체?"


 "그래, 간단하지. 하지만 그런 장치는 뭐에 쓰려고?" 자우체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비밀이길래 아무도 못 듣게 만들려 들어?"


 "여러분에게 얘기할 게 있어요. 멜리신과 세베린에게도요. 그리고 그 얘기는 우리만 들을 수 있어야 해요."


 "뭐에 대한 얘기길래?"


 "조나스 밀루스가 들려 준 말에 대해서요."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지 않았나." 칵스턴이 지적조로 말했다.


 "거짓말이었어요." 달리아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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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가 끝난 뒤, 다섯 사람은 식당 홀에 모였다.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넓은 홀은 음식을 보충하는 서비터들과 굶주린 노동자들, 시종들, 그리고 아뎁트들로 북적거렸다. 식당 홀은 어떤 소문으로 웅성이고 있었는데, 아직 기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정보 네트워크들에서는 화성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적인 사고들과 비정상적 사건들에 대한 겁에 질린 이야기가 알음알음 술렁이고 있었다.


 공모자들처럼 몰래 모인 다섯 사람은 최대한 듣는 이들이 없도록 멀찍이 떨어져 앉았지만, 어차피 모두는 제스 아뎁트의 공장 장벽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각자 의심을 속삭이고 있는 터라, 다섯 사람에게 관심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탁자들 중에 가장 작은 것 주위에 둘러 앉은 뒤, 달리아는 친구들을 빤히, 한참동안 바라봤다. 자신이 곧 들려 줄 이야기에 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 가늠해 보는 중이었다.


 칵스턴은 이 상황을 무척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 비해, 자우체는 이 작당모의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멜리신은 태도에서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었고, 세베린은 조나스 밀루스가 죽은 이후로 늘 그랬듯이 창백하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자우체?" 달리아는 말했다. "그거 가져왔어요?"


 "그래, 꼬맹아, 가져왔지." 자우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작동 중이다. 아무도 우리가 하는 말을 못 들을 거야."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달리아?" 멜리신이 물었다. "왜 꼭 이렇게 모여야 하는 건데?"


 "죄송해요. 하지만 이러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이러는 게 뭘 어쩌는 건데?" 자우체가 물었다. "그 망할 공감능력자 녀석이 네게 무슨 말을 했다고 우리가 이렇게 몰래 숨어 다녀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퍼뜩 들린 세베린의 고개에서 두 눈이 번뜩였다. "조나스가 네게 말을 했다고?"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어요."


 "뭐라고 했는데?"

 "별 건 없었어요." 달리아가 자백하듯 말했다. "했던 말들도 그때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고요."


 "지금은 어떤데?" 멜리신이 물었다. 얼굴 반쪽을 덮은 금속 가면 위로 식당 홀의 창백한 조명이 반짝였다. "네 말을 들어 보면 지금은 좀 더 알아듣겠다는 뜻 같은데."


 "뭐, 그런 셈이죠.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지도 몰라요."


 "명료하게 말을 하거라, 달리아." 멜리신은 말했다. "모든 일에서 늘 명료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렴. 가장 먼저, 공감능력자가 뭐라고 했는지부터 얘기해 보려무나."


 "그 사람의 이름은 조나스였어요." 세베린이 거칠게 말했다. "이름이 있었다구요. 다들 잘 기억해 둬요. 그 사람에겐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은 조나스였어요."


 "나도 잘 알고 있네." 멜리신은 꿈쩍도 안 하고 말했다. "달리아, 들려 주겠니."


 모두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느낀 달리아는 얼굴을 붉히더니,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신 뒤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나스가 했던 말들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조나스가 했던 모든 말들이 유리에 남은 산성액 자국처럼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조나스는 '나는 보았다! 모든 지식을!' 이라고 말했어요. 제 바로 앞에 있었지만, 꼭 어딘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이 들렸죠. 꼭 화성 저 반대편이나, 깊은 땅 속에 있는 것처럼요."


 "그게 다야?" 세베린이 물었다. 야윈 얼굴에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뇨." 달리아는 말했다. "그래서 전 조나스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조나스는 제게 자기를 동정하지 말라고 했죠. 조나스는 자신이 진리를 보았고 이제 자유가 됐다고 했어요."


 "뭐로부터의 자유?" 자우체가 물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달리아는 말했다. "조나스가 말하길, '저는 모든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화성의 용을 죽이신 것을... 붉은 행성의 장대한 거짓과, 이 은하계를 뒤흔들 진실을. 밤의 미궁의 어둠 속에서 인류가 잊어버린 모든 것들을,' 이라고 했었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조나스의 입은 불타고 있었고, 목소리는 말할 때마다 흐려지고 있었으니까요."


 "밤의 미궁이라고?" 칵스턴이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네, 확실해요." 달리아는 말했다. "밤의 미궁이라고 했어요."


 "녹티스 라비린투스야." 멜리신의 말에, 칵스턴도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녹티스 라비린투스... 가 뭐예요?"


 "밤의 미궁. 녹티스 라비린투스의 의미가 바로 그거야." 칵스턴이 대답해 줬다.


 "거기가 어떤 곳인데요?" 달리아는 물었다. 이전까지 의미를 몰랐던 단어의 의미를 찾았다는 데에 고무되어 있었다. "산인가요? 아니면 크레이터? 어떤 곳이죠?"


 멜리신은 고개를 저었다. 메모리 코일에서 정보를 끌어 올리고 있는 멜리신의 의안에서 파충류처럼 얇은 눈꺼풀이 깜빡였다.


 "둘 다 아니야. 녹티스 라비린투스는 타르시스 고원과 마리네리스 계곡-Valles Marineris 사이에 있는 무너진 대지란다." 내장 메모리 코일에서 데이터를 회수하고 있는 사람 특유의 어조로, 멜리신은 말했다. "깊고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미궁 같은 골짜기들로 유명한 지역으로, 옛 시대에 있었던 단층 작용으로 형성되었다고 여겨지지. 또 그곳의 많은 협곡들이 특징적인 지구(地溝)* 형태를 나타내고 있어, 골짜기 바닥에 높고 평평한 표면이 뚜렷하게 보존되어 있단다."


*역주: 두 개의 평행한 단층애로 둘러싸인 좁고 긴 골짜기 (표준국어대사전 中).


 달리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화성에서도 황폐한 이런 지역이, 조나스가 했던 말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그럼 그곳은 비어 있나요?"


 "거의 그런 셈이지." 칵스턴은 말했다. "남쪽에 루카스 크롬 아뎁트 예하의 몬두스 감마 공장이 있긴 하지만, 그곳을 제외하면 여기가 가장 가까운 공장이야."


 "그러면 거기엔 아무도 없겠네요?"


 "그 지역은 화성의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갖는 땅이 아니란다." 멜리신이 말했다. "내가 듣기론 여러 아뎁트들이 그곳에 자신의 공장을 세우려 했지만, 아무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고 하더구나."


 "어째서죠?"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어. 아마 공장에 기술적 문제들이 생긴 거겠지. 아뎁트들은 그 지역이 기계령들에게 해롭다고 선포했고, 그대로 설비를 버리고 나와서 다른 곳에 다시 공장을 지었지."


 "그러니까 아무도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거네요?" 달리아는 말했다. "조나스가 얘기한 게 뭔진 몰라도, 녹티스 라비린투스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분명해요. 장대한 거짓도, 그 위대한 진실이라는 것도요."


 "그럴 수도 있지." 멜리신은 말했다. "하지만 그 자가 무엇에 대해 얘기를 했던 걸까? 나는 황제 폐하께서 죽이셨다는 그... 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짐작가는 게 없는데."


 달리아는 몸을 앞으로 더 가까이 내밀었다. "저도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테라에 있을 때 필사했던 문헌들을 다시 되짚어 보던 중에 그럴싸한 걸 하나 떠올렸어요."


 "어떤 건데?" 세베린이 물었다.


 "그러니까, 조나스는 황제 폐하께서 화성의 용을 죽이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먼저 용에 대한 언급이 있는 문헌들을 살펴봤죠."


 "살펴보다니 어떻게?"


 "그 있잖아요. 제 기억 속에서요." 달리아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전 한 번 읽으면 안 잊어버린다고."


 멜리신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유용한 재능이구나, 달리아. 계속 말해 보렴."


 "좋아요. 그래서, 신화에 나오는 용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죠?"


 "당연하지." 자우체가 말했다. "다 애들 동화 아니냐."


 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조나스의 말에 애들 동화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조금 정도는요.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은, 음, 맞다. 전 영웅적인 기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럿 발견했어요. 빛나는 갑옷을 입고 용을 죽여, 처녀를 구출해서 결혼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전형적인 이야기지." 세베린은 말했다. "꼭 처녀가 용한테서 남자를 구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니까."


 "그러게요." 달리아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아마 그 이야기들이 쓰여진 시대상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계속 얘기해 봐라, 달리아." 멜리신이 말했다. "그리고 또 뭘 배웠지?"


 "사실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얘기는 별로 없었지만,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업적이라고 주장되는 이야기들이 여럿 떠올랐어요. 제 생각에는 그것들도 아마 그냥 신화일 뿐일 것 같지만요. 그 이야기들은 용과 악마 같은 괴물들에 대해 다루면서도, 군주들과 폭군들의 난립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책들의 이름은 기억 나니?" 자우체가 물었다.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장 중요한 것들로는 우르쉬 연대기-The Chronicles of Ursh레벨라티 드라코니스-Revelati Draconis, 그리고 오뷔테 포르티스-The Obyte Fortis가 있었어요. 세 권 모두 용에 대해 이야기했죠. 불을 뿜고, 아름다운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데려가는, 뱀을 닮은 괴물이요."


 "그런 이야기들이라면 나도 알아." 칵스턴이 말했다. "어렸을 때 읽어 봤거든. 아주 잔인하지만, 동시에 장쾌했지."


 "그런 이야기들은 나도 안다." 자우체도 끼어들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선 그냥 이야기가 아니야, 칵스턴. 누사 캄방간의 학자들은 그 이야기들이 황제 폐하의 도래를 나타내는 우화적 묘사라고 가르쳤지. 빛의 힘이 어둠을 이기는 상징적인 묘사라고 말이다."


 "바로 그거예요." 달리아가 신이 나서 말했다. "용살자(龍殺者)는 전능한 신격(神格)을 상징하고, 용은 혼돈과 무질서의 위험한 힘을 상징하죠. 용을 죽이는 영웅은 의식과 개성의 발달의 상징으로서, 곧 성숙으로 나아감을 의미해요."


 "그 책들도 그냥 평범한 이야기인 건 아니야?" 칵스턴이 물었다. "왜 꼭 모든 것에 다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데?"


 달리아는 칵스턴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가 바로 용이에요. 비록 패배하지만, 아주 사라지지는 않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패배함으로서 세상에 선함과 지성 있는 생명이 흐를 수 있는 형태로 승화하곤 해요."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데?" 세베린이 물었다.


 "좋아요, 그럼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보죠." 달리아가 말했다. 달리아는 점점 흥분해 가며, 입으로 하는 말 못지 않게 손짓까지 섞어 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벨라티 드라코니스에서 저자는 천둥 무기를 든 하늘의 신이 용을 죽이는 이야기를 적었어요.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신비로운 석판을 지닌 뱀 여신이 살해당하고, 그 시체는 하늘과 땅을 만들기 위해 쓰여졌다고 말하고 있어요."


 "맞아." 칵스턴이 말했다. "정말 그렇네. 우르쉬 연대기에도 그런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 내가 기억하기로 웅케리-Unkerhi라는 이름이었는데, '천둥 전사'의 손에 멸망당했다고 했지. 웅케리들이 남긴 잔해가 메리카 대륙 어딘가에 있는 산맥이 되었다고 했었어."


 "바로 그렇죠." 달리아는 말했다. "또 연대기 마지막 장에는 각주가 하나 붙어 있는데, 저자는 포모리안-Fomorians라는 괴물 종족이 대지의 풍요를 관장했었다고 적어 놓고 있어요."


 "내가 맞춰 보지." 자우체가 말했다. "그 포모리안들도 패배했지만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겠지. 놈들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필요할 테니까."


 "이해가 빠르시네요." 달리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세베린이 물었다. "무척 흥미롭긴 하지만, 용 얘기나 하는 데에 왜 복스-차단기가 필요한 건데?"


 "뻔하지 않나요?" 달리아는 그리 물었지만, 이내 친구들에게는 자신 같이 정보를 떠올려 내는 선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새삼 기억해 냈다. "분명한 것은, 이 패배한 세력들, 패배한 용들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는 거예요. 따라서 이 과거의 저자들은 용과 용살자 사이의 싸움이 어느 한 쪽을 멸절시키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영원한 투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거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 자신의 힘을 나타내 균형을 유지시켜야 했던 거예요. 이 고대의 적들조차도 서로 상대가 필요했다는 거죠."


 "네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은 승리가 아닌 투쟁이라는 말이로구나." 멜리신이 말했다.


 달리아는 멜리신을 보고 활짝 웃었다. "맞아요. 꼭 여름과 겨울 같은 관계죠." 달리아는 말했다. "여름만 영원히 이어진다면 세상은 불타 버릴 테지만, 반대로 겨울만 영원히 이어져도 세상은 얼어 죽고 말 테니까요. 둘이 번갈아가며 오니까 생명이 자라고 번영할 수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묻는 건데, 이 이야기들의 요점이 대체 뭔데?" 세베린이 말했다.


 달리아는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다음으로 고백할 말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 줄까? 아니면 아스트로노미칸의 타오르는 에너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정신이 나간 거라고 생각할까? 달리아는 깊이 숨을 고른 뒤,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엔 너무 늦었다고 결심을 내렸다.


 "그 사고가 있고 나서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 제가 무언가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무언가 다른, 그리고 엄청나게 커다란 의식의 일부요. 정신이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같았어요."


 "유체이탈 환각이로군." 자우체가 말했다. "임사체험자들 사이에선 제법 흔한 일이지."


 "아뇨." 달리아는 말했다. "그냥 환각이 아니었어요.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꼭 아카식 리더가 제 정신을... 오래된 무언가와 연결시켜 준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이 행성보다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오래된 무언가와요."


 "그게 뭐였다고 생각하니?" 멜리신이 물었다.


 "제 생각엔 그게 조나스가 말했던 그 용인 것 같아요."


 "황제 폐하께서 죽이셨다는 용 말이구나."


 "바로 그래서 문제예요." 달리아는 말했다. "제 생각에 그 용은 죽지 않았어요. 조나스가 제게 말해 주려던 것도 그거인 것 같고요. 화성의 용은 녹티스 라비린투스 아래에 여전히 살아 있어요... 그리고 그 용을 찾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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