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습! 적습! 적이 침입했다!"

누군가 급하게 외치며 복도를 달려갔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복도와 연결된 방에서부터 뛰쳐나왔다.
당장 뛰쳐나온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다가 누군가 승강기 쪽이라고 외치자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갔다.
각자 무장을 챙긴 사람들이 뛰어가면서 내는 소리와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고, 그 진동이 벽과 천장을 울렸다.
옷도 제대로 못 입은 사람이 바지를 붙잡고 무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몽둥이를 든 채 달려가는 걸 끝으로 복도가 잠잠해졌다.
잠시 후, 열려있던 방문들 사이에서 인간이 고개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인간이 손짓하자 나머지 팀원들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살피던 인간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뒤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
엘다는 인간과 팔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 뒤를 따라갔다.
복도는 방금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 고요함에 엘다는 다시금 가장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내는 육중한 발소리가 걱정되었으나, 그렇다고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없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이동하며 혹시라도 적이 남아있을까 봐 열린 문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방 안에는 침구류와 카드 뭉치, 옷가지 따위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탁자 하나 없이, 오직 잠만 잘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고 그나마도 침대도 없이 2층으로 이루어진 침상이었다.
침상의 끝부분에는 아마도 개인 물품을 보관하는 데 쓰이는 것 같은 작은 나무상자들이 놓여있었으나, 거기까지 이불을 덮어놓은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베개의 역할도 겸하는 것 같았다.
엘다가 그렇게 하나씩 방을 살펴보고 있을 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엘다는 심장 부분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왼손에 든 라스피스톨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엘다가 조준을 끝마치기도 전에 복도가 잠시 밝아졌고, 튀어나오던 사람은 그대로 엎어지며 반대편 방으로 굴러 들어갔다.
순식간에 적을 쏘아 맞힌 인간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라스카빈을 총끈이 살짝 늘어지게 들고 걸어갔다.
다시 총을 내려놓은 엘다는 적이 굴러 들어간 방을 지나갈 때 고개를 살짝 돌려 죽은 사람을 살펴봤다.
그는 한 손에는 웃옷을, 다른 손에는 몽둥이를 쥔 채로 중앙에 놓인 이불에 얼굴을 처박고 누워있었다.
언뜻 보면 그저 주정뱅이가 잠들어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불을 적시며 조용히 번져가는 얼룩이 그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는 죄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엘다는 다시 다른 방들을 살폈다.
그러다 다른 방향으로 난 복도로 꺾어 들어가기 직전, 인간이 팀원들을 멈춰 세웠다.
팀원들을 대기시킨 인간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인간이 멈춰 섰던 곳까지 나아간 엘다는 한쪽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인간이 왜 그들을 멈춰새웠는지 이해했다.
인간은 천천히 방문까지 가서 등을 기대었다가 총구를 겨누며 안쪽을 살폈다.
하지만 곧 그는 긴장을 풀며 총을 내리고 방에 들어갔고, 세어나오던 불빛이 꺼졌다.
방에서 나온 인간이 엘다에게 오라고 손짓했고 엘다는 다른 팀원들에게 똑같은 손짓을 보내며 움직였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인간에게 다가가며 엘다는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에는 주인이 두고 갔으리라 추정되는 전등 하나가 꺼진 체 혼자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부터 여럿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팀원들은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엘다는 케이타와 함께 방 안에 숨어 몸을 바싹 붙였다.
소리가 점점 커지며 멀리서부터 불빛이 가까워졌고, 이내 사람들의 그림자가 복도 반대편 벽에 나타났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들이 위협적으로 일렁였고, 뛰어가는 사람들이 문밖을 지나쳐 갈 때마다 방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엘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으나, 복도를 뛰어가는 사람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고개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벽면에 붙어있었기에 들어오지 않는 한 볼 수 없었을 것이지만.
무리가 지나가고 다시 복도가 고요해지자, 엘다의 통신기에 약간의 잡음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것이 인간이 보낸 신호임을 눈치챈 엘다는 케이타와 같이 복도로 나왔고, 팀원들이 다시 모이자 인간은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엘다가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이 층 전체가 하나의 채굴장이자 숙소라는 점이었다.
무슨 규칙으로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복도는 파헤쳐진 그대로 남겨져 있던 반면, 어떤 복도는 그럴싸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일부 복도는 이제 막 파헤치기 시작한 건지, 가벽조차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이것들이 무엇을 얻기 위한 노력인지에 대해 엘다는 일말의 궁금증도 들지 않았다.
대신, 이런 원시적인 방식을 통해서 얻은 물질들의 조잡함을 생각하며 다시금 인간들이 열등한 종족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어 엘다는 손을 풀 겸해서 손에 쥔 검을 가볍게 돌려봤다.
검은 동족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무거웠지만, 엘다는 이 정도의 묵직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엘다가 검보단 단창을 선호한 것도, 좀 더 무거운 무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왼손에 쥔 라스피스톨은 너무 무거웠다.
총은 위력만 나온다면 무거울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빠른 조준에 방해가 될뿐더러, 미묘한 무게중심의 차이가 거슬렸다.
그런 주제에 이 총은 위력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정확히는, 위력을 올리면 장탄 수가, 유지력을 중시하면 저지력이 부족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인간에게 슬쩍 동족의 무기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런 게 이들에게 있을 리 없었다.
어쨌든 엘다가 이런 잡생각을 할 정도로 팀원들이 나아가는 길에 특별한 상황이 생기질 않았다.
그리고 이는, 적들이 적습이라고 외친 게 자신들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자신들을 찾기 위함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한 장소로 달려갈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부를 수색하는 게 맞는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한 적이 누구일지에 대한 의문이 잠깐 들었으나, 그 의문은 곧 사라졌다.
인간이 팀원들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무언가 손짓을 하였으나 엘다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엘다가 움직이지 않자 인간은 뒤돌아봤다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을 다시 접으며 작게 말했다.

"교전한다."

그 말에 팀원들이 긴장했다.
하지만 엘다가 보기엔 적이 없었기에 누구와 교전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누구와?"
"당장은 아니야. 이 앞은 길이 하나뿐이라 분명 적이 있을 테니 긴장하란 뜻이었어."

이어서 인간은 엘다와 케이타의 자리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엘다는 이 정도 폭이면 그냥 나란히 걸어도 되지 않는가 생각을 하긴 했으나, 순순히 인간의 지시를 따랐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정보를 많이 가진 것도, 지휘권을 가진 것도 인간이니까.
조금 더 이동한 그들은 전조등이 비추는 구역에 도달했다.
적들은 아마 전조등 뒤에 있을 것이었지만, 광원 때문에 정확한 위치가 보이진 않았다.
인간은 빛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케이타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케이타는 라스카빈을 놓고 등에 매달아 놓았던 라이플을 꺼내어 조준했다.
인간 역시 자신의 라스카빈을 들고 어딘가를 조준했다.
잠시 후, 그들의 총구에서 섬광이 일었다.
두 개의 전등들이 거의 동시에 깨지자, 적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복도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잠식되었고, 케이타와 인간은 계속해서 당황한 적들을 사냥했다.
적들이 정신을 다 차리기도 전에, 두 명이 쓰러졌고 남은 이들은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그 틈을 타 엘다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팀원들과 적들의 진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으나, 적들이 다시 엄폐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엘다가 그들에게 접근했다.
엘다는 그대로 엄폐물의 위를 뛰어넘었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첫 희생자가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엘다는 반대쪽을 바라봤고, 주저앉은 체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총알을 장전하던 인간의 왼쪽 눈에 칼을 쑤셔 넣었다.
엘다는 다음 적을 찾아 시선을 돌렸으나 진지에 남아있는 적은 없었다.
죽은 자의 머리에서 칼을 뽑아낸 엘다는 그의 옷에 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정리됐다."

엘다가 말하자 팀원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들이 다가오는 사이 엘다는 죽은 인간들을 살펴봤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방어구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방어구는 커녕, 연락체계마저도 가장 먼저 저격당해 죽은 자 앞에 있는 복스캐스터가 전부였다.
엘다는 그자의 손에서 총을 빼내 한 번 들어봤으나, 그 무게와 조잡합에 미개함을 느끼며 다시 내려놨다.
엄폐물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조차, 나무와 포대로 이루어져 있어 급조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포대 속 내용물이 궁금해진 엘다가 검으로 포대를 길게 찢자, 안에서 흙이 쏟아져 내렸다.
진지로 다가온 인간이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말했다.

"한 명 정도는 살려뒀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부턴 주의하지."

그렇게 말하며 엘다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팀장."

케이타가 인간을 불렀다.

"왜?"
"근데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적 지휘부가 있을 법한 곳으로."
"그게 정확히 어딘데."

인간이 바리케이드를 넘어오는 케이타를 보며 검지 손가락을 아래로 향했다.

"아래? 또 승강기로 이동하는 거야?"
"아니, 걸어가는 거야."

그 말에 케이타가 조금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거 또 쓰기 싫어."
"어차피 올라갈 때 써야 할걸."
"아, 지랄. 그냥 얌전히 승강기 타고 올라가자. 응?"

케이타의 말에 인간은 고려해본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팀장."

이번엔 바르파가 인간을 불렀다.

"응?"
"아래층엔 뭐가 있지?"
"몰라. 내가 본 지도에는 여기까지만 나와 있었어."
"그럼 아무 대책도 없이 간다는 거야?"

케이타가 물어보자 인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진짜 감과 신문에 의존하는 수밖에."
"적들이 순순히 말하리라 생각하나?"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걸. 알지?"

엘다의 질문에 인간이 답했다.

"자신 있어 보이는군."
"그래 보여?"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팀원들은 다시 침묵을 지켰다.
팀원들이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또 다른 진지에 다다랐다.
직전에 마주쳤던 곳보다 더 많은 인원들과 조금 더 그럴싸해진 엄폐물들로 이루어진 진지였다.
또한, 그들은 이미 총성을 들었는지 모두 경계하며 가슴까지 오는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어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인간은 또다시 케이타를 앞으로 불렀다.
이전과 같이 전등을 쏘는 것을 신호로 하여, 엘다는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전등이 깨짐과 동시에 누군가 엎드리라 외치며, 총을 쐈다.
그가 쏜 총알은 엘다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바르파에게 맞았다.
어깨에 총알을 맞았으나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바르파는 처음 전투와 같이 사격을 하는 팀원들의 앞으로 나와 방패를 전면에 내세웠다.
적들은 엄폐물에 몸을 완전히 숨기고 이미 조준되어있는 총들의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조준은 아니었기에 몇몇 총탄들은 벽면이나 바닥을 맞췄지만, 대다수의 총탄들은 제대로 복도를 향해 쏘아졌다.
인간과 케이타는 바르파에 의하여 보호받았으나, 엘다는 그런 보호를 받지 못하였기에 눈먼 총알들도 충분히 위협이 될만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들의 총은 고정되어있었고, 엘다는 그 점을 이용하여 몸을 낮춰 미끄러졌다.
엘다의 위로 총알들이 지나갔고, 그녀는 일어나는 대신 앞으로 굴렀다.
적 한 명이 고개를 내밀어 가까이에 다가온 엘다를 발견하고 그녀를 조준하였으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먼저 레이저가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팀원들이 벌어준 잠깐의 틈을 타 엘다는 바리케이드 아래에 엎드려 바짝 붙을 수 있었다.
적들의 총에서 섬광과 총성이 쉼 없이 터져 나왔고 엘다는 바리케이드에 붙은 체 왼쪽 벽면으로 기어갔다.
엘다가 벽으로 기어가는 사이 적들은 어디선가 전등을 새로 꺼내 다시 복도를 밝혔다.
시간이 지나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적들이 저격을 피해 전등을 숨겨둔 것 같았다.
벽면에 등을 기대어 앉은 엘다는 바리케이드 너머로 신경을 집중했다.
인간이 엘다의 의도를 눈치채고 엘다가 있는 곳을 향해 엄호사격을 해주기 시작했다.
곧 엘다는 바리케이드 너머의 적이 총에 맞는 것을 느꼈고, 그 즉시 엄폐물을 뛰어넘었다.
설마 적이 바로 앞에서, 그것도 동료가 쓰러진 자리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던 적군의 눈이 커졌고, 엘다는 그의 발등을 칼로 찍었다.
그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엘다의 주먹이 그의 턱을 올려 쳤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진지에 있던 적들 중 한 명이 엘다를 눈치채고 총구를 돌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엘다가 그를 쏘아 맞혔다.
엘다의 라스피스톨에 맞은 적이 쓰러지며 총알이 천장으로 쏘아졌고, 천장에 맞은 총탄이 부서지며 파편을 뿌렸다.
엘다가 바리케이드 안을 정리하는 사이, 바르파가 방패를 내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복도를 울리는 진동에 놀란 적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그들 중 한 명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턱이 빠져 입을 벌리고 고개를 떨군 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통에 찬 숨을 몰아쉬는 적에게서 칼을 뽑아낸 엘다는 밖을 보는 적들 중 하나의 관자놀이에 사격을 가했다.
이제 진지 안에서 멀쩡한 적들은 셋 밖에 남질 않았고, 그들 중 둘은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투지가 살아있는 눈으로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속에서 무언가 꺼내려 했으나, 그것을 다 꺼내기도 전에 엘다가 쏜 레이저가 그의 어깨를 맞췄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타오르며 그의 손아귀에 힘이 풀렸고 그가 꺼내려 했던 물체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엘다를 노려보며 함성을 지르기 위해 폐를 부풀렸다.
그러나 공기가 그의 폐를 다 채우기도 전에 바리케이드가 폭발하듯 안쪽으로 터졌다.
폭발의 근원지 바로 뒤에 앉아있던 인간의 머리를 육중한 파워아머가 짓밟았고, 으적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절명했다.
이어 바르파가 방패를 든 손을 크게 휘둘렀고, 용감했던 적의 목뼈가 부러지며 그의 몸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동료 둘이 죽자 가장 구석에 숨어있던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바르파는 몸을 돌려 공포에 질린 체 바지가 젖어가는 그에게 다가가 망치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들어 올려진 망치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불쌍한 노동자가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바르파의 망치는 그의 머리가 아니라 그보다 살짝 위의 벽을 내려찍었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망치 머리가 절반 정도 벽면에 박혔고, 바르파는 망치를 놓고 죽음의 공포에 기절해버린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흙과 부서진 나뭇조각, 피와 시체만이 남은 진지를 둘러본 바르파는 모두 무력화되었다고 말했고 사격조들이 다가왔다.

"으으..."

작은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과 겁에 질려 기절한 사람을 본 인간은 바르파를 시켜 그 둘을 한 곳으로 모았다.
그 사이 인간은 전등을 찾아 그 둘을 비추게 만들고 적의 진지를 뒤져 물통을 두 개 찾아냈다.
물통 하나를 잘 들고 있으라며 케이타에게 던진 인간은 다른 하나의 뚜껑을 열어 피와 신음을 흘리는 노동자의 입에 조금 흘려보냈다.
그가 삼키지 못한 물이 붉게 물들어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인간은 물통을 거두고 그의 입안으로 엄지를 집어넣었다.
노동자의 빠진 턱을 맞춰준 인간은 자신의 손을 물로 닦고 물통에 담긴 나머지 물을 기절한 인간에게 부었다.

"푸흡?"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액체의 느낌에 눈을 뜬 인간은 곧 강렬한 눈빛에 얼굴을 가림과 동시에 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뒤는 벽으로 막혀있었기에 그는 얼마 안 가서 등을 부딪쳤고, 숨을 몰아쉬며 옆을 바라본 그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더욱 기겁했다.

"이름이 뭐지?"

그의 앞에 서 있던 인간이 물었으나 두려움에 휩싸인 노동자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인간은 물통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고, 그는 옆으로 엎어져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
잠시 기다린 인간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지?"
"사, 살려주세요..."

공포에 질린 패배자가 엎드려 빌자 인간은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커헉!"

몸이 들썩일 정도로 강하게 얻어맞은 그 남자는 숨을 쉬기 힘든 듯 꺽꺽거렸다.
인간은 다시 그의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름이 뭐지?"
"제, 제이콥... 제이콥입니다..."
"성은?"
"어, 어, 어, 없습니다."

인간은 작게 좋아라고 말하고는 물통을 그의 옆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철이 바닥에 부딪히며 금속음이 났고, 제이콥이 몸을 크게 움찔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은?"
"브렌트입니다."
"얼마나 알고 지냈지?"
"23... 아니, 24년 정도..."

제이콥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의 안에서 칼을 꺼냈다.
인간은 칼을 이용하여 피가 흘러나오는 브렌트의 발을 감싼 신발을 잘라냈다.
낡고 두꺼운 작업화가 갈라지며 속에 고여있던 피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자 인간은 피로 물든 양말을 칼로 찢으며 케이타에게 물통을 달라고 했다.
피범벅이 된 발을 물로 씻기자 브렌트가 신음을 흘렸다.
어느 정도 피를 닦아낸 인간은 자신의 칼을 꺼냈고, 그것으로 브렌트가 입은 바지를 길게 찢어냈다.
노동자의 바지를 무릎까지 찢어 천을 만들어낸 인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낸 천을 피가 흘러나오는 구멍에 쑤셔 넣었다.

"끄아아악!!!"

브렌트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으나 인간은 천이 반대쪽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욱여넣었다.
고문에 가까운 지혈이 끝났을 때, 브렌트는 이미 다시 반쯤 정신을 놓은 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인간은 칼을 내리며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동자를 바라보았다.

"질문을 몇 가지 하겠다."
"네, 네!"

제이콥이 재빨리 대답했다.

"암구호 같은 게 있나?"
"없...없습니다."
"그럼 피아를 어떻게 식별하지?'
"피...피아요?"
"누가 누구 편인지 어떻게 아냐는 말이다."

인간이 쉽게 풀어주자 제이콥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네. 그건... 그..."

인간의 질문에 제이콥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소리만 냈다.
이에 인간이 칼을 고쳐잡자 노동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그냥, 그냥 아군인 걸 압니다!"

필사적인 제이콥의 외침에 인간은 다시 칼을 내렸다.

"그럼 너희 지도자는 누구지?"

인간이 물어보자 다시 노동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 그... 케일! 케일이라는 사람입니다."
"본디 뭐하던 사람이었지?"
"높은 분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들었다?"

인간이 되묻자 제이콥이 재빨리 덧붙였다.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냥,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걸 주워들었습니다."
"그럼 넌 어떻게 반역에 동조하게 된 거지?"
"그냥... 주변 사람들이..."
"누가 먼저 시작했지?"
"어..."

제이콥은 다시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됐다. 다음 질문을 하지. 너희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의 이름과 직책은? 그리고 그는 어디에 있지?"
"한스라는 사람이고, 작업반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는 말을 하다 말고 인간의 뒤쪽에 시선을 두었고, 인간은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이란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마, 아래층에 있을 겁니다."
"왜지?"
"그곳에 기지가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인간의 질문에 제이콥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아래는 워낙 복잡해서..."
"그래도 너희는 그곳을 다니지 않나?"
"아, 표식! 표식이 있습니다!"

제이콥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광부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습니다. 그 표식을 따라가면 됩니다."
"어떻게 생겼지?"

제이콥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워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뒤집힌 삼각형을 삼등분하도록 가로 줄 두 개를 긋고 밑변을 지나가는 우측 변과 평행한 대각선을 그린 제이콥이 인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것만 따라가면 지휘부에 도달하나?"
"아마도...아마도 그럴 겁니다."

제이콥의 대답에 인간은 칼을 집어넣었다.

"동료를 데리고 여기서 떠나라."
"네?"
"동료를 챙겨서 떠나라고 했다."

인간의 말에 제이콥은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머리를 땅에 박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은 그의 감사에 빨리 떠나라는 말만 했고, 제이콥은 다른 장비는 전부 제쳐놓고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고 있는 동료를 부축해서 일어났다.
일어난 제이콥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인간은 손가락으로 자신들이 온 곳을 가리켰다.
제이콥은 연신 감사함을 표하며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로 부축한 동료를 거의 끌다시피 하며 노동자들이 멀어지자 케이타가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별종, 저렇게..."
"내가 신호하면 왼쪽을 쏴."

케이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인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뭐?"

인간의 말에 케이타가 벙쩌서 중얼거렸으나 인간은 라스건으로 멀어저가는 노동자들을 조준했다.
엘다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인간의 말에 노동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인간을 바라봤다.

"셋, 둘..."
"아니, 잠깐만, 지금..."
"하나."

케이타가 당황하며 인간에게 말을 걸었으나 인간은 숫자를 마저 세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붉은 섬광이 인간의 라스건을 떠나 순식간에 제이콥의 뒤통수에 닿았다.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노동자가 쓰러지자 그가 부축하고 있던 이도 휘청이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도 몸이 땅에 닿기 전에 동료를 죽인 레이저를 머리에 맞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케이타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죽은 노동자들과 인간을 번갈아 보았고, 엘다도 쓰러진 이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인간을 보았다.
오직 바르파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케이타."

라스카빈을 다시 내리며 인간이 말했다.

"다음부턴 명령하면 바로 움직여."
"무슨..."
"가자."

인간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팀원들은 그런 인간의 등 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