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 비녀(역자 주: 생각해 보니 쪽진 머리를 고정하는데 썼던 핀이어서 비녀라고 번역하는게 나을 것 같음)를 나무에서 뽑아냈다.

다른 아무런 무기도 없었을 때에, 나름 쓸만한 무기였다. 나는 미궁의 외곽지역으로 내려갔고, 한 층계에서 다른 층계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내려갔다.

열려있는 문들 사이로, 나는 널부러진 가구들과 학교의 다른 식구들이 탈출하면서 남기고 간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비행선들의 엔진이 내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그들이 지나가면서 유리창들이 탐조등으로 비춰졌다.

그것들은 건쉽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일을 위해서 임대했거나 아니면 탈취해온 군용 항공기일 것이다.

이 공격의 배후에는 매우 집중되어 있는 악의가 존재했다.

건쉽들이 이제 곧 학교 건물에 폭격을 가할 것인가? 그들이 이곳을 바위 하나 하나 기관총과 기관포로 박살낼 것인가?


나에게 다른 소리가 들렸다. 문을 부수고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 창문의 덧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우리의 얼굴 없는 적들의 수하인 병사들이 학교 안으로 쳐들어 오고 있었다.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아군이 들어간 시설에 건쉽에 포격을 가하진 않을 테니깐 말이다.

병사들은 내가 상대할 수 있다. 건쉽은 아니다.


나는 내가 방금 죽였던, 아니 죽게 내비려 두었던 여자를 생각했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확실시했고, 자신들의 본의를 드러냈다. 

전쟁이 선포된 것이고, 우리는 그저 방어를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영도자이자 주님이신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말이다.


신성한 이단심문청의 이름으로, 우리에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이단 놈들에게는 대체 어떤 명분이 있단 말인가?


나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는 서쪽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라우드가 나타났다.

그 역시도 가방을 메고 있었고,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총을 한 자루 들고 있었다.

어리고 겁에 질려있던 그는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기 전 까지 내게 총을 겨눴다.


“하자라래요” 그가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나는 말했다.


“이 놈들은 악마들이에요” 그가 말했다. “놈들이 사방에 깔려있다구요”


“그냥 빨리 도망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총은 필요없어. 그냥 도망쳐. 지상으로 가.”


라우드는 비쩍 마른, 마침 성장기 한 가운데 있는 아이였고, 그의 피부는 거칠었다.

그는 마치 장난감 총을 휘두르고 있는 꼬맹이처럼 보였는데, 다만 그 총은 진짜였다.


그의 뒤에 있던 문에 발칵 열렸다. 자물쇠를 부수는데 쓰는 소형 공성추로 인해서 문짝의 경첩이 뜯겨져 나갔다.

병사 두명이 들어왔는데, 한명은 묵직한 공성추를 옆으로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두운 색의 복장을 입고 있었고, 또한 비에 젖어있었다.

그들은 작은 원형 렌즈가 달린 어두운 색의 고글을 쓰고 있었고,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엎드려라!” 그중 한명이 고함쳤다.


라우드는 그에게 총을 쐈다.


라우드는 사격 실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것이 그가 가진 뛰어난 재능이었다.

그는 4발을 우리에게 명령했던 자의 얼굴과 목에 명중했고, 그는 부숴져 열린 문 뒤로 나자빠졌다.

그 자가 쓰고 있던 고글 역시, 렌즈가 박살난 채로 그가 쓰러지는 것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갔다.


다른 한명은 라스피스톨을 꺼냈다. 그는 자신의 복스 헤드셋으로 무언가 명령을 외치더니, 우리를 쏘기 시작했다.


라스건의 빔이 내 뒤에 있던 문의 문설주를 박살냈고, 나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움찔했다.

나는 라우드를 쳐다봤다. 그는 매우 침착해 있었다.


“도망쳐 베이타 누나” 그가 쾌활하게 말했다. “다른 쪽으로 도망쳐”


두발의 총격이 우리에게 날아왔다. 라우드는 몸을 돌려 응사했다.

나는 그제서야 작은 손가락 만한 구멍이 그의 등짝에 나 있는 것을 보았다. 구멍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라스건의 빔이 그를 꿰뚫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쏜 자에게 총을 쏘면서,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갔다.

나는 도망쳤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위해 할 수 있는게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왼쪽으로 피하면서, 보조 홀로 뛰어들어갔고, 그리고 연병장을 통해서 남쪽 문으로 이어지는 창고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장소 역시도 이미 병사들이 침투해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낡은 큰 문의 문짝이 무언가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서 뜯겨져 나가서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대신에 오른쪽으로 향했고, 낡은 지하의 주방의 축축한 추운 방을 통해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남쪽 문을 뚫고 들어온 침입자와 정면으로 맞닥트렸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아니라 그것이었고, 그것은 커다란 금속 상자였고, 일부는 옥좌처럼 생겼고 다른 일부는 쇠로 된 관짝처럼 생긴 물체였다.
그 상자는 반중력 장치를 통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워낙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나는 사실상 그것에 들이박았고, 경사진 그것의 정면에 반쯤 엎어졌다.

그 금속은 따뜻했다.


나는 뒤로 폴짝 뛰며 물러났고, 경악하면서 두려워했다.

나는 그것이 대체 뭔지 몰랐다. 다만 우리의 적의 장치였고, 건물을 강습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장갑 장치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의 중장갑의 외피 속에 깊숙히 장착된 장치는 아마도 광학 렌즈나 스캐닝 장비거나, 아니면 센서 포드의 감지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현존하는 그 어떠한 복잡한 인간의 테크놀러지 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만일 그 상자 속에 싸이카나의 권능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일 것이다.

나의 수갑은 기능 해제된 상태였다. 나의 퍼라이어 필드가 내 주변 세계를 굼뜨게 만들고 있었다.


이 물건이 날 납치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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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상자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