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에리아는 첫 번째 함선이 대기를 뚫고 하강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열 차폐막이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마찰열에 그을리기 이전에도 함선은 이미 새까맸고, 그 선체는 그것을 휘감은 불길의 장막에도 변함이 없었다.
마가단 궤도 시설의 지휘부 갑판은 결코 조용할 일이 없었다. 서비터들은 흐느적 흐느적 움직이며 코드를 서로에게 툴툴거리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브 차림의 아뎁트들은 금욕적인 어조로 대화를 나누며, 황궁 위의 정지궤도상에 기지를 유지시키기 위해 제어 장치들과 버튼들, 레버들을 조작하고 있는 동안 서로 눈이 마주치는 일을 일체 피하고 있었다. 복스-스테이션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흘러나왔고, 문들은 윙 하고 열렸다가 그르릉거리며 닫혀대었다.
카에리아는 그 폭풍의 심장부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또 하나의 검은 함대가 행성 강하를 하고 있는 모습을 거대한 원형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공허에서 태어난 배가 처음으로 상륙을 시도하며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란, 아름다우리만치 극적인 구석이 있었다.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화염은 곧, 테라가 그들을 반기며 안아주는 포옹이었다.
누군가 또 한 명이 카에리아와 합류하려 견시 플랫폼 위로 올라왔다. 카에리아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검은 함대의 주인이 칼날 손톱을 찰칵거리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어울리지 않게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군. 보다 나이 많은 여성이 수화를 맺었다.
카에리아는 상대의 힐책을 거부하며 양손을 내저어 대답하였다. 제 안에 우울 따위는 없습니다. 아마 두려움을 불안으로 착각하신 것이겠지요.
두려움이라 하였나?
예. 두렵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지경에 왔다는 사실이요.
이 한바탕 극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다는 것은 항상 알고 있지 않았나. 최초의 자매들께서 혀의 사용을 금하기로 맹세하셨을 때부터 우리 자매단은 이미 이를 준비하고 있었네.
카에리아는 상대 여성의 응시에 잠시 시선을 마주치며, 그 자신만만한 외면 아래에 감정이나 견해 따위를 닮은 무언가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둘 중 그 어떤 흔적도 그녀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참으로 단호하시군요. 카에리아는 수화로 말하고는 손짓하여 하강하고 있는 흑선들을 가리켜 보였다. 어떻게 이 광경을 보시면서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두려워하지 않으실 수가 있는지요?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저지른 일로 인해, 제국은 결코 이전과 같아질 수 없을 것입니다.
검은 함대의 주인은 플랫폼의 난간 위를 금속 손톱으로 쓸어 어루만지며, 쇠와 쇠가 긁히며 끼긱거리는 속삭임 소리를 이끌어내었다. 차가운 금속 난간으로부터 손톱을 들어 올린 뒤, 바로니카는 대답하였다.
제국의 변화를 만들어낸 기술자는 우리가 아닐세, 자매여. 우리는 그저 거기에 대응을 하였을 뿐이지. 호루스가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는 옥좌를 향해 그 눈 먼 시선을 돌렸을 때에 제국은 이미 변화하였네.
카에리아의 분노한 눈동자가 우습다는 듯이 타올랐다. 자매님께서는 우리가 기꺼이 수행하고 있는 이 악의에 대해 스스로가 무죄라 주장하고 계시는군요.
우리는 그저 황제 폐하의 명을 수행할 뿐이네. 이것이 바로 폐하의 뜻이시네. 그리고 그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지. 바로니카는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히고, 자신의 올리브색 얼굴을 드러내었다. 바로니카는 대부분의 테라 토착민들이 그러하듯이 탁한 색채가 뒤섞인 안색을 띄고 있었으며, 그녀의 눈동자는 거의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로 짙은 갈색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쾌함이 아닌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일천의 영혼일 뿐일세, 카에리아. 이것이 정말 그리도 많은 숫자인가? 이것이 정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에 비해 저울에 달아보아도 무거운, 그런 희생이란 말인가?
카에리아는 검은 함대의 주인과 시선을 마주치고, 순간적으로 수치심을 느꼈다. 일천의 무고한 영혼들이지요. 우리가 거짓으로 약속한 소울-바인딩 의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신들이 이제 황제 폐하를 섬기러 가고 있는 줄로 믿고 있는 일천의 남녀노소들이란 말입니다.
칼날 손톱 달린 바로니카의 손이 날쌘 대꾸를 맺어 보였다. 그리고 과연 그들은 폐하를 섬길 것이네. 제국 전역에서도 그들처럼 순전하게 폐하를 섬길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네. 대체 무엇이 자네의 마음속에서 저항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자매여? 자네는 스스로가 우리 자매단의 진정한 소명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믿을 정도로 전장에 매혹되어버리고 말았는가? 자네는 간수일세, 카에리아. 전사가 아니란 말일세.
카에리아는 두 번째 흑선이 대기 마찰의 화염에 휩싸인 채 하강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황궁에서 사용될 살아 있는 화물들을 싣고 있는 검은 배를.
지금의 전 그 모두입니다. 카에리아가 수화하였다. 간수이자 전사이지요. 전쟁이 우리를 그 두 가지 모두로 만들었습니다.
바로니카의 표정이 희미한 불쾌감을 드러내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자네가 계속 사색에 잠겨 있을 수 있도록 나는 이만 가보겠네, 자매여. 자네가 무사히 지면에 내려가기를 바라네.
카에리아는 자신이 곧 테라의 지면으로 내려갈 준비를 해야함을 알고 있었다. 세 번째 흑선에 그녀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으리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니카는 멈춰 서서 카에리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일천의 영혼들이라 하셨지요. 카에리아가 수화하였다. 계산에서는 추정치가 어떻게 제시되었습니까? 저들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런지요?
검은 함대의 주인은 다시 후드를 뒤집어 쓰며, 희끗희끗해져가는 자신의 머리칼을 가렸다. 그들은 하루 동안 타오를 것이네. 바로니카가 손짓하였다.
그 대답과 함께 바로니카는 몸을 돌려 걸어갔고, 카에리아는 홀로 남아 견시 창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를 위해 일천 영혼이 타올라야 한다면. 카에리아는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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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때는 최소한 양심이란 건 남아 있었던 걸로 보인다. 물론 저게 다수 의견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4만년대에는.....
p.s. 근데 사이커 영혼 일천 개가 하루 분량인데, 이게 효율 상타치인건가, 아닌건가. 제국 스케일 생각하면 저 정도면 괜찮은 가성비일지도 모르고.
불쌍한 사이커들..
그런데 사이커 갈아넣는건 어케하는겨? 헬멧같은거 씌우고 강제로 에너지 뽑아내나?
효율적일텐데 저때는
40k 시대에는 십일조의 필수 항목에 싸이커가 있잖아...
1년이면 36만5천명.... 연간 10만명당 1명 싸이커 징병이 가능하다고 가정-뇌절해 보면 365억명 사는 하이브월드 하나 있으면 충당 가능. 의외로 널럴한데...?? 천만명당 한명 이라고 해도 3조6천5백억명 사는 항성계 하나면 충분히 수급가능...
애초에 썬더워리어랑 프마/스마들 갈아넣을 때부터 인류를 위한 이상이란게 결국 공리주의적인게 명백한데 뭘 새삼스럽게...
근데 저거 없으면 인류 좃망하지 않음? 저때는 일단 효율이고 뭐고 허겁지겁 잡아왔을거같음
사이커의 발현율이 0.01%라고 가정해도 매일 억단위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제국스케일이면 하루 천명은 별 문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