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는 좁고 가파르고 깊었다.
그리고 누군가 계획해서 팠다기보다는, 되는대로 파헤쳐졌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 증거로, 내려가는 경사가 일정하지 않고, 갈림길도 제멋대로 나 있었다.
제대로 마감처리도 되지 않아 조금씩 비뚤어진 벽면과 천장은 그런 생각을 더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어떤 전선들은 처음부터 벽과 천장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다른 전선들은 안에 매몰해놨으나 시간이 지나 벽이 부서진 자리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한 벽과 천장에 노출되어 있는 전선들이 무엇에 연결되어있는지 알아보려던 엘다는 이내 그만두었다.
전선들은 잘 이어지는 것 같다가도 내부 금속 선이 빠져나온 체 그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고 매달려있거나, 중간을 이어붙인 듯 테이프를 기점으로 앞뒤 색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나의 전등에 십여 개의 선이 엉켜 들어가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아예 연결된 전선 없이 나사못 하나에 의존하여 걸려있는 전등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이 전선들 중 일부는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전선들은 특히 두꺼웠기에, 엘다는 그 전선들이 위층에서 전기를 훔쳐 오는 용도라고 짐작했다.
더불어 그런 전선들 중 일부는 전선이 아닌 다른 기계에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엘다는 그러한 기계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것들이 일종의 공기정화장치임을 알아챘다.
그것들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으나, 공통적으로 날개나 모터가 달려있었다.
엘다는 공기정화장치들의 통로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도 궁금했으나,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기에 알 수 없었다.
엘다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동안, 종종 작은 벌레나 동물이 숨어있다가 인기척을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장소라도 누군가 관리를 하긴 하는지, 여기저기 보강된 흔적이 있었으며 그것들 중 몇몇은 최근에 생긴 것 같았다.
선두에 선 인간은 가장 앞에서 신문했던 포로에게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길을 찾아갔다.
팀원들은 그런 인간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불편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들이 아래로 나아갈수록 답답해지는 공기만큼이나 그들 사이의 분위기도 점점 경직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장소에 들어선 인간은 조금 휴식을 취하자고 했고, 팀원들은 적당히 떨어져 앉았다.
방의 구석에 자리를 잡은 엘다는 다른 팀원들을 살펴봤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복도 쪽을 바라보고 앉아 물을 마셨다.
바르파는 그와는 반대로 팀원들이 들어온 쪽을 바라보고 방패를 지지대 삼아 기대어 섰다.
케이타는 엘다와 조금 떨어져서 흙이 보이는 벽면에 기대어 앉았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과 미동조차 하지 않는 공기들 사이에서 팀원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씨발. 야, 툭 까놓고 말해봐. 왜 그랬는데?"

케이타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뜩 성난 목소리로 침묵을 깨트렸다.

"꼭 그렇게 좆같이 굴어야 했냐?"

케이타의 말에 인간은 여전히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면서 답했다.

"뭐가?"
"뭐가? 씨발, 뭐가? 몰라서 물어?"

케이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으나 인간은 차분하게 물어봤다.

"그래. 정확하게 네가 뭐에 열 받았는지 몰라서 물어봤어."
"씨발, 지랄하지 마. 그런 식으로 넘어갈 문제 아니니까."

케이타가 그녀의 총으로 바닥을 내려찍으며 으르렁거렸다.
엘다는 살짝 고개를 돌려 다른 팀원의 반응을 살폈으나 거대한 아머는 마치 장식품처럼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가 불만인데?"
"꼭 그렇게 죽여야 했냐?"
"너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건 알았잖아."
"그럼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이던가! 그렇게 기만 질을 해야 했냐? 인성 개 씹창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개자식아!"

케이타가 무전기가 울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어둠과 헬멧으로 그녀의 표정이 가려져 있긴 했지만, 엘다는 어렵지 않게 케이타의 표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분노한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헬멧 안의 복스캐스터를 통해 들려왔기 때문이다.
엘다는 어쩌면 케이타의 격양된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기만?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아니냐?"

인간의 질문에 케이타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자비지. 그는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을 거야. 공포 속에 죽는 것보다야 그게 훨씬 낫지."
"그럼 다른 한 명은? 그 사람은..."
"그건 네 잘못이지."

케이타가 쏘아붙이듯 물어봤으나 인간이 곧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뭐?"
"케이타, 네 잘못이라고. 명백하게."
"그게 왜 내 탓인데?"
"네가 쏘지 않았으니까."

인간은 그렇게 말하며 케이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난 분명 쏘라고 말했고, 그것에 따르지 않은 건 너야."
"그래 내가 안 쏘긴 했지. 왜? 어떤 병신새끼가 나한테 씨발 생각할 시간도 안 줬으니까!"
"거기서 네가 생각을 할 이유가 없지."
"뭐, 씨발?"
"생각하지 말고 움직였어야지. 그게 전장이야."
"염병하네, 진짜."

케이타가 헬멧 위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가 손을 강하게 털며 내렸다.

"명령이니 전장이니, 그럴 거면 군인이랑 다니지 그러냐?"
"전장에선 모두가 군인이지."
"또 개 좆같은 선문답이냐?"
"아니, 진실이야."
"진실 같은 소리 하네, 씨발. 그럼 그 군인들은 생각 안 하냐? 어? 그럼 사람 말고 서비터를 써, 씨발놈아."
"서비터는 예상 밖의 상황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처를 못 하잖아."

그럴 줄 알았다며 케이타가 비꼬았다.

"아주 그냥 좆대로지? 언제는 생각하지 마라, 또 언제는 알아서 해라."
"모순될 건 없지. 지휘관이 명령을 하면 행동하고, 그 행동을 위해서 생각하고."
"하!"

케이타가 콧방귀를 뀌었고 인간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케이타, 그 상황에서 왜 너한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야, 난 당연히 네가 그 사람들을 살려주려는 줄 알았으니까."
"그럼 쏘고 나서 물어봤어도 되지 않아?"
"내가 기계냐? 시키는 데로 바로 작동하게?"
"그렇게 돼야 할 거야."
"내가 왜?"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기 때문이다."

침묵을 지키던 바르파가 입을 열자 엘다와 케이타의 고개가 그를 향해 움직였다.
바르파는 여전히 자신이 경계해야 할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뭔 소리야?"
"만약 그 둘이 지원군을 부르고 있었다면?"
"아니 씨발, 누가 봐도 그렇겐 안 보였잖아?"
"확신할 수 있나?"

바르파가 물어보자 케이타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그들이 무전기를 챙겨 일어나는 건 봤나?"
"...뭐?"

바르파의 질문에 케이타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되물었다.
케이타를 당황하게 만든 그는 엘다를 불렀다.

"엘다, 혹시 바닥에 있던 적의 무전기를 챙겼나?"
"아니."

엘다가 짧게 답했다.

"그럼, 케이타. 너는?"
"...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나도 아니고, 팀장도 챙기지 않았을 테지."
"..."

케이타는 바르파의 말에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왜 바로 그들을 죽이지 않았지?"

상황을 지켜보던 엘다가 물어보자 인간이 답했다.

"몰랐으니까."

거짓말이군.
엘다는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인간은 겉으로는 느슨한 척하지만, 엘다가 보기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 노동자들이 정말로 무언가 하려 했다면 인간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더 나아가, 어쩌면 무전기가 바닥에 놓여있다가 사라졌다는 것조차 거짓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엘다는 굳이 그의 거짓말을 지적하지 않았다.
엘다가 질문을 멈추자 이번엔 케이타가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럼 왜 그걸 말 안 해줬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까."
"나한테 쏘라고 말할 시간은 있고? 네가 직접 처리하지 그랬어?"
"둘 중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거든. 만약 내가 한 명을 먼저 쐈는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으면 신호를 보낼지도 모르잖아."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빨리 둘 다 맞췄으면서?"
"빗나갔을 수도 있지."

인간의 말에 케이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알겠어. 그건 그렇다 치고, 나중에라도 설명해주면 됐잖아. 최소한 내가 처음 물어봤을 때라도. 왜 굳이 이렇게 판을 키워? 나만 병신됐잖아."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약간의 교훈을 더해 준거지. 다음번에는 좀 더 내 말을 잘 듣게."
"그럼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네 말에 무조건 따르라고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천 번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한 번 꼽주는 게 더 머릿속에 잘 박히잖아?"
"좆같은새끼."

케이타의 말에 인간이 작게 킥킥거렸다.
케이타도 속에 있는 걸 쏟아내고 나자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계속 물어봤다.

"그런데, 왜 굳이 나한테 시킨 거야? 나는 그래도 너희랑 년 단위로 봤고, 같이 일도 해봤는데 얘는 아예 처음이잖아."
"경력 있는 신입이란 거지. 살아온 세월이랑 경험이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우리팀 저격수는 너고."
"그럼 그동안 나한테 이런 개짓거리를 안 한 이유는?"
"할 이유가 없었지. 이런 상황이 없었잖아."
"끙..."
"됐지?"

인간의 말에 케이타가 앓는 소리를 내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생각할수록 존나 마음에 안 드네! 개 같은 놈아!"

케이타의 짜증에 인간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쉴 만큼 쉬었지?"

케이타는 여전히 중얼거리면서도 총을 챙겨 들었고, 엘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원들은 곧 인간의 뒤로 모여들었고, 인간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위층까지는 내가 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는 지도에도 없는 장소니까. 믿을 건 우리가 가진 어스펙트와 광학장비, 약간의 감뿐이고. 그러니 잔뜩 긴장들 하라고. 기껏 단장 직속으로 승진하자마자 첫 임무에서 가버리면 억울하잖아?"

나름 농담이라고 던진 것 같았지만, 팀원들의 반응이 시원찮자 인간은 물어볼 거 있냐며 어물쩍 넘어갔다.
이에 엘다가 계속 생각하던 의문을 던졌다.

"몬-케이, 이상하지 않나?"
"뭐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큰 반란이라는 것 치고는, 적들의 저항이 너무 약하다. 방비도 너무나도 취약하고."
"뭐, 우리한텐 잘된 일이지."
"함정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몬-케이."

인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엘다가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인간이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렇진 않을 거야."
"어떻게 알지?"
"감."
"우리보곤 긴장하라더니? 고작 감으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도 돼?"

케이타가 인간에게 투덜거리자 인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긴장은 해야지. 다만 내 말은 함정은 아닐 거란 뜻이야. 함정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어설퍼. 그것보다는 전황이 밀리니까 병력들을 전부 전선으로 올려보냈다는 게 더 맞겠지. 그렇지만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증거도 없으니 감이라고 한 거고. 알지?"
"정말로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는 건가?"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이 주축인 반군이니까. 순간적인 기세와 수적 우월성, 지형적 이점 등을 살려서 초기엔 기세등등하더라도,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마련이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마 우리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행성방위군들이 알아서 정리할 수 있었을걸."
"그럼 왜 굳이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야?"

케이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그만큼 행성 총독이 경험이 적거나, 무능하다는 뜻이지. 상단 입장에선 잘된 일이고. 적은 투자로 크게 생색낼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좋은 소식이네."
"그래도 최소한 지휘부는 쉽지 않을 거야. 거길 지키는 인원들은 가능한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을 테니까."
"근데 그런 곳을 우리 넷이서 처들어간다고? 감당할 수 있어?"

케이타의 질문에 인간이 확신에 차 말했다.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