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시오!"

시종의 인도를 받은 단장이 총독에게 다가가자 이를 발견한 총독이 계단을 내려오며 환대했다.
계단 아래에서 팀원들과 함께 멈춰선 단장은 가볍게 묵례를 하며 인사했다.

"총독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아니오, 아니오! 행성을 구한 영웅이신데, 고작 이 정도 대접밖에 못 해 드려 미안할 따름이지!"
"저희가 한 일에 비하면 과분할 정도의 대접입니다."

단장의 말에 총독이 그의 커다란 배가 들썩거릴 정도로 웃었다.

"하하하! 참으로 겸손하시구려! 자, 일단 한 잔 받으시게."

총독은 직접 서비터가 들고 있던 빈 와인잔 하나를 들어 단장에게 내밀었다.
단장이 가볍게 그 잔을 잡자, 다른 서비터들이 움직여 단장의 뒤에 서 있는 팀원들에게도 잔을 내밀었다.
인간이 제일 먼저 자연스럽게 잔 하나를 받았고, 케이타와 엘다도 이어서 잔을 들었다.
다만 바르파는 와인잔이 아닌 물잔을 요청하였고, 그 모습을 본 단장이 총독에게 말하였다.

"제 부하를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임무에 워낙 충실한 인원이다 보니."
"괜찮소. 오히려 정말 부럽군. 저렇게 믿음직스럽고 충성심 넘치는 수하를 구하기는 정말 어렵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르파에게 물잔이 건네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물잔을 든 것을 확인한 총독은 자신도 잔을 들었다.
그러자 서비터가 그들의 잔에 기포가 올라오는 투명한 연녹색의 술을 -바르파에게는 술이 아니라 다른 음료였지만- 따랐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총독이 술잔을 살짝 들어 올리며 선창하자 단장이 따라 말했다.

"좋은 술이군요."

술을 한 모금 마신 단장이 말하자 총독이 별것 아니라고 대답했다.

"자, 여기 서서 그러지 말고, 위로 올라가시지."

총독이 계단을 향해 몸을 살짝 돌리며 말하자, 단장이 그러겠다고 답하며 아직 술이 남아있는 잔을 서비터가 든 쟁반에 올렸다.
총독 역시 아직 술이 남아있는 잔을 쟁반 위에 올렸고, 엘다도 거의 입을 대지 않은 술잔을 쟁반 위에 올려두었다.
바르파는 처음 받자마자 전부 비워버린 잔을 일찌감치 반납한 후였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남은 술을 들이켠 다음 빈 잔을 올려두는 인간을 슬쩍 흘겨본 케이타가 반 정도 남아있는 술잔을 반납하려 할 때였다.

"크흠, 지금부턴 그대와 독대를 하고 싶소이만."

총독의 말에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은 여기 있게."

단장의 말에 인간이 알겠다고 답하자 총독과 단장, 그리고 서비터 하나가 계단을 올라갔다.
케이타는 자신의 잔이 비워지길 기다리며 옆에 서 있는 서비터를 물리고, 잔을 든 체 그들이 올라가는 걸 바라보다가 둘이 의자에 앉자마자 술을 한 모금 더 머금었다.

"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남기는 건데."

뒤돌아선 인간이 케이타를 바라보면서 아쉽다는 듯 말하자 케이타가 살짝 웃었다.

"그러게 누가 한 번에 다 마셔버리래?"
"당연히 따라 올라오라 할 줄 알았지."
"흥, 예절을 지켰어야지. 아니면 아예 바르파처럼 융통성 없이 나가던가."

그렇게 말한 케이타는 술잔을 살짝 돌리고 나서 남은 술을 입에 흘려보냈다.
그녀가 술을 다 마시자 근처에 있던 서비터가 다가왔고 케이타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쟁반 위에 빈 잔을 올려두었다.

"사치스러운 건지, 자기 물건을 아끼는 건지 모르겠네."

케이타에게 빈 잔을 받고 되돌아가는 서비터를 바라보며 케이타가 중얼거렸다.

"왜?"
"옷 좀 봐. 일개 서비터한테도 저런 고급스러운 걸 입혔잖아."

연회장에 있는 서비터들은 남성은 새하얀 와이셔츠 위에 하얀 나비넥타이와 깔끔한 검은색 집사복을 입고 손에도 검은 면장갑을 낀 체 광택이 나는 검은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다.
여성 서비터는 살색 타이츠를 입힌 뒤, 어깨와 팔, 등이 드러나는 검은 롱드레스를 입고 속이 비춰 보이는 얇은 숄을 걸친 데다, 허리엔 하얀 천을 두르고 손에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검은 단화를 신은 체 손님들을 접대하였다.
그나마 그들은 검소한 축에 속했다.
중앙에서 쌍을 이루어 무도를 하는 남녀 각 9기의 서비터들은 언뜻 보면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꾸며져 있었다.
화장과 가발은 기본이고, 남자는 하얀색을 기본 컬러로 깃과 넥타이, 손수건 등에 검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상의와 검은 바지, 네이비색 구두를 신겨 놓았다.
여성은 파란색 드레스에 하얀 숄을 파란 보석으로 장식한 브로치로 고정시켰으며, 손부터 위팔까지 오는 하얀 장갑을 끼고 목에는 각기 다른 색의 초커를 차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피아노 앞에 갈색 연주복을 입고 앉아 연주를 하는 또 다른 서비터의 음악에 맞추어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그런 서비터들을 바라보던 케이타는 옆에 있는 엘다를 보며 아쉬운 투로 말했다.

"차라리 너한테 입히면 더 예쁠 텐데."
"그랬다간 한바탕 난리가 날걸?"

인간이 근처에 있던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아니면 헬멧이라도 쓰고 입던가."

그렇게 말한 인간은 입안으로 과자를 집어넣고는 맛있다고 혼잣말했다.

"나도 알아. 그래도 맨날 저 후드만 쓰고 다니는 건 좀 너무하잖아."
"다른 후드도 있긴 한데."
"됐다, 병신아."

케이타는 혀를 차고는 지나가던 서비터에게 잔과 아마섹을 받아 마셨다.

"술이 전체적으로 고급지네. 오늘 총독이 꽤 기분이 좋은가 봐? 바르파, 너도 한잔할래?"

케이타가 여전히 계단 위쪽을 신경 쓰고 있는 바르파에게 잔을 권했으나, 그는 말없이 거절했다.

"재미없긴."
"지금은 재미를 찾을 시간이 아니다."
"너랑 저 병신새끼랑 적당히 섞어서 나누면 참 좋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인간은 미소지으면서 손에 든 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
케이타 역시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도 인간의 행동에 어울려 주고는 엘다를 불렀다.

"너도 한잔할래?"
"아니, 괜찮다."
"역시 입에 안 맞나?"

케이타는 그렇게 말하며 비스킷 위에 치즈와 과일을 올린 카나페를 안주 삼아 하나 집어 먹었다.

"맛은 있다. 몬-케이들이..."
"쉿! 말조심해."

인간이 엘다의 말을 끊으며 재빨리 주의를 주었다.

"...인간들이, 이렇게 나름 괜찮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럼 왜 안 먹는 거야?"
"저 인간도 안 먹고 있지 않나."
"바르파야 워낙 융통성 없는 녀석이니까. 저놈도 다른 의미로 예외 중의 예외야. 봐봐. 대놓고 뒷담까는데도 신경도 안 쓰잖아."

케이타가 일부러 바르파를 바라보고 말했으나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우직하게 서 있었다.
그사이 인간은 어디선가 과일꼬치 하나를 들고 와 한 번에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는 이어 우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멀리 있는 서비터를 불러 술을 받으며 그가 든 쟁반에 빈 막대기를 올려두었다.
케이타가 그의 행동에 팔을 한 대 치자 인간이 윽하는 소리를 냈다.
인간은 맞은 팔을 어루만지면서도 입안에 든 과일을 기어코 씹어 삼켰다.

"매너 좀 지켜, 이새끼야. 나까지 쪽팔리게 만들지 말고."
"알겠어, 알겠어. 어우, 아퍼."
"엄살은."

케이타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술을 마셨다.
그녀가 술을 삼키는 걸 기다린 인간이 말했다.

"뭐, 계속 서 있기도 뭐하니까, 저쪽에 가서 앉자구."

인간이 창문 아래쪽에 놓인 테이블을 가리키자 팀원들이 동의했다.
바르파만 조금 망설였으나, 인간이 저 장소가 오히려 시야각이 더 잘 나올 거라 설득하자 그도 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와, 엄청 푹신하네."

하얀색 바탕에 하늘색 레이스로 끝부분을 장식한 보로 덮은 둥근 테이블을 둘러싼 붉은색 쇼파에 인간이 털썩 소리가 나도록 앉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케이타는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는 소리마저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앉았다.
엘다는 케이타를 따라 그녀의 옆에 앉았고, 바르파는 케이타가 앉으라고 강하게 말한 이후에야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니까. 봐봐, 여긴 총독 관저고, 저기에는 아마 행성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이 경호를 서고 있다고. 게다가 반군들도 전부 처리했고.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걱정도 팔자다. 뭘 조심해야 하는데?"
"총독이 배신할 경우."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케이타의 말에 바르파가 역으로 질문했다.

"총독이 왜 단장을 독대한다고 생각하지?"
"그야...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그게 전부라면, 우리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지."
"이게 이 행성의 매너일지도 모르잖아."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클 것이라 본다."

바르파의 말에 인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뭐, 우리 단장도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정직한 사람도 아니니 어차피 별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뭔가 더러운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케이타가 다리를 꼬면서 조금 흥미로운 듯 말했다.
인간 역시 짓궂게 웃으며 왼손 검지와 중지만 두 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뻔하지. 알지?"
"비밀로 해달란 거네."

케이타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엘다는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해했지? 난 술이나 더 마셔야겠다. 아예 병째로 받아올까?"
"내가 그 병으로 네 머리통을 후려쳐도 된다면."

케이타의 진담이 섞인 농담을 들은 인간은 자기도 장난이었다면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저새끼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야. 알건 다 아는 놈이거든."

인간이 두리번거리는 걸 보고 있는 엘다에게 케이타가 말을 걸어왔다.

"근데, 진짜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이런 기회 또 언제 올지 몰라."
"딱히 무언갈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 배고프진 않다."
"맛을 즐기는 거지.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배를 채울 요량으로 먹고 있진 않을 거야."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이건 그저 간식이니까."
"이 많은 음식이?"

엘다가 잔뜩 놓여있는 그릇들과 그 그릇을 가득 채운 음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의 식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엘다가 보기에도 음식들 하나하나가 꽤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리의 종류도 간단한 빵부터,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주류를 이루는 샐러드, 아마도 해산물로 보이는 무언가를 소스에 곁들인 것, 말랑말랑한 푸딩 등 수십여 가지는 되어 보였다.
심지어 다른 그릇에 담겨있다면 비슷해 보이는 음식이 있을지언정, 완전히 같은 음식은 없었다.
서비터들은 그릇 위의 음식이 어느 정도 빈다면 그 즉시 그릇째로 요리를 다시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술도 서비터마다 들고 다니는 게 달랐다.
음식과는 다르게 겹치는 종류도 많았지만, 최소한 열 종류 이상의 술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얼음을 담은 통 속에 병째 담겨있기도, 작은 잔에 담겨 쟁반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엘다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행성에서 농사를 짓나?"
"모르지."

케이타가 대수롭지 않은 걸 물어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엘다가 뭔가 더 물어보려 할 때, 인간이 손에 작은 그릇을 들고 서비터 한 명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인간은 손에 든 걸 내려놓고 나서 서비터에게 잔을 받아 팀원들 앞에 놓았다.

"고마워요."

인간이 서비터에게 가볍게 말하자 서비터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다시 멀어졌다.

"자, 다들 조금씩 먹어봐."

인간이 그렇게 말하며 선 채로 그릇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
그릇 위에는 둥그런 작은 과자 같은 것 네 개가 각각 빨강, 노랑, 파랑, 하얀색의 설탕 옷을 입고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먹어보는 게 나을걸. 이왕이면 잔에 든 것부터 마시고. 바르파, 너도. 너 때문에 가져온 거니까."
"술은..."
"술 아니야."

인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네가 너무 노골적으로 저쪽만 바라봐서 저기 있는 경호원이 계속 우릴 바라보잖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 좋을 게 뭐가 있어? 알지?"

인간의 말에 바르파가 천천히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케이타는 인간에게 제법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오렌지색 음료를 잡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잔을 입에서 뗐다.

"셔!"

케이타의 반응에 인간이 웃으면서 그릇에 놓인 과자를 내밀었다.
케이타는 미심쩍어하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그걸 받아 조금 배어 물었다.

"어때?"
"괜찮네. 달달하고."

인간의 질문에 이번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케이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어 바르파가 잔을 손바닥으로 감싸듯 잡아 안에 든 것을 반 이상 마셨다.

"괜찮군. 정신을 차릴 때 특히 좋겠어."
"으엑, 엄청 실 텐데."

이어 바르파는 과자를 한입에 집어넣었다가 곧 잔에 남은 나머지 음료수도 들이켰다.

"과자는 나한텐 지나치게 달군."
"하아... 바르파, 너도 예절이란 걸 배워야 할 것 같아."

케이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다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잔을 들어 살짝만 마셔봤다.
차가운 액체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침샘이 당겨질 정도로 신맛이 혀를 가득 덮었다.
엘다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잔을 내려놓고 과자를 집어 들었다.
과자 역시, 단맛이 너무 강해서 쓸 정도였다.
이에 엘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나가는 서비터에게 그가 든 쟁반 위에 놓인 역삼각형 모양의 잔에 담긴 투명한 파란 음료수를 요구했다.
적당히 시고 단, 조금 청량한 느낌이 드는 술이 들어가자 조금 나아진 엘다는 잔을 전부 비우고 자리로 돌아갔다.

"인간들은 이렇게 자극적인 걸 좋아하나?"
"일부는?"

인간이 대답하자 케이타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네가 가져다주고선 뭘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거야?"
"아니, 내가 알고 그랬냐."

인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하자 케이타가 그의 등을 한 대 더 때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엘다가 케이타에게 방금 못 한 질문을 이어서 했다.

"이 정도의 연회는 얼마나 자주 열리지?"
"뭐, 행성에 따라 다르긴 한데, 그렇게까지 흔하진 않아."
"그럼 저 많은 음식은 어떻게 되지?"
"버려지겠지."

그 말에 후드 속 엘다의 눈이 가늘어졌다.

"버린다고?"
"그래. 너도 반군 지도자가 말하는 걸 들었을 거 아냐."
"..."

그 말에 엘다는 며칠 전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