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도박



둘째 날, 적들은 오지 않았다.

방어자들은 적 선박으로 검게 물드는 황무지와 원시적인 캠프를 짓고 깃발을 세워 영토를 지정하는 오크 클랜들을 헬스리치의 벽에서 지켜보았다. 더 많은 착륙선들이 새롭게 보병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큼직한 순양함들은 뚱뚱한 몸체의 고철-타이탄을 토해냈다.

적의 군기에 조잡하게 그려진 상징 수천 개가 도시를 마주했다. 각각은 곧 전투에 뛰어들 혈통, 부족, 제노 전쟁-클랜을 묘사하고 있었다.

흉벽에서 제국 군인들은 이 상징들을 눈여겨보고 똑같이 대응했다. 벽 위로 군기들이 솟아올랐다. 도시 내에 복무하는 모든 연대들의 것이었다. 황토색, 주황색, 노란색, 검은색의 강철 군단 깃발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

D-16 서부기지에서 돌아온 후, 그리말두스는 이미 북쪽 벽에 세워진 군기들 사이에 블랙 템플러의 깃발을 꽂았다. 사막의 독수리 연대원들이 기사가 깃대를 락크리트에 꽂고 한 명의 방어자라도 살아 있는 동안 헬스리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모여들었다.

“하데스는 타오르리라.” 그는 모여든 병사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것은 적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적들이 수치를 감추고자 하데스를 불태웠으니, 놈들은 자신들이 패배했던 지난 전쟁의 전장을 결코 올려다보지 않을 것이다. 헬스리치의 벽이 버티는 동안, 이 군기도 버틴다. 마지막 방어자가 숨을 내쉬는 동안, 도시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그의 행동의 메아리 속에서, 사리아 타이로는 근처에 레기오 인비질라타의 깃발을 세우자고 모데라티를 설득했다. 인간의 손으로 다룰 수 있는 깃발이 부족해서 신-기계들이 걸고 다니는 거대한 군기가 깃대에 걸렸다. 워하운드 타이탄 집행관의 무기-팔 우승기 하나가 사라져 두 강철 군단 깃발 사이에 꽂혔다.

벽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자신의 사랑하는 워하운드의 조종석 바깥에서 그런 관심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모데라티는 그 반응에 멋쩍게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참석한 장교들에게 톱니의 사인을 만들었고, 잠시 후 걱정스럽게 실수를 감추듯 아퀼라 사인으로 바꾸었다.

밤이 되자 바람은 더 차갑고 맹렬해졌다. 영원히 존재해온 유황의 악취가 거의 날아갔다. 강풍이 절정에 다다르자 서쪽 벽에서 강철 군단 91연대의 군기가 쓰러졌다. 연대에 소속된 설교자들은 그것이 흉조라고 경고했다. 진정한 폭풍이 닥쳐올 때 힘껏 버티지 않으면 91연대가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해가 지는 동안, 천둥소리가 황무지에 자리를 잡는 혼돈에 맞서며 헬스리치를 흔들었다. 폭풍의 전령이 몇몇 강철 친족들을 벽으로 이끌고 있었다. 적이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면 가장 거대한 전투용 타이탄들이 흉벽 위로 사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제국군은 신-기계들 몇 백 미터 주변의 벽을 버리라고 명령받았다. 그들 무기의 발사음은 너무 가까이 있던 이들을 귀머거리로 만들 수 있었다. 거대한 포 근처에만 있어도 사격하며 내뿜는 에너지의 양이 치명적이었다.

오늘 밤, 헬스리치에서는 누구도 잠들지 않으리라.



그는 눈을 떴다.

“형제여,”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인비질라타의 노파가 당신의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리말두스는 몇 시간 전에 도시로 돌아왔다. 이 소환을 예상하고 있었다.

“기도 중이다.” 그가 복스에 말했다.

“압니다, 레클루시아크님.” 그렇게 딱딱한 말투는 아타리온답지 않았다.

“그녀가 내 참석을 요청했나, 아타리온?”

“아뇨, 레클루사이크님. 그녀는, 어, ‘요구’했습니다.”

“인비질라타에게 내 의식이 완료되면 한 시간 내로 프린켑스 자르하에게 가겠다고 알려라.”

“그녀가 기다릴 기분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레클루시아크님.”

“그래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채플린은 지휘 첨탑 내의 작은 빈 방의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존경의 말을 속삭였다.


나는 양수 탱크에 다가간다.

내 무기는 손에 들려 있지 않다. 타이탄의 분주한 조종실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긴장감이 전적으로 더 사납게 내게 쏟아진다. 승무원, 조종사, 기술-사제들…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나를 응시한다. 몇몇 손이 패용된 칼이나 소화기를 매어둔 혁대에 얹어져 있다.

나는 그 표명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는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은 도시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 기계를 지휘하지만, 의식용 단검과 자동권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인비질라타의 노파, 자르하가 내 앞에 부유한다. 그녀의 주름지고 품위 있는 얼굴이 감정을 드러내며 뒤틀린다. 그녀의 사지는 잠시 경련으로 부드럽게 떨린다. 폭풍의 전령의 영혼과의 연결에서 오는 반응이다.

“내 출석을 요청하셨소?”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늙은 여자는 강철 이빨을 핥으며 액체 속에서 멈춘다.

“아니. 소환했지.”

“그렇다면 실수한 거요, 프린켑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이 대화가 끝나기 전까지 두 번만 더 실수하시오.”

그녀는 으르렁거린다. 우윳빛 액체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오싹하다. “허세는 그만두시오,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하오.”

나는 조종석을 둘러본다. 나와 함께 여기 있는 아홉 영혼. 내 조준 그물망이 보이는 모든 무기에 고정되고 노파의 쇠약한 이목구비에 다시 집중한다.

“그건 현명하지 못한 해결책이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방의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소. 문 밖에서 기다리는 여덟 스키타리를 불러와도 나는 여전히 이 방을 납골당으로 만들 수 있지. 그리고 프린켑스, 당신은 마지막에 죽을 것이오.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겠소? 못할 것 같은데. 난 당신을 인공자궁에서 뜯어내고, 당신이 공기 속에서 질식하면 이 소중한 타이탄의 눈-창문 밖으로 내던질 것이오. 당신은 너무 오만해서 지키지 않으려고 했던 도시의 차가운 땅에서 홀로 알몸으로 죽겠지. 이제 충분히 협박했으면, 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어떻소.”

그녀는 미소 짓는다. 증오가 그녀의 입술에 남은 전부이다. 나름대로 아름답다. 증오보다 더 순수한 것은 없다. 증오로 인간은 벼려졌다. 증오로 우리는 은하계를 무릎 꿇렸다.

“이번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군, 기사. 나는 나 자신을 드러냈지만, 당신은 당신의 황제의 데스마스크 뒤에 숨고 있소.”

우리의 황제 폐하지.” 나는 그녀에게 상기시킨다. “방금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셨소, 자르하.”

나는 투구의 목깃 봉인을 풀고 가면을 벗는다. 공기는 땀, 기름, 두려움과, 화학물질이 풍부한 액체의 냄새가 난다. 나는 다른 이들을,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무시한다. 매 순간 내 주변에서 깊어지는 신랄함에도 불구하고 투구로 감각을 가리지 않고 서 있으니 편안하다. 행성에 내려온 이후, 내가 다른 동료들과 있는데 투구를 벗은 건 노파와 대화할 때 두 번뿐이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나는,” 그녀는 주의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친절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

“기억하오.”

“사실이오. 하지만 괜히 말했군. 당신에게 정중하게 말을 건넨 것까지 후회하오, 불경한 자여.”

잠시,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당신이야말로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소, 자르하. 나는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의 채플린이고, 테라의 에클레시아키의 은혜 속에서 내 직위에 오르겠노라고 맹세했소. 내 앞에서 당신은 방금 인류의 황제 폐하가 당신의 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표명했지. 그분은 영광스러운 제국 전체를 위하시는데 말이야. 내가 이… 메카니쿠스 내부의… 분리주의적 요소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폐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레클루시아크 앞에서 이단을 말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소.

당신은 이단을 말했고, 나는 영원한 성전군과 마주치는 그 어떤 이단도 끝장내야 하는 책임이 있소.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를 신중하게 대해야겠지. 당신은 신성모독이라는 거짓 죄명으로 나를 모욕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당신이 D-16 서부기지에 대해 물으면 답하겠소. 이건 요청이 아니오. 동의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승무원들이 공포에 질리기도 전에 당신을 이단죄로 처형하겠소.”

나는 그녀가 억누르는 것을 지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소에서는 즐거움이 드러난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재미있군.” 그녀가 거의 생각에 잠긴 채 말한다.

“당신의 인식이 나보다 훨씬 더 광대한 시야를 제공할 거라고 생각하오.” 나는 그녀의 안구 증강물과 시선을 마주한다. “하지만 불화할 시간은 끝났소. 말해보시오, 자르하. 당신이 물으면 답하겠소. 헬스리치의 이득을 위해,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오.”

그녀는 수조 속에서 몸을 돌리며 액체로 채워진 관 속을 천천히 헤엄치다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이유를 말하시오.” 그녀가 말한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말하시오.”

나는 그런 기본적인 질문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건 오디나투스 아마겟돈이오. 인간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무기 중 하나지. 이건 전쟁이오, 자르하. 이기기 위해선 무기가 필요하오.”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필요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소. 당신은 즉흥적으로 오베론을 이용해선 안 되오, 그리말두스.”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유리에 이마를 댄다. 옥좌시여, 그녀는 지쳐 보인다. 쇠약해지고 지쳐 있으며 희망은 없는 듯하다. “봉인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봉인되어 있는 것이오.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용하지 않는 것이지.”

“대장간의 주인이 직접 결정할 것이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아니오, 그리말두스. 부디 멈추시오. 당신은 이 세계의 메카니쿠스 병력을 분열시킬 것이오. 이건 기계-신의 하인들에게 아주 중대한 문제요. 오베론은 다시 작동할 수 없소. 전투에 사용하는 건 신성모독일 것이고.”

“나는 화성의 전통 때문에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겠소. 주리시안이 마지막 방에서 오디나투스 아마겟돈을 점검하고 시험을 진행해 기계 내부의 영을 깨울 것이오. 우리를 도와주시오, 자르하. 우리는 여기서 헛되이 죽지 않을 것이오. 폐하의 옥좌시여, 오베론은 이 전쟁에서 우리를 이기게 해줄 거요. 정녕 그걸 모른단 말이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액체 속에서 다시 몸을 튼다.

“아니.” 그녀가 마침내 말한다. “그것은 다시 깨어날 수도 없고, 깨어나지도 않을 것이오.”

“당신의 바람을 무시해야 해서 안타깝소, 프린켑스. 하지만 나는 주리시안에게 직무를 멈추라고 하지 않을 것이오. 어쩌면 오베론의 재활성화는 그의 능력 밖의 일일지도 모르지.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소. 하지만 나는 이 도시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기 전까지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오.”

“그리말두스.” 그녀는 우리의 첫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상급자들로부터 당신이 이 행동을 계속하기 전에 당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소. 이 일은 한 가지 방법으로만 끝날 수 있소. 이제 마지막으로 위협하기 전에 당신에게 요청하셨소. 부디 멈추시오. 메카니쿠스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시오.”

나는 갑옷 목깃에 손을 대고 복스-연결을 작동시킨다. 신호 하나가 답한다. 확인했다는 신호다.

“나를 위협해서 세 번째 실수를 저지르셨군, 자르하. 나는 가겠소.”

여러 조종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프린켑스님?” 하나가 부른다.

“그래, 발리안.”

“오스펙스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열 신호 네 개가 잡힙니다. 바로 위에 있습니다. 도시의 벽-포들의 추적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소,” 나는 자르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다. “도시의 방어 시설은 나의 네 썬더호크를 격추시키지 않을 것이오.”

“그리말두스… 안 돼…”

“프린켑스님!” 발리안 카소미어가 소리친다. “그를 잊으십시오! 즉시 명령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너무 늦었다. 이미 방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타이탄의 두터운 장갑판 탓에 잘 들리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있다. 네 건쉽이 정지비행하고 있다. 그들의 추진기는 포효하고 있다. 검은 선체는 눈-창문으로 내리쬐던 달빛을 가리고 있다.

나는 어깨 너머로 네 건쉽이 헤비 볼터 포탑과 날개-장착된 미사일을 겨눈 것을 본다.

“쉴드를 켜라!”

“아니.” 내가 부드럽게 말한다. “쉴드를 켜서 내가 떠나려는 걸 막으려고 하면 난 건쉽에게 사격하라고 명령하겠소. 당신의 보이드 쉴드는 결코 제때 켜지지 않을 테지.”

“당신도 죽는 거요.”

“그렇지.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타이탄도.”

“쉴드를 내려라.” 그녀가 말한다. 쓰라림이 그녀의 얼굴에 돌아온다. 그녀의 승무원들은 따른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속삭이는 말에서 꺼림칙함은 명백하다. “이해하지 못하는군. 오베론을 참전시키는 것은 신성모독이오. 신성한 전쟁 플랫폼은 센츄리오 오디나투스의 군주에게 축복받아야 하오. 그 달램이 없으면 기계령은 분노할 것이오. 오베론은 결코 작동하지 않을 것이오. 알겠소?”

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타협이다.

“고작 축복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메카니쿠스가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무기를 전쟁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그렇소. 기계의 영혼이 반항할 것이오. 깨어나도 분노에 차 있겠지.”

그 말과 함께, 나는 우리의 교착 상태를 타파할 방법을 본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축복이 그들의 의식에 필요하다면, 우리의 요구를 가장 기본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알겠소, 자르하. 주리시안은 오디나투스 아마겟돈을 작동시켜 헬스리치로 가져오지 않을 것이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는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녀의 시각 수용 장치가 인간의 표정을 서투르게 흉내 내며 소리를 내고 회전한다.

“그렇다면?”

“그렇소.” 내가 말할 때까지, 심장이 몇 번 뛸 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우리는 노바 캐논을 제거하고 그것을 헬스리치에 가져올 것이오. 어쨌든 그것만 있으면 되오.”

“당신은 오베론의 신체를 더럽혀선 안 되오. 포를 제거하는 것은 머리를 자르거나 심장을 뽑는 것과 같소.”

“생각해보시오, 자르하. 나는 여기 서서 메카니쿠스의 따분함에 맞서길 그만두었소. 대장간의 주인은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와 메카니쿰 사이의 옛 맹세에 따라 화성에서 훈련을 받으며 기계교의 인도 아래 있었소. 그는 이 무기를 숭배하고, 그 각성에 이바지했다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길 것이오.”

“그가 정녕 우리의 원칙을 따랐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요.”

“그리고 당신도 정녕 제국을 따른다면 이렇게 했겠지. 생각해보시오, 자르하. 우리는 이 무기가 필요하오.”

“센츄리오 오디나투스의 군주가 테라에서 오고 있소. 그가 제때 도착해 봉쇄를 뚫을 수 있다면 헬스리치에 오베론을 배치할 기회가 있을 거요. 이 이상 지원해줄 순 없소.”

“지금은, 그거면 됐소.”

나는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로든 잘 끝나지는 않았지만 끝나기는 끝났다.

하지만 내가 걸어 나가자, 그녀가 나를 부른다.

“잠깐 멈추시오. 궁금한 게 있소. 왜 여기 있는 것이오, 그리말두스?”

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마주한다. 이 뒤틀린 고대의 생명체는 액체 관에 담겨 기계-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질문을 명확히 해주시오, 자르하. 지금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아니, 그러지 않겠소. 왜 여기, 헬스리치에 있는 것이오?”

그런 질문을 받다니, 이상하지만,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 그녀에게는.

“나는 내 죽은 주인과 형제였던 자가 나를 이 세계에 죽으라고 보냈기 때문에 여기 있소. 대원수 헬브레히트가 템플러 지휘관 하나는 남아서 방어를 독려하라고 요구했지. 그는 나를 선택했소.”

“왜 당신이오? 스스로 궁금했던 적 없소? 왜 그가 당신을 골랐는지?”

“나도 모르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내가 그 포를 가져가겠다는 것뿐이오, 프린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