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만남이 주선되었다. 나는 두럽지 않다곤 말할수 없었다. 나와 기데온 레이브너와의 만남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의 힘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측면에서 그는 아이젠호른보다도 더 두렵고 위험한 존재였다. 청출어람의 경우는 자주 일어나는 법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나일에게도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 둘 모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섭고 잔혹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레고르 아이젠호른의 경우, 내게는 작게나마 유리한 점이 있었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그답지 않은 그의 고 알리제베트 베퀸과의 애정과, 나와 그녀의 관계 말이다. 그것은 그가 나를 대하면서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무언의 유대감이자, 그의 흔치않은 감성적인 충성심의 틈새였다. 아이젠호른은 살아오면서 그 어떠한 인간에게도 애착을 가지지 않았으나, 오직 나의 어머니와 그리고 나만이 예외였다.

레이브너에게는 그러한 수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몇가지 안전수단이 있었다.

나는 약한 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 있었지만, 나의 스승들은 --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건 악당들이었건 간에 -- 나를 매우 잘 가르쳐 주었다. 마치 해방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누구의 지시를 받지도 않았고, 나의 지난 수년간의 훈련을 구사해서 스스로 최대한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내가 단순한 장기말이 아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일은 은어(glossia)로 만들어진 복스 통신을 통해서 접선을 준비했다. 그는 은행들을 찾아가서 지난 몇년간 아이젠호른이 비상시를 대비해 개설해 둔 은행 구좌에 저축된 예치금을 인출해 왔고, 그 돈으로 암시장에서 우리가 쓸 몇가지 장비를 구해왔다. 나는 시청의 기록실을 찾아가서 건물들의 청사진들의 사본을 입수했고, 나일과 함께 그것들을 검토했다. 레너는 우리에게 그만이 알고 있는 지역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는 접선의 조건과 보안을 확보할 방법과 함께, 만일 수틀릴 경우 탈출할 경로도 계획했다.

접선 전날 밤, 나는 벙커가 있는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회계사무소와 수선집과 안과 의원으로 통하는 층계참를 지나 허름한 공용 계단을 미끄러지듯 올라갔고, 마침내 불이 꺼진 층계 꼭대기에 있는, 굳게 닫힌 채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작은 옥상 출입문에 다다랐다. 나는 그것을 강제로 열어서, 낡은 페인트칠 조각이 떨어져 나갔고, 나는 저녁 노을 속에서 빈민가 시장과 숏홀을 바라보고 있는 낡고 이끼가 끼어 있는 타일이 깔린 옥상으로 나왔다. 나일과 레너에게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산책을, 어쩌면 신-황제폐하께 가호를 바라는 기도라도 드리고 오겠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작은 칼을 가지고 나갔다.



접선 장소는 토일게이트(Toilgate, 일꾼의 문)의 무너져가는 건물들의 남쪽에 위치한 낡은 조선소의 근처의 진수로(slipway)였다. 날씨는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폭풍은 다시 은신처로 숨어들었고, 회색의 얼룩처럼 구름이 낀 하늘에서는 가벼운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마치 기본값으로 리셋되어 새로운 날씨가 프로그래밍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창백하고 텅 빈 공간 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한때 퀸마브의 재정을 책임지던 커다란 공단들이 입주해 있었던 큰 강 어귀에 있는 강변가에 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토일게이트를 통해서 조선소의 일꾼들의 무리가 들락날락 하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락크리트로 포장된 금이 간 도로에는 잡초가 잔뜩 나 있었으며, 작업화의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게 된 지 이미 수세기가 지났다.

그곳은 매우 평평하고 습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 지점에선 매우 폭이 넓은 옛 강은 마치 회색의 띠 처럼 지평선까지 흐르고 있었으며, 공장들이 빼앗아갔던 땅의 상당부분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었다. 옛 둑길은 물 속으로 이어져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 주변 수 킬로미터를 유사(silt)가 침범해 오고 있었고, 낡은 고목들과 버려진 폐건물 사이에 깔려 있었다. 조작되었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이 바로 내가 태어났었고, 나의 가상의 부모님들이 죽었다던 그 습지대였다.

진수로 위에서 나는 습지대 너머로 여전히 강가에 남아있는 작고 허름한 마을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집들과, 조그만 교회의 종탑들이 강물에 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물이 잠겨있는 작은 마당이 바로 내 부모님들의 묘비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굳이 방문하지 않았다. 나는 공동묘지에 묘비가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 아니면 거짓을 굳히기 위해서 묘비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날 신경쓰게 만들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에겐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리 셋은 아랫길(holloway)을 지나서 걸어서 그 곳으로 갔고, 무너져가는 도시의 대문을 지나서 걸어갔다.

조선소의 거대한 작업장들이 넓은 습지대의 평지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것들은 프리캐스트된 락크리트로 지어진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건물들이었지만, 드넓은 평야에 비교하면 작아보였다. 과거에 작업장 안에서는 숙련된 일꾼들의 손으로 다른 대륙이나 다른 세계로 항해할 거대한 배들이 건조되었다. 지금은 당연히 텅 빈 폐허가 되었지만, 그것들은 그 거대한 규모 하나만으로 몇 세대 동안 계속된 악천후와 방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때 지원 시설들과 별관들과 창고와 식당들이 그 작업장 주변을 작은 마을처럼 에워싸고 있었겠지만, 그것들은 오래 전에 사라져 이제는 개펄이나 잡초나 버드나무들이 우거진 밭 내지는 락크리트 바닥이 드러난 곳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119번 작업장을 선택했다. 그것들은 모두 다 똑같이 생겼지만, 그 번호가 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썩어가는 첨탑처럼 습지에서 솟아있었고, 아침의 안개가 그 가장자리에 서려있었다. 모든 것들이 마치 물에 희석된 잉크마냥 회색이었고, 비가 잠시 그친 동안에도 공기는 매우 습했다. 작업장의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진수로가 강변과 개펄로 이어지고 있었고, 과거에는 환호하는 군중들 앞에서 이 거대한 바위길을 통해서 배들이 진수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두시간 먼저 도착해서 사전 정찰을 했다. 할론과 나는 레이브너의 팀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정찰을 해갔거나 심지어 사전에 인원을 배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장과 그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내부는 축축한 그림자의 영역이었으며, 군데군데 구멍이 난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있었으며, 너무나 녹이 슬어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공업용 물품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올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금속 사슬이 놓여져 있었고, 그 사슬의 일부는 마치 어부가 낚아올려 늘어놓은 거대한 바다뱀 처럼, 작업장 입구부터 둑길까지 이어져 있었다. 바람에 잡초들이 흔들렸다. 강가의 잿빛 평원 너머로 나는 저 멀리 떨어진 감옥의 암울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폐선박들에서 마스트와 엔진과 날개를 제거한 뒤, 강가에 고정시켜서 감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곳을 우리가 선점한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나일은 작업장의 문가에 있는 거대한 엔진 블럭 위에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서 그는 진수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암매장에서 스코프가 달린 밀리타룸 표준 롱-라스라이플을 구입했는데, 그것은 저격용 무기로 탁 트인 락크리트 마당을 가로질러 넓은 사격 범위를 확보할 수 있는 무기였다. 레너는 개조된 돌격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작업장의 뒤편에서 빗속에서 매복하여 접근하는 길과 습지대를 지나서 저 멀리 유령처럼 보이는 토일게이트까지 날카로운 시야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어떠한 것도 포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소형 복스 헤드셋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일이 마이크로-비드라고 부르는 밀리타룸용 장비였다. 우리는 일정한 스케줄에 맞추어 서로에게 무선으로 확인했고, 이 곳의 공간의 크기와 우리 사이의 간격을 감안하면, 우리는 서로의 시야 밖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밖에서 진수로 위에서 기다렸다. 나의 바디슈트는 나일이 구해온 방탄섬유로 만들어진 조끼로 강화되어 있었고, 그 외에 나는 후드가 달린 롱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의 4연발 단총(quad-snub)은 내 벨트의 총집 안에 있었고, 한 쌍의 찌르기용 단검들, 근접전투나 투척을 위한 단검의 일종인 슬루카(sluca)를 하나씩 각각 팔뚝에 은닉해서 장비했다. 또한 나는 한 정의 단축 총신을 가진 라스-카빈을 어깨에 걸고 있었다. 나는 내 수갑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꺼진 상태로 놓아둔 내 수갑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이 없다면 레이브너와 그의 수하들의 정신이 우리를 간단히 제압했을 것이고, 우리가 어떤 무기를 들고 있던 간에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레이브너를 상대하는 것 만큼이나 카이스의 치명적인 염동력을 다시 조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기다렸다. 나는 저 멀리 떨어진 강물과 습지대의 풀밭을 흔드는 바람을 지켜보았다. 나는 차갑고 축축한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비를 느꼈고, 내 바디슈트의 히터의 출력을 높였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둘러보았고, 저 멀리 떨어진 외로운 작은 교회의 종탑을 다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한동안 내가 자라나면서 믿어왔던, 슬퍼하도록 배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라졌고, 거짓이었으며, 최소한 저 공동묘지에는 내가 애도할 것은 없었다.

그 대신에 나는 예전에 모돈트 여사가 고대 인더스 철학을 인용하여 가르쳐 준 대로, 저 멀리 떨어진 종탑을 초점, 즉 드리슈티(drishti, 산스크리트어로 집중된 시선)로 삼았다. 그것을 초점으로 삼아 나는 나의 옛 <안정의 연도(tempering litany)>를 외우며 내 마음과 신경을 안정시켰다. 이제와서 코그니타이의 정신 단련법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이상해 보였지만,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유용했다. <지독한 미궁>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억을 안정의 연도의 기초로 삼았다.

나의 것은 헤레티카메론(Heretikhameron)이라고 하는, 프라이마크들의 전쟁을 노래하는 고대 서사시의 한 구절이었다.

<····아홉 아들들은 맞섰고, 다른 아홉은 배신했도다···>

하지만 나의 안정의 연도는 그저 단어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그 문구를 낭송하는 시스터 비스밀라의 목소리였다. 고아원에서 그녀는 종종 그 시를 우리에게 읽어줬었고, 따라서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 명상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나는 저 멀리 종탑에서 느껴지는 거짓된 슬픔이 아닌, 가슴이 아려오는 진실된 슬픔을 느끼며 거의 즉시 그만두었다. 시스터 비스밀라는 메데아였으며, 메데아는 죽었다. 그것은 솔직하고 애절한 손실이었고, 내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그 어떠한 것보다 컸으며, 여전히 그 아픔은 생생했다.

나의 마이크로 비드가 딸깍거렸다.

“너 지금 괜찮냐?” 나일의 목소리가 내 귀에서 속삭였다.

“괜찮아요 할론” 나는 답했다.

“정말이냐?”

“네”

“널 지켜보고 있다, 베이타. 방금 그곳에서 네가 흔들리는 것 처럼 보였다. 무언가 너의 자세가--”

“난 괜찮아요” 나는 말했다.

나는 진수로 위를 왔다갔다 했다. 슬픔으로 오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연도를 읊는 것을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아이젠호른과 레이브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삶을 살아온 자들이었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감정이 그들을 약하게 만들지 않도록 훈련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점이 아니다.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

감정 표현이야 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고, 우리에게 개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들처럼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바로 내 자신과 나를 만들어 준 것을, 조작된 습지대 운운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날 만들어 준 것을, 비록 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붙잡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나의 연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에 실린 상실감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였다.

비록 영원히 떠나갔지만, 메데아는 내 곁에서 날 위로해 줄 것이다.

“아홉 아들들은 맞섰고, 다른 아홉은 배신했도다, 아홉은 여덟을 위함이요, 아홉은 여덟에 대적하니, 열여덟 모두가 위대한 우주를 만들거나, 몰락시킬 지니···”

나의 비드가 다시 딸깍거렸다.

“지금 나한테 말하는거야?”

“아뇨 할론. 경계를 늦추지 마요.”

잠시 후, 레너가 무전을 날렸다.

“시작할 때가 된 것 같군” 그가 말했다.

카고-8(Cargo-8, 제국의 일부 행성에서 사용되는 민수용 대형 트럭) 한대가 토일게이트의 도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고, 119번 작업장으로 향하는 보급로로 방향을 틀었다. 레너는 그의 감시 지점에서 나보다 한참 앞서서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했고, 시야 밖에서 숨은 채로 그것에 무기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것은 잡초와 깨진 락크리트 위를 두꺼운 바퀴로 덜컹거리면서 작업장의 동쪽 측면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보이기 전에 그것의 엔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몇번이고 내 수갑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내 블랭크 능력이 드러나 있는지 확인했지만, 만일 내가 실수를 했다면 이제 와서는 너무 늦었다. 레이브너의 정신, 혹은 그가 가끔씩 부리는 인간 꼭두각시들이 벌써 우리를 제압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고 바랍니다” 나는 말했다. “자리를 잡고, 나를 따라서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확인” 무전으로 나일이 말했다.

“알았다” 레너의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비에 젖은 넓은 락크리트 위에 탁 트인 진수로 위에서 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슬루카의 칼집에서 잠금쇠 하나를 풀었다.

트럭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작고 보강된 창문과 적재함 부분이 닫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르비테스가 운용하던 카고-8 차량으로 보였다. 바퀴 윗부분을 덮는 스커트 부분을 비롯한 차체 곳곳에 금속 장갑이 덧대여져 있었으며, 습지솔새(Marshchaff, marsh와 chiffchaff를 합성한 조어로 보임)의 알과 같은 창백한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것은 젖은 바닥에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진수로 위를 달려왔고, 내 앞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정지했다. 나는 기다렸다.

“입구를 주시하는 중” 나일이 복스로 통신했다. 그의 위치에서 트럭은 거의 측면을 향하고 있었고, 장전된 그의 핫샷 장비의 사거리 내에 있었다. 나는 군용 화기의 킬샷(kill-shots)은 아르비테스들이 사용하는 장갑판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리 이동 중” 레너가 보고했다. 나는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우리가 세운 계획 대로 후방으로부터 작업장의 측면을 따라서 트럭의 뒤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나일 사이에서, 우리는 차량을 180도의 화망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아무런 엄폐물이 없었다. 나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내가 열린 공간에서 나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한동안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더니, 차 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명이 뛰어내렸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보자마자 알았다.

키가 크고 유연한 몸매의, 짙은 갈색의 바디슈트를 입은 페이션스 카이스였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치명적인 은비녀로 고정되어 있었다. 비록 드러낸 나의 존재로 인해서 그녀의 염동력은 막혀 있었지만, 그녀는 고양이와 같은 우아함으로 움직였고, 나는 그녀가 염동력을 쓸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서서 나를 쳐다보더니, 파란색 트럭으로부터 진수로 위를 걷기 시작하여 나와 20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왔다.

“목표 조준 중” 나일이 복스로 말했다.

“알았다” 나는 답신했다.

페이션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 냉소적인 분위기가 그녀의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베이타” 그녀는 말했다.

“페이션스.”

그녀는 마치 날씨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탁 트인 야외 공간이로군” 그녀가 말했다.

“그 안에 우리 둘이 서 있구요”

“그래, 하지만 날 불리한 자리로 데려왔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두명이 날 조준하고 있어.”

“그리고 당신들은 안그러고 있구요?”

“정말 모르겠어?” 그녀는 짓궂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흠, 넌 필요한 것 보다 덜 준비된 채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겠군.

할론은 어디에 있지? 차를 타고 오면서 건물 뒤쪽에서 얼핏 봤던 자가 그였나? 아니, 그 자식이라면 좀 더 가까이 있어야 해.”

그녀는 어두운 동굴과도 같은 작업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내부 속에서 나일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기분 좋은듯 손짓을 했다.

“좋은 아침이야, 할론!” 그녀는 소리쳤다. “머리나 심장을 노려줘! 난 고통스러운건 딱 질색이야!”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넌 너무 일찍 떠났더라, 베이타” 그녀는 말했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적었죠. 당신도 알고 있을텐데.”

“케루바엘” 그녀는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악취를 남겼지. 하지만 넌 돌아올 수도 있었잖아.”

“어쩌면 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죠” 나는 말했다. “어쩌면 난 감금되어 있었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말이지.”

“아니면 나는 당신의 주인이 시킨 것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죠. 부탁받은 대로 아이젠호른의 일행에 침투했다던지.”

“그건 믿기 어려운걸.” 그녀는 대답했다.

“그동안 지난 시간과 이 만남의 성격을 고려하면 말이야. 무슨 이유에서든 너는 종적을 감췄고, 상황이 확실히 바뀐 듯 하군. 우리가 뭘 의논할 것이라도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난 기다리고 있어요.”

“누구를?”

“그를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어떤 맹렬한 놀라움을 선사해 줄지도 말이죠.”

그녀는 장갑을 낀 손을 넓게 벌리며 들어올렸다.

“난 그저 대화를 시작하려고 온 건데”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도 너의 맹렬한 놀라움을 가늠해 보려고 왔지.”

“나에겐 그런거 없는거 알잖아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당신네들과 같은 수준의 자원은 갖고있지도 않아요.”

“자원이라니?”

“<지독한 미궁>을 공격했던 그 인원들과 건쉽들 말이죠. 당신의 주인은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제국의 백업을 받고 있었죠.”

카이스는 살짝 코웃음을 지었다.

“딱히 없는걸” 그녀는 말했다.

“그 습격은 현지 아르비테스들과 총독 남작의 집무실의 협조를 구해서 했던 거야. 그들은 인력과 차량들을 제공했고, 뭔가 거물을 잡을 것을 기대했었지. 그리고 베이타, 우린 그걸 얻지 못했어.

오, 우리는 그 곳을 폐쇄했지만, 총독 양반은 대반역자들이라도 한무데기 생포해서 법정에서 퍼레이드라도 벌이면서, 섹터 담당 오르도에게 신임을 얻길 바라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어. 그래서 그 양반은 우리에게 불만을 품고 있고, 최근 들어서 잘 협조도 안해주고 있다구.”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눈을 감고 빗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게 가만히 서 있었다.

“오늘은 우리 위로 건쉽이 날아올 일은 없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니가 요청한 대로 조용한 미팅이라구”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서 트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발뒤꿈치가 락크리트 표면에 딱딱 부딫치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그녀는 카고-8의 뒤로 돌아가더니 뒤쪽 문을 열었다. 나는 화물 리프트의 유압 장치의 구동음을 들었다.

“무언가가 나오고 있다” 레너가 복스를 통해 말했다.

“가만히 기다려요” 나는 대답했다.

“그 자다” 나일이 말했다.

“타겟에 집중해요”

카이스는 차량의 뒤쪽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의자>라고 알려진 무겁고 장갑을 두른 물체 곁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부는 상자고, 일부는 보좌였으며, 완전히 밀폐되었고 반중력 장치를 통해서 부드럽게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반중력 탱크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의 동체의 장갑판을 수놓고 있는 각종 튀어나온 부분과 추가 장비들에는 그저 스캐너들과 광학 장비들만 숨겨져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몇은 무기 모듈이었고, 어느 순간이라도 개방되어 싸이캐논(psycannon)의 불을 뿜을 수 있었다.

그 모듈들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곁에서 걷는 카이스와 함께, <의자>는 내게 다가오더니 방금 전에 카이스가 서 있던 자리 위에 정지했다.

“당신만 남아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는 비가 내리는 소리 사이로 작은 복스 송신음을 들었고, 카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더니 카고-8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차문에 등을 기대고는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넌 나를 취약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구나” <의자>의 트랜스폰더가 말했다.

“글쎄요, 그것이 바로 요점이죠 선생님.” 나는 대답했다.

“당신의 정신이 말이죠...제 공허함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사과드립니다만, 제 수갑이 지금 이 상태로 놓여있지 않는다면 당신이 매우 유리해질 테니깐 말이죠. 전 싸우러 온 것이 아니고 제 조건을 말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저는 단지 말하려고 온 것일 뿐이죠.”

“말하고 싶다고?” <의자>는 말했다. 공중에 뜬 채로 그것은 마치 주위를 둘러보는 듯, 살짝 한쪽으로 돌더니 반대편으로 돌았다.

그건 단지 그러는 척 하는 것일 뿐이었다. 레이브너의 센서 시스템은 그의 주변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인간적인 형태를 통해서 인간적인 제스처를 취함으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레고르는 어디에 있지?”

“그는 죽었어요.” 나는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겠나?”

“제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나는 말했다. “당신이 한 짓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직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어” <의자>가 말했다.

“나는 그레고르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난 단지 너에게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진심을 담해서 말할 수 있다.

베이타, 부탁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지?”

그의 목소리는 증강 장치에 의해, 기계가 시뮬레이션하여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서 방송되는 것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에서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몇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며칠 전 밤에, 우리의 안전가옥이 공격당했고 파괴되었지요” 나는 말했다.

“파괴되었다고?”

“완전히 박살났지요 선생님”

“대체 누가?”

“당신들이요” 나는 말했다.

“당신들을 제일 먼저 떠올렸죠. 당신이 수년간 추적해오던 아이젠호른에 대해서 마침내 움직인 거라고 말이죠.”

“맹세하는데 그건 절대 내가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자의 위치 조차도 특정하지 못했어. 그레고르는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데 언제나 매우 뛰어났었다.”

“그리고 이번은 아니었구요.” 나는 말했다.

“저는 순전히 우연으로 탈출할 수 있었지요.”

“그곳이 어디에 있었지?”

질문을 피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톨타운입니다” 나는 말했다.

“황금옥좌시여 맙소사...그 대화재였나?”

“바로 그것이 맞아요, 선생님.”

그리고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나는 카이스가 더 이상 무관심한 척 하면서 차에 기대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끼고 있던 팔짱도 풀었고, 마치 정말로 놀란 듯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그 모든 것을 들은 것이다.

“또 누가 죽었어?” 그녀가 불렀다.

나는 그녀를 무시했다.

“누가 죽었지, 베이타?” 레이브너가 단호하게 질문했다.

“메데아, 데몬호스트와 그레고르요” 나는 대답했다.

만일 레이브너가 사람의 몸이였다면, 나는 그의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서 그의 반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카이스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충격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의자>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소리를 내지도 않았는데, 돌연 오히려 그것이 더욱 심각해 보였다. 이 소식이 그를 정말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하구나” 그는 마침내 말했다.

“당신을 믿도록 하지요” 나는 대답했다.

“그래서 그걸 말하려고 나를 불렀던 것인가?”

“그것도 겸해서요”

“그리고 또 뭐가 있지?” 그는 질문했다.

나는 그에게 손짓을 한 뒤에 몸을 돌려서 진수로를 걸어 내려갔다. 몇초 뒤, 그는 카이스를 트럭 옆에 남긴 채로 내 뒤를 천천히 뒤따라 왔다. 조금 더 다른 이들과 떨어진 야외 공간으로 나아온 뒤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를 다시 대면했다. 그는 마치 위협을 하려는 듯 나에게서 고작 수 미터 앞에서 멈춰섰고, <의자>의 동체에는 빗방울들이 잔뜩 맺혀 있었다.

“여기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여러 편들이 존재하죠” 나는 말했다. “많은 파벌들과 많은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고 있어요. 제 경험상 최소한 9개에서 10개의 세력들을 셀 수 있지요. 그런데 그들 중에 서로 적대하는 두 집단이 하필 이단심문소의 인물들이라니 참 이상하단 말이죠.”

“너도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잖나 베이타” 그가 입을 열었다.

“저도 그가 이단으로 판정받았다는 것과, 오르도의 허가 밖의 일을 저질렀다고 고발된 것을 알고 있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이 추격전을 벌이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단지 당신의 주인들이 당신까지도 이단으로 낙인찍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를 사냥해 오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또 다시 너는 지나치게 단순화를--” 그는 말했다.

“제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아마도 아니다. 내 말을 잘 이해하거라, 베이타. 나는 그의 행동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수십년간 제국의 법을 어겨가며 테라의 옥좌의 은총 없이 활동해 왔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그는 선을 넘은 것이야.”

“넘었었죠” 나는 정정했다.

“그렇지. 그리고 나 역시도 선을 하나 둘 정도 넘어본 적이 없었다고는 말 안하겠다. 그는 어쩌면 나를 너무 잘 가르쳤을지도 모르지. 나는 오르도에서 지시를 받았고, 비록 매우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를 체포하는 것에 전념을 다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전 관심 없어요.” 나는 말했다.

“부디 날 이해해다오. 나는 그레고르 아이젠호른을 추격하는 것이 더 큰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의 목표가 아니야. 나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지. 그는 다른 것을 얻기 위한 핑계이고, 그 역시도 그것을 찾던 중이었다. 우리 모두 같은 것을 쫓고 있었지.”

“저도 압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바보가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과 위험을 무릅쓰고 대화를 나누고 있지요. 저도 이단이라고 화형당하기 싫고, 혹은 이단의 수하로 화형당하기도 싫거든요. 당신의 목표는 저의 것이기도 해요. 이곳에는 너무 많은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 중 몇몇은 거대한 악의를 품고 있죠. 그리고 이제 그들 중 한 플레이어가, 당신의 가장 큰 라이벌이 장기판 위에서 사라졌지요. 이제 당신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구요.”

“<왕>이로군.” 그가 말했다.

“<왕>을 말이죠”

“그리고 너는?” 그는 질문했다.

“저는 아이젠호른의 워밴드에서 간신히 남은 것들을 주워모았고, 당신이 아마 가지고 있지 않을 정보와 실마리들을 모아두었죠.”

나는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도 성립하죠.” 나는 덧붙였다. “당신과 아이젠호른은 지난 수년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해왔었죠. 그리고 이제 그는 죽었어요. 마침내 집중을 할 때고, 자원을 공유해야할 때가 왔죠. 저는 힘이 부족하지만 가치가 있어요. 그래서 당신과의 만남을 요청한 겁니다.”

“같이 협력하자는 말인가?”

“한 팀으로 일하자는 거에요. 레이브너, 결국 다 따지고 보면 여기엔 오직 두 편만이 존재하죠. 파벌들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잊어 보자구요. 여기에는 우리가 있고, 또한 우리의 숙적이 있죠.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고 태만한 짓일 겁니다.”

“너는 정말 그녀를 닮았구나” 그는 말했다.

“다들 저한테 그 말을 하더군요.”

<의자>는 천천히 방향을 돌리더니 거대한 작업장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작업장 119번이라” 그는 관찰했다. “저 숫자를 선택한 것은 우연은 아니겠군.”

“아니었죠.”

“너는 그 책을, 체이스의 책을 얻기를 원하나?”

“그것은 매우 중요한 단서지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유일한 것도 아니구요.”

“베이타,” <의자>가 말했다.

“너를 믿는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거의 불가능하다. 너는 코그니타이의 산물이야.

너는 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아젠다를 따르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레고르가 죽었다는 너의 말 만을 믿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정말 총애하던 용병과 함께이긴 하지만, 그 친구는 편을 너무 자주 바꿔왔지.

그리고 지금 이곳에 배치한 요원이 그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저 보안을 위해서죠” 나는 말했다.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해요. 내가 내 수갑을 켰다면, 당신은 우리를 한순간에 생포했겠죠.

그리고 카이스가 당신의 유일한 요원이 아니고요. 다른 여자는 어디에 있죠?”

“이것이 제대로 되려면 먼저 신뢰를 구축해야만 한다.” 그가 말했다.

“그래야겠죠. 그리고 당신은 아직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는 마치 유감스러운 한숨과도 같이 들리는 소리를 내었다.

“카라는 지금 할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정색하면서 나의 마이크로 비드를 터치했다.

“나일?”

“그는 지금 대답 못해, 베이타” 한 여성의 목소리가 답변하였다.

“이게 당신이 신뢰를 표시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레이브너에게 물었다.

“나는 너에게 내 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준비도 없이 우리가 이곳에 걸어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나? 이 회동은 그 어떠한 종류의 함정일 수도 있었으니깐.”

“하지만 함정이 아닌걸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레이브너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내가 쥔 패를 보여주는 것이지. 카이스는 차량에 있다. 카라는 나일 뒤에 서 있지. 그리고 너의 다른 인원인 라이트번씨에 대해서는--”

나는 내 목에 달린 마이크에 손을 가져대려다 멈칫했다. 레너는 작업장의 건물 끝을 돌아서 나타났다. 그는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올리고 있었다. 바이저를 착용하고 방탄 재킷을 착용한 육중한 몸집의 사내가 그의 뒤에서 라스피스톨을 겨누며 따라오고 있었다.

레이브너에겐 세번째 요원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 레이브너가 말했다.

“하지만 일단 그들을 제압해 두었다. 이제 너, 베이타 뿐이고, 비록 블랭크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를 상대로 네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신뢰감을 가지고 우리 대화를 나눠 볼까, 아니면 너희 셋을 그냥 지금 보내줄까? 두번의 기회는 앞으로 없이 말이지?”

나는 깊은 인상을 받은 동시에 화가 났다. 비록 수단이 적었지만 나름 우리는 철저히 대비했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우리를 압도했다. 세번째 요원이 그의 와일드카드였다.

“우리를 그냥 보내주겠다고요?” 나는 물었다.

“대화의 규칙이지, 할론이 협상한 대로.” 그가 대답했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가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도록 하지.”

“그렇다면 이야기를 해야 겠군요.” 나는 간단히 답하고는 작업장 건물 쪽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카이스는 트럭에서 걸어와서 레너를 감시했고, 그는 생포당한 것 때문에 잔뜩 고뇌하는 듯 했다. 바이저를 쓴 남자는 그의 피스톨을 내리더니 카이스에게 내가 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일이 파워셀이 제거된 그의 롱-라스를 어깨에 맨 채로 건물 안에서 걸어나왔다. 그 역시 매우 분해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카라 스월이 손에 든 파워셀을 마치 장난감처럼 위아래로 던지면서 걸어나왔다.

“그래서 이들을 이단죄로 처형할까요?” 우리가 다가오자 카이스는 레이브너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에게 씩 웃었다. “농담이야.” 그녀는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미안해” 나일이 나에게 말했다.

“잊어요.” 나는 대답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베이타.” 카라가 말했다. 그녀의 미소는 따뜻하고 진심인 것 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할론 나일을 총 한발도 쏘지 않고 제압했다. 나의 그녀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올라갔다.

“이제 어떻게 하죠?” 카이스가 질문했다.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 다음에 이야기를 한다.” 레이브너가 말했다.

“내가 다르게 말하기 전 까진 베이타와 할론과 라이트번씨를 우군으로 취급하도록. 자네들의 무기를 거두도록 하게.”

“우리가 저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이저를 쓴 남자가 질문했다.

“가면을 쓴 놈이 퍽이나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레너가 침을 뱉으며 말했다.

“닥쳐” 사내가 대꾸했다.

“난 내 명령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레이브너가 말했다.

“우리가 신뢰를 구축하는 김에” 나는 말했다. “당신 얼굴이나 좀 보죠.”

나는 바이저를 쓴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의 체격과 목소리에서 이상할 정도로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는 의심스러운 듯이 레이브너를 힐끔 보았다.

“그렇게 하도록” <의자>가 말했다.

“우리가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면 비밀을 가져서는 안되겠지. 부탁인데 나쁜 반응은 보여주지 말았으면 좋겠군.” 레이브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가면을 쓴 사내가 그의 바이저를 벗기 전 까지는, 그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고 등골이 싸늘해졌다. 그것은 타데우스 사우르였다. <지독한 미궁>의 스승이었던 사우르였다.

“이렇게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건가요?” 나는 소리질렀다.

“워, 워 진정해!” 카이스가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베이타---” 레이브너가 말했다.

“우린 갈 거에요” 나는 말했다. “사우르는 코그니타이의 일원이라구요! 당신도 알잖아요!”

“이었었지.” 사우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타데우스는 미궁을 습격할 때 체포되었었다.” 레이브너가 말했다.

“네게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주겠지만, 일단 그가 이번 수사에 나를 도와주고 있다고 알도록.”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군요” 나는 선언했다.

“그는 코그니타이고, <8인>들에 속박된 존재라구요. 아무리 잘 봐줘도 그는 첩자란 말이죠.

대체 당신은 어떤 종류의 바보인가요?”

카이스는 내가 그녀의 주인을 꾸짓는 것을 듣고는 놀라움의 웃음을 억눌렀다.

“우리가 사우르를 찾았을 때, 그의 뇌는 이미 기억이 소거된 상태였다.” 레이브너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몇주간 그를 싸이카나를 사용해 조사하면서 그의 동기와 상태를 점검했지. 나는 그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암시 조차도 확인했다. 아무런 것도 없었어. 그는 위험한 사내이지만, 그의 연결은 끊어졌지. 그는 이제 제법 간절히 날 돕길 원하고 있다.”

“내가 맹세하지, 베퀸” 사우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무엇의 일부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당했는지도 모르지만 답변을 원한다.

그들이 내가 널 안다고 하지만, 난 기억이 나질 않아. 네가 주저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들이 내가 옥좌에 대항하던 세력들의 요원이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것을 간신히 믿을 수 있었다. 내가 맹세하는데, 나는 그저 답을 원할 뿐이고,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을 바로잡고 싶을 뿐이야.”

“그는 당신의 요원인 보리엣을 죽였어요.” 나는 말했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카라는 불편하다는 듯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카이스는 그녀의 입술을 오므렸다.

“그들도 알고 있어.” 사우르가 말했다.

“우린 알고 있다.” 레이브너가 말했다.

“그들은 알고 있지만 나는 기억이 안난다고.” 사우르가 말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기억이 지워졌다면, 대체 그가 무슨 쓸모가 있죠?” 나는 질문했다.

“얼굴을 보면 그들을 알아볼 수 있거든” 사우르가 말했다.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얼굴들이 말이지. 너의 얼굴 처럼 말이다. 내가 네 얼굴을 보자 마자 네 얼굴을 알아보았다. 나에겐 아직 쓸모가 있어. 어쩌면 너보다 먼저 코그니타이의 일원들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잔혹하고 위협적인 나의 스승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깡패였고, 짐승같은 사내였고, 그가 적을 위해서 평생 해왔던 것들이 전부 지워졌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레이브너는 강력한 싸이커였고, 그가 직접 그를 조사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협력에 대한 노력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사우르와 같은 몹쓸 인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귀중한 협력을 방해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에 대해선 나중에 논의하도록 하죠.” 나는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저는 더 많은 설득이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의 협의가 유지되었으면 좋겠군요.”

나는 내 팔뚝의 칼집에서 슬루카를 미끄러지듯 빼내어서 내 손 안으로 떨군 뒤, 재빨리 내 왼손 바닥의 살점을 그었다. 나는 손을 들어올리며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내 핏방울을 흩뿌렸다.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카이스가 재빨리 다가오며 물었다.

마치 돗단배의 돗이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소리가 났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코무스 녹투르누스가 내 뒤의 락크리트 바닥에 착지했고, 그의 눈과 같이 하얀 날개를 펼치며 숨을 들이쉬면서 서서히 일어섰다. 그는 여전히 벌거벗고 있었고, 그의 석고 조각상과 같은 덩치는 우리 모두 위에 우뚝 솟은 듯 했다. 레이브너의 일행들은 경악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나일은 깜짝 놀라서 움찔거렸다. 심지어 아무런 표정도 없는 <의자>조차도 살짝 움찔거리는 듯 했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이냐?” 레이브너가 물었다.


“제가 가진 패를 보여드리는 것일 뿐이랍니다.” 나는 말했다.

“협력의 의지로 말이죠. 당신은 세번째 요원으로 저에게 한방 먹였지만, 만일 싸움이 벌어졌었다면 선생님 당신의 예상 대로는 흐르지 않았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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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소환수 취급되는 마개조된 블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