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생각은 그에게 죄책감을 들게 했다. 특히 지금처럼 이 방에 갇히기 이전의 기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죄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이에게 속죄란 속 편한 말이었다. 결국, 생활 패턴이란 것이 만들어졌다. 그는 더 이상 이름을 지어낸다거나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내뱉지 않았다. 멍하니 침묵하는 것도 멈췄고, 그렇다고 해서 대답 없는 질문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그들은 남자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고통을 줬다.
"몰라."
+지금이 몇 년도지?+
"나도 몰라."
그는 대체 그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통은 머릿속 깊은 곳으로부터 피어나와 전신으로 퍼졌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눈을 관통하고, 귀와 잎으로 흘러내려 척추까지 스며든다. 최대한 고통을 견뎌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손가락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겪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은 얼굴과 손 끝에서만 멈추지 않고 가슴을 타고 내려와 상반신 전체를 휘감았다.
그러한 고통을 겪고 나면 반사적으로라도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귀찮고 반발심이 들더라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너의 이름은 뭐지?+
난 여기서 죽는 걸까?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이는 죄책감보다 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만져서 느끼는 것, 특히 자신의 몸을 만져서 확인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지금, 그는 모든 것을 추측에 의지해야 했다.
다행히 살이 늘어지거나, 상처나 흉터가 있거나, 주름이 생긴 흔적은 없는 것 같았다. 허나 그들이 주입하는 영양분이 시원찮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무섭도록 말라있었다. 자기 자신이 몇 살이나 먹은 건지 모르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모르거나 과거에 지은 죄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보다 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다시 물은 것인가? 내가 대답을 안 했던가? 남자가 궁금해 하던 찰나, 고통이 엄습했다. 뇌와 연결된 시신경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고통 때문인지 갑자기 입에 엄청난 양의 침이 고여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답을 하지 않으면 날 죽이려나? 그는 사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어둠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 안식을 갖기엔 그들이 가하는 고통이 너무도 컸다. 그는 언제나 얼마 못 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굴복했다.
+네 이름이 무어냐?+
그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위를 쳐다보았다. 엄습하기 시작한 고통은 손끝을 타고 턱 밑까지 다다랐다. 마치 불타는 집게로 꼬집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땀에 젖은 입술이 열리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줄줄 흐르고 있는 눈물이 왠지 반갑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미쳐버린 자신이 머릿속에서 벌어진 망상 아니었을까?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고통과 오랜만에 쓴 안면 근육으로 인해 턱이 아파왔다. 이 상황이 결코 유쾌할 리 없었으나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심으로 웃음이 나왔다. 대체 그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분명히 악독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 끌려오기 전 그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을까? 저들이 알아야 할 뭔가를 내가 알고 있을 수도 있지. 만약 그렇다면, 저들은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그의 시야처럼, 모든 것이 암흑 속에 파묻혔다.
그리고 그 상황의 그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했다. 이번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내 이름? 큭큭, 내 이름은 말야."
그는 마치 장난기 넘치는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그러자 고통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그의 몸을 두들겼다. 마치 혀를 뜨겁게 달군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헛구역질을 했으나 미소를 지우지는 않았다. 그만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면, 진작에 내뱉어버렸을 터이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나도 모르지."
그러자 고통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다시 한번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나는 몰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 앉았다. 웃음은 그때 가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내 이름은 네가 바라는 그대로지. 여기서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그 무언가가 곧 내 이름이야."
그러가 고통이 사라졌다. 끈질기게 이름을 묻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이제 이 차가운 방에는 눈이 멀어버린 한 사내만이 남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시험을 통과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저거 질문하는 애도 그나 멤버일텐데 끈질기네.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