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손은 서늘한 비단 침구 위를 조금씩,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금씩 미끄러져 지나가 손에 익은 상아 손잡이를 붙들었다. 무언가 기계적인 소리가, 단조롭게 웅웅거리는 노랫소리가 방 안의 그림자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무기를 뽑지 마라.” 살인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사람들은 네가 현명한 여자라고들 하더군, 주 장관. 피차 헛수고는 피했으면 하는데.”


 장관은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장관은 권총을 붙든 손아귀를 풀지는 않았다. 밤중에 갑작스레 흘러나온 땀에, 그녀의 손은 마치 풀로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 자가 이곳에 있는 거지? 호위병들은? 궁전 하나를 가득 메울 만한 병사들이 저 밑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있을 텐데. 그녀의 정적들이 감히 매수하지 못할 만한 봉급까지 그들에게 쥐어줬건만, 그 병사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가족들은?


 신들의 저주를 받을, 망할 놈의 경보 장치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일어나라, 장관.”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리만치 낮고도 낭랑하게 울렸고, 인간다운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만일 조각상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목소리가 바로 이 암살자의 목소리와 같으리라. “내가 여기에 있는 순간부터 네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바꿀 순 없다.”


 장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총을 쥔 손아귀에서는 조금도 힘을 풀지 않고 있었다. “들어보게.” 장관은 어둠 속에 서있는 황금빛 형체를 향해 말했다.


 “협상 시도 역시 헛수고이긴 마찬가지다.” 살인자가 단언하였다.


 “하지만─”


 “목숨 구걸도.”


 그 말에 장관의 마음 속에서 불똥이 튀겼다. 장관은 분노로 용기가 타오르면서, 자신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난 목숨 구걸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장관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사과를 해야겠군.” 어둠 속 형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호위병들은 어떻게 한 거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코자 주-Koja Zu.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너 혼자 죽을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저항하던지 둘 중 하나다. 후자를 택한다면 난 이 궁전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여버린 뒤에야 이곳을 떠나겠지.”


 내 아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피처럼 뜨겁고도 잔혹하게.


 “내 아들은?” 주는 참지 못하고 그 한 마디를 큰 소리로 내뱉었다.


 “그 아이는 황제 폐하를 섬길 나이가 되었다.”
 
 코자 주의 손이 권총을 꽉 그러쥐며 부르르 떨렸다.


 “안 돼.” 주가 말했다. 입 밖에서 튀어나온 떨리는 목소리에 코자 주는 스스로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그 아이는 이제 네 살 밖에는 되지 않았단 말이야. 제발, 안 돼. 군단만큼은!”


 “그 아이는 군단에 복무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군단에 들어갈 이들은 따로 있다, 장관.”


 피가 싸늘하게 식어내리는 와중에도, 주의 두 눈은 떨림을 멎어가고 있었다. 여명이 오기 전의 흐릿한 빛 속에서 주는 암살자가 입고 있는 빛나는 갑주의 가장자리를 볼 수 있었다. 윤이 나는 갑주의 가장자리는 여러 겹으로 되어 있었고, 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금빛 판갑들로 이루어진 갑주는 나지막하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기계적으로 울리던 소리의 근원지였다. 암살자의 손에는 기다란 창이 그녀를 향해 낮게 겨누어진 채 들려 있었다. 사람 팔뚝 만한 길이의 창날 위에는 볼터를 매단 큼직한 총좌가 달려 있었고, 총좌는 철사 세공으로 한 층 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주는 그 모습에는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살인자가 투구를 쓰지 않은 채, 한때 인간의 것이었던 맨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고 서있다는 것이었다.


 “당신네 족속들을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 주가 말했다. “당신들에게도 얼굴이 있는지는 몰랐어.”


 “이젠 그렇다는 것을 알았겠군.”

 코자 주는 암살자가 고개를 미세하게 까딱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암살자가 입은 황금 갑옷의 목가리개 부분으로부터 값을 매길 수 없이 귀중한 기계장치들이 속삭이듯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우뚝 서있는 암살자의 거구는 그의 주인이 그 야수의 지능과 육체를 강화시키기 위해 시행한 모종의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그 비율이 늘어나 있었지만, 그 유전자 조작 기술조차도 그 사내의 근본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는 한때 인간이었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거칠어진 피부와 전투로 인한 흉터들 밑에는 알비아*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역주: 현재의 북대서양 지역. 바다가 말라 육지가 되었다. 데스 가드 군단의 전신이 되는 더스크 레이더 군단의 초기 모병지역이기도 함. 가로의 고향도 이곳.) 


 “최소한 날 죽이는 자의 이름이 뭔지는 들을 수 있겠나?”

 남자는 망설였다. 주는 자신이 그 사내를 예상치 못했던 질문으로 당황케 하였다고, 감히 그렇게 믿고자 하였다. 그러나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내 이름은 콘스탄틴 발도르이다.”


 “콘스탄틴.” 주는 조용히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녀는 고대 지구의 신화에 대해 폭 넓게 다루었던 적이 있었고, 종종 그녀는 연설에서 옛 설화들이나 전설들을 인용하곤 하였었다. 모두 그녀를 섬겨왔던, 재물도 희망도 없는 하찮은 군중들을 고무시키기 위한 좋았던 시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제 주는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아들이 납치되어 유전자 조작이라는 고문을 받게 될 운명이라는 것도, 자신이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이제 그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주는 눈을 크게 벌리고 모든 이빨을 활짝 드러낸 채, 미친 여자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대의 왕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죽게 되었군.”


 “그런 것 같군.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반드시 황제 폐하께 전해드리도록 하지.”

 코자 주는 입술을 말아 올렸다. “황제라. 난 그 직함이 정말 싫어.”


 “폐하께서는 이 세계의 지배자이시며, 우리 종족의 주인이시다. 그 외에 그 어느 직함이 그분께 더 적합할 수 있을까.”


 주는 미소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추하고 반항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녀의 이빨들은 밖으로 훤히 드러나 보였다. “당신은 자기가 대체 어떤 괴물을 섬기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


 “물론.” 검은 눈동자는 계속해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해본 적이 있나?”


 “인류의 주인이라.” 주 장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분이 마치 불길처럼 거칠게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자는 인간도 아니야.”


 “주 장관.” 금빛 전사가 경고조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그 목소리에 담긴 경고를 눈치 채지 못했다.


 “ 그 자가 숨은 쉬던가?” 주가 거칠게 물었다. “말해보게, 커스토디안. 그 자가 숨을 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나? 그 자는 암흑기로부터 남겨진 유물이야. 상자에서 뛰쳐 나와서는, 광포하게 날뛰는 유물.”

 발도르는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발도르가 눈을 깜빡이는 것을 주가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 지극히 미세한 인간적 행동은 주를 불안케 하였다. 그 모습은 주에게는 거짓된 것처럼만 보였다. 조각상 같은 발도르의 모습 속에서, 그렇게 인간적인 행동이 자리잡을 곳은 없을 것만 같았다.

 “테라는.” 발도르가 말했다. “갈증에 허덕이는 행성이지.”


 그제서야 주는 깨달았다. 그 한 마디로 그녀는 자신이 저질러온 수많은 죄목들 중 무엇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것도, 자신이 그것 때문에 죽게 될 것이라고는 가장 생각지 않았던 바로 그 죄목으로 인해 자신은 죽게 되는 것이었다.


 원치 않는 메스꺼운 웃음이 그녀의 목구멍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아,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노예 자식 같으니.” 주가 말했다. 얼굴 위로 소름 끼치는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른 행성들도 테라와 마찬가지로 갈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황금빛 살인자의 눈동자는 비인간적인 평온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동자 뒤편에서 일렁이고 있는 생생한 지성으로 인해, 그 평온한 눈빛은 한층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행성들 중 그 어느 행성도 인류의 요람이라는, 전쟁과 방사능으로 얼룩진 영예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 이 행성은 대성전의 박동하는 심장이다, 장관. 너는 얼마나 많은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이곳, 인류의 첫 고향으로 그 느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지 아는가?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선조들의 지구를 자신들의 두 눈으로 보기를 원하는지 아는가? 옛 밤의 장막이 걷어 올려진 지금,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흠 많고 쇠약한 자신들의 행성을 떠나고 있는지 아는가? 어떤 이들은 이 수도성의 미개척지가 우리 신생 제국의 가장 귀중한 상품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 그렇지 않은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원이 있으니까.

 발도르가 말을 이어나가는 동안, 주는 천천히, 그리고 침착히 숨을 쉬며 오토피스톨을 쥔 손을 더욱 꽉 그러쥐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중의 무기를 한 번 겨누어볼 희망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생존 본능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본능은 그녀에게 살기 위해 싸우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내가 한 일은.” 주가 말했다. “내 국민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국민들을 위해 해온 일로 인해 죽게 되겠지.” 발도르는 일말의 악의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하나 때문에 말인가?”


 “그것 하나 때문에. 네가 저지른 또 다른 반역행위들은 내 주인께서 보시기에는 그저 의미 없는 행동들일 뿐이었다. 네가 정화라는 명목으로 학살을 저지른 것도. 네가 금지된 인육을 거래하고 있던 것도. 네가 제르마니* 스텝 평원 지하의 벙커들에 유전자 조작된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격리시켜둔 것도. 네 반역 음모는 제국의 평화-Pax Imperialis에 있어 단 한 번도 위협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네가 저지른 변절의 죄는 그저 아무것도 아닐 뿐이었다. 네가 죽는 것은, 너의 수확용 기계들이 테라의 마지막 바다-Last Ocean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주: 현재의 독일, 중유럽 지방.)

 “을 훔친 죄로 말이냐?” 주는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리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억눌린 웃음은 빠져나올 곳을 찾으며 그녀의 혈관 속을 기어 다녔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물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네가 이 상황을 이해하였다니 기쁘군, 주 장관.” 발도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기울였다. 그 기이한 인사에 기계-근육들이 다시 한 번 웅웅거리는 미세한 소리를 내었다. “잘 가라.”


 “잠깐. 내 아들은 어떻게 됐지? 그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이는 은으로 무장하고 금으로 갑주를 입을 것이며, 가장 무거운 요구의 무게로 짐 지워질 것이다.”

 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피부 위로 무언가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는 살 수 있겠나?”


 황금 조각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 아이가 강하다면.”


 그 순간, 주의 떨림은 멈추었다. 공포는 사라졌고, 오직 헐거벗은 저항심만이 안도와 희망 가운데 어딘가에 남겨졌다. 주는 눈을 감았다.


 “그럼 그 아이는 살겠군.” 주가 말했다.


 그리고 뇌리를 울릴 만큼 커다란 총성이 으르렁거리며 울렸다. 주는 천둥 같은 총성 속에서 무너지며,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허우적거렸다. 압력과 열기가 느껴지고, 그 다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잿빛, 잿빛, 오직 잿빛뿐이었다. 그리고 자비롭게도, 무(無)가 찾아왔다.


 최소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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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에 마지막 남아 있는 바다를 빨아들여 없애고 있었으면 암살당해도 인정이지.


p.s. 이번 작품부터 역주를 다는 방식을 좀 바꿔봤음. 애초에 내가 역주 다는 일이 그렇게 없긴 한데, 앞으로 역주 달 일이 생기면 저런 식으로 다는 편이 좀 더 보기 편할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