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레이츠 소설에서 강조되는 요소 중 하나가 카오스 신들과의 거래로 황제가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점임. 여러 단편이나 장편에서 대성전 이전에 말카도르나 발도르, 황제가 간간히 등장할 때면 황제가 얼핏얼핏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거기에 반드시 훗날 잃게 될 인간성이라는 서술을 덧붙임.


자가타이 소설에서는 말카도르가 칸을 꾸짖을 때 니네 애비가 그런 힘을 얻고도 그나마 지금의 면모를 유지하는 게 다행이라고 말함. 러스와 발도르의 창을 다루는 단편에서는 아직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있던 시절의 황제가 창을 만들며 말카도르와 농을 주고 받음. 발도르 소설에서는 황제 본인도 카오스 신들을 상대로 친 사기 때문에 자기가 곧 인간성을 거의 다 상실하고 이성의 괴물이 될 거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서문부터 보여줌.


황가놈의 패인 중 하나가 이런 인간성의 상실인데, 인간의 감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카오스 신들은 인간의 모든 욕구와 갈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프라이마크와 마린들을 손쉽게 조종하고 헤러시를 유발할 수 있었지만 황제는 인간성을 대부분 잃은 탓에 제국 내의 여러 문제와 각 프라이마크들이 끌어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이걸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음.


역설적이지만 카오스에게서 해방되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이성의 화신이 된 황가놈은 헤러시에서 패배했고, 그 어떤 존재보다 인간적인 카오스 신들은 승리함. 인간성을 잃은 황가놈은 빅 픽쳐를 그릴 수 있게 됐지만, 빅 픽쳐만 보이게 돼서 자기 발밑을 무너트릴 세세한 것들을 전부 놓치게 된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