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아나테마의 딸들]
[오직 죽음으로만 의무는 끝이 난다]
[해가 뜨다]
아칸 랜드는 제폰이 마지막 총탄을 쏘아낸 뒤, 재장전을 위해 몸을 숙여 전차 안쪽의 어둠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텅 빈 탄창이 바닥에 떨어지며 철컹거리고, 그와 동시에 제폰은 새 탄창을 탄창구에 거칠게 꽂아 넣었다. 전차 천장의 둥근 문 밖으로 다시 벌떡 일어선 블러드 엔젤 군단원은, 몸에 힘을 주고 다시 한 번 사격을 가하였다.
자신의 전차를 천천히 호선을 그리듯 모는 기술고고학자의 얼굴은 화면 속에서 상하로 움직이는 데이터들의 빛 속에서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볼카이트 캐논들이 불규칙적인 불협화음을 이루며 끼긱대었다. 전차 차체를 이루는 축성된 세라마이트 보강판들 위로 소화기(小火器)들이 쏘아내는 총탄들이 빗방울 떨어지듯 우수수 부딪히고, 고밀도 장갑판에 가로막힌 총성은 둔탁하게 쿵쿵대는 소리로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그라브-레이더의 차체 안쪽에서 살이 타는 악취가 풍겼다.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침묵의 자매들과 커스토디안들이 차내의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랜드는 차내의 부상자들 중 여럿은 이미 죽어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제폰이 다시 전차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천장의 지붕을 쿵 닫아 잠갔다. “탄약이 떨어졌소.” 제폰이 말했다. 그의 두 눈은 랜드가 거의 정확히 예측하였 듯 전투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화성인인 그는 감사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그런 원시적인 감정이었다.
블러드 엔젤 군단원, 제폰은 자신의 볼터를 엉덩이께로 내리고는 엄지로 자기(磁氣) 잠금 장치를 작동시켜 갑옷 위로 고정시켰다. 제폰은 부상당한 자매들 중 한 명의 곁에 웅크려 앉았다. 가슴 위에 잘린 팔을 움켜쥐고 있는 자매였다. 그녀의 몸 아래로 흐르고 있는 피 웅덩이만 무시한다면, 잘려나간 왼팔은 그녀가 입은 부상들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가벼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자매는, 전투 중에 어딘가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 보였다. 아마 내장이 검에 관통상을 입은 것이겠지. 랜드는 생각했다. 죽기에는 참 딱한 방식이로구먼. 테라의 석기 시대에 살던 원시인이나 맞이할 만한 죽음이 아닌가?
랜드는 저 여전사들에게 혐오감을 느꼈지만, 그 이유만은 도저히 스스로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 분명 침묵의 자매들은 은밀한 이들이었지만, 그것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만한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랜드는 살갗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매들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혹은 옴니시아께서 제발 그런 일만은 없게 해주시기를 바라지만, 그녀들 중 한 명과 우연히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아칸의 분노와 증오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하였다.
랜드는 적들을 바라보는 데에는 침묵의 자매들 이상으로 더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서비터가 부착된 레이더 전차의 자동화 볼카이트 포대만으로도 외부의 위협에 반응하기에는 충분했다. 저번에 마지막으로 그가 차창 밖으로 적들의 무리를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때, 아칸은 몇 분 동안은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그 어느 행성의 어느 외계인들도, 자신들의 육신에 난 잔혹한 상처를 도외시한 채 칼을 들고 돌아다니는 저 외눈박이 시체들과 같은 방식으로 거닐지는 않았다. 외눈박이 시체들은 대부분 뿔이 나 있었으며, 무덤에서 태어난 듯한 그 모습은 마치 죽은 제국인들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퉁퉁하게 부풀어 오른 그것들의 몸에서는 부서진 황금빛 갑옷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폰은 부상당한 자매가 자신의 부상을 붕대로 감는 것을 도와주었다. 제폰의 금속 의수는 꿈틀거리며 경련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경련은 그의 노력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랜드는 자신이 해준 변변찮은 치료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또 허술하게 처치를 한 탓이었다. 랜드는 제폰의 의수를 원래 그랬듯이 그의 목 뒤로 고정시킨 뒤, 파워 아머 아래에 있는 그의 살에 드릴을 박아 조악하게 고정시켜 두었다. 팔뚝 위의 오십 곳들에 연결시키기 위해 세라마이트 갑옷 위로 이어놓은 케이블과 와이어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랜드는 오르도 레둑토르의 사이보그들에 발생하는 통증-경련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생체 전류 조절 장치를 사용하였다. 살해당한 탈락스 사이보그의 늑골 보호대에서 뜯어낸 것이었다. 해당 장치는 탈락스 사이보그들의 로봇 몸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련의 징후가 외부에 보이도록 드러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곤 하였다. 이 장치의 용도를 반전시키고 그 감도를 증폭시키는 것은, 천재인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러한 활용 방법은 많은 행성들에서 부유층이 자신들의 근육 손상과 마비증을 고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의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랜드는 자신이 집도한 전장에서의 응급 처치에 조금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가 해준 치료는 허술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블러드 엔젤 군단의 전사는 살인적이리만치 정확한 실력으로 볼터를 사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이건 뭐 언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로구먼.” 랜드는 한 손을 귀에 낀 이어폰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놈들의 소리는 그만 들으시오.” 제폰이 말했다.
랜드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매섭도록 퀭해진 눈초리를 돌려 보내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옷과 몸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랜드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아 축이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랜드는 레이더 전차를 미끄러지듯 회전시켰고, 차체의 반중력 플레이트들은 그로 인한 압박으로 삐걱였다. 호송 행렬의 최후미를 스캔하여 보니, 손상을 입은 차량들이 굽이치는 황금빛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관문 이쪽 편에서는 기계교의 독창성이 번뜩이는 금속 층들 속으로 훌륭하게 접합되어 있어, 본디 이 영역을 이루고 있던 꺼림칙한 고대의 예술적 기교를 뒤덮고 있었다. 통로의 아치는 상아를 닮은 모종의 물질을 깎아 만든 것이었고, 그 위에는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적힌 은빛 룬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무한궤도 달린 수송차 한 대가 안개 속으로 굴러 들어가는 모습을 랜드가 보고 있는 동안, 세 대의 스키머 차량들이 침묵의 자매들의 카드레들을 싣고 안개 속에서 빠져 나왔다. 후방 병력을 증원할 시간이 있다면, 분명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리라.
레이더 전차는 전진하는 다른 전차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파고든 뒤, 방향을 돌려 격전을 일고 있는 피아의 두 전열을 향해 되돌아갔다. 황금 갑주를 입은 남전사들은 창을 휘두르며, 사슬 갑옷을 입고 검을 휘두르는 여전사들과 지칠 대로 지친 조화를 이루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그들은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커스토디안이나 침묵의 자매들이 쓰러질 때마다, 빠르게 소모되어 가는 제국의 전선에 또다른 구멍들이 생겨났다. 볼카이트 포대가 끼긱 대는 포성을 발할 때마다 랜드의 레이더 전차가 흔들렸다. 적들의 무리 후방에 떨어져 있던 워프 생명체들과 군단병들이 볼카이트 광선에 불타오르고, 그 불꽃은 가까이에 있던 그들의 형제들에게로 퍼져나갔다.
제폰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승조원용 사다리를 올라갔다. 제폰의 체중에 사다리의 단들이 삐걱이고, 제폰은 둥근 지붕을 열어 전장을 내다보았다.
“천사의 피시여!”
“아, 이번엔 또 뭐요?!” 랜드가 거칠게 물었다.
“대수도원장이오. 대수도원장이 여기에 있소.”
“그럴 리가. 대수도원장이 죽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할 터인데.”
<때가 되었다.> 대수도원장이 성가 신호를 보내었다. 그리고 랜드는 그녀가 저지른 반역 행위에 불신으로 침묵하며 비탄하였다. 랜드는 대수도원장의 변절을 따르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결코 옴니시아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으리라.
“정말 여기에 있단 말이오!” 제폰이 재차 말했다. 제폰은 대수도원장에게 요란하게 제압 사격을 가하며, 붉은 조명이 드리운 승조원 구역에 있는 자신의 체인소드로 손을 뻗었다.
랜드는 자리에서 몸을 돌려 전차의 전망경으로 다가갔다. 따끔거리는 눈가를 훔치기 위해 소매로 얼굴을 문지른 뒤, 전망경의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그의 눈에 후퇴하는 침묵의 자매들의 분대를 향해 번쩍이는 다크파이어 에너지 광선을 쏘아내고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자매들의 분대를 휩쓸 듯 호선을 그리고 휘둘러진 광선은 자매들을 원자 단위로 분해시켜버렸다. 그것의 장갑판에 부딪힌 커스토디안들의 창이 부러지고, 깜빡이는 방어막에 라스캐논의 광선은 옆쪽으로 왜곡되어 튕겨나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것은.” 랜드가 말했다. “대수도원장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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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람 세빅은 자신의 기사의 이름을 재로부터 일어난 독수리, 아퀼라 프롬 디 애쉬스-Auila from the Ashes라고 이름 지었다. 아퀼라의 경사진 장갑판은 데브람 자신이 손을 보았고, 비리디온 가문의 문장 역시 그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도색하였다. 그는 성스러운 예술가-병기공들과 성구관리인들의 비길 데 없이 뛰어난 기사 갑주 정비 능력에 경외심을 품고 있었고, 그런 만큼 데브람에게는 자신의 갑주 여기 저기에 개인적인 장식들을 추가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러한 취향의 결과로, 아퀼라의 경사진 장갑판 위에 달린 제국의 독수리 문양은 대부분의 다른 기사들이 획일적으로 새기고는 하는 스텐실 양식을 뛰어넘어, 좀 더 멋드러진 방식으로 도색이 되어 있었다. 타오르는 날개를 펴고 검은 재로 뒤덮인 땅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와, 그 뒤로 휘날리는 깃털들을 그린, 그런 모습의 문장이었다.
“교전 개시!” 데브람이 자야와 동료 자제들, 그리고 아직까지 숨을 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로 복스 신호를 보내었다.
아퀼라 프롬 디 애쉬스는 전력으로 돌진하여 대수도원장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기사의 숄더 태클에 굉음이 울리고, 삐걱이며 뒤틀리는 금속 장갑판이 합창하듯 끼긱거렸다. 아퀼라와 대수도원장은 한 데 뒤얽힌 채로 서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기계-육신이 공업용 피스톤-근육과 힘을 겨루고, 금속이 맞대어지며 장갑판에 긁힌 자국들이 생기고 불똥이 튀었다. 아퀼라 프롬 디 애쉬스는 본래 대수도원장의 기체보다 더 크고 무거웠지만, 지금의 대수도원장은 모독적이리만치 변화하여 있었다. 제조 장관의 비전의 결실과, 그것에 빙의한 악마의 힘은 하나 되어 자신보다 거대한 아퀼라의 기체를 밀쳐내었고, 갈퀴 발톱이 달린 대수도원장의 발은 밀려난 아퀼라를 추격하며 웹웨이의 지면을 이루고 있는 이름 없는 물질을 할퀴었다.
데브람의 조종실로 경보와 경고의 룬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무릎 주위에서 워프 생명체들이 기사의 균형 안정 장치를 베어대자, 데브람은 그가 탄 기사 갑주의 자세가 휘청이는 것을 느꼈다. 긴장된 시선으로 상체-피드 화면을 바라보니, 커스토디안들과 침묵의 자매들이 그에게로 다가오기 위해 길을 뚫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들썩이며 들끓고 있는 육체의 바다를 뚫으려 하고 있는, 그저 필멸의 칼날들에 불과했다.
이 전투는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이 업적을 통해, 데브람은 자신의 방패에,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무덤에라도 그 업적을 기록할 수 있으리라.
아직 4초 정도는 사격을 가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Enough left for a four-second burst). 데브람은 다리 주변의 짐승들에게 마지막 사격을 가하기를 포기하고 억지로 포완(砲腕)을 들어 올린 뒤, 개틀링 캐논을 대수도원장의 표정 없는 곡선형 얼굴에 들이밀었다. 개틀링 캐논의 포신이 회전하기 시작하고, 회전하고 또 회전하며─
무릎이 휘청이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기사가 쓰러지면서 포탄을 발사할 마지막 4초가 허공으로 날아가고, 쏘아낸 포탄은 쏜살같이 위쪽으로 호선을 그리며 황금빛 안개 속으로 허무하게 날아갔다. 픽트-피드 화면은 꺼졌지만, 데브람은 뱃속이 요동치며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감각을 통해 그의 기사가 옆으로 쓰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조 요람으로부터 충격 방지 젤이 분사되며 그가 받을 충격을 완화시켜주려 했지만, 분사 장치의 정비가 온전치 못했던 탓에 투구를 쓴 데브람의 머리는 조종실 벽에 세게 부딪혔다. 벽인지, 그가 쓰고 있는 투구인지는 몰라도,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이저가 어두워지며 입력되는 모든 정보들을 거부하였다. 입 안에서 뜨겁고 축축한 감각이 느껴지는 채로 시야까지 가리워진 데브람은 투구를 벗으려 애를 썼다. 주변 사방의 금속들은 비틀리고 구부러지고 뜯어져 있었고, 투구의 잠금 장치 주변을 더듬더듬 할퀴어대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점점 비좁아져 가는 금속의 압박은 계속해서 더해져 갔다. 처음에는 그저 몸을 조종석에 밀어 넣는 정도였던 압박은 점차 그의 몸을 짓뭉개 갔고, 무릎이, 어깨가, 그 다음에는 엉덩이와 팔뚝, 그리고 갈빗대까지 악의가 어린 것처럼 천천하게 짓뭉개져 갔다. 대수도원장의 강철 군홧발이 가하는 압력 아래 압축되어 가며 데브람은 비명을 질렀다. 데브람의 비명소리는, 그의 목과 턱이 뚝 하고 부러지는 축축한 소리가 난 뒤에야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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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하게 일그러진 거대한 기체를 짓밟고 선 생명체는, 세빅이 손수 도색한 경사진 방패를 별 생각 없이 짓밟아 으스러트렸다. 이제 생명체는 아나테마의 딸들을 추격하였고, 그 외의 다른 적들은 그것에게 있어 그저 시선을 조금 분산시킬 뿐에 불과하였다.
보다 약한 합창들 가운데 속한 보다 하등한 동족들은, 자신들을 학살해대고 있는 인간 여자들도 감지하지 못한 채로 무턱대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형편 없어 동족들의 대열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개체들은, 아나테마의 딸들이 내리치는 칼날이 닿기도 전에 이미 녹아 내리고 있었다.
최초의 살인에서 태어난 악마는 그들처럼 멍청하지 않았다. 악마가 적들을 죽이는 데에 있어 적들을 감지하거나 볼 필요는 없었다. 악마는 전투 중인 수백의 다른 몸들로부터 흘러 나오는 굶주림의 감각들이 이루는 집합을 그러모으며, 자신의 동족들이 소멸하는 것을 감지하였다. 보다 하등한 동족들의 힘이 빨려 나가는 곳. 그들의 몸이 피처럼 힘을 흘리는 곳을 향해 악마는 총구를 겨누었다. 영혼 없는 자매들의 기척이 자신들에게는 감추어지는 것을 이용해, 악마는 자신의 지각에 발생한 공백들을 추적하였다. 동족들이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당하고 있는 곳을 향해 고체 탄환이나, 어두운 에너지의 화살들을 물밀 듯 쏘아 부었다.
고대의 장인들에 의해 정성스레 주조되고 아칸 랜드에 의해 재발견된 병기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며, 전투 중인 침묵의 자매들을 살인적인 정확도로 씹어 부수었다. 폭발성 탄환들로 휩쓸고, 에너지 광선들로 찢어 부수고, 또 악마가 빼앗은 금속 몸뚱이를 꿰뚫으려 했던 어느 한 자매는 발로 짓밟아 부수기도 하였다.
악마는 숨을 내쉬 듯 어둠을 내쉬며, 그것의 아가리 주변에 일렁이는 황금빛 안개를 자신의 숨결로 더럽혔다. 혀가 스르륵 입 밖으로 길쭉이 빠져나와, 안개 속에서 덜렁거렸다. 악마는 자신의 본성을 충족하는 것 외의 방법으로는 쾌감을 얻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여기에서 그것은 만족감을 느꼈다. 살인적 에너지를 토하는 필멸자들의 병기로 인간 여자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나면, 그녀들이 발하는 공허감은 훨씬 더 제거하기 쉬워졌다.
악마는 전쟁에서 태어난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나테마의 딸들이 죽을 때마다 악마의 지각을 괴롭게 하는 압박감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녀들의 파열된 시체가 쌓여갈 때마다, 워프의 노래 소리는 다시 커져 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하나 하나 쓰러질 때마다, 악마의 하등한 동족들은 다시 일어나 전보다 더 격렬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부유하는 전쟁 병기들이 악마를 향해 분노를 토하고, 악마가 빼앗은 몸의 일부가 날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가한 심판으로도 악마를 늦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미 굳어진 피와 새롭게 묻은 피가 악마의 장갑판을 칠했다. 악마가 빙의한 거구의 육신 주변을 둘러싼 안개는, 이 영역에 도달한 이후로 자신들의 몸에서 뽑혀져 나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영혼들로 부패하여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육신-기계는 성장하며 그 크기를 더하였고, 떨리는 포드들은 태아낭이 되어 하급 악마들을 빠르게 잉태하였다. 근육과 정맥이 생겨난 금속 촉수들은 날뛰며 전차들의 속으로 파고들어, 그 속에 있을 필멸자들을 탐하였다. 등에 매달린 포대들은 전열의 일개 구획을 완전히 말소시키며 악마를 배불렸지만, 악마는 주변의 전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악마는 오직 자신이 아나테마의 딸들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저지하려 할 경우에만 황금빛 존재들과 전쟁 병기들을 도살하곤 하였다.
워프의 노래가 점점 커지며 위협적 크레센도를 이루는 가운데, 최초의 살인에서 태어난 악마는 방어자들의 절박함이 역겨운 분노로 물들어 감을 느꼈다. 악마는 자신의 감각을 넓게 펼쳐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안 즉시, 악마는 포효를 내질렀다. 악마의 포효는 반절은 누스피어 네트워크를 통해, 그리고 또 일부는 웝웨이의 상대적 현실을 통해 울려 퍼졌다. 아나테마가 침묵하고 불구가 되어 옥좌에 묶인 채, 자신의 감지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 지칠 대로 지친 방어자들이, 바로 악마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장애물들이었다.
죽어 있는 황금빛 존재들 가운데 둘이 악마의 금속 껍데기를 향해 다가와,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며 악마의 장갑판-피부에서 더 많은 조각들을 뜯어 내었다. 악마는 촉수들을 휘둘러 그들 중 하나를 후려쳐 날려버렸다. 날아간 황금빛 존재는 악마의 동족들의 대열 사이로 떨어졌고, 곧 그 껍데기가 뜯겨져 안쪽의 육신을 포식당했다.
악마는 두 번째 황금빛 존재를 촉수로 휘감아 들어 올렸다. 익숙한 영혼의 내음이 풍겼다. 악마는 이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제국의 종말!” 악마는 복스 신호로, 육성(肉聲)으로, 그리고 성가 신호로 외쳤다. “제국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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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가 목 뒤쪽에서부터 소리를 내었다. 별로 자랑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 랜드는 자신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것을 삼켜버려야만 했다. 변모해버린 대수도원장 앞에 커스토디안들조차도 퇴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겨우 심장 몇 번 뛸 시간 만에 세빅을 쓰러트렸다. 랜드가 눈 한 번 깜빡이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만인대의 드레드노트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드레드노트 한 대를 촉수로 휘감아 들어 올리고는….
“옴니시아의 이름으로, 대체 그 체인소드 한 자루로 저걸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게요?!”
“별 도움은 안 되겠지.” 제폰이 대답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대수도원장을 향해 볼터를 쏘아대고 있었다. “전차를 놈에게로 더 가까이 모시오.”
아칸은 제폰의 말에 따라 레이더 전차를 몰았다. 그의 두 눈은 시야 피드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르쿠스 남작.” 제폰이 복스에 대고 외쳤다. “귀공의 지원이 필요하오.”
제폰은 전차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1초 뒤, 블러드 엔젤 군단원의 점프 팩 추진기가 점화되는 소리가 랜드의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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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타루스는 익사해가고 있었다. 아니면 질식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둘 중 어느 쪽이 맞는 표현인지, 사기타루스는 알지 못했다. 그는 관 속에 가득 찬 양수 속에서 숨을 쉬려 애를 쓰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구리 냄새 비슷한 피의 냄새와 톡 쏘는 기름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사기타루스는 자신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관 속에 남아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의 육신의 일부는 생명 유지 석관 안에서 흔들리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었다. 양수 안에서 첨벙거리고 있는 그의 몸은 더 이상 그 안에 잠겨 있지 않았다.
누수되고 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지각의 빛 속에서 그 생각이 최우선적으로 떠올랐다. 장애. 고통. 누수.
사기타루스는 앞쪽을 바라보며 양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두 손은 그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 이 괴물의 촉수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의 무장들은 수 시간에 걸친 전투 속에서 탄약이 바닥난 채 덜컹거리고만 있었다. 이미 오랫동안 경고가 표시되고 있는 동체의 뼈대가 여전히 부서지지 않고 한 데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저 순전히 운이 좋았던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타루스는 대수도원장을 향해 돌진하였다. 탄약도 떨어지고, 피를 흘리고,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사기타루스는 죽은 기사를 밟고 넘어가며 돌진하였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대수도원장의 포대는 지금도 붕괴 중인 제국의 전선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오직 죽음으로만 의무는 끝이 나리니.
단 일격만이 그가 날릴 수 있는 전부였다. 사기타루스의 주먹이 가한 통렬한 일격은 대수도원장의 가슴에서 장갑판을 뜯어내고 피하 융제용(融劑用)* 보조층을 드러내었다. 그런 뒤, 사기타루스는 대수도원장의 탈을 쓴 괴물의 손에 붙잡혀 지면에서 들려 올려졌다.
(*역주: ablative. 전에도 한 번 역주로 설명했던, 우주선에서 열이 내부까지 침투하지 않도록 먼저 불타고 떨어져 나가도록 설계된 특수 재질 층.)
수치스럽게도, 오른팔이 뜯겨져 나가는 순간 사기타루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가 든 드레드노트 껍데기에 신경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훼손 부위에서 오는 시냅스 반발 현상은 너무도 생생한 고통을 주었다. 대수도원장은 여전히 불똥을 튀기고 있는 사기타루스의 팔을 붕 휘두르더니, 자신의 발치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악마들의 무리를 향해 그것을 내던져버렸다.
사기타루스의 몸이 더 높이 들려 올려지고, 온 세상이 요동쳤다. 삐걱이는 금속이 끼긱거리는 소리가 깜깜해진 관 속의 귓가에 울렸다. 사기타루스는 악마가 자신의 허벅지를 좀 전보다 더 단단히 붙잡으며 생기는 압력을 느꼈다. 그리고 갑작스레 다리가 뒤틀리더니, 관절에서부터 뽑혀져 나갔다. 또 한번 망령이나 다름 없는 육신을 통해 뇌신경으로 피드백이 돌아왔다. 고장을 일으킨 시스템들이 그에게 분노를 토했다. 텅 빈 병기들이 사격하라며 비명을 질러대었다.
터빈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핏빛 붉은색의 인영이 대수도원장의 어깨에 충돌하였다. 블러드 엔젤 군단원, 제폰이 체인소드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힘껏 내리찍었고, 체인소드의 칼날은 육신과 기계가 불경한 융합을 이룬 촉수의 관절 부분을 베었다. 검이 올라갔다 다시 떨어져 내리며, 피로 물든 금속 조각들을 뜯어 내었다. 살점과 두꺼운 장갑판에 회전하는 사슬 트랙이 망가지면서 체인소드의 톱날이 부러져 나갔다.
대수도원장은 몸을 빙글 돌렸지만, 블러드 엔젤 군단원은 점프 팩의 가스 분사로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이 깎아낸 손상 부위에 다섯 번이나 깊게 공격을 가하였다. 제폰의 맹공으로 촉수가 망가지고, 촉수는 기름과 점액을 내뿜으며 축 처져 사기타루스를 근접 공격 범위 안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서로 맞부딪히고 있는 악마들과 전사들을 향해 사기타루스가 떨어져 내리기 전,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였던 광경은, 대수도원장의 왼팔이 블러드 엔젤 군단원의 상체를 쥐고 그를 불안정한 위치로부터 끌어당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기타루스는 마치 모래 거북이 뒤집힌 몸을 일으켜 세우 듯 품위 있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 손으로 지면을 할퀴며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오.] 사기타루스의 귀에 제폰이 외치는 복스 신호가 들려왔다. 블러드 엔젤 군단원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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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제폰은 짐승의 손아귀 안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을 움켜쥔 짐승의 팔뚝에 망가진 체인소드를 내리눌렀다.
삼.
운 좋게 손목 부분에 낸 상처에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케이블의 피복이 찢어져 누출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제폰은 대수도원장의 손아귀가 완전히 닫히기 전에 그것의 악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제폰은 점프 팩을 점화시켰고, 붉은 세라마이트 갑주가 대수도원장의 움켜쥔 손가락에 긁히며 자국이 생기긴 했지만 그의 몸은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허공에서 똑바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개 달린 존재들이라면 누구라도 질시할 만한 우아한 동작으로, 제폰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추진력을 이용해 제국군의 전선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일.
수류탄 띠가 대수도원장의 뒤통수에 자기(磁氣)-부착되고, 자석처럼 달라붙은 수류탄들은 일제히 폭발하며 전투 중인 두 전선 사이에 날카로운 파편들을 폭풍처럼 휘날렸다. 폭발의 근원지 인근에 있던 악마들이, 자신들의 포식자-군주에게 가해진 천벌에 울부짖었다. 굽은 등과 양쪽 어깨의 상당 부분이 날아간 대수도원장은 앞쪽으로 비틀거리며, 진짜 전쟁 병기라면 낼 수 없을 법한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질러대었다.
[교전 개시.] 자야의 목소리가 제폰의 헬멧 속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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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폰 팔 고쳐지자마자 겁나 잘 싸우네. 블엔 아니랄까봐 점프 팩 조종하는 솜씨 좀 보소.
19장까지 내내 장애인이라고 까이다가 힙스터 디오도 예상 못했을 대활약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간지가 철철 넘친다.
흑흑 기다렸읍니다
개추크레욭
지린다....
ㅋㅋㅋㅋ 적절한 짤 보소 / 제폰 싸라있네~
안돼 사기쨩... - dc App
커가그득한 소설에서 예상치못한 블엔뽕이...
하..어썰마가.. 블엔이 이렇게 개간지라니.. 이제부터 앶2 할때 어썰마 무조건 쓴다. 경험치고, 호구고 간에 무조건
[인게이지.] 키야 뽕이 치사량이다. 그나저나 커스토디안조차 가망없이 갈려나가는 전장 너무 끔찍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