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테라의 '제국 행정부 세금징수담당' 부서의 한쪽 벽면에는 '민원인에게 친절히!' 라는 말이 적혀 있음과 함께 그 아래로는 왜인지 모를 라스건이 놓여있었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행성 총독 대리인은 작은 한숨을 내쉰채 가장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세금 납부하러 왔습니다만"

"..."


하지만 상급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전자패드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을 뿐이었다.



"세금 내라면서요. 세금, 내가 지금 일개 제국민도 아니고 총독의 명을 받아 황제폐하를 위한 신성한 십일조를 내러 왔다 이거요."

"..."



그러자 상급자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반쯤 절제된 두뇌를 최대한 굴려 답을 생각해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세금 납부는 서보스컬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듣기는 1번을 눌러 다시 재생시켜주길..."



아뿔싸! 그는 상급자가 아니라 그냥 로브를 쓴 서비터였던 것이었다. 죄다 로브에 호흡기를 달고 있으니 알 수가 있나...

할 수 없이 그는 주변에 둥둥 떠 다니던 서보스컬을 손으로 잡아 주파수를 맞춘 후 복스를 통해 외쳤다.



" 세. 금. 납. 부. 저 멀리 행성에서 세금 납부하러왔소."


서보스컬은 불안정한 변조음을 다듬으며 신성한 목소리로 아날로그적 음성을 외쳤다.


"현재 대기번호 52,273번 입니다. 예상 소요시간은 9,582,733분 입니다. 계속 기다리시려면 1번을 눌러주세요."


처음에 총독이 자신을 친히 불러 홀리 테라에 세금 납부를 요청하였을 때 그것이 곧 높은 지위와 안정적인 총독의 뒷배를 담보하는 것 같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런 호화가 아닌 단순한 '유배'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기다리겠소...."








...











159,712시간이 지나 마침내 껴앉고 있던 서보스컬이 복스에 무언가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행성등록번호 28자리와 납부자의 성함, 행성 주소, 행성의 위도와 경도, 행성 주파수 및 암호화 프로토콜을 위한 캡슐화 넘버 14자리를 서보스컬 옆의 패드에 기재하여 주십시오."


대리인은 이런 무자비하고 복잡하며 비효율적인 절차에 비탄을 금치 못했지만 별 수가 없었기에 30분 동안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는 서보스컬을 붙잡고 겨우내 적어 냈다.



"잘못 입력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시려면 1번, 납부중단은 2번을 눌러주세요."

"....1번...."

"현재 대기번호 43,373번 입니다. 예상 소요시간은 3,629,127분 입니다. 계속 기다리시려면 1번을 눌러주세요."





얼마 후 특정 행성에서 십일조를 납부하지 않아, 이를 '황제폐하'를 거부한 것으로 보아 조사단을 파견했다는 말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