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을 훑고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사내를 스쳤다. 사내는 손에 쥔 검을 고쳐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평온을 누리길 원했으나 의무가 우선이였다. 악을 징벌하고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

밀밭의 속삭임이 거칠어졌고 사내의 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져 수확하는 농부처럼 밀을 베었다. 차이점은 칼날에 묻은 진득한 피와 골골대는 단말마였다. 고어가 찢어진 목을 움켜잡자 오염된 피가 심장박동에 맞춰 울컥이며 튀었다.발길질이 고어를 걷어차고 사내는 몸돌려 육박하는 적을 맞이했다. 비스트맨 무리가 불경한 언어로 울부짖으며 그의 피를 갈구했다. 와라. 사내는 중얼거렸다. 지그마의 분노를 맞이해라.

그는 포위망을 기다리지 않고 돌진했으며 칼날은 카오스의 피로 목말라했다.충돌에서 가장 먼저 죽은 건 그를 정면에서 공격해온 고어였다. 일격에 사타구니부터 흉부까지 찢어진 놈의 시체를 뒤로 하고 칼날은 춤을 추었다. 비스트맨의 피가 밀밭을 더럽히고 악취나는 시체가 늘 때마다 놈들의 용기는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리더니 그가 다가서자 거꾸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소의 머리를 한 짐승의 포효가 고막을 찢을듯이 울리고 벽력같은 발소리가 미노타우르스의 돌진을 알렸다.

사내는 도망치는 대신 먼 옛날 지그마가 그의 갈 마르즈로 그랬듯이 터미누스를 밤하늘을 밝히는 쌍꼬리 해성처럼 던졌고 검은 디더릭의 손에서 벗어나 짐승의 흉부를 파고들어 칼자루만이 보였다. 돌진이 걸음으로, 비틀거리는 휘청임이 되었다. 그는 앞까지 온 미노타우르스에게서 터미누스를 뽑으며 옆으로 돌아 쏟아지는 피를 피했다.

이제 비스트맨은 공포에 질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디더릭의 휘파람 소리에 달려온 오베른에 올라탄 그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누구도 신왕의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짐승들은 민중의 악몽을 거니는 대신 그들이 밟는 토지에 뿌려질 잿가루가 될 것이다. 디더릭 카스트너가 그렇게 하리라. 가자, 오랜 친구. 그들은 달렸다.

촌장은 이마가 땅에 닿을 지경으로 감사를 표했다. 명성높은 지그마의 기사가 몸소 온 것도 황송한데 그 분이 카오스의 침공에서 에버초즌을 참살한 영웅이라니. 마을에 있어선 지그마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기사는 농민의 감사인사만 받고 선물을 물렸다. 가난한 살림에서 가져갈 정도로 궁핍하진 않았거니와 사실 카스트너 영지가 있잖은가.

대신 그는 촌장과 함께 마을을 산책하며 질문했다.

"아들이 있더군."

"라야께서 축복하셨습니다, 경. 제 자랑이지요."

"부인과는 화목한가? 그러니까 선물을 주고 받느냐는 말일세."

"예? 그렇습니다. 저같은 남자와 결혼해줘서 고맙지요."

디더릭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민을 꺼내놓았다. 그의 얼굴은 키슬레프에서 카오스와 싸웠을 때보다 진지했다.

"결혼기념 선물을 주고 싶은데 아내가 뭘 좋아할지 모르겠네."

위대한 기사도 남자란 말인가. 촌장은 그 자신부터 잡혀사는 처지였기에 곧 같은 처지가 될 디더릭의 고민에 공감했다. 암. 마눌님이 최고의 상전인 법.

"부인께선 뭘 좋아하십니까?"

"책은 아니야. 교단에 있을때도 거리가 멀었지. 보석같은 장신구엔 흥미가 없더군."

남편으로 산 30년의 시간이 적절한 답을 도출하기까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럴때는 수수하게 가자.

"한가지 있습니다, 경. 마을 최고의 장인들을 만나보시죠."

*

카스트너 영지는 밤에도 불구하고 농인들이 돌아온 주인을 존경으로 환영했기에 활기찼다. 그들의 영주이자 영웅은 농민 한명한명 거저 지나치지 않았고 오베른이 저택 근방에 달했을 때는 시간이 다소 흐른뒤였다. 디더릭은 말에서 내려 무덤 앞에 직접 꺽은 꽃다발을 바치며 모르의 왕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두 남녀를 떠올렸다.

카스트너 부인. 죽은 카스트너 경의 터미누스를 가지고 사생아 행세를 한 디더릭을 받아준 여인. 카스트너의 이름을 빛내주어 고맙더랬다. 그녀의 친절이 없었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고버트 사제. 버려진 그를 자식처럼 키우고 아버지가 되어준 이. 노인은 디더릭을 자랑스러워했고 마지막 순간 잠들듯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저택 입구에는 지젤 단치거, 이제는 지젤 카스트너인,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한달음에 디더릭을 끌어안았다. 잠시동안 침묵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고개들어 그를 보는 지젤은 아름다웠다. 디더릭은 잠시 떨어져 그가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라야와 샬리아의 상징으로 장식된 부적들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뜻을 알아차린 그녀의 빰이 붉게 상기되었고 그게 너무나 사랑스러워 디더릭은 지젤을 다시 포옹했다. 그의 금발과 그녀의 흑발이 뒤섞이며 하나되어 흔들렸다.

"키스해줘요, 디더릭."

기꺼이 내 사랑. 디더릭은 지젤에게 입맞췄다.쌍꼬리 해성이 남녀의 머리위에서 환하게 빛나며 둘을 축복하고 있었다.


정보 라야는 출생과 생명의 신이다.
수정+추가) 아카온 소설에서 비슷한 대목이 있던가? 나무꾼과 아내? 그거보고 느낌 와서 디더릭이 행복해졌으면? 하고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