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익도 최초 비용 없이 따라오지 않기에, 전쟁에는 늘 사상자가 따른다.
미르툰은 사상자들이 위대한 과업 호로 운반될 수 있게 썩 보기 좋지는 못하지만 실용적인 구 형태의 더미로 한데 묶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격언은 그녀가 가장 어려운 방식으로 인생의 여명기 무렵에 배우게 된 진실이었다.
보탄에 의해 창조되고, 살아가고, 다시 보탄으로 돌아가는 일족은 생산적인 - 몇몇이 감히 말하자면 이익이 되는 - 삶을 산 것이었다. 그들의 육신은 다시 한번 삶을 얻을 것이요, 그들이 쌓아올린 지식은 불멸로 남을 테니까.
그럼에도, 한없이 지혜로운 보탄은 일족에게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절대로 없애지 않았다. 생물학적 충동으로서 두려움은 극도로 효율적인 동기 부여 수단이었고, 훈련과 규율로 제련될 수만 있다면, 두려움은 필수적인 감정이었다. 통제 하에 있는 자기 보존 본능은 모든 결정에 날카로운 집중력을 더해주었으니.
그 대신 보탄은 일족에게 실존적 공포에서의 해방이라는 축복을 선사했다. 사후 세계도, 영혼의 존재 여부도, 어떻게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일족은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족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 연맹의 요새들에 존재하는 유전 데이터뱅크와 도가니로부터.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생체-재처리 장치에서 의식이 선조 코어로 떠나갈 것임을.
혼란스러운 미스터리도, 의심에 찬 질문도 그들에게는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미르툰은 죽음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죽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수용해야만 했지만, 일족의 목숨은 이익을 위해 소비할 수 있는 토큰 따위가 아니었다. 각각의 일족은 더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잠재력, 연맹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열어젖힐 수 있는 능력, 보탄을 위해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쌓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탐광단 안에서도, 일족들은 너무나 다종다양해 모든 죽음은 종족 전체의 궤도를 바꿀 수 있었다 - 대부분은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족은 절대 실현될 수 없는 위대함을 쟁취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자기 벨트로 고정된 저 시신 하나하나가 미래의 탐광단장, 칼, 심지어 하이 칼이었을지도 몰랐다.
각각의 일족에 깃든 복제 실타래가 그들을 헤른킨, 브로키르, 크토니안 광부 혹은 그림니르를 비롯해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길은 절대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보탄 설정 중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인듯
지극히 물질론적인 자본주의자들이 사만에서 가장 확고한 생사관을 갖추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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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App
유물론적 윤회사상인가 신기하네
태생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보탄이 워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에는 이런 확고한 생사관 덕분에 워프에 대한 믿음이 아예 없는 것도 한몫 했으려나?
그렇지 않을까 - dc App
이러니까 니드가 ㅈ나싫을만 하네.먹어치운 후 유전자 단위로 저 순환을 뜯어간다는 거잖아
ㅇㅇ 크롯도 그렇고 보탄도 유전자를 단순한 육체의 레시피로 여기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니 유전자 자체를 수집해 뒤틀어버리는 니드를 혐오할만함
= 한 번 뿐인 인생 폼나게 살자 인가요
보탄에 업로드 되는게 기억만이 아니라 의식 자체가 보탄 속으로 전송 되는건가? 엘다 스피릿 스톤처럼?
ㅇㅇ 그런가봐 - dc App
의미도 없이 살아있는 STC 똥컴 만드는 난쟁이 기계교라고 생각 했었는데 보탄 속이 사후세계나 마찬가지라면 그나마 납득이 가네..
근데 이러면 보탄코어의 리소스가 언젠가는 꽉찰것같은데..
또 하나 새로 만들면 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