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잉..." 마름은 엉망이 된 밭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얼마 전, 하늘을 가른 두 유성의 모습은 모든 이들의 화제인 대사건이었다.
"하루빨리 정리하고, 이런 일 생겼다고 소작료 줄여주진 않을테니 그리 아슈."
이 밭은 불운하게도 유성이 떨어져 엉망이 됐다.
사라져가는 마름의 뒷모습을 보며 소작농은 자신이 숨긴 보물을 떠올렸다.
밭에는 불운만이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유성이 아니었다. 정체 모를 기계였다.
안에는 작은 아이가 들어있었다.
밭의 소작농 부부는 마침 아이가 없었고, 그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부부는 아이에게 들에서 만났으니 '들의 아이'란 의미의 모타리온이라 이름을 붙였다.
모타리온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순식간에 자랐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라는 탓에 어머니는 몇 주마다 새로 옷을 수선해줘야 했다.
어찌나 힘도 장사인지,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보다 일솜씨도 좋았다.
거기에 머리도 좋아서, 모타리온이 농사에 나선 후로는 수확량도 눈에 띄게 늘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타리온의 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수확량이 늘자, 높으신 분들은 소작료를 높였다.
삶의 질은 그 전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이었다.
"이건 옳지 않아요 아버지." 모타리온은 농작물을 싣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저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부를 누리고,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알아요.
사과 하나 제 손으로 딸 수 없는 무능력자들이지만 가장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있어요."
"그게 불만이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모타리온은 눈치를 봤다.
"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뗐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모타리온은 나쁜 생각은 그만두기로 하고 아버지를 뒤따랐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모타리온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다.
"이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그러실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한 번이지만 도시에 다녀온 적 있었다. 그곳에서는 참 여러가지를 봤다.
도시의 모든 것이 좋진 않았다.
귀족들의 유희는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동시에 그들이 가진 것과 자신들이 가진 것의 격차도 느낄 수 있었다.
"모타리온.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가 아닐 뿐이야." "그럼 그 때는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기다려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힘으로 오게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도 농사와 같단다." 모타리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린 열매를 따낼 수 있어요. 그 씨도 심을 수 있어요.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거기서 자라날 나무를 네가 고를 수 있더냐?" 모타리온은 답하지 못했다.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자라는 법이다.
네가 포도가 열리기를 아무리 바래도 말이야." 모타리온은 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여전히 불만은 가득했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듬해부터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셨다. 그리고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귀족들의 수탈은 여전했다. 모타리온은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농사일에 매진했다.
시간이 비면 가까운 이웃들의 농사를 도왔다.
모타리온은 어느새 농부들의 품앗이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그 소문 들었어요?" "소문?" "아니 글쎄,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대요."
어머니는 잠시 쉬는 동안 이웃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타리온은 그들보다도 일찍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르고.
밤이 깊었다. 모타리온은 조용히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도시에서 일어난 소식 들으셨습니까?" "그럼.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우리도 일어날 때가 다가왔습니다."
모타리온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흉년을 대비해 모두가 조금씩 모아둔 식량이 있었다. 식량만이 아니었다.
모타리온의 주도 하에 소작농들은 십시일반 조금씩 물자들을 모으고 있었다.
"드디어?" 한 농부가 기대에 찬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모타리온은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를 속으로 되뇌였다.
씨를 심을 때는 농부가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라날 나무는 농부가 정할 수 없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조력자를 모으고, 한 톨이라도 물자를 비축해야 한다.
그리고 적들이 가장 약해지고, 가장 치명타가 될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폭동은 생각보다도 길어졌다. 도시가 수십 개나 불탔다는 소문이 들렸다.
어떤 소작농들은 지주가 죽어 난생 처음 수확물 전부를 자기몫으로 가지게 됐다.
모타리온은 당장이라도 이 낫을 쥐고 봉기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어떨 때는 지금도 고통받을 이들이 떠올라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모타리온은 아버지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한 농부가 모타리온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래서, 대체 그 날이 언제란 말인가?"
모타리온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울이 가까워졌다.
슬슬 지주들이 우리의 손에서 작물을 빼앗으려 올 시기다.
그러니까 지주들이 가진 것이 가장 적고, 농부들이 가진 것이 가장 많을 시기였다.
날은 추워져 곧 강이 얼어붙을 때가 됐다.
얼어붙은 강은 더이상 방어선이 되지 않는다. 길이 될 뿐이다.
폭동을 일으킨 반군의 소식이 뜸해졌다.
높으신 분들의 군대가 그 정도로 멀리 떠났다는 뜻이리라.
"바로 오늘입니다."
모타리온이 낫을 높이 치켜들었다.
처음에는 농부 몇 명이 일으킨 소란이었다.
소란은 메마른 밭에 퍼지는 불길처럼 순식간에 커지고 넓어졌다.
후방에서 보급이 끊긴 군대는 급하게 회군하기 시작했다.
군대는 급히 농부들의 반란을 진압하려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규모는 군대의 수십 배로 불어나있었다.
...그리고, 도시의 반란군도 혁명의 불씨만은 보존해낼 수 있었다.
"걱정 없는 삶을 위해!!" 모타리온의 함성에 농부들이 우레처럼 답했다.
농부들의 무기는 군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수가 훨씬 많았다.
군대는 먹을 것이 서서히 부족해져갔다.
농부들은 식량을 뺏기느니 불을 지르고 독을 뿌렸다.
거기에다 완전히 진압하지 못한 도시의 반란군도 다시 일어났다.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더 이상 귀족들의 군대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봄이 찾아올 즈음, 이 땅에도 봄이 찾아왔다.
식량도 물자도 떨어진 군대는 이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군대가 패퇴하면 농민군은 그 장비를 주워 재무장했다.
모타리온이 이끄는 농부들의 군대는 어느 산 앞에서 귀족들을 완전히 몰아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타리온은 반란군의 수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검투사였고, 참으로 덩치가 커다란 거한이었다.
"어째서..." 그의 짧은 말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는 원망이었다.
그가 좀 더 일찍 일어났다면 한 명의 동료라도 더 구했을텐데.
왜 자신들을 도왔느냐는 고마움이었다
.
자신이 잃은 동료들의 수십, 수백배의 농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자기 같은 이가 더 있었다는 안도감이었다.
둘은 너무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도, 모타리온도 그가 자신의 형제라고 확신했다.
반란군의 수장은 앙그론. 산의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였다.
들의 아이는 산의 아이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산의 아이는 그의 품에서 오열했다.
두 명의 아이는 누세리아의 공동 집정관으로 올랐다.
둘은 다짐했다. 앞으로 누세리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자신들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보다 참혹한 일은 없게 하겠다고.
이듬해에, 저 우주에서 한 함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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